내가 못 본 지리산 - 사진가 이창수의 산마을 십 년
이창수 지음 / 학고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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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을까
 [찾아 읽는 사진책 5] 이창수, 《내가 못 본 지리산》(학고재,2009)


 1985년부터 사진기자로 열여섯 해 일을 하다가 2000년부터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악양골 노전마을에서 살아가며 차 농사와 감 농사를 짓는 가운데 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한다는 이창수 님이 내놓은 사진책 《내가 못 본 지리산》을 진작에 읽었습니다. 이창수 님은 “먼 길 달려온 햇빛이 논에 내려 빛잔치를 벌입니다(61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마지막 모내기가 바쁜 논은 연둣빛 호수입니다(42쪽).”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산중에 사는 즐거움이란 바로 계절의 뒤바뀜을 실시간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30쪽).” 하고 말하며 웃겠지요. 그러나 이 사진책에서 빛잔치와 연두빛 호수와 꾸준히 뒤바뀌는 철을 찬찬히 느끼기는 어렵구나 싶습니다. 사진과 글을 담은 이창수 님부터 “노전마을에서 우리 집 가는 길은 악양면의 ‘스카이웨이’입니다(34쪽).” 하고 말하거든요.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아름답고 살갑다 할 만한 시골 삶자락을 고이 선보인다 하는 책 《내가 못 본 지리산》인데, 아직까지 도시에서 하듯이 ‘스카이웨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작에 이 책 읽었던 지난해 어느 날, 책을 덮으며 끝자락에 석 줄을 적바림했습니다.

 첫째 줄.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썼을까.

 둘째 줄.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을까.

 셋째 줄. 무엇을 나누고 싶어서 책을 냈을까.

 74쪽에 실어 놓은 나락빛 사진이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이 사진 하나가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사진을 볼 때에는 ‘빛잔치’가 무엇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습니다. 연두빛 호수라 하던 사진은 이창수 님이 스스로 이렇게 말했으니 연두빛으로 물든 못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철이 바뀌는 산골마을이라 말은 하면서 정작 철이 바뀌는 사진을 찬찬히 실어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 한 장’이라 할 만한 사진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바로 이 한 장’이라 할 만한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마음으로 와닿는 사진이면 넉넉합니다. 지리산골 예술쟁이들 사진을 잔뜩 싣거나 이들 이야기를 찬찬히 늘어놓기보다, 그저 이창수 님이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창수 님이 가슴으로 받아안은 고운 빛잔치를 찬찬히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빛잔치라 했지 글잔치라고는 안 했지요? 빛잔치라 하셨지 사람잔치라고는 안 했잖아요.

 시골사람을 만나 삶을 귀담아들으면 되는데, 구태여 취재를 하듯 다가설 까닭이란 없어요. 시골사람 시골살이를 차근차근 누리거나 즐기면 넉넉하지, 따로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옮겨야 할 까닭은 없어요. 반드시 글로 옮기거나 그림으로 다시 그리거나 사진으로 거듭 찍어야 하는 삶이 아닙니다. 가붓이 즐기면 넉넉하고, 살뜰히 어루어지는 그대로 느긋합니다.

 글에 서린 빛을 보여주고 싶을 수 있고, 사람에 어린 빛일 담고 싶을 수 있겠지요. 어느 빛이든 더없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서만 즐길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서두른다고 일이 되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글이 멋있어지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사진이 아름다울 수 없어요. 마을 이장님은 이창수 님한테 한 마디 툭 뱉습니다. 아니, 마을 이장님은 당신이 살아온 결 그대로 당신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사랑스레 건넵니다. “아녀, 지금이 딱이야. 봄이 바빠야 가을이 넉넉하지. 이제 일할 때가 되니 겁나나(46쪽)?” 서둘러도 안 되고 늦추어도 안 됩니다. 딱 이때에 이만큼 해야 합니다. 글이든 사진이든, 또 이창수 님이 대학교에서 맡은 강의이든 언제나 딱 고만큼 고 자리에서 고롷코롬 해야 합니다. 빛잔치란 빛이 넘치기에 이루어지는 잔치가 아닙니다. 빛이 모자라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잔치 또한 아니에요.

 “라면을 끓여 먹던 도회지 생활은 바빴습니다.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나름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이 뒤섞이며 그렇게 지냈습니다. 도회지에서 원없이 일했고 원없이 놀았습니다(21쪽).” 하고 말하던 이창수 님은 아직까지 라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라면을 먹든 말든 무슨 대수랍니까. 시골사람도 라면을 즐기는데요, 뭐. 도시사람 가운데 라면을 안 즐기는 사람이 있고, 시골사람 가운데 라면을 아주 즐기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사람이면서 바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내 삶을 따숩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시골사람이지만 너무 바쁜 일에 허우적거리며 허둥지둥 ‘소담스러운 하루와 한때’를 깡그리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창수 님은 도시에서도 몹시 바빠 도시살이 아름다움을 놓쳤고, 시골에서도 지나치게 바빠 시골살이 아리따움을 놓치지는 않나 걱정스럽습니다.

 라면 한 그릇을 아주 느긋하게 끓여 매우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밭에서 거둔 푸성귀랑 멧자락에서 캐거나 뜯은 나물이랑 밥상을 차렸지만 헐레벌떡 주워먹기 바쁜 사람 또한 많습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농사를 지은 쌀을 손수 빻아 몸소 쌀을 일고 씻어 불린 뒤 밥을 하는 가운데 다른 찬거리를 마련하여 밥상을 차립니다. 누군가는 손전화 꾹꾹 눌러 바깥밥을 시켜 카드로 긁어 후딱 먹고는 비닐봉지에 대충 묶어 아무 데나 내놓거나 땅에 파묻습니다.

 사진은 손이 아닌 마음이 찍습니다. 밥은 손이 아닌 마음으로 마련하여 마음으로 먹습니다. 찍는 사진이나 찍힌 사진이나 마음으로 바라보며 즐깁니다. 차려 놓은 밥상이든 차리는 밥상이든 마음을 담아 나눕니다. 찍혀 준 사람이나 찍어 주는 사람이나 마음과 마음으로 사귈 때에 바야흐로 사진이 태어나고 사진이 빛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살림을 하는 사람이나 마음과 마음으로 두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땀을 흘리며 사랑을 바칠 때에 비로소 삶이 아름답고 삶이 빛납니다.

 《내가 못 본 지리산》 74쪽에 실은 나락빛 사진이 좋았다고 말했는데, 이 나락빛 사진을 보면서 정인숙 님 사진책 《풍경》에 실린 나락무리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못 본 지리산》 18쪽에 실린 층층논 누렇게 익은 나락 사진을 보면서 안승일 님 사진책 《굴피집》이 떠올랐습니다. 이창수 님은 이창수 님 사진을 찍고, 정인숙 님이나 안승일 님은 정인숙 님 사진이나 안승일 님 사진을 찍을 테지요. 그러면 이창수 님 사진에는 어떠한 ‘이창수 사진 빛’이 있다 말할 수 있으려나요. 이창수 님이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에 깃들어 지내며 담은 사진에는 어떤 ‘지리산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 이창수’ 사진빛이 감돈다 할 만한지요. 잡지사와 신문사 사진기자 노릇을 하던 때 버릇을 고스란히 움켜쥔 채 시골자락 삶결을 마구 헤집거나 후벼파지는 않나 근심스럽습니다.


.. “늙은 할망구 얼굴 찍지 말어.” “고우세요.” “곱기는 왜 아침부터 사진기 들고 다녀.” “어여 가.” ..  (37쪽)


 마을사람들은 이창수 님한테 말 한 마디 톡톡 뱉습니다. 바삐 일하느라 고단한데 말을 거니까 톡톡 뱉습니다. “아녀! 사월 이십칠일에 못자리 내려면 이제 해야 돼(40쪽).”  “없이 살다 보니 예까지 왔지, 있이 살면 이 험한 골로 누가 오나(52쪽).” “책상에서 숫자 가지고 노는 놈들이 농사를 알겠어(62쪽)?” “마누라 해 주는 게 맛있제, 내가 헌 게 맛있는가(66쪽)!” “사진쟁이는 복조리 많이 사 가서 많이 노나 줘(85쪽).” “누가 벌어 주나요, 내 안 벌면. 허리가 아파도 먹고살려면 해야지(98쪽).”

 차분한 빛 한 줄기여도 즐겁습니다. 따스한 사진 한 장이어도 기쁩니다. 살가운 글 한 줄이어도 곱습니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할 빛은 아닙니다. 더 많이 찍어야 할 사진은 아닙니다. 더 많이 써야 할 글은 아닙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한결 오순도순 살아가면 좋을 터전입니다. 내 살붙이하고 있든 감나무하고 있든 참으로 알콩달콩 속삭이면 좋을 보금자리입니다. 그예 올망졸망 손을 잡으면 좋은 이웃마을입니다. 내 살림집 자리잡은 마을도 좋고 내 살림집과 이웃한 마을도 좋아요. 천천히 거닐면 됩니다. 논둑길이든 멧등성이길이든 천천히 두 다리로 오가면 됩니다. 뭐가 그리 바빠서 짐차를 타고 대학교까지 강의를 하러 다닙니까. 무슨 가르칠 꺼리가 그리 많아서 짐차를 몰아 대학교까지 들락 날락 하며 사진 이야기를 쏟아내야 하겠습니까.

 스스로 빛나는 고운 사진잔치가 되어 《내가 못 본 지리산》이 아닌 “내가 본 지리산”이나 “내가 사는 지리산”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이 사진책 하나를 가슴에 품으며 사진을 찍으려 하는 어린 뒷사람한테 좋은 길잡이책으로 스며듭니다. 강의도 학문도 예술도 장사도 살림도 농사도 고스란히 책 한 권에 녹아들도록 마음을 바치는 굳은살이 그립습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 내가 못 본 지리산 (이창수 사진·글,학고재 펴냄,2009.10.7./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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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i 2010-11-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내리는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글이란게 이런거구나 싶네요. 호기심 탓에 그간 내놓으신 글을 찾아봐야겠다 기억해 놓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장터목 산장 곁 경사에 앉아 석양에 넋을 놓던 기억이 십여 년 전이니, 그간 뭐하느라 한 번 찾질 못했나 싶은 자책이 쓸쓸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0-11-11 05:05   좋아요 0 | URL
이 나라 교수나 작가나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예쁘며 착하게 살아가며 예쁘고 착한 책을 내놓을 날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