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0.22.
: 혼자 장날 마실 다녀오기
- 아침에 일찍 세 식구가 함께 읍내 장날 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 밥을 먹이고 아이 똥을 누이며 빨래를 한다며 이래저래 부산을 떨다가 그만 버스 때를 놓친다. 11시 50분 버스 때를 놓친 다음에는 13시 40분 버스 때인데, 이무렵에는 아이가 그만 낮잠을 잔다. 여느 때에는 낮잠 안 잔다며 칭얼거리던 아이가 요사이에는 낮잠을 아주 잘 자 준다. 더없이 고마운 한편, 꼭 이렇게 함께 나갔으면 할 때에 잠이 든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아빠가 더 일찍부터 바지런을 떨었으면 아침 때에 잘 맞추어 나들이를 다녀왔고, 아이 또한 즐겁게 낮잠에 들 수 있었겠지.
- 아이가 낮잠 자는 모습을 보다가 아빠 혼자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다녀오기로 한다. 아이랑 엄마랑 먹는 능금이 다 떨어졌다. 능금을 사고, 능금을 사는 김에 장마당에 펼쳐진 먹을거리 한두 가지를 사 올까 생각한다.
- 슬금슬금 달린다. 자전거로 달릴 때에는 사진기에 가벼운 렌즈를 붙인다. 무거운 렌즈를 붙이면 내가 바라는 사진을 한결 잘 담을 수 있으나, 이때에는 자전거를 달리며 목이 좀 아프다. 언덕길을 오를 때에는 더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고픈 마음이라면 목이 아프건 어떠하건 무거운 렌즈를 달며 자전거를 달려야겠지.
- 늘 다니는 읍내길이지만, 가을 막바지에 이르는 읍내길은 새삼스럽다. 여름날 보던 푸르디푸른 느티나무 잎사귀가 차츰 누렇게 바뀐다. 곧 샛누런 빛깔로 탈바꿈하리라.
- 비탈논을 일구는 곳 가운데 벌써 벼를 다 벤 곳이 있고 한창 벼를 베는 곳이 있다. 내 사진기로 담아도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사진기 아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도 좋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라면 사진기를 목에 안 걸어야 하지 않나? 오르막에서 멈추기 싫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셈 아닐까? 하기는. 오르막을 낑낑 오르다가 ‘아, 이 모습 사진으로 담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이 들 때에 멈추기는 어렵다. 오르막을 낑낑 오른 다음 시원한 내리막을 달리는데 ‘어, 이 모습 참 좋잖아. 찍고 싶다. 그런데 멈춰야 하다니.’ 하고 생각하다가 그예 안 멈추고 지나가곤 한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셔터빠르기를 1/125초까지 올리며 사진을 찍어 보다. 그러나 오르막에서 뒤뚱뒤뚱거리며 사진을 찍으니 흔들린다. 그냥 멈추어서 찍어야 한다.
- 읍내 장날에는 나처럼 자전거를 끌고 마실하는 분이 꽤 있다. 이분들은 읍내하고 제법 떨어진 곳에서 살아갈 테지. 딱히 자전거를 묶어 둘 데가 없기도 하고, 자전거 짐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야 하니, 다들 자전거를 끌고 장마당을 슬슬 돈다.
- 장날만큼은 시골 하나로마트가 장사를 못하는 날이라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장마당 장사꾼들 모두 물건을 잘 파는지는 모르겠다. 낮 세 시 가까이 장마당에 닿아 둘러보는데, 이때에 처음 마수를 했다는 분을 본다. 어쩌면 마수조차 못하고 장마당을 걷는 할매 할배도 있지 않을까.
- 호떡과 핫도그를 산다. 아이 엄마가 먹고 싶다는 참외까지 산다. 참외는 꼭 한 곳에서만 판다. 용케 참외를 파는 곳이 있다. 이 집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이 엄마가 먹고 싶어 한다면 추운 겨울날 딸기를 어떻게든 마련해서 먹인다’고 하던 옛말을 떠올린다.
- 호떡과 핫도그가 식을까 걱정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오르막을 힘차게 달린다. 읍내로 나올 때에는 텅 빈 가방이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꽉 찬 가방이다. 그예 땀을 뻘뻘 흘린다. 용산리 숯고개를 넘어 비로소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길바닥에는 숱한 뱀과 잠자리와 작은 멧짐승 주검이 깔려 있다. 납짝꿍이 된 주검을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면서 내리막을 달린다. 숨이 차며 집에 닿으니 아이 엄마는 아이랑 맛난 밥을 차려서 먹는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호떡 안 사도 됐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