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32 : 헌책방에 내놓지 못한 책

 선물받은 그림책 가운데 굳이 우리 집에 놓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책을 챙겨 헌책방에 가져다줄 생각이었습니다. 여태까지 늘 이렇게 해 왔습니다. 우리 식구가 다른 분들한테 책을 선물로 드릴 때에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헌책방에 내놓아 주십사 하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한테 선물로 책을 주시는 분들 마음은 고맙게 받고 책은 헌책방에 갖다주곤 합니다. 이제는 우리한테 책을 선물로 주시는 분들이 먼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라면 헌책방에 내놓으셔도 돼요.” 하고 말씀합니다.

 헌책방으로 챙겨 가기 앞서 아이 어머니보고 한 번 더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그림책들을 가만히 넘겨 보더니 이 책은 이런 까닭 때문에 더 보고 싶고, 저 책은 저런 까닭 때문에 그냥 두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바깥마실을 하며 챙기려던 ‘헌책방에 내놓으려던 책’은 한 권도 없고 맙니다. 헌책방으로 가져갈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침을 먹기 앞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 어머니 말이 아니어도 저부터 아이 어머니처럼 생각합니다. 처음 선물을 받을 때에는 ‘참, 이 출판사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그림책을 버젓이 내놓았을까? 게다가 이 그림책은 이렇게 형편없이 그렸는데 무슨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십만 권이나 팔린다고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옳지 못한 그림에 재주만 잔뜩 부린 그림인데 여느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을 ‘귀엽다’고 여기거나 ‘재미있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참 잘못 그리거나 엉터리로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이 잘못 그린 그림을 보면서도 재미있어 할 수 있습니다. 엉성궂게 쓴 글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마음이 뭉클하거나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 수 있으니까요. 맞춤법이 틀리거나 띄어쓰기가 어긋난 글이라 하더라도 줄거리가 아름답다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맞아들일 수 있어요.

 두 번 세 번 네 번 들여다보면서 ‘엉성궂은 그림’이 담긴 책들이 매우 딱하고 불쌍하다가는 이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곧이어 이와 같은 그림들일수록 더 따숩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토닥토닥 어루만져야 하지 않느냐 싶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예부터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습니다. 참말 고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주지 않고 미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줍니다. 고운 아이는 떡을 굳이 더 주지 않아도 고운 결을 착하고 참되게 이어갑니다. 미운 아이는 떡 하나 더 낼름 받아먹어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더 미운 짓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부터 미운 아이를 더 귀여워 하거나 아끼면서 보듬어 왔습니다. 굳이 어떤 종교라든지 믿음이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뒷간에서 볼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힙니다. 빨래한 아이 옷을 햇볕 따사로운 마당가에 널어 놓습니다. 아이가 한 달 두 달 커지면서 아이 옷가지를 빨고 짤 때에 힘이 더 듭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어떤 책을 어떤 마음결로 바라보며 어떤 마음밭을 일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3.8.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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