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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미래 - 사슴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한 나날들
팔리 모왓 지음, 장석봉 옮김 / 달팽이 / 2009년 11월
평점 :
(별은 다섯 붙였지만, 장석봉 번역이 엉터리라서 내 점수는 9점이다)
이 책 하나 136 ― 묻힌 삶, 묻힌 사람, 묻힌 터
: 팔리 모왓, 《잊혀진 미래》
- 책이름 : 잊혀진 미래
- 글쓴이 : 팔리 모왓
- 옮긴이 : 장석봉
- 펴낸곳 : 달팽이 (2009.11.12.)
- 책값 : 15000원
(1) 아이를 키우는 힘든 삶이란
아이와 함께 마실을 다니면 아이를 귀엽게 바라보는 어르신들을 때때로 만납니다. 어르신들은 아이한테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사탕이나 과자를 쥐어 줍니다. 생각해 보면 저 또한 아이였을 때에 둘레 어른들한테서 사탕이나 과자를 곧잘 얻어먹었지 싶습니다. 이때마다 어머니는 몹시 안 좋아하셨고, 둘레 어르신들한테 아이한테 사탕이나 과자를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집에서 먹지 못하는 사탕이나 과자를 받아먹고 싶었고,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제가 아이였을 나이에서 서른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은 지난날과 뒤집어진 일이 나타납니다. 우리 아이가 둘레 어르신한테서 사탕과 과자를 받아먹고, 저는 아버지 된 몸으로 이런 사탕 선물과 과자 선물이 못마땅하고 힘겹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은 ‘사탕 하나 준다고 뭐 어때서?’이고 ‘사탕 때문에 이가 썩을까 봐 걱정하나?’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바깥에 나와 사람들한테서 자꾸 사탕이나 과자를 받아먹어 버릇하면 무엇보다 ‘밥을 잘 안 먹으려’ 합니다. 다음으로, 바깥에 나오면 으레 누군가 무엇을 먹으라고 준다고 생각합니다. 밥때에 맞추어 한창 밥을 부지런히 먹고 자라야 할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아이가 얼마나 땡깡을 부리는지를 사람들이 옳게 느껴야 하고, 선물받는 고마움을 제대로 익히도록 하면서 무언가를 쥐어 주든 해야 할 줄을 어른들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깟 사탕 하나인데 뭐?’ 하고 생각하는 어르신이 있다면 ‘아니거든요. 당신 같은 어르신을 한 사람만 만나지 않거든요. 어느 날은 사탕만 자그마치 열 알이나 받아야 한 적이 있거든요.’ 하고 대꾸를 하지만, 늘 이렇게 대꾸를 하자니 고단하고 지칩니다.
어제는 아침부터 짐을 꾸려 서울로 마실을 나왔습니다. 아픈 옆지기가 조용히 명상 수련을 다녀오고 속 다스리는 약을 먹을 수 있게끔 아이는 아빠가 데리고 아빠 볼일 보러 가는 자리에 갑니다. 계단만 보면 꼭 저 스스로 하나씩 디뎌야겠다는 아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계단 끝까지 올라가거나 내려가겠다고 합니다. 다 오르거나 내려가면 아휴 하고 한숨을 쉬면서도.
사탕 한 번 과자 한 번 받아먹은 아이는 밥때가 되어도 밥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젠장 제기랄 하고 구시렁댑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이는 제 아빠가 사탕이나 과자가 아닌 밥을 주니까 고개를 도리질하거나 홱 돌리는데, 다른 사람이 밥술을 떠서 냠냠 하고 말하면 새끼 새들처럼 입을 쩍 벌립니다. 아주 말괄돼지인 녀석이 이때만큼은 고분고분 날름날름 잘 받아먹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출판사 분들한테 말씀해서 한 숟갈씩 아이한테 내밀어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먹을까요?’ 하고 궁금해 하던 분들이지만, 막상 숟갈을 아이한테 내미니 도리질 한 번 없이 곧바로 밥을 낼름낼름 먹으니 놀라 합니다.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어쩌면 저 또한 아이였을 때에 어머니가 떠 주는 밥술은 잘 안 먹고, 둘레 다른 어른들이 떠 주는 밥술은 낼름낼름 받아먹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심통이지만 심통을 부리고, 둘레 어른들한테는 귀여운 척을 떨지 않았느냐 싶어요. 어머니가 골을 내거나 힘들어 할 만큼 미운 짓을 했달까요. 그러면서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젓가락질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나 스스로 밥을 먹겠다고 했을 테고요. 깔작깔작거리면서.
낮잠을 넘기고 졸음을 참아 가며 놀던 아이는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듭니다. 팔이 저릴 무렵 잠든 아이를 자리에 살며시 내려놓으려 하니 스르르 눈을 뜹니다. 좀 누워서 잠을 자 주면 아빠가 서울 마실 나와서 볼일을 마저 보고 얼른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어쩌는 수 없구나 싶고,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빠가 아이한테 미안한 노릇이며, 이래저래 일을 얼추 마무리짓고 저녁 여덟 시 오십 분쯤에 서울 홍대앞에서 전철을 탑니다. 삼십 분쯤 일찍 일어설 수 있었으면 신도림역에서도 한결 느긋했을 터이나 이때를 놓쳐 꽤 북적이고 미어터집니다. 이런 ‘반쯤 지옥철’에서는 어느 누구도 어린이한테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아마 ‘뭐야, 이런 때에 왜 아이를 데리고 타고 법석이야?’ 하고들 여깁니다. 그렇지만 누군들 좋아서 미어터지는 때에 아이와 함께 전철을 타겠습니까. 제가 뭔 부자라고 인천까지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을 몰겠습니까. 아이 옷가지와 기저귀 담은 가방은 겨우 짐칸에 올렸지만, 아빠 책과 다른 짐이 든 무거운 가방은 등에서 내리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아이한테 자리 하나 내어주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만, 어르신 아닌 분은 장애인노약자영유아동반자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고, 여느 자리에 앉은 젊은 사람들은 손전화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저한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 아이나 조카나 아는 사람 아이가 앞에 있다면 이렇게 모른 척하거나 남 일로 여기지 않았겠지요. 생각하기를 잊은 사람들이고, 마음쓰기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어른들도 지옥철이나 반쯤 지옥철이 갑갑하고 괴롭습니다. 갓난아이나 어린이라면 훨씬 갑갑하고 괴롭습니다. 더구나 아이는 키가 작으니, 바닥에 서 있으면 캄캄한 우물에 갇혀 옴쭉달싹 못하는 꼴입니다. 내내 안겨야 해서 더 답답한 아이가 바닥에 서고 싶다며 하도 찡얼거려 내려 주니, 바닥에 서 있기가 훨씬 괴롭다며 다시 안아 달라 해서 안습니다. 틀림없이 아이 찡얼거리는 소리를 아이 둘레에서 ‘밀치는’ 사람들이 듣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쪽으로 ‘안 밀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른인 저한테 밀치면 그저 그럴 수밖에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아이한테 밀치면 어떻게 될까요.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만큼은 맨앞과 맨뒤가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여성 전용칸’이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름만 남았다고 느끼는데,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에 ‘여성 전용칸’이 생긴 까닭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여성 전용칸’을 마련하는 움직임만큼 ‘어린이 칸’을 마련해야지 싶습니다. 자전거를 실을 칸을 마련한다 하고, 바퀴걸상 타는 자리는 일찌감치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갓난아이이든 어린이이든 아이를 데리고 타는 어버이가 아이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 오줌을 누이거나 잠든 아이를 눕히거나, 또는 힘든 아이를 안고 어버이 한 사람이 앉아서 쉴 만한 자리를 마련해야지요.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빨래를 합니다. 고단한 두 사람은 먼저 잠들고 아빠는 좀더 깬 채 책 한 권을 읽고 잠자리에 듭니다. 잠자리에 누워 거듭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서울 마실을 나와 만난 책마을 일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말을 했지만, 아이키우기란 참 힘들고 참 힘든 하루하루가 보람입니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며 늘 새롭게 배우고 늘 고맙게 고개를 숙입니다. 저 스스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 때문에 지옥철이 아이한테 얼마나 안 좋은가를 새삼스레 깨닫는 한편, 허울좋은 장애인노약자영유아동반자 자리라고 하는 긴 이름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몸으로 느낍니다. 이런 이름표를 붙인다 한들, 지옥철에서 시달리는 여느 도시사람들은 장애인한테든 노약자한테든 영유아한테든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한테는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이런 딱지를 붙지지 않고서는 이웃사람을 살피지 못하는 도시사람이란 소리입니다. 이런 딱지를 붙인다 한들 가난하거나 힘든 이웃을 헤아릴 줄 모르는 도시사람이란 뜻입니다. 도시란 삶터는 한 사람이 고운 목숨 선물받은 아름다운 삶임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셈입니다. 이웃을 이웃으로 바라보거나 느끼기 어려운 도시라면, 이웃에 앞서 나 스스로 내 목숨이 얼마나 고운지를 느끼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자연을 밀어내고 시멘트와 쇠붙이만 가득 채운 도시이기에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연이 깃들 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시에서 제아무리 자연이 어떠하고 생태가 어떠하며 환경이 어떻고 저떻고 떠든들, 도시에서 사람이 사람다이 살기란 힘듭니다. 아니, 도시사람은 ‘자연스럽게(생태적으로)’ 살 수 없어요. 자연이 없는 곳에서 어찌 자연스레 살겠습니까. 자연이 있는 곳에서조차 숱한 공장과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얼룩져 있는걸요. 게다가 한국땅에 골프장이 좀 많습니까. 한국땅 국립공원에조차 하늘차와 주차장과 기차길 구멍과 고속도로 고가도로 따위가 오죽 많습니까. 곰곰이 살피면, 이 나라에서는 도시에서고 시골에서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용을 쓰는 꼴이고 몸부림을 치는 판입니다. 좀더 밝은 앞날을 생각하자고, 더욱 따뜻한 터전을 일구자고 애쓰는 흐름이 얕게나마 있습니다.
다만, 일찍 눈을 뜬 분들 말마따나 입으로는 진보를 외치는 분들마저 당신 아이들을 학원에 넣고 입시지옥에 내몰아 일류대학 졸업장을 거머쥐도록 내몹니다. 권정생 할아버지 책을 읽은 사람치고 이이를 우러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막상 권정생 할아버지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자가용을 버려서 이라크 파병을 막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촛불만 든다고 이라크 파병을 막겠습니까.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막지요. 우리들은 촛불은 들었어도 자가용을 버리지 못해 이라크 파병을 막지 못했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이든 국가보안법이든 막지 못합니다. 더욱이 경부운하이든 4대강이든, 진보나 개혁이나 보수나 무어나 외치기 앞서 내 삶터에서 자가용을 버려야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가용을 버리고, 다음으로는 아파트를 버리며, 차근차근 졸업장과 명예와 권력과 은행계좌를 버려야 합니다. 자가용부터 버리지 못한 사람한테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나눌 수 없습니다. 아파트를 버리지 못한 사람한테 ‘좋은 책 읽는 기쁨’을 나눌 수 없습니다. 졸업장을 버리지 못한 사람한테 ‘호미질하여 푸성귀 얻는 보람’을 나눌 수 없습니다. 은행계좌를 놓지 못하는 사람한테 ‘아이 똥기저귀를 손빨래하는 재미’를 나눌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거나 도시와 가까이 맞닿거나 도시 둘레에서 복닥이는 삶자리로서는 잃어버린 하루로 머뭅니다. 잃은 어제요 잃는 오늘이요 잃을 앞날입니다. 처음에는 잃지만 차츰차츰 잊는 어제가 되고 잊는 오늘이 되며 잊는 앞날이 됩니다.
(2) 묻힌 삶을 아로새겨 놓은 《잊혀진 미래》
1921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이곳저곳을 마실하면서 자랐다고 하는 팔리 모왓 님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두 번째 유럽전쟁에서 총을 들었고, 전쟁이 끝난 뒤 북극땅에 머물며 글쓰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무렵 처음 쓴 책이 《잊혀진 미래》입니다. 당신 스스로 흰둥이이면서 당신과 같은 흰둥이들이 북극땅을 비롯한 온누리 토박이 삶을 어떻게 헤집고 토박이 삶터를 얼마나 일그러뜨리거나 무너뜨리는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자연과 생태를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팔리 모왓 님 책이 2003년에 《울지 않는 늑대》(돌베개)라는 이름으로 처음 옮겨졌습니다. 2005년에 《걸어다니는 부엉이들》(북하우스)과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북하우스)가 옮겨졌으며, 2009년에 《안 뜨려는 배》(양철북)가 옮겨졌습니다. 《잊혀진 미래》는 다섯 권째 옮겨진 팔리 모왓 님 책입니다.
당신 책을 즐겨읽거나 더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은데, 한 권 두 권 꾸준히 우리 말로 옮겨집니다. 흔한 말로 잘 팔리는 책은 아닌 팔리 모왓 님 이야기인데, 잘 팔리지는 못할지라도 제대로 읽히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 많이 읽히지 못하는 팔리 모왓 님 이야기이지만, 다문 천 사람이든 만 사람이든 당신 이야기에 깃든 깊은 넋과 너른 얼을 고맙게 받아먹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 아니랴 싶습니다.
팔리 모왓 님이 태어난 1921년을 헤아려 봅니다. 이무렵 아버지를 따라 ‘학교 아닌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어린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1921년이 아니라 2010년을 돌아보았을 때에도 ‘학교에 안 넣고’ 세상을 넓고 깊게 배우도록 이끌어 줄 어버이란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2007년에 제 고향 인천에 돌아온 뒤로 가끔 학교(고등학교) 후배를 만납니다. 학교 후배들은 대학 입시를 걱정합니다. 어느 대학에 가야 할지, 무슨 학과에 가야 좋을지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무슨 꿈을 이루고 싶은지는 제대로 걱정할 줄 모릅니다. 아주 드물게 한두 젊은 넋들은 ‘학교 아닌 꿈’을 이야기합니다. 거의 모든 젊은 넋들은 ‘꿈 아닌 학교’를 이야기합니다. 아니, 꿈이란 없이 학교에 매여 있다고 할까요. 젊은 넋 스스로 너희가 얼마나 아름다운 젊음이요 어느 만큼 사랑스러운 넋인 줄을 깨닫지 못한다고 할까요. 스스로 못 깨닫기도 하고, 둘레에서 일깨우지 못하기도 한달까요.
후배들을 만날 때면 으레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대학교에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가지 말며 꿈이 있으면 대학교에 가든 말든 네 길을 찾으라고. 대학에 가든 안 가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어디에서든 알바를 하거나 일자리를 얻어 네 살림돈은 네 스스로 벌라고.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 한 해쯤은 길게 휴학을 하며 한 해치 등록금만큼을 너희 어버이한테 얻어서 ‘나중에 갚을게요’ 하고 말씀드리며 한 해치 등록금 천만 원으로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하여 우리 나라 곳곳을 한 해 동안 샅샅이 누벼 보라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학부모나 청소년이나, 누구라 할 것 없이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바쁩니다. 참으로 바쁜 나머지 이웃이고 살붙이이고 동무이고 나 스스로이고 돌아보지 못합니다. 팔리 모왓 님은 당신 이름과 돈과 힘을 내려놓고는 추운 땅 사슴겨레 사람들하고 어울리며 살았습니다만, 오늘 이 나라에서 내 이름과 돈과 힘을 이렇게 고이 내려놓고 지내고자 하는 분이란 거의 없습니다. 더 붙잡으려 하지 더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더 거머쥐려 하지 더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에 내 앎을 살핀다는 마음이 아니라 남보다 나은 점수를 받겠다는 마음입니다. 나한테 살기 좋은 집이면서 내 이웃하고 어우러지는 집을 찾지 않는 매무새입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자가용을 씽씽 내달리는 사람은 저 혼자만 살겠다는 몸짓입니다. 좁은 골목길에는 처음부터 자가용을 들이밀지 말았어야 했고, 어쩌는 수 없이 자가용을 들이밀었다면 골목사람 발걸음 빠르기에 맞추어 아주 느리게 달려야 합니다. 학교 앞에서는 30킬로미터 넘게 달리면 안 된다고 못박아 놓고 있는데 학교 앞에서 30킬로미터 밑으로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골목길에서는 30킬로미터가 아닌 15킬로미터쯤으로 달려야 옳습니다. 학교 앞에는 아이들만 있으나 골목길에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못한다는 우리들이기 앞서 생각을 버린 우리들이라고 느낍니다. 생각을 잃은 우리들이요, 그예 생각을 잊고 마는 우리들이구나 싶습니다.
생각을 못하는 동안 우리한테 아름다울 삶을 차츰 멀리합니다. 하루하루 멀리하다가는 이내 멀어지고, 이내 멀어지면서 저절로 등을 돌리며, 등돌린 채 지내다가는 아예 파묻습니다.
착한 마음밭을 파묻습니다. 참된 마음결을 파묻습니다. 고운 마음씨를 파묻습니다.
듣기 좋아 무슨무슨 공동체인데, 공동체이기 앞서 착한 사람 참된 사람 고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몇 해마다 돌아오는 선거철이 되면 무슨무슨 정책이나 반대이다 무어다 하고 떠들썩한데, 스스로 얼마나 착하거나 참되거나 고운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후보를 아직 본 적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착하게 살면 돈을 못 벌겠지요. 참되게 살면 이름을 못 얻겠지요. 곱게 살면 힘을 늘릴 수 없겠지요. 돈도 좀 벌고 이름도 좀 얻고 힘도 좀 키우고 싶으니, 우리 스스로 저절로 착하지 않고 참되지 않으며 곱지 않은 길을 걷겠지요.
1940년대까지는 어찌저찌 살아남아 있었다는 사슴겨레 사람들이 2010년대에 살아남아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한국땅에서는 이런 소식을 알아낼 수 없습니다. 조금은 살아남았을는지, 다시 살아났을는지, 그예 씨가 말라 버렸을는지, 아주 박물관 유물처럼 목숨만 가까스로 이으면서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슴겨레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당신들 살림살이를 그토록 추운 땅에서 수천 해에 걸쳐 이어왔는가 하는 이야기 한 자락은 살아남았습니다. 도톰한 책 《잊혀진 미래》에 잊혀질 수밖에 없던 ‘착하고 참되고 고운 사람’ 이야기가 눈물겨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한국땅에서도 우리들 착하고 참되고 곱게 살아갈 이야기를 눈물겹거나 웃음짓도록 아로새길 만한 슬기로운 글쟁이 하나 만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3) 못내 아쉬운 번역인 《잊혀진 미래》
《잊혀진 미래》를 내놓은 ‘달팽이’ 출판사는 지난 2003년부터 생태환경책과 인문책을 바지런히 펴내고 있는 1인 출판사입니다. 요사이야 1인 출판사가 꽤 늘었지만, 2003년 즈음부터 1인 출판 외길을 걷는 곳은 드뭅니다. 이무렵 1인 출판사를 꾸린 달팽이 출판사는 책마을에서 ‘저러다 그만두겠지’라든지 ‘미친 짓이지’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출판사 이름 ‘달팽이’마냥 느릿느릿 책살림을 꾸리면서 생태환경책과 인문책을 한 권 두 권 내놓고 있습니다. 달팽이 걸음 출판사이기 때문은 아닐 테지만, 달팽이 출판사 책은 꼭 달팽이 걸음만큼 팔리고 읽히며 받아들여지는구나 싶습니다. 홀로 온갖 일을 다 해내야 하는 만큼 벅차기도 할 텐데, 이래저래 헤아린다 하여도 이번에 나온 《잊혀진 미래》는 번역이 몹시 엉성합니다. 아무래도 번역하신 분이 애벌 원고를 거의 손대지 않은 채 넘기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틀림없이 한글로 된 책인데 앞뒤 흐름이 엉성한 글월이 대단히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이런 엉성한 번역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채 책을 내놓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와 함께 오탈자가 꽤 많습니다. 출판사 살림이 많이 힘들다고 해도 이러면 안 될 텐데 걱정스럽습니다. 많이 힘들면 둘레에서 자원봉사를 받아 교정교열을 한 번쯤이라도 더 거쳐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래도 워낙 줄거리가 탄탄하고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에 제 마음속으로는 ‘애벌 번역 책’을 ‘두벌 번역’ 하면서 읽습니다. 종이에 찍힌 글월 그대로 읽지 않고 이 글월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곱씹으면서 더욱 더디게 읽습니다.
말끔하고 정갈하게 추스른 책이었다면 이 놀라운 이야기 《잊혀진 미래》를 금세 읽어치우고 덮었을 수 있겠다고 봅니다. 꽤 엉성궂은 애벌 번역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탓에, 더욱 더디게 곱씹으며 읽고, 몇 번 읽은 글월을 다시금 새로 읽고 거듭 읽으면서 지난날 사슴겨레 사람들 슬기와 삶을 제 마음자리에 찬찬히 아로새길 수 있구나 싶습니다.
좋은 번역이었다면 좋은 번역대로 고맙고, 얄궂은 번역일 때에는 얄궂은 번역대로 고맙습니다. 그래도, 애써 읽는 책이라면 얄궂은 번역보다는 좋은 번역이기를 바랍니다. 책을 낸 출판사 사장님과 번역을 한 분께서 아무쪼록 우리 말과 글을 새삼스레 뒤돌아보며 새로 배우시면 기쁘겠습니다. 서툰 번역일지라도 이런 책 하나 묻히지 않고 우리 말로 나온 일은 대단히 반갑습니다. (4343.4.29.나무.ㅎㄲㅅㄱ)
[12, 27, 56쪽] 대략 1960년대부터 우리는 에스키모들의 생존을 보증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정신적으로 파괴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정책을 추구해 버렸다. 옛날부터 내려온 에스키모만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빼앗아 버리고는 우리의 근대적 기술사회의 틀로 억지로 끼워맞추는 데 가혹하고 획일적인 노력을 해 온 것이다 … 분명 이들은 배런스의 무자비한 자연에 대항하여 힘들게 투쟁하며 사는 데 온힘을 쏟아부어온 사람들이어서, 서로를 해치는 데 그 힘을 사용하려는 결심이나 바람은 가져 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 스쳤다 … 눈보라는 단지 하루 동안 불었지만, 스텔라가 캠프로 돌아오는 데는 보름이 걸렸다. 이 소녀가 거의 아무 음식도 없고 침구도 없이 2주 이상을 지내며 툰드라의 한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그 아이들이 이 땅의 한 부분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다.
[24, 67, 311쪽] 공부를 해 가면서, 북극이 얼어붙은 강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강과 호수의 세계여서 그곳의 푸르고 깊은 물 양 옆으로 여름철 꽃과 넓게 뻗은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북극이 얼음 덮인 세계의 꼭대기이기도 하지만, 한여름 더위 속에서는 생명으로 우글거리고 수없이 많은 만개한 식물의 빛깔로 빛나는 거의 200만 평방마일에 달하는 완만한 평원지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이누이트’는 이 사람들이 자기 부족을 가리켜 붙인 고유한 이름이다. 이를 번역하면 ‘인간’이라는 단순한 뜻이다. ‘에스키모’라는 용어는 이들이 사용하지 않는 말로써, 인디언들이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 그제야 나는 배런스에서는 부식과 부패가 거의 드물다는 것을 기억했다. 깨끗한 태양과 바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는 돌무더기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게 된 순간의 모습 그대로 수세기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도록, 나무와 뼈가 영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71, 93, 105∼106, 150쪽] 교역자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보장받는 기간에만 짧게 머물다가 이 땅을 버리고 떠나면서도, 자신들이 어떤 파괴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나는 아직 ‘사슴 부족’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이제 그 사슴 무리들을 보고 나니, 내가 사슴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러나 이제는 그 거대했던 사슴강은 사라지고 졸졸 흐르는 작은 사슴 시내만 그 지역을 통과한다. 사슴이 그들의 길을 바꾼 것이 아니라, 간단히 말해 사슴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사슴을 멸망시킨 소총은, 마치 자기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냥한 듯 그 소총을 사용했던 인디어들마저 멸망시켜 버렸다 … 이드텐 부족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기 무역을 위해 사슴을 살육하도록 부추겨졌고, 대규모로 살상되는 사슴은 필연적으로 버펄로에게 일어난 과정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112, 115, 140, 216쪽] 이할미우트 부족은 가볍게 여행하기 때문에 그 부족 사람이 여름에 평원지대를 건널 때면 칼, 담배 파이프, 그리고 카미크라 불리는 가죽부츠 여벌만 챙긴다. 먹을 것은 찾아서 먹는다 … 기계에 대한 본능에 의해 조종되는 백인은 모터로 가는 배처럼 바람과 파도를 뚫고 나가지만, 자신이 타고 있는 복잡한 장비가 완벽하게 기능을 다했을 때만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환경과 항상 불화하며 산다 … 이할미우트 부족은 사슴의 모든 부분을 먹어야만 더할 나위 없이 충분히 음식을 섭취한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심장, 콩팥, 내장, 간, 그리고 다른 장기도 중요하다 여기며 종종 먹는다 … 그들의 삶 속에는 실용적인 가치가 없는 물건을 창조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할미우트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를 채우거나, 돌 위에 모양을 파 넣지도 않고, 돌이나 진흙에다 새겨 넣지도 않는다. 배런스 땅을 길고 힘들게 여행해야 할 때마다 아름다운 것을 내버려야 한다면, 그것을 창조하는 데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118, 135, 163쪽] 그들을 보고 냄새를 맡은 내 첫 반응은 일종의 역겨움이었다. 내 눈에 그들은 너무나 더럽게 보여, 도대체 왜 입을 옷 하나 깨끗한 걸로 찾지 못했는지 의아해 하며 속에서는 백인의 자존심이 본능적으로 솟구쳐올랐다 … 내가 조금은 까다롭게 고기를 먹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그래서 나는 칼을 도로 칼집에 넣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는 내 두 손으로 고기를 잡아 이빨로 물어뜯어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 이할미우트 부족의 언어에는 ‘사슴’을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데 수십 개의 단어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의미가 지닌 엄청나게 많은 미세한 차이를 내 충분치 못한 기억력에다 과도하게 집어넣는 것을 현명하게 자제한 우테크는 내가 사슴에 대해 말해야 할 때 가능한 모든 경우에 사슴의 총칭만을 사용하도록 해 줬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나와 대화할 때는 다른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 줬다.
[166, 200, 215쪽] 우테크의 설명으로, 영구적인 캠프 장소를 선택하는 데는 우선 세 가지 주요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조건은 ‘우리의 생명인 사슴이 찬성할 것인가?’이다 … 그녀의 바느질은 바라보고 있으면 경이로운 작업이다. 여름용 부츠는 반드시 방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바느질 솜씨로 꿰맨 솔기 부분 틈에 완벽하게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이렇게 꿰맨 부분이 너무나 섬세해서 육안으로는 전혀 바느질 땀수를 셀 수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호우미크가 이렇게 바느질을 할 수 있는지는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 그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즐거움을 주는 것은 창조의 노동이다. 새 카약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 나이 많은 헤크와우는 자신의 일 속에 빠져 무아지경이 돼 버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창조해 낼 때 누리는 미묘한 즐거움을 그는 알고 있다.
[206∼208쪽] 이할미우트 아이들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절대로 체벌을 받지 않는 사실에 내가 놀라움을 나타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무심코 말한 것이었지만, 아이들을 결코 때려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내가 모른다는 사실에 정말로 곤혹스러워하는 듯 그는 격렬하게 응수했다. “미치광이가 아니고서는 누가 자신의 피를 지닌 생명에게 손을 들어올릴 수가 있습니까?” … 그 아이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결코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관찰하고 흉내를 내는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것뿐이다 … 어떤 지배나 엄격한 일과도 아이들에게는 부과하지 않는다. 졸리면 잔다. 배가 고프면 음식이 있는 한 언제나 먹는다. 말이나 훈련으로 배우는 것보다 놀이를 통해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놀고 싶어하면 아무도 막지 않고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준다 … 아이는 부모의 반대라는 그림자나 두려움 속에 갇히는 것 없이 놀면서 배우는 것이다.
[245, 255, 368쪽] 이할미우트 사람들은 나를 용서해 주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내 어린애 같은 이기성의 폭발로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로는 나란 사람이 암컷 늑대가 자기 새끼를 소중히 지키듯 내 물건에 몹시 집착하는 불행한 미개인쯤으로 이해되었다 … 장로회도 경찰도 없다. 입법 기관 같은 것도 없으며, 엄밀히 말하면 이할미우트 부족은 무정부 상태로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법이라는 경직된 규약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부족은 서로 사이좋게 사는데, 이것의 비결은 인간의 의지와 인내의 힘에 의해서만 제한 받는 협동이다 … “당신들의 신들이 가진 법은 그들의 백성의 마음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426, 428, 439쪽] 구호품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들이 직접 먹고살 수 있는 방법으로 도와야만 한다. 문명화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원시 부족들에게도 자선은 파멸을 초래한다 … 우리는 반드시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땅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음식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줘야 한다 … 북쪽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식단을 바꿔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먼 지역에서 수입한 이상한 식품을 위해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기초 생산품을 버려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처럼 몰상식한 이야기다 … 우리의 극지방처럼, 그린란드 땅 대부분이 유럽인이 거주하기에는 불리한 자연 그대로의 땅이다. 그러나 그린란드 사람들이 그 땅의 일부인 까닭은, 그 황폐한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번성하는지 오래 전 배웠던 에스키모의 육체적, 정신적 유산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린란드 원주민들은 백인의 경제적 욕심을 위한 농노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