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이 바라본 세상 이야기
은종복 지음 / 이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45 ― 맑고 밝게 일하며 살고픈 풀벌레 한 마리
 : 은종복,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 책이름 :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 글 : 은종복
- 펴낸곳 : 이후 (2010.4.1.)
- 책값 : 12000원



 (1) 아이와 살아가며 아이를 생각하기란


 날이 포근하기에 아이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나왔습니다. 아이는 조금 걷다가 자꾸 넘어집니다. 걸음이 차츰 더디어집니다. 아이가 졸립다는 뜻이로군요.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아이가 앞쪽을 보도록 안고 걷습니다.

 아이를 안고 걸어가면 참 힘듭니다. 팔과 등허리가 몹시 저립니다. 그러나 아이로서는 뒤쪽이 아닌 앞쪽을 보면서 안기고 싶겠지요. 아기수레를 안 쓰는 우리 식구는 아이를 걸리거나 안고 다녀야 합니다. 둘레에서 아기수레를 선물해 주거나 물려주겠다는 분이 여럿 있었으나 우리는 안 받았습니다. 아기수레를 밀며 다닐 때에는 아이가 더 다니고 싶지 않아도 어른 마음대로 다니려는 뜻이 있고, 아이가 다리힘을 기르기보다 쉽게 가기를 더 좋아해 버릴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아이를 안고 다니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터전 길은 고르지 않아 아기수레를 밀면 아이 몸에 더없이 나쁩니다. 아이는 제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야 하며, 아이 다리힘으로는 아직 힘들 때에는 엄마나 아빠 품에 안겨 따순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잠들 무렵 옆지기가 아이를 업습니다. 일찍 돌아가야겠다 싶어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건널목에서 푸른불을 기다리는 동안 어린아이 하나를 아기수레에 태우고 어린 두 아이를 걸리고 있는 엄마를 마주 바라봅니다. “진짜 힘들겠네.” 옆지기 입에서 절로 터져나오는 목소리입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움직인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천기저귀를 쓰고자 하여도 쓰기 아주 힘들겠지요.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기저귀를 쓸 때에도 만만하지 않을 테고요. 조금 큰 두 아이가 쫑알거리다가 저희 가고픈 대로 엇갈려 달리면 애 엄마로서는 죽을 노릇입니다. 아이 하나가 저 가고픈 대로 신나게 내달릴 때에도 붙잡기 얼마나 힘든데요.

 아이를 업고 안고 하며 집에 닿을 무렵 아이가 갑자기 깹니다. 낮잠을 잘 때이기에 두어 시간은 자야 하는데 어떻게 깨어납니다. 집으로 오니 말똥말똥 뛰어다니며 놉니다. 얼마 뒤 똥 한 번 푸지게 누고는 다시 신나게 놉니다. 엄마가 아이 똥을 치우는 동안 아빠는 아이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마실을 마치고 금방 돌아온 탓인지 손빨래 비빔질을 하는데 팔뚝이 저려 힘겹습니다. 애벌 두벌 세벌 헹구며 물을 짜는데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늘 따라 빨래를 그만두고 싶으나 그만둘 수 없습니다. 이 빨래를 이 자리에서 마치지 않으면 저녁나절 아이가 잠들 무렵까지 나올 빨래거리는 더 늘어날 테고 이튿날에는 또 생길 테니까요.

 구부정한 허리를 툭툭 두들기며 빨래를 하고 있자니, 다 마친 빨래를 옆지기가 들고 가서 빨래대에 널어 놓습니다. 모처럼 옆지기 몸이 괜찮아져서 집일을 도와주는구나 싶어 고맙습니다. 힘든 가운데 조금이나마 기운이 납니다. 양말과 아기 웃도리 둘을 마저 빨고 씻는방에서 나옵니다.

 아이는 아침에 치우고 낮에 치운 방을 새삼스레 어지르며 놉니다. 엄마도 아빠도 어질러진 방을 치울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그냥 그대로 둡니다. 모르는 누군가 본다면 참 게으른 사람들이라 여길 만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일 때부터 아이키우기를 해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집일이 얼마나 많고, 많디많은 집일은 그칠 틈이 없는 가운데, 날마다 끝없이 되풀이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헤아리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나마 우리 아이는 아직 어려서 그렇지, 조금 더 크면 종알종알 재잘재잘 말을 신나게 해대며 아빠나 엄마가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뜨개질을 한다든지 하면 이런저런 일 하지 말고 저랑 놀자며 팔뚝을 잡고 허리춤을 끌어안으리라 봅니다.

 다가오는 4월 1일,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에 나들이를 갈 생각입니다. 저랑 옆지기랑 아이랑 셋이 나란히 나들이를 갑니다. 이날 책방 〈풀무질〉에서는 책방 일꾼 은종복 님이 써낸 책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를 놓고 기림잔치를 벌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기림잔치에 함께한다면 다른 사람한테 번거로울 수밖에 없는데, 여태껏 책방 〈풀무질〉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잔치마당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 때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싫어한다면 싫어하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보아 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어른들은 모두 이 아이처럼 어린 나날을 보냈고, 어린 나날을 보낼 때에 ‘풀무질 책방 기림잔치’ 같은 잔치마당에 어버이와 함께 찾아가서 또래 아이들을 보거나 다른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누리를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면서 무럭무럭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당신 아이를 대안 초등학교에 보냈고 대안 중학교에 넣었습니다. 은종복 님은 아이가 학교를 안 다니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지만 아이는 또래 동무들하고 놀고 싶다고 했답니다. 아무래도, 은종복 님이나 옆지기 님이나 집에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면서 즐겁게 놀아 줄 수 있는 터전이었다면 아이로서는 따로 (대안)학교에 가서 동무들과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안 품을 수 있습니다. 높은 뜻이든 낮은 뜻이든 진보 넋이든 보수 넋이든, 모두들 어른들 생각과 삶에 따라 꾸리는 하루하루이다 보니, 아이들한테 ‘우리 어른들이 저희들 나름대로 좋다고 여기는 삶’을 아이한테 곧바로 물려주거나 함께하기보다는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기어 아이들이 보내는 여느 나날과 고운 삶을 따사로이 껴안지 못한다고 할까요. 제아무리 환경운동을 하고 무슨무슨 진보운동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가용을 못 버리듯, 아이를 옳고 바르게 키우는 자리에서도 돈을 더 벌지 않고서는 뜻있는 배움마당을 열지 못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그만 아이들을 우리 어버이가 스스로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하고 맙니다.

 ‘손그림 찍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주민등록증을 거스르는 넋을 지키고 ‘총’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워야 하는 군인이 되지 않겠다는 얼을 가꾸는 우리 삶일 때에, 비로소 경부운하이니 4대강이니 하는 끝장 막개발을 비롯하여 국가보안법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주한미군 들을 거스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2) 맑고 밝은 이야기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이 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되도록 책으로 내지 않고 쪽글로만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으나, 당신이 품으려는 맑고 밝은 넋을 더 너른 이웃하고 나누려는 뜻으로 책을 하나 여미기로 했다고 합니다.

 “책방 일을 하느라 돈에 눈먼 어른들이 벌이는 싸움을 막을 수 없었다(4쪽).”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돈에 눈먼 어른들한테 돈이 아닌 사랑에 흠뻑 빠져들자는 이야기를 건네고자 바지런히 쪽글을 쓴 〈풀무질〉 은종복 님입니다.

 은종복 님은 당신이 몸담은 환경지킴 모임에서 ‘풀벌레’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풀벌레이지만, 오늘날 도시에서는 모조리 자취를 감추어 버린 풀벌레입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풀 한 포기 느긋하게 자랄 땅이 없거든요. 시멘트땅이요 아스팔트땅이니 풀이 자라지 못하고, 풀이 조그맣게라도 풀숲을 이루어야 풀벌레가 깃들 수 있는데, 풀벌레 하나 깃들 땅뙈기는 내버려 두지 않거든요. 건물을 세우고 가게를 들여 돈을 벌든지 아스팔트를 죽 깔아서 자동차 씽씽 달리도록 해야 한다는 도시이거든요.

 “아름다운 우리 말을 살려 쓰면 내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세상도 아름다워진다(6쪽).”는 생각을 품으며 쪽글을 꾸준히 가다듬기도 하는 풀벌레 은종복 님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름다운 우리 말’이 아니라 ‘쉬운 우리 말’이요, 동네 할머니들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수수한 우리 말’이며, 초등학교를 다니든 어린이집을 다니든 어린이들 누구나 알아차릴 만한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하며 가장 부드러운 말’입니다.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말입니다. 책 좀 읽었다고 잘난 척하는 말이 아닙니다. 학교 좀 오래 다녀 가방끈 길다고 으스대지 않는 말입니다. 나라밖으로 다녀 본 티를 내겠다는 어설픈 겉치레 말이 아닙니다. 바로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따스하고 넉넉하고 어깨동무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작은 책방 〈풀무질〉이라는 곳부터 ‘잘난’ 책방이 아닙니다. 〈풀무질〉은 참으로 못난 책방입니다. 〈풀무질〉은 더없이 모자란 책방입니다. 〈풀무질〉은 그지없이 어설픈 책방입니다. 〈풀무질〉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책방입니다. 공안경찰이 〈풀무질〉 일꾼을 붙잡았을 때에 당신한테 들려준 말 “처벌받고 여기서 나가면 그런 돈도 안 되는 사회과학 서점은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 봐요. 좀 건전한 거 있잖아요. 요즘 학생들 술 많이 마시던데 술집 하면 좋겠네요(42쪽).”처럼, 인문사회과학 책방 일이란 ‘돈 안 되는’ 일이니 몹시 바보스러운 책방 일입니다. 따로 인터넷으로 책을 살 수 있지 않으니 번거롭기까지 한 책방입니다. 무슨 경품이나 마일리지를 잔뜩 내붙이고 있지도 않으니 더할 나위 없이 멍청한 책방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못나고 모자라고 어설프고 어리석고 바보스럽고 번거롭고 멍청한 작은 책방 〈풀무질〉이기에 사랑스럽습니다. 못나기 때문에 따뜻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넉넉하며, 어설프기 때문에 착합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푸근하고, 바보스럽기 때문에 믿음직하며, 번거롭기 때문에 싱그러운데다가, 멍청하기 때문에 꿋꿋합니다.

 책방 일꾼과 책손 사이에 높고 낮은 자리가 없습니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으로서 마주할 수 있습니다. 같은 목숨과 또다른 목숨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랑과 고운 믿음으로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건전한 일”이라고 하는 “장사 잘될 술집” 아닌 “장사 힘든 책방”을 동네 한켠에서 자그맣게 하는 〈풀무질〉 일꾼들은, 다름아닌 작고 가난하고 모자라고 어설픈 가운데 착하고 살갑고 넉넉하고 따사로운 마음을 땀흘려 일구자고 하는 뜻을 나눕니다.

 수험서를 사 가든 교재를 장만하든 잡지 하나 챙기든, 모두 어여쁜 빛줄기를 가슴속에 묻어 두고 있는 젊은 넋임을 돌아보면서 쪽글 하나 건네어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비추며 즐거이 살자는 뜻을 키우고픈 〈풀무질〉 일꾼들입니다. 무엇입네 뭐입네 하고 외치는 분들 목소리마냥 〈풀무질〉 일꾼 목소리는 신문 1쪽을 채우는 일이 없습니다. 풀벌레 한 마리가 우짖는 소리는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파묻히니까요. 아니,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스러집니다. 그러나 풀벌레는 꾸준하게 노래를 합니다. 풀벌레 한 마리는 어마어마한 도시 한복판에서 자그마한 풀숲을 보듬으면서 햇살 한 줌 받아안는 마음결을 다부지게 일굽니다.
 















 (3) 되새겨 읽으며 아쉬운 글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라는 책은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이 쓴 쪽글들을 갈래에 따라 새로 엮어서 나왔습니다. 은종복 님은 사람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게끔 짤막한 글을 써 왔지만, 책에서는 두어 꼭지를 하나로 묶으며 제법 길어진 글이 많습니다. 이에 따라 쪽글로 사람들하고 나눌 때에는 단출하면서 옹글던 글이 여러모로 헝클어지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은종복 님이 쪽글을 쓸 때에 마음을 깊이 쓰던 ‘우리 말 바르게 쓰기’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 가운데 ‘것’이라는 말투는 346쪽짜리 책에서 자그마치 1000번이 넘게 나오고, ‘하지만’이라는 말투 또한 100번 가까이 나옵니다(‘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하지만’이라 적어야 할 말을 잘못 적는 말투입니다). ‘고통, 불안, 시작, 필요, 원망, 후회, 전체, 강제, 만족, 고민, 열심, 생활, 방향, 결국, 진정한, 통하다, 별, 단, 전혀, 대부분’ 같은 말투도 지나치게 자주 나옵니다.

 ┌ 내가 붙잡혀 간 것은 → 내가 붙잡혀 간 데에는
 ├ 거기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 이에 따르지 않을 생각이다
 ├ 군대를 보내는 것을 보고 → 군대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 정작 팔리는 것은 → 정작 팔리는 책은


 다만, 은종복 님이 아무리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쓰고자 애쓴다 하여도, 쪽글마다 몇 군데씩 아쉬운 대목이 보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책 한 권에 만 군데가 넘도록 얄궂은 말투가 깃들도록 흐트러지거나 엉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풀무질〉을 기리는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을 때에도 ‘쉽게 쓴 낱말을 굳이 어려운 한자말로 고쳐 놓아’서 어이없다고 느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이든 이곳 일꾼 은종복 님이든 ‘그냥저냥 흔한 책을 팔’거나 ‘이냥저냥 흔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데, 이런 ‘흔하지 않은 넋’을 출판사 일꾼이 제대로 안 읽었다고 해야 할까요. 왜 일부러 더 힘들게 글을 가다듬고 짤막한 쪽글을 써 왔는지, 왜 이 짤막한 쪽글을 쓸 때마다 은종복 님은 더더욱 뼈를 깎듯 애쓰면서 글다듬기를 하고 새롭게 말을 배우려고 했는지를 못 읽었다고 해야 할까요.

 좀 어줍잖은 글이라 할지라도 좋은 넋과 훌륭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풀벌레 은종복 님이 굳이 더 마음써서 곱고 맑은 글을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빛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은종복 님 스스로 또이름을 ‘풀벌레’라고 붙이는 마음처럼, 쪽글 하나마다 풀벌레다운 얼과 기운을 실어서 이웃하고 함께하려는 사랑이 있습니다. 책을 엮는 일꾼들은, 또 풀벌레 은종복 님 글을 다루며 싣는 매체 일꾼들은, 글 하나가 그냥 나오는 글이 아니요 글 하나에 머리로만 굴린 이야기가 아닌 몸으로 부대끼며 삭여낸 이야기가 담기는 흐름을 짚어 줄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라는 책을 반갑고 기쁘게 집어들어서 널리 나누는 참뜻을 깨달으면서 지식쌓기 책이 아닌 삶 다스리기 길동무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4343.3.30.불.ㅎㄲㅅㄱ)


[8, 53쪽]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돈에 눈먼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자연을 더럽히고, 아이들 목숨줄을 조이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고, 강을 파헤치고, 핵무기를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 이럴수록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작은 동네 책방을 살려야 한다. 스스로 마음밭을 맑고 밝게 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 “큰 기업에서 일억 원을 내는 것보다 나같이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만 사람이 만 원씩 내는 게 훨씬 나아요. 큰 기업에서는 한꺼번에 돈을 내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품삯을 조금 올려 달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지요. 그런 기업들이 돈을 내는 것은 이름값을 높여서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생각도 들어 있지요.”

[17, 19, 41∼42쪽] 헌법에 쓰여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 땅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도 다른 많은 진보 모임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이 휘두르는 칼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큰 책방이나 인터넷서점은 단지 돈을 받고 파는 사이로 머물지만,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 얘기를 나누며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려는 진보 공동체다 … 그때 나를 조사하던 수사관에게 내가 물었다. “이런 책들은 일반 큰 책방에도 모두 팔고 있던는데, 그곳 대표는 왜 조사하지 않는 거죠?” “그들은 단지 돈을 벌려고 책을 파는 것이고, 당신들은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 그러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거칠었고, 억지로 높임말을 썼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또 학생들한테 그 내용을 전할지 안 전할지 어떻게 압니까?” “당신은 학교 다닐 때 시위 전력도 있고 지금도 학교 앞에서 사회과학 서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처벌받고 여기서 나가면 그런 돈도 안 되는 사회과학 서점은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 봐요. 좀 건전한 거 있잖아요. 요즘 학생들 술 많이 마시던데 술집 하면 좋겠네요.”

[24, 54쪽] 햇살 한 줌, 빗물 한 방울, 눈송이 하나 볼 수 없는 땅속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책방 한 귀퉁이에 앉아 늦가을, 책방 밖으로 눈발 날리듯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슬펐다 … 나는 사람이 사람을 못살게 하지 않고 사람이 자연을 더럽히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27, 44, 68쪽] 자본가들은 자기가 만든 물건을 팔려고 약한 나라를 끊임없이 쳐들어간다. 미국은 동북아시아 패권을 누리거나,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을 만들려고 한반도 북녘을 쳐들어가려고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 나 같은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가. 아니다. 대운하를 만들어 자연과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하고, 백성들이 먹고 죽을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미국 소를 자기들 마음대로 들여오는 이명박 정권이 이 나라를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다 … 어느 날 열한 살 난 내 아이가 신문을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물었다. “아빠, 강남에 있는 땅들은 강북에 있는 땅보다 비싸? 맨날 땅값이 올랐다는 글만 나와?”

[37, 39, 66, 128쪽] 아이가 몹쓸 병에 걸린 것은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나 같은 어른들이 좀더 편하게 살려고 자동차를 수없이 만들어 공기를 더럽히고, 온갖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물을 썩게 하고 땅을 더럽혀서 그렇다 … 나는 돈에 눈먼 사람들이 배고프고 헐벗은 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볼 때까지 이렇게 해마다 하나씩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끊으려 한다. 이것이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 아이들이 학교 공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살 수는 없나. 학교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배우는 놀이터가 될 수는 없나 … 일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이곳저곳 다른 배움터를 다니다가 밤 아홉 시 넘어 들어오고 밤 열두 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는 또 좋은 직장을 찾으러 공부해야 하고, 일자리를 얻은 뒤에는 또 쫓겨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할 것인가. 끝없이 행복을 뒤로 미루며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내 아이에게 강요하기는 싫었다.

[51, 55, 71쪽] 내 아이를 살리자고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죽이러 군대를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 권정생 할아버지는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맑고 밝은 부자였지요. 다시 태어나면 몸이 튼튼한 젊은이로 나서 사랑하는 사람이랑 아이를 낳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했어요. 진짜 부자는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가난하게 살아야 세상이 맑고 밝아진다. 가난한 사람들만이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 수 있다.

[58, 93, 106, 112쪽]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랑 걸으면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종복아, 엄마는 종복이랑 이렇게 걸어가면 참 기쁘다. 이렇게 멋지고 듬직한 아이가 정말 내 배속에서 나온 건지 믿어지지 않아. 그냥 종복이란 이렇게 손을 잡고 걸으면 엄마는 너무나 행복해.” … “또 어디 갈 데 없냐?” 숨돌릴 틈도 없이 다음 갈 곳을 미리 물어 오신다. 아버지는 책방에 도움이 되려고 당신 몸을 아끼지 않는다. 당신 몸 아끼지 않고 아들이 잘사는 것을 바라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 “내 머리엔 10원도 안 들어갔다.” 학교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을 할 때 어머니는 꼭 이런 표현을 쓴다 … 어릴 때 가정통신문에 어머니 학력 쓰는 곳이 있었다. 거기에 ‘무학’이라고 쓰면서 참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며 배웠다.

[114, 125, 131, 132, 134, 136쪽] 조금 배고프게 살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아이에게 찾아 주고 싶었다 … 내 아이가 6학년이었을 때도 구구단이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별 걱정하지 않았다. 구구단은 잘 못 외우지만 생각이 참 깊다 … 아이들을 공부 잘하는 기계로 만들려 하니, 지금 일반 학교는 수용소가 되고 선생은 수용소장이 되고 있다 …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을 떠받드는 세상에선 아이들이 미칠 수밖에 없다 … 어른들이 돈에 눈먼 삶을 사니,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 아이들이 올곧게 잘 배우려면 아름답고 살맛나는 마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140, 144, 162쪽] 모두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정말 살려야 할 것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마을이다 …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놀 수 있을까. 어른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바깥에서 놀아야 한다. 함께 공차기를 하고 연을 날리고 썰매를 타고 구슬치기를 하자 … 아이들이 좋은 생각을 하기 바란다면 어른들이 좋은 생각을 해야 하고,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기 바란다면 어른들이 먼저 좋은 책을 손에 들어야 한다.

[200, 206, 214쪽] 군비 증강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줄까. 군비 증강은 결국 전쟁으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 우리 나라도 이것을 본떠 우리보다 더 작은 나라들을 괴롭힌다. 이주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꼬마 제국주의 나라가 되고 있다 … 더 무서운 것은 살인무기는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평화는 무기를 버리고,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 지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자기 나라를 응원하는 사람들 마음이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지 의문이 들면서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들을 떠올렸다.

[266, 270쪽] “파리야! 네가 내 밥에 앉아 밥을 먹으니 내가 싫구나. 여기에 네 밥이 있으니 내 것 말고 네 것을 먹으면 좋겠다.” … 어떤 사회주의자들은 소로우의 생각을 싫어했다. 사람 하나하나가 나라가 하는 일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소로우의 생각은 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려면 내 자신을 먼저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276, 310, 323쪽] 지율 스님은 이 세상에 난 모든 목숨붙이를 아끼고 보듬고 섬기는 마음을 지녔다 … 황우석을 떠받들고 지율을 내치려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오로지 1등을 하려는 마음,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남이야 어떻든 생각하지 않는 마음, 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하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마음,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면 자연을 파괴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마음은 아닐까 …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들 싸움으로 맑고 밝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아파하고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민중의 세계사》를 꺼내 읽는다 … 미국도 인디언을 총칼로 죽인 뒤에야 자신의 나라를, 야만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또다른 자본을 수출하기 위해 자기보다 더 힘이 없거나 임금이 싼 사람들을 고용하여 착취하고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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