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 맞서다 - 누구나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해
유아사 마코토 지음, 이성재 옮김 / 검둥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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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4] 유아사 마코토, 《빈곤에 맞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꿈을 꾸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아니, 가난한 사람들이 꿈을 꾸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가난이란 나쁨이 아니요 못남이 아니요 멍청함이 아니요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가난을 두고 나쁨이요 못남이요 멍청함이요 바보라고 일컫습니다. 가난을 가리켜 게으름이요 어리석음이요 모자람이요 불쌍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 얼굴이나 몸매를 놓고 잘생겼다든지 잘 빠졌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돈을 놓고도 잘났다든지 못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라고 다 똑같은 자동차가 아니라 돈값에 따라 좋고 나쁜 자동차를 가른다고 한다면, 자동차란 권력이나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되고 맙니다. 가난을 바라볼 때에 좋고 나쁨을 가른다든지 잘하고 못하고를 나눈다 한다면, 우리는 사람들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피며 권력과 계급을 따지는 셈입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사귈 만하고, 돈이 적은 사람은 사귈 만하지 않다고 여기는 셈입니다.


.. 히사시가 기억하는 것은 괴로웠던 때에 세상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였다. 잘 곳이 없어 교회에 뛰어들었던 적도 있다. 목사는 “여기는 모두가 쓰는 장소라서 잠을 자게 할 수는 없고, 그 대신 기도를 해 줄게”라고 말하면서 쫓아냈다. 경찰과 상담을 한 적도 있지만 “이코마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 날이 밝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상대해 주지 않았다. 말했던 본인은 그렇게 잊을 수 있겠지만, 히사시는 평생 이 일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 50여 일을 보낸 넷카페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머물리 시작한 지 2주가 되자 점원의 태도가 급격하게 무례해진 점이었다 … 누구도 그들에게 “죽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받는 메시지는 그렇다는 것이다 ..  (22, 29, 80쪽)


 돈이 있어 좋다면 얼마나 있어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돈이 없어 나쁘다면 얼마나 없어 나쁠는지 궁금합니다. 한 달 벌이 얼마쯤 되어야 마음이 넉넉하거나 흐뭇하다고 보고 있습니까. 한 달 씀씀이 얼마쯤 되어야 내 삶을 신나거나 즐겁게 꾸린다고 보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전세 칠천만 원짜리 집에 삽니다. 누군가는 전세 구천만 원짜리 집에 삽니다. 누군가는 전세 삼천오백만 원짜리 집에 삽니다. 전세 구천만 원이라 할지라도 ‘내 집’이 아니니 가난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 삼천오백만 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전세 천만 원짜리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있습니다.

 전세 천만 원은커녕 전세 오백만 원조차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보증금 삼백만 원마저 없어 겨우겨우 이리 빌리고 저리 얻고 하면서 맞추어 달삯집을 찾았습니다. 달삯집에 들어가 지내는 사람들로서는 다달이 달삯을 치르기 때문에 보증금을 모으기란 꿈 같은 노릇이며 전세집을 얻을 나날을 손꼽을 수 없습니다. 돌고 돌고 다시 도는 달삯집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달삯집에서 살아가면서도 딱히 어려움이나 힘겨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한 해에 천만 원이나 오백만 원쯤을 푼푼이 모아 전세나 보증금을 조금씩 올리며 ‘한결 나은 집’을 찾는 일이 우리 식구한테 한결 나은 삶이 될는지는 모를 노릇입니다. 돈벌이를 더 하는 데에 힘을 쏟는 일이 참으로 우리한테 기쁨이거나 보람일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돈벌이는 적게 하거나 아예 못하더라도 우리 삶을 곱고 알차게 일굴 수 있으면 되는 노릇은 아니랴 싶습니다.


.. 돈이 없는 가운데 값싼 주거를 찾았지만 싸고도 안심할 수 있는 주거는 결국 없었다 … 피고인 k가 범한 ‘새전 도둑질’ 피해액은 150엔이라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사회에 복귀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일이 여의치 않아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지른, 아주 적은 금액 150엔 때문에 기소당한 것이다. 검찰은 그러한 그에게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 현실적으로 “담 바깥에서는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즉 빈곤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면 교도소 신설보다도 효과적인 치안 유지책이 있을 것이다 … 진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쁜 짓을 했으므로 처벌한다”는 충동적인 응보주의나 엄벌주의가 아니라 “피해를 없애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  (32, 56, 58, 66쪽)


 우리 아이는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습니다.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는 0세 반도 있고 한 살 반이나 두 살 반도 있다는데,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부부가 돈벌이를 한다는 분한테 말씀을 여쭈니, 보육원 달삯으로 37만 원을 낸다고 합니다. 지난해부터 유치원에 넣는 고향동무는 유치원 달삯으로 50만 원을 낸다고 합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이분들한테는 달삯 37∼50만 원만 들지 않습니다. 이 돈과 맞먹는 이런저런 돈이 퍽 많이 나갑니다. 모두들 자동차를 굴리고 있으니 자동차 보험삯이며 유지비며 기름값이며 꽤나 큽니다. 앞으로 아이가 더 크면 학원도 보내고 뭣도 하고 아이 옷값도 만만하지 않고 …… 더 벌고 또 벌고 다시 벌어도 빠듯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대학교를 간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할 테고(벌써부터 해마다 대학 등록금만 한 돈이 아이 키우는 값으로 나가고 있으니까요), 시집장가를 가겠다 한다면 등허리가 휠 테지요. 이분들한테는 한 달 벌이 이백이나 삼백으로는 아찔합니다. 사백이나 오백쯤 되어도 아슬아슬하게 살림을 맞출 수 있을 뿐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를 엄마 아빠 된 사람이 집에서 돌보고 함께 놀고 먹이고 재우고 옷은 모두 얻어서 입힙니다. 천 값이나 실 값이 만만하지 않게 들었지만, 애 엄마가 손뜨개와 바느질로 아이 인형을 여러 날에 걸쳐서 하나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장갑 뜨기를 한다고 했으나 장갑 뜨기는 그르쳤습니다. 여러 날을 버린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잘못 뜬 장갑은 양말처럼 신으며 놀 수 있는 놀이감이 됩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이런 대로 좋고, 저렇게 바라보면 저런 대로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집삯이니 이런저런 삯이나 돈이니 하면서 여러모로 살림이 빠듯한 나날이 이어집니다. 살림이 빠듯한 나날이 이어지니까, 퍽 많은 사람들로서는 책 한 권 느긋하게 읽을 겨를은 내지 못합니다. 책읽기란 마음을 아주 모아서 파고들지 않고서는 줄거리 헤아리기뿐 아니라 속알맹이 꿰뚫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요즈음 우리 나라에서 차분하고 속깊은 책이 잘 안 팔리고 가볍고 말랑말랑한 처세경영과 자기계발 책이 수없이 팔리고 읽히는 까닭이란, 모두들 몹시 빠듯하고 힘에 겨운 살림을 꾸리는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벌이에 매여야 하고, 가계부 숫자를 보며 시름에 겹고, 하루하루 크는 아이한테 바칠 교육비가 어마어마하기에 등골이 휘는 터라, 내 삶을 오롯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돌보는 데에는 그만 두 손 두 발을 들어 버린 탓이 아니랴 싶습니다.


.. 결국 일본은 “돈이 없으면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즉 “부모가 돈을 벌지 못하면 아이가 노력해도 학력을 얻을 수 없는” 사회이다 … 빈곤이라는 것은 선택 사항을 빼앗겨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 …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비치지 않는다 … 모든 사람이 똑같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  (73, 90, 101, 106쪽)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 말은 ‘가난’이고 한자말은 ‘貧困’입니다만, 가난이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또한 가난한 살림은 어느 한 사람이 잘못해서 짊어지는 짐덩이가 아닙니다. 나라에서 돌보아야 하며, 이웃이 거들어 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이 땅 이 터전 이 나라 이 겨레여야 아름답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 옷을 모두 둘레에서 얻어 입힙니다. 저하고 옆지기 옷 또한 이웃한테서 얻습니다. 무슨무슨 행사할 때에 만든 옷이라든지, 이웃들이 이제는 안 입는 옷이라든지, 이웃들로서도 선물을 받았는데 당신들 취향에 안 맞는다든지 하는 옷을 스스럼없이 물려받습니다. 우리 식구는 옷차림을 따지지 않을 뿐더러, 이런저런 옷은 이런저런 옷대로 재미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고맙게 물려받습니다.

 다만, 책값을 쓸 때에는 좀 많이 쓰고 있어 걱정이 됩니다. 책값 때문에 살림이 기우뚱하지 않을까 근심이 됩니다. 옆지기는 바늘 값하고 실 값으로 제법 많은 돈을 쓰니, 이 때문에 아찔아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자동차가 없고 냉장고나 세탁기가 없는걸요. 다른 돈 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찌 될는지 모르나 아이를 키우며 어디에 맡긴다든지 무슨 학원을 보낸다든지 무슨 교재를 쓴다든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 된 사람들이 즐겁게 보는 책을 아이하고 함께 봅니다. 아이 낳은 어버이이기 앞서부터 어린이책을 좋아했고, 훌륭한 그림책은 아이한테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어른부터 기쁘게 보면서 마음밭을 일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어버이 된 두 사람이 보는 책은 우리 아이가 보는 책하고 같습니다.


.. 소개받은 일을 거부하는 선택 사항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실업과 하루 고용도, 교통비 지출과 저임금도, 서비스 잔업까지도 고맙게 여기며 어떠한 현장이라도 기쁘게 달려가는 편리한 상품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언제 일이 주어질 지 알 수 없다 … 일용 파견 노동자는 인간적인 제 권리를 주장하면 일을 얻을 수 없다 …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은 이전부터 노동자 가계(생계비)를 지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상정하고 있는 것은 주부 파트타임 노동이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말하자면 ‘용돈’이다 ..  (169, 196쪽)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으로 돌아와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일본 정부가 ‘가난 없애기’라는 일에 얼마나 팔짱을 끼고 있는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사회 얼개를 찬찬히 밝혀냅니다. 이리하여, 이 책을 쓴 유아사 마코토 님은 ‘반빈곤 선언’을 하고 ‘반빈곤 운동’을 합니다. 가난을 반대한다는 외침말을 내놓고, 가난을 몰아내겠다는 일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읽을 때에도 느끼지만,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가난한 사람 살림 돕기’에는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무상급식이니 무상의료이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급식이나 의료를 나라에서 하는 일이 어려울 대목이란 없습니다. 급식이나 의료를 나라돈으로 못하는 까닭이란 우리 정부가 개발과 건설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데다가 국방비에 훨씬 엄청난 돈을 쏟아붓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 고속철도가 더 큰일일까요, 이 나라에 살림에 쪼들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일이 더 큰일일까요. 아직 경부운하나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만, 이러한 개발계획을 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용역비와 공무원 달삯으로 쓰였겠습니까. 이 돈만 갖고도 초중고등학교 급식비는 모두 댈 만큼 되지 않을까요? 보육원이나 어린이집 교육비는 이만한 돈으로 넉넉하게 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남녘이든 북녘이든 통일보다는 전쟁과 대치를 바라는 까닭이, 서로서로 평화통일 아닌 국방대치를 해야 국방비에 무척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남녘과 북녘 모두 복지와 문화와 평화와 서민 삶에는 ‘돈을 안 들이’면서 기득권과 권력자가 모든 돈과 권리를 움켜쥘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요?


.. 결과만을 보고 서둘러 결론지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 책임론’이 숨어 있다. 이것은 “현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책임은 본인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람 개개인의 ‘삶’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안다’는 것 또는 ‘판단한다’는 것에는 좀더 주의 깊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 본인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새롭게 빈곤 상태에 떨어지고 있다 ..  (20, 33쪽)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 하나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지 않도록 돕는 훌륭한 정책은 틀림없이 있고, 이러한 정책을 제대로 펼친다고 해서 한 나라 살림에 조금도 어려울 대목이 없을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제대로 돕는다면 한 나라 살림은 오히려 더 나아지면서 아름답고 알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돈있는 사람이 돈없는 사람을 돕는 ‘빈곤 정책’이 아니라, 돈없는 사람 주머니에서 똑같이 걷힌 세금을 다름아닌 돈없는 사람 복지와 문화에도 함께 쓰고, 이렇게 ‘돈없는 사람 복지와 문화에 쓰는 돈’이란 ‘돈있는 사람 복지와 문화’에 함께 이바지하는 노릇임을 알려줍니다.

 승강기와 자동계단이란 ‘장애인 복지 시설’입니다. 비장애인으로서는 계단을 타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승강기와 자동계단을 오늘날 누가 타고 있습니까. 모든 비장애인은 장애인 복지 시설인 승강기와 자동계단 혜택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헤아리는 널찍한 버스는 비장애인한테도 좋은 시설입니다. 전철칸이나 기차칸에 마련하는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한테뿐 아니라 비장애인한테도 고마운 시설입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가난한 사람이든 어려운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우리 둘레 이웃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정책을 펼치면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인 사람’ 모두 고마움을 즐겁게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서로서로 흐뭇하고 기쁘게 살아갈 길입니다. 치고받고 다투면서 1등만 찾는 길이란, 1등이 되는 사람한테도 고단합니다. 1등이 되느라 옆이나 뒤는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봄날 예쁘장하게 피어나는 아리따운 노란꽃 분홍꽃은 못 보고 있잖아요. 오늘날 도시에서 개나리와 진달래와 이팝나무와 매화나무와 목련나무와 벚꽃나무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도시에서 어떠한 봄을 느끼고 어떠한 여름을 만나며 어떠한 가을과 겨울을 느낄 수 있는지요.

 정책은 정책대로 올바르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이 따로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삶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정책이 있건 말건 우리는 우리 슬기를 뽐내며 오순도순 맑고 밝게 살아가면 됩니다. 학교가 있건 없건, 시설이 있건 없건, 문화나 의식이 있건 없건, 우리 스스로 싱그럽고 따뜻하며 넉넉한 사람으로 오롯이 서면서 내가 디딘 이 땅 이 마을 이 살림집에서 알차고 빛나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다고 느낍니다.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은 ‘복지 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깨우치도록 하는 고마운 책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으면, 구태여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이 책에서 다루는 줄거리를 모두 삶으로 부대끼며 깨우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스스로 가난하지 않기에, 따로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고, 가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으며, 가난이고 아니고를 떠나 즐거울 수 있는 삶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바로 이 ‘즐거움’을 놓치고 있다고 새삼 느낍니다. 《빈곤에 맞서다》를 읽고 주먹을 부르르 떨 분들께서는, 아무쪼록 가난한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굽어살피면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해 주면 서로한테 기쁠까를 곱씹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3.3.14.해.ㅎㄲㅅㄱ)


 ┌ 《빈곤에 맞서다》(검둥소 펴냄,2009)
 ├ 글 : 유아사 마코토
 ├ 옮긴이 : 이성재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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