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어린이날 문지아이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서정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즐겁고 신나게 꾸리는 삶은 어디에
 [그림책이 좋다 7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일론 비클란드, 《행복한 어린이날》



- 책이름 : 행복한 어린이날
- 글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그림 : 일론 비클란드
- 옮긴이 : 김서정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09.3.26.)
- 책값 : 8000원


 (1) 기쁨과 즐거움은 우리 곁에


 옆지기와 아이하고 헌책방마실을 다녀왔습니다. 아주 오랜만입니다. 옆지기 몸이 많이 아픈 까닭에 여러 달째 함께 헌책방마실을 다니지 못했고, 올해 들어는 처음이었습니다. 눈이 소복히 내렸다가 말끔히 녹아 버린 길을 아이를 안거나 걸리면서 지나갑니다. 동인천역에 닿아 전철을 탑니다. 아이한테 낮잠을 재우고 길을 나설 수 없기 때문에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나서 바로 바깥마실을 나왔습니다. 전철에서 고이 잠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아이는 몇 정류장 지나지 않았을 때에 벌겋게 부은 눈이 스륵스륵 감기더니 이내 잠듭니다. 아빠와 엄마가 곁에서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아빠 쪽으로 몸을 기대도록 합니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이 잘 듭니다. 그런데 낮부터 술에 전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우리 앞에 서서 고약한 술냄새를 잔뜩 풍기며 무어라무어라 쑹얼쑹얼거립니다. 아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모습이 못마땅한가 봅니다. 세 식구가 전철마실을 하다 보면 이런 아저씨들이 꼭 나타나는데, 아이는 엄마가 무릎에 앉히고 빈자리 하나 마련하여 당신이 앉아야 한다고 하는 분들입니다. 자리에 앉기를 바란다면 ‘장애인노약자영유아동반자 자리’에 가실 노릇입니다. 여느 자리를 넘보지 않을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돌본 분들은 누구나 알 텐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가는 일도 한동안이지, 아이도 힘들고 어버이도 힘듭니다. 그리고, ‘장애인노약자영유아동반자 자리’라는 길디긴 이름이 붙었듯, 모든 자리는 ‘장애인과 노약자와 영유아와 아이 부모’ 모두한테 앉을 권리가 있답니다.

 아기가 꽤 깊이 잠들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를 반듯하게 누입니다. 처음에는 엄마 무릎에 머리를 놓았고, 이십 분쯤 뒤에는 아빠 무릎으로 머리를 놓습니다. 깊이 잠든 아이는 참으로 꽤 무겁습니다. 이 느낌은 퍽 좋은 무게입니다. 무릎이 힘들어도 새근새근 아이를 포근하게 보듬으며 지켜 줄 수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아이키우기가 제아무리 힘들거나 고되다 할지라도 이런 사랑스러운 느낌 때문에 둘째를 생각하고 셋째를 헤아리며 넷째를 살필 테지요. 우리는 옆지기 몸이 많이 안 좋기 때문에 둘째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둘째가 있으면 첫째인 사름벼리한테 참 반가울 텐데, 동생이 없더라도 우리 삶터에서 함께 크고 있는 살가운 동무를 기쁘게 사귈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용산역에 닿을 무렵입니다.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천천히 등에 짊어지고, 아이는 아빠가 살살 들어서 가슴으로 안습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느릿느릿 걷는데, 아이는 금세 깨고 맙니다. 날이 차기에 아이가 깬 김에 조금 걸리는데 잘 못 걷습니다. 잠이 덜 깨었군요. 아니, 살짝 깼다가 다시 자야 하는데, 잠자리가 좋지 못했습니다.

 다시 아이를 안고 걷습니다. 용산역 앞 너른터를 가로질러 샛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오늘 따라 샛골목을 오가는 사람이 많고 오토바이마저 지나갑니다. 우리 앞에 퍽 빨리 걷는 사람 손에 담배가 쥐여져 있습니다. 콜록콜록 재채기가 납니다. 길을 걸으며 담배 태우는 사람을 볼 때면 뒷통수를 한 대 갈겨 주고 싶습니다. 당신들 때문에 다른 사람과 아이한테 얼마나 피해를 끼치는지 조금도 살피지 않으니까요.


.. 왼쪽부터 라쎄, 보쎄, 나, 브리타, 잉가, 올레예요. 우리는 불러뷔 마을에 살아요. 물론 케르스틴도요. 이 꼬마는 올레 동생이랍니다. 지금 두 살 반인데, 반쪽 사람이래요. 라쎄가 그랬어요 ..  (3쪽)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에 닿습니다. 오늘 헌책방마실을 하자고 말한 엄마보고 먼저 들어가라 하고, 아빠는 뒷간으로 가서 아이 오줌을 누입니다. 꽤 많이 눕니다. 집에서 누이고 나왔는데, 그동안 꾹 참고 있은 듯합니다. “참 착하지. 오줌을 많이 참고 있었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니, 아이는 “응, 응.” 합니다. 달 숫자로 치면, 세상에 나온 지 아직 스물넉 달이 안 되었으나 나이로는 세 살인 아이는 아직 몇 마디 할 줄 모릅니다만, 우리가 하는 말을 제법 잘 알아듣고 있습니다. 바지를 입으라 하면 못 입으면서도 혼자서 입어 보려고 낑낑거리고, 앉으라 하면 앉고 밥 먹자 하면 쪼르르 오고, 엄마한테 안기라고 하면 엄마를 휙 바라보고는 달려가고 합니다.

 아빠도 책방으로 들어섭니다. 아이를 골마루에 내려놓으려 하는데, 아이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용을 씁니다. 여느 날이라면 안으면 싫어하고 혼자 여기저기 쏘다니며 놀겠다 할 텐데, 오랜만에 헌책방마실을 해서 낯이 선지, 아직 졸려서 그런지, 내내 아빠 품에 안긴 채 돌아다니겠답니다. 품에 안긴 채 손을 들어 “넌, 넌.” 하면서 이곳저곳을 가리키고 책꽂이며 책이며 아이 손으로 만지겠다고 뻗습니다.

 “그래, 오늘은 엄마 볼 책을 사러 나왔으니 엄마가 느긋하게 책 보라 하고, 아빠는 널 안고 다녀야겠구나.” 하면서 눈으로만 이 책시렁 저 책시렁을 휘휘 둘러보며, 살 책을 하나하나 고릅니다. 좀더 깊이 들여다볼 겨를은 내지 못하고, 집에 가서 들여다보기로 하고 하나둘 살핍니다.

 “자, 아빠도 조금 쉬자.” 하면서 아이를 내려놓고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켠 다음 사진 몇 장을 찍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를 안습니다. 이렇게 먼저 말을 한 다음 내려놓으면 한동안 아빠 다리에 찰싹 붙어서 기다려 줍니다. 그동안 아이를 안고 사진찍기를 꽤 많이 한 까닭인지, 아빠가 사진을 찍을 때에 숨을 참고 움직임을 없앤 채 살며시 찍는 줄 알고 있습니다.


.. 언젠가 라쎄가 신문을 보더니, 스톡홀름에서는 어린이날 잔치를 연다고 말했어요. “불러뷔에서도 어린이날 잔치를 열어야 해. 케르스틴한테 어린이날 잔치를 해 주자.” “어떻게? 어린이날에는 뭐 하는 건데?” 올레가 물었어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는 거지. 어린이날 하루 종일 케리스틴을 재미있게 해 주면 다른 날에는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 않을 거야. 우리끼리 놀고 싶을 때 귀찮게 안 할 거라고.” 라쎄가 말했어요 ..  (6쪽)


 아이 엄마하고 두 시간 반 남짓 책을 돌아봅니다. 아이 엄마는 우리가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책을 고릅니다. 아이 없이 두 사람만 나들이를 왔다면 아빠 혼자 퍽 낑낑대면서 들고 갈 만한 부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빠가 아이를 안고 가야 하는 만큼 도무지 다 들 수 없습니다. 무게로 치면 30킬로그램쯤 되는 책은 택배로 받기로 하고 헌책방 아저씨한테 택배값을 미리 드립니다. 헌책방마실을 나오며 집에서 싸들고 온 선물꾸러미를 셈대에 슬쩍 올려놓고는 헌책방 아주머니한테 드리라는 말씀을 남기고 인사를 꾸벅 하고는 돌아나옵니다. 아저씨 앞으로 선물을 드리면, 아저씨는 선물을 책방에서 끌러 다른 손님하고 나누시기 때문에, 댁에서 식구들하고 조촐하게 나누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아주머니 앞으로 선물을 드립니다. 딱히 무슨 날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웃한테서 받은 선물을 조금조금 덜어 늦은 새해 인사이자 언제나 좋은 책 만나도록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 “스톡홀름 아이들은 어린이날에 회전목마를 탄대.” 라쎄가 말했어요. “여기는 회전목마가 없잖아.” 잉가가 말했어요. “방법이 있을 거야. 중요한 건, 어지러워진다는 점이야. 회전목마를 타면 그렇게 돼.” 라쎄가 말했어요. “그네로 해 보면 어떨까?” 보쎄가 물었어요. 라쎄가 그네에 앉혀 주자 케르스틴이 소리쳤어요. “하이디, 하이다.” 하지만 그네를 밀기 시작하자 비명을 질렀지요. “시여, 시여!” 라쎄는 들은 척도 않고 계속 힘껏 밀었어요. 재미있으라고 그런 거였죠 ..  (9쪽)


 많이 몰리는 퇴근 시간을 살짝 지난 저녁 일곱 시 무렵에 전철을 탑니다. 많이 몰리는 퇴근 시간처럼 어마어마하게 밀리지는 않으나 손님들이 꽤 많습니다. 고맙게도 우리한테 두 자리가 났는데, 아이는 빈자리에 앉지 않으려 합니다. 다른 서 있는 사람들처럼 아이도 서서 가겠답니다. 엄마가 앉히려 하면 빽빽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칩니다. 하는 수 없이 긴 손잡이를 잡고 서 있으라고 이릅니다. 우리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빈자리를 한 손바닥으로 톡톡 두들기며 “착하지 아기야, 착하지 아기야, 이리 온, 이리 온.” 하는 말을 나즈막하게 열 번쯤 되풀이해 줍니다. 아이는 부드러운 말씨를 듣고는 고개를 그리로 돌리더니 한참 있다가 스스로 걸상에 올라타겠다며 매달립니다. 엄마가 아이를 들어서 자리에 앉힙니다.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아이를 자리에 앉힐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앉히면서 헤아립니다. 우리가 아이를 좀더 부드러이 타이르면서 불러들이는 마음을 놓쳤구나 싶습니다. 아이가 오지게 떼를 써도 한결 부드러운 마음을 건사해야 할 텐데, 때때로 이런 마음을 놓치곤 합니다. 아직 아이는 아이요, 우리 말을 모조리 알아듣지는 못하는 줄 잊곤 합니다. 찬찬히 지켜보고 가만히 거드는 어른이 곁에 있으면 더없이 든든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 지내는 삶이란 나부터 스스로 든든한 어른이 되어 가는 길이겠구나 싶습니다.


.. 라쎄랑 보쎄가 케르스틴을 창밖으로 늘어뜨린 뒤 밧줄을 당겼다 내렸다 하기 시작하자 비명을 질러댔어요. “시여, 시여!” 불러뷔 마을 전체에 들릴 정도로 요란스럽게 말이에요. 리사 아줌마가 나오더니,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번만 더 하면 혼날 줄 알라고 야단을 쳤어요. 우리는 케르스틴에게 어린이날 잔치를 해 주려고 그런다고 설명했지요. 리사 아줌마는 어린이날 잔치는 불러뷔 식으로 하라고 말했어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브리타가 물었어요. “좀더 얌전하게 하는 거야. 예를 들면 닭이랑 돼지를 보여준다든지.” 리사 아줌마가 말했어요. 하지만 라쎄랑 보쎄랑 올레는 이제 빠지겠대요. “어린이날 잔치를 돼지 보여주는 걸로 해? 그런 걸 뭐 하러 해?” ..  (11쪽)


 아주머니는 먼저 내리고, 빈자리에 할아버지 두 분이 앉습니다. 아이는 이제부터 끝까지 서서 가겠답니다. 그래, 그러면 서서 가라 하고는 엄마가 종이배를 접어 아이 손가락에 끼워 줍니다. 아이는 선 채로 한손으로 손잡이를 붙들고 한손 손가락에는 종이배를 끼우고 놉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아이한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줍니다.

 내가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 이렇게 낯선 아이한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주면서, 애 엄마나 애 아빠 품을 덜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할아버지가 된 나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내 이웃들한테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에 얻은 슬기와 넉넉함과 사랑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낮부터 술에 찌든 늙수그레 아저씨처럼 밥그릇 자랑을 하면서 어깃장 놓으며 못난 꼴을 보이는 사람이 될는지, 나이값을 곱게 먹으면서 아름다운 늙음으로 새로 태어날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궂은 사람들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궂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늘 나를 돌아보고, 언제나 내 마음밭을 곱씹으며, 노상 내 삶터를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며,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보람과 사랑을 나눌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이한테는 더 많은 책과 더 큰 돈과 더 으리으리한 집과 더 아늑한 자가용과 더 잘난 어버이가 아닌, 꼭 아이한테 걸맞을 사랑 한 손이면 넉넉하고 즐겁습니다.


 (2) 작은 이야기에 담는 너른 사랑과 고운 넋


 그림책 《행복한 어린이날》을 읽습니다. 스웨덴 이야기 할머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1907∼2002)이 예순 살 나이인 1966년에 내놓은 작품입니다. 그림결 또한 1966년대 스웨덴 그림결입니다. 2009년에 우리 말로 옮겨졌으니 마흔세 해나 묵은 나라밖 그림책입니다. 마흔세 해라는 햇수는 어찌할 수 없어, 책에 실린 그림 빛느낌은 좀 붕 떴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을 예순 살 할머니가 열 살 손자 손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펼친다면, 내가 1966년에 열 살 어린이라고 생각하면서 넘긴다면, 더없이 사랑스럽고 애틋한 그림책입니다.


.. 하지만 브리타랑 잉가랑 나는 케르스틴을 닭장으로 데려갔어요. 그랬더니, 이것 보세요. 케르스틴이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시여, 소리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우리는 케르스틴에게 닭 모이를 뿌리게 해 주었어요. 닭들이 몰려와 에워싸자, 케르스틴은 까르르 웃었어요 ..  (14쪽)


 그림책 《행복한 어린이날》은 스웨덴에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여섯이 주인공입니다. 사내아이 셋 계집아이 셋인데, 여섯 아이는 저희보다 훨씬 어린 동생한테 재미있는 놀이를 베풀어 주고자 머리를 맞댑니다. 스웨덴 서울인 스톡홀름에서 어린이날이면 큰잔치를 베풀어 준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는, 저희 마을 꼬맹이한테 ‘큰도시 서울에서 하듯이 큰잔치 베풀어 주’면 여섯 아이가 끼리끼리 재미나게 놀 때에 헤살꾼이 없이 신나게 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섯 아이가 저희 동생을 바라보는 눈길은 여느 어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여섯 아이 모두 동생과 같은 ‘두 살하고 반토막’ 나이를 거쳤을 텐데, ‘두 살하고 반토막’ 아이한테 즐겁고 신나는 놀이가 무엇일는지를 조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열 살짜리(또는 아홉 살이나 여덟 살짜리) 아이 눈높이에서만 헤아립니다. 저희한테 재미있으면 동생한테도 재미있을 줄 압니다. 저희한테는 재미있는데 동생은 재미있어 하지 않으니 지루해 하거나 성가셔 합니다.

 동생 케르스틴네 어머니인 리사 아주머니가 ‘우리 시골마을에서 큰도시 사람들이 그네들 삶터에서 하듯 즐기는 놀이가 아닌, 우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우리 어린아이한테 걸맞는 놀이를 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을 때, 사내아이 셋은 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계집아이 셋만 귀담아듣습니다. 계집아이 셋은 리사 아주머니 말씀대로 아이한테 ‘작은 시골마을에서 걸맞을 놀이를 두 살하고 반토막 어린 동생한테 베풀어’ 주니 어린 동생이 대단히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계집아이 셋은 어린 동생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애틋한 사랑을 함께 나누는 길을 어렴풋하게 깨닫습니다.

 사내아이들은 저희끼리 다른 데에 가서 놀다가 ‘사람이 손으로 끄는 수레’를 가지고 와서 어린 동생을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 동생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하고 기쁨에 겨운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다가는 이내 졸음이 찾아와 하품을 길게 하고는 새근새근 잠듭니다.


.. 우리는 송아지한테도 갔어요. “불러뷔 마을에 있는 거 케르스틴한테 모두 보여주자. 그래야 어린이날 잔치를 제대로 하는 거지.” 브리타가 말했어요. “토끼도 있어! 케르스틴한테 토끼 먹이 주라고 해 볼까?” 내가 말했어요 ..  (18∼19쪽)


 참으로 수수한 그림책이자 이야기책인 《행복한 어린이날》입니다. 아이들한테나 어른들한테나 어린이날을 즐겁게 보내는 길이란 멀디먼 데에 있지 않음을 넌지시 보여주는 좋은 그림책입니다. 어린이날뿐 아니라 여느 날을 신나고 기쁘게 맞이하는 삶자리란 다름아닌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울리는 고향마을임을 조용히 밝혀 주는 살가운 이야기책입니다.

 우리한테 고향마을이란 시골이 될 수 있고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큰도시가 될 수 있으며 작은도시가 될 수 있어요. 어디이든 우리한테 좋은 곳입니다. 어디라 한들 우리한테 반가운 터전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기 나름이요, 우리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며, 우리가 부대끼기 나름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착한 마음결을 고이 건사한다면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어디에서 누구하고 복닥이더라도 우리 스스로 맑은 마음밭을 간직한다면 사랑스레 살아갑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더라도 우리 스스로 따순 마음씨를 보듬는다면 즐겁게 살아갑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버스를 몰면서, 자판을 두들기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한테 젖을 물리면서, 붓을 휘두르면서 너른 넋과 고운 얼을 알뜰살뜰 펼칠 수 있습니다.


.. 케르스틴이 몹시 피곤했는지 연달아 하품을 해댔어요. 우리는 마차를 끌고 리사 아줌마에게 갔어요. 케르스틴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어요. 하지만 라쎄랑 보쎄랑 나랑 브리타랑 잉가랑 올레는 마을에서 가장 큰 벚나무에 올라가서 저녁 내내 버찌를 따먹었어요. 그것도 정말 신나는 어린이날 잔치였답니다 ..  (23∼24쪽)


 작은 이야기책 하나에 너른 넋과 얼을 담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님입니다. 이러한 너른 넋과 얼을 두루 펼치기 때문에 스웨덴을 비롯한 온누리 어린이와 어버이들이 린드그렌 할머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기리는구나 싶습니다. 길디긴 작품일 때에는 길디긴 작품대로 사랑스러운 넋과 얼을 담으며, 짤막한 작품일 때에는 짤막한 작품대로 푸근한 넋과 얼을 담으니까요.

 그런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은 당신이 써내는 알뜰하고 알찬 이야기감을 바로 당신 곁에서 찾습니다. 당신 곁에 널려 있는 숱한 수수한 삶자락이 곧바로 당신한테 가장 사랑스럽고 고운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생활동화가 되든 판타지가 되든, 짧은동화이든 긴동화가 되든, 그림책이 되든 동화책이 되든, 당신은 다름아닌 당신이 걸어온 삶과 이웃이 걸어온 삶에서 눈물겹고 웃음나는 이야기보따리를 일구고 엮어서 풀어냅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 숱한 손꼽히는 어린이책 작가들은 우리 곁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찾지 않으며 느끼지 못하다가는 일구지 않습니다. 모두들 머나먼 나라를 바라보며 구름 위 나라를 생각합니다. 내 곁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피지 못합니다. 내 둘레 동무가 어찌어찌 지내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이론은 빠삭하고 지식은 넘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이 얕고 믿음이 얕습니다. 글 만지는 재주는 빼어나고 줄거리 엮는 솜씨는 뛰어나지만, 글에 담는 푸근함과 이야기에 깃들이는 넉넉함은 모자랍니다.

 글을 왜 쓰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구한테 즐거울는지를 차근차근 헤아려야 합니다. 내가 쓴 글로 누구와 함께 웃고 울려 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를 비롯해, 우리네 작가들께서 그림책 《행복한 어린이날》을 곰곰이 되새겨 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그림책 하나에 어떤 넋과 얼이 스며 있는지 곰삭여 주실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이 책은 모두 스물네 쪽으로 이루어진 판 작은 그림책인데 책값이 8000원입니다. 책값이 지나치게 비쌉니다. 이만한 크기와 부피와 짜임새라 한다면 6500원이나 7000원이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책이라 할지라도, 책에 매기는 값이 알맞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대로 다가서거나 사랑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을 좋은 값을 치르며 기쁘게 받아들어 고이고이 간직할 여느 사람들을 헤아릴 줄 아는 책마을 일꾼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4343.3.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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