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13 : 책 하나에 담는 땀

 전라남도 장흥에서 살고 있는 마동욱 님이 십만 원에 이르는 사진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사진책 이름은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호영)입니다. 당신 고향마을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수십만 장 찍은 사진을 고르고 추려 내놓은 두툼한 선물입니다. 온몸으로 부대끼고 두 눈으로 살펴보며 마음으로 삭여낸 삶자락이 깊고 넓다 보니 수십만 장이라는 사진을 찍고도 모자라, 앞으로도 새롭게 수십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저는 수십만 장까지는 아니지만, 제 고향동네인 인천 골목길을 해마다 만 장 남짓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이 만 장이 넘어가면, 요 한 해치 사진 만 장을 갈무리하는 데에만 여러 날이 걸립니다. 아니, 한 번씩 죽 돌아보고 추리는 데에만 보름은 걸리고, 애써 추린 사진을 갈래에 따라 나눈다든지 하자면 한 달이 훌쩍 넘어가며, 갈래에 따라 나눈 사진 가운데 어느 녀석을 얼마만한 크기로 다루어 엮느냐를 살피자면 또 한참 걸립니다. 사진 하나로 담을 때부터 오래오래 품을 들이기 마련인데, 작품으로 빚었다 할지라도 낱낱이 있는 사진을 ‘이야기 있는 꾸러미’로 묶자니, 사진기를 들고 골목마실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더 오랜 품을 들여야 하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춤이든 노래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 나 스스로 미처 즐기거나 누리지 못하는 열매가 더없이 많을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동무와 이웃한테 보여주거나 나누는 열매 또한 아주 작을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열매를 일구고자 애써야 하는 사람이지만, 힘껏 거두어들인 열매 또한 바지런히 맛보면서 나누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아주 흔히 하는 말인데, ‘나누며 따뜻한 사랑은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내 주머니에서 아주 조금만 덜어도 이 작은 돈푼으로 무척 넉넉히 나누는 사랑이 된다고 합니다. 나로서는 아주 조금이라 할지라도, 열 사람 숟가락이 모이면 밥 한 그릇이 되니까요. 한 사람 숟가락으로 열 사람을 먹여살리는 밥그릇이 아니라, 열 사람 숟가락으로 한 사람을 먹여살리는 밥그릇이 되면 즐겁습니다. 내가 내 이웃하고 무언가를 나눈다고 할 때에는 ‘내가 대단한 부자라서 나누는’ 셈이 아니니까요. 내가 그지없이 가난하기 때문에 나눌 수 있으니까요. 내가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기 때문에 나보다 벅차거나 버거운 이웃을 알아봅니다. 내가 힘들고 고단한 탓에 나보다 힘들고 고단한 동무를 알아챕니다. 내 마음밭이 얕거나 어수룩하다고 느끼기에 즐거이 새로운 책을 장만하여 새롭게 곰삭이며 읽습니다. 내 배움이 짧거나 모자라다고 느끼기에 기쁘게 책방마실을 하며, 만 권이든 십만 권이든 아직 머나먼 책읽기일 뿐임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지난 2004년에 우리 말로 나온 《환경 가계부》를 아주 흐뭇하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졌습니다. 둘레에 선물하고 싶어도 사 줄 수 없습니다. 헌책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옆지기는 이 책을 살며시 넘겨 보더니 묻습니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에요?” “응? 왜?” “이런 책은 꼭 일본책이더라구요.” 뒤통수가 뜨끔합니다. 그러고 보니 《즐거운 불편》도 일본책, 《백성 백작》도 일본책입니다. (4343.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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