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편지 선집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홍규 옮김 / 아트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번역이 너무 형편없어서 별 하나를 깎고 싶지만, 책이 좋기에 별 다섯을 그대로 살려 놓는다. 번역하는 분들은 제발 우리 말 좀 배우고 나서 일을 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그리고 2쇄부터는 오탈자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내가 출판사에 알려준 오탈자는 마흔 곳쯤 되는데, 한 번 알려주고 나서 예순 군데를 더 찾았다. 히유... 띄어쓰기 문제가 아닌 '오탈자' 문제이다... 그리고 고흐가 살던 곳은 '네덜란드'인데, 화가 이름이나 지역 이름을 '네덜란드 말대로 읽기'가 아닌 '영어대로 읽기'로 적어 놓은 대목이 많아서, 책을 읽으며 몹시 언짢았다. 네덜란드사람이 한국사람 이름을 일본 말투대로 엉뚱하게 읽어서 적어 놓으면 기분이 좋을까? 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 문화와 우리 나라 문화 또한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하지 않다면, 제발 번역가라는 이름은 달고 다니지 말아라...)  

(글 사이사이 곁들인 그림은, 출판사 '아트북스'에서 보내 주었기에 붙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책을 엮어낸 출판사 분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힘내어 주시면 좋겠다...)


 이 책 하나 130 ― 문화를 먼 나라에서 찾을 까닭이란 없다
 : 빈센트 반 고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 책이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 글ㆍ그림 : 빈센트 반 고흐
- 옮긴이 : 박홍규
- 펴낸곳 : 아트북스 (2009.5.14.)
- 책값 : 26000원



 (1) 내가 꾸리는 삶은 고스란히 예술


 제 삶은 남들이 보면 부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하루하루입니다. 혼자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하루가 온통 골목마실이나 자전거마실을 거쳐 헌책방이나 동네새책방에 드나든 다음 집으로 돌아와 글쓰기로 채워졌습니다. 옆지기와 살아가면서 자전거마실과 책방마실은 많이 줄었고, 아기를 낳은 뒤로는 자전거마실과 책방마실은 웬만하면 엄두를 못 내지만, 한 주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책방마실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을 꼭 읽어야 하거나 새로운 책을 꼭 사야 하지는 않으나, 저 스스로 우물에 빠진 생각밭이 되고 싶지 않은 한편, 아직 새로 배울 이야기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마련해 둔 책을 다시금 꼼꼼히 읽어도 되고, 이제까지 읽은 훌륭한 책을 거듭 되뇌어 읽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훌륭한 책을 바탕으로 새롭게 일군 ‘내 손길을 기다릴 또다른 훌륭한 책’이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고 느끼기에 책방마실을 꾸준히 이으려고 합니다. 아픈 옆지기와 함께 살며 아기를 함께 키우자면 바깥마실이 힘들어 집에서 인터넷을 또닥거리며 책을 장만할 수 있지만, 책은 제 발품을 팔아 찾아다닌 책방에서 제 손품을 팔아 살피면서 장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장만한 책은 너무 무겁거나 다른 짐이 많지 않다면 한겨울에도 땀 뻘뻘 흘리며 제 큼지막한 가방에 가득 채우고 끈으로 꽁꽁 묶어서 낑낑대며 집으로 나르고 싶습니다. 손발을 쓰지 않으며 책을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2009년 12월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보면 지난 1992년 8월부터 열여덟 해에 걸쳐 날마다 3킬로그램 남짓에 이르는 책을 장만해 왔습니다. 충북 충주에서 살며 자전거마실로 서울을 오가며 책을 사던 2006년 한 해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자전거수레와 가방과 자전거 짐받이에 70∼80킬로그램에 이르는 책을 나누어 싣고 한 주에 한 번씩 오갔습니다. 지난 2008년과 올해에는 책을 좀 적게 샀는데, 2006년까지 책을 장만해 온 흐름을 줄잡으면 날마다 10킬로그램이 됩니다. 요새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데, 아무래도 열여섯 해 동안 몸을 지나치게 많이 부린 탓이 아닌가 싶고, 요 이태에는 책방마실을 자주 못 다닌다고 하여도 집일을 많이 맡으면서 스스로 힘겨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손발톱을 깎아 남들 눈에 안 뜨이게 되었지만, 올 2009년 첫머리부터 제 손톱은 한쪽이 갈려 있었습니다. 곯아떨어진 어느 날 겨우 잠에서 깨어 일어났지만 잠자리에 누운 채 문득 손을 들어서 들여다보다가 손톱 끝이 갈려서 없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는데, 왜 이렇게 갈린 줄 몰랐습니다. 며칠 앞서 드디어 ‘손톱이 갈린 까닭’을 알았습니다. 날마다 아기 옷가지 빨래와 걸레 빨래에 들이는 품이 퍽 많아, 쉼없이 비빔질을 해대느라 손톱 끝이 한쪽으로 갈려 없어진 셈이더군요. 날마다 기저귀를 서른 장씩 빨 때에는 이러하지 않았고, 저와 옆지기 옷을 빨며 살 때에도 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외려 아기가 젖을 차츰 적게 먹고 밥갈이와 오줌가리기를 하려는 요즈음 이렇게 손톱이 갈립니다. 





 언제인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으나, 1980년대 가운데무렵쯤, 아버지 어머니 형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열세 평 오층짜리 아파트에 살던 때에 빨래기계를 처음 들여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네 식구 옷과 이불까지 모두 손빨래를 하던 어머니한테는 빨래기계가 그야말로 ‘손품 더는 혁명’과 같지 않았으랴 싶은데, 이무렵 빨래기계 값은 요즈음 빨래기계 값하고 거의 맞먹었습니다. 아버지가 어쩌다가 빨래기계 장만할 생각을 다 하셨는지 궁금하지만, 빨래기계를 쓰며 어머니 손이며 손톱이며 조금은 수월해지셨겠지요. 그러나 빨래기계를 쓴다고 집일은 줄지 않습니다. 집일을 나누어 맡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큰일입니다. 형과 저는 어릴 적부터 으레 어머니를 거들며 집일을 함께했고, 양말과 신발은 마땅히 스스로 빨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주말에는 걸레를 빨아 방바닥 훔치는 일을 도왔고요.

 빨래기계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빨래를 개고 걸레질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하는 집일을 물끄러미 살펴볼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집일은 언제나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빨래와 청소가 마무리되면 아침 낮 저녁 세 끼니 밥을 마련하는 데에 바쁘고, 끼니를 마련하자면 날마다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야 했고, 찬거리 손질이며 쌀을 일고 씻고 안치고 하는 일에다가 상차림이며 나중에 설거지와 갈무리까지 ……, 입으로 읊으면 짧지만 몸으로 움직이면 겨울날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고단하고 바쁜 하루하루입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다니며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 가운데 떠오르는 대목이 거의 없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배운 지식조각 가운데 생각나는 대목 또한 몇 가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곁에서 늘 바라본 어머니 집일을 놓고 보았을 때에는 아주 많은 모습이 떠오르고 생각납니다. 아니, 떠오른다기보다 늘 떠올리며 삽니다. 생각난다기보다 노상 생각하며 삽니다. 오늘 하루 내 집일을 맡아 하면서 어린 날 어머니는 어떻게 했고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돌아봅니다. 내 국민학생 때 어머니는 바로 오늘 제 나이쯤 되었을 텐데, 그무렵 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본 어머니 손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제 손은 얼추 비슷합니다. 어린 날 제 손은 말랑말랑하고 뽀얀 모습이었지만 어머니 손은 누리끼리하며 굳은살이 마디마디 박혀 있는데다가 손톱도 그리 곱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머니 지난날 손 모양을 제가 물려받으며 살고 있는데, 그제 저녁 혼자서 제 손톱 모양을 사진으로 한 장 남기면서, 우리 아이가 앞으로 서른세 해를 더 살아낸 다음 스스로 제 손을 들여다볼 날이 있다면 제 아버지(나 어머니) 손을 담은 사진을 돌아보면서, 제 어버이와 제 어버이를 낳고 기른 어버이와 그 어버이를 낳고 기른 어버이를 가만히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그 어느 책에도 이 같은 이야기는 다루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굳이 어떠한 책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다루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느끼고 읽고 삭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문화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과학이나 교육이나 정치나 경제가 꽃피운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깨닫고 내 이웃 삶을 톺아볼 줄 알 때에 바야흐로 내가 걷는 한길이 얼마나 고맙고 싱그럽고 아름다운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제 사진감 가운데 하나인 ‘헌책방’ 한 가지 사진을 날마다 열 장쯤 찍으면서 살아왔다면, 올해에는 제 사진감 가운데 하나인 ‘골목길’ 한 가지 사진을 날마다 60장쯤 찍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진들 가운데 추리고 추려 보니 얼추 3650장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저 스스로 제 마음에 아주 들어서 덜고 빼고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제 삶터 골목동네 사진을 날마다 열 장쯤 찍었다고 하겠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텐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십이월 막바지에 이르며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그만큼 집식구와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고 할 수 있고, 그만큼 집식구와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좀더 걸음을 잘 걷고 조금 더 자란다면 몸 아픈 옆지기는 집에서 쉬더라도 둘이 골목마실을 할 수 있을 테고, 몸이 조금 괜찮은 날에는 셋이 골목마실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이 고향동네 삶터가 오로지 아파트만 때려짓는 재개발을 멈추지 않아 어쩌는 수 없이 우리 식구 조그마한 보금자리마저 밀려나야 한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게 함께 골목마실을 할 만큼 큰 다음이라 하여도 서로 웃으며 조용조용 골목마실을 즐길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즐거운 마실은 꿈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근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꿈으로 그친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이 또한 제가 걸어갈 길이라고 느낍니다. 가난이, 더 밑으로 내려가는 가난이, 날마다 오늘 끼니를 어떻게 이을까 걱정하는 가난이 저한테 주어진 길이라 한다면, 찍고픈 사진과 쓰고픈 글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우리 삶터 흐름 또한 저한테 주어진 길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달게 받아들이되 곧이곧대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꾸밈없이 삭여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어떤 이름으로도 따로 가리킬 수 없다고 느끼는데, 이를테면 헌책방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묶는다든지, 골목동네 삶자락을 글과 사진으로 보여준다든지 하는 일은 조금도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요사이 문화예술밭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아카이브’ 또한 아닙니다(저로서는 ‘아카이브’가 도무지 무엇인지 아직도 알 노릇이 없습니다만). 저는 그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헌책방을 좋아해서 즐겨 찾아다니며 듣고 보고 느끼고 담았습니다. 골목길 또한 있는 그대로 이곳에서 살아가니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몸뚱이와 눈썰미로 사진을 찍고 글을 썼습니다. 잘나지 않은 주제이나 못나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저 있는 깜냥 그대로입니다. 저보다 가난한 골목이웃이 있으나 이들이 저보다 못살거나 꾀죄죄하거나 불쌍하거나 안쓰럽지 않습니다. 저보다 가멸찬 골목이웃이 있지만 이들보다 제가 못살거나 꾀죄죄하거나 불쌍하거나 안쓰럽지 않습니다. 모두 제 깜냥대로 제 삶길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삶길대로 골목길을 두 다리와 자전거로 돌아다니면서 이 길을 걸었던 지난 1975∼1995년 자취를 오늘과 맞대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것이라 더 좋을 수 없고 새것이라 더 나을 수 없습니다. 옛것은 옛것대로 좋고 새것은 새것대로 좋습니다. 옛삶은 옛삶대로 모셔야 하고 새삶은 새삶대로 아껴야 합니다. 옛길은 옛길대로 고즈넉하고 새길은 새길대로 싱그럽습니다. 다 다른 마디와 고비와 대목이 깃든 길과 삶과 사람과 넋입니다. 다 달리 곱고 즐겁고 애틋한 길이요 삶이요 사람이요 넋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사진기 하나 들고 동네마실을 하는 동안 따로 ‘취재’를 하지 않습니다. 지난날 헌책방마실을 거의 날마다 하고 살던 때에도 따로 ‘취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날에는(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헌책방에서 ‘살았’습니다. 헌책방에서 살아온 그대로 헌책방을 사진과 글로 담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골목길에서 ‘살고’ 있습니다. 골목길에서 살고 있는 그대로 골목길을 사진과 글로 담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교육 따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문화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교육이든 있다면 바로 ‘삶’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삶으로 받아들여 내가 맡은 아이들을 내 식구요 동무요 이웃으로 여기며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에서는 어떠한 이론이 없어도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내 삶으로 껴안으며 시이든 산문이든 희곡이든 수필이든 적바림할 때에는 마땅히 문학이 이루어집니다. 글이 대수입니까? 그림이 대수입니까? 사진이 대수입니까? 춤이 대수입니까? 노래가 대수입니까? 몸짓이 대수입니까? 대수란 바로 삶입니다.

 삶을 알면 사람을 압니다. 사람을 알면 넋을 압니다. 넋을 알면 길을 알고, 길을 아니 이제 시나브로 말을 알 수 있어, 저절로 말이 샘솟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화를 하고 예술을 하고 문학을 하고 학문을 한다는 숱한 사람들은 저절로 말이 샘솟도록 ‘제 길을 살아내지’ 않고 있습니다. 억지로 말을 뽑아냅니다. 우물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다가 관정기를 쑥 집어넣고 물을 억지로 빼냅니다. 관정기로 땅을 팔 돈을 어버이한테서 얻든 스스로 일해서 벌든 하고 나서는 억지로 물자리를 알아보고 끊임없이 빼냅니다. 스스로 물길을 트지 않으며, 제절로(저절로) 꾸준히 물이 샘솟을 때까지 스스로를 갈고닦는 삶을 꾸리지 않습니다. 책만 판다고 학문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학교를 오래 다닌다고 학문이 이룩되겠습니까. 훌륭한 스승한테서 배운다고 학문이 빛을 보겠습니까. 아닙니다. 학문 또한 삶이기 때문에, 제 삶을 제 발로 디뎌야 합니다. 먼저 제 삶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거나 즐기는 세계명작이란 다름아닌 ‘글쓴이 삶이 무르익어 열매로 터져나올 그때까지 조용히 힘을 쏟은 끝에 이루어진 빛’입니다. 억지로 우물파기를 해서 이룬 전기불이 아닙니다.

 나라안에 이름 높은 박수근이나 이중섭 같은 그림쟁이가 억지로 우물파기를 했을까요. 나라안에 이름 거룩한 김유정이나 이원수나 최명희나 박경리가 어거지로 우물파기를 했는지요. 우물파기로는 ‘우물 파는 데에 들인 돈’만큼 다시 본전치기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본전치기가 삶이 되나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듯이 대학교 졸업장에 얽매이고 큰회사 높은 연봉에 얽매이는 매무새가 삶이라 할 수 있나요? 큰 차와 넓은 아파트가 삶일 수 있습니까? 영어 일찍 배우도록 하려고 나라밖으로 보내거나 영어마을을 돈으로 때려짓는 일이 삶이 됩니까?

 틀림없이 이 나라에는 영어 ‘천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아름답고 해맑게 영어로 제 넋과 꿈을 빛내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책방마다 ‘글쓰기 다루는 책’이 넘칩니다. 요즈음 글쓰는 사람 아주 많습니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많이 팔리고 읽히는’ 글ㆍ그림ㆍ사진ㆍ노래ㆍ춤ㆍ몸짓을 넘어, ‘우리 문화와 예술을 빛낸다고 할 만한’ 글ㆍ그림ㆍ사진ㆍ노래ㆍ춤ㆍ몸짓은 얼마나 될는지요?

 아무개 님 책이 수십만 권 팔린다고 하여 아무개 님 책이 우리 삶을 빛내는 문화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개 님 사진이 수천만 원에 팔린다고 해서 아무개 님 사진이 우리 삶을 비추는 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요.

 내 주제를 알고 내 길을 다스리며 내 삶을 사랑하는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어머니는 나한테 당신 삶을 그 어떤 말로도 일러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일러 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뜻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좋습니다. 내 어머니가 보낸 풋풋하고 싱그러운 스물∼서른 나이에 두 손이 누리끼리해지고 손톱 끝이 갈린 해쓱한 얼굴인 채, 제 서른 줄 나이를 보내는 오늘 하루가 고맙고 거룩하다고 느낍니다. 한 시간을 주물러도 풀리지 않는 어머니 어깨와 다리와 팔다리 뭉친 힘살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를 몸소 겪고 있는 제 나이값이 반갑고 흐뭇합니다. 저는 이와 같은 제 삶결을 그저 그대로 글로 옮기고 사진으로 싣고 책으로 묶습니다. 저로서는 달리 재주가 없기도 하며, 달리 재주가 없어 기쁘기도 하고, 달리 재주가 없는 까닭에 ‘다큐’나 ‘리얼리즘’하고는 처음부터 끈이 맞닿지 않았습니다. ‘문화’니 ‘예술’이니 ‘문학’이니 하는 얼굴하고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예 저한테 주어진 결대로 살아내는 하루하루요, 이 하루하루가 글과 사진이라는 모습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2) 당신이 꾸리는 삶 또한 고스란히 예술


 799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백 군데 남짓 되는 ‘오탈자’를 보고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펴낸 곳에서 낸 다른 책을 떠올리면서, 엮음보다는 옮김에서 저으기 아쉬울밖에 없었다고 느낍니다. 아무래도 반 고흐(네덜란드말로 하자면 ‘환 호흐’)라고 하는 사람이 동생과 둘레 사람들하고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묶어내자면, 더없이 만만하지 않은 부피에 눌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나타날밖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아쉬움이 눈에 자주 뜨여도 책을 읽으며 그리 거리끼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묵묵히 한길을 가는 것이야(111쪽).” 같은 글월을 읽으며 “나는 조용히 한길을 걸어가야 할 뿐이야”로 새깁니다. “사람들은 보는 방식이나 사는 방식을 배워야 하듯이 책읽는 방법도 배울 필요가 있어(115쪽).” 같은 글월을 읽으며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나 세상을 사는 길을 배워야 하듯이, 책읽기도 배워야 해”로 받아들입니다.

 제 도서관 한켠에 얌전하게 꽂아 두고 있던 조그마한 책 《고호의 편지》(정음사)를 끄집어 냅니다. 1974년에 벌써 우리 말로 옮겨져 있던 이 책은 이때 뒤로 한 번 더 옮겨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노릇이나 여러 차례 더 옮겨졌는지 모릅니다. 저로서는 1974년에 나온 작은 책 하나로도 넉넉했기에, 굳이 다른 새 옮김판을 찾거나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는 그림쟁이 고흐 님이 쓴 편지글을 꽤 많이 실어 놓았습니다. 아쉽게도 모든 편지글을 담은 책으로 여미지 못했으나, 이만큼이라도 만날 수 있는 일은 그지없는 기쁨입니다. 책마을 일꾼이 책과 그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베풀어 준 좋은 선물입니다.

 책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라고 붙였습니다만, 그림쟁이 고흐 님이 쓴 편지한테는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꾸밈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편지글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데, 고흐 님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지 않았거든요. 고흐 님 당신이 그릴 수 있는 ‘꾸밈없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바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반 고흐 그림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로 손꼽히지만, 정작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엮었다 할 만한 ‘고흐 읽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고흐 님이 편지글에 손수 쓰기도 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읽는 동안 어렵잖이 깨달을 수도 있는데, ‘감상에 지나치게 젖거나 사상에 지나치게 기울며’ 잘못 읽고 읊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이 그림(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거야. 나는 그런 그림이라고 확신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이는 농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가장 맞는 것을 찾으면 돼. 나로서는 농민을 조합한 그대로 그리는 쪽이, 그들에게 상투적인 감미로움을 갖게 하는 것보다 길게 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어(334쪽).” 같은 말마디처럼 고흐 님 그림에 담긴 넋을 찬찬히 읽으며 이렇게 읽은 이야기를 내 삶으로 담아내고자 애쓰는 분들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그림에 담긴 좋은 넋을 내 삶으로 담는 분’들은 이름과 소리소문이 하나도 없이 조용히 당신 길을 꿋꿋하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겠지요.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로 되쓰거나 책으로 낼 일은 아니라 하겠지요.

 그림쟁이 고흐 님은 남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간 사람이 아니라 당신한테 주어진 길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면서 당신 깜냥과 주제에 걸맞게 삭여내면서 스스로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그림을 남기거나 대단한 편지를 남긴 고흐 님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고 좋은 삶을(반가운 쪽으로든 얄궂은 쪽으로든) 꾸린 하루하루이고, 이 하루하루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아낸 발자취이기에 고흐 님이 오늘날 널리 사랑받거나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당신 그림과 편지는 더없이 아름다울밖에 없습니다.

 전시장에 걸리는 그림이어야 아름답거나 훌륭한 작품이겠습니까. 집에서 손수 그려 집 벽에 걸어 놓거나 그저 스케치북에만 모셔 두는 그림이라 하여 떨어지거나 모자란 그림이겠습니까.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고 알뜰살뜰 꾸리고 있다면 누구한테나 당신 삶은 고스란히 문화이고 예술이며 문학입니다. 미국을 다녀왔다고 문화가 되지 않고, 유럽마실을 해 보았다고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하루키나 마리를 읽었다고 문학이 될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에 담긴 고흐 님 편지글은 우리한테 깃들어 있으나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하여 우리 스스로 일으켜세우지 못하는 숱한 문화와 예술과 문학 실마리를 우리 스스로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애타는 목소리와 애끓는 이야기가 가득가득합니다. 다만, 이 같은 애탐과 애끓음이란 느끼려는 가슴일 때에 비로소 느낍니다. 느끼려는 가슴이 아니라면 그저 ‘아, 나도 고흐쯤은 읽었다구!’로 그쳐 버립니다.
 





 (3) 되읽고 곱읽는 글월


 지난 유월부터 처음 읽어 두 달에 걸쳐 조금씩 곱씹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덮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래도록 곰곰이 되돌아보았습니다. 느낌글이야 얼마든지 짤막하거나 단출하게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 마음으로는 이 같은 편지글을 짤막하거나 단출하게 섣불리 적바림하기 싫었고, 제가 좋아하는 대로 곁에 놓고 찬찬히 되씹고 싶었습니다. 새로 읽고 거듭 읽으며 새로 삭이고 거듭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밑줄을 그으며 읽은 대목 몇 가지를 간추려서 옮겨적어 봅니다. (4342.12.22.불.ㅎㄲㅅㄱ)


[56∼57, 82, 114, 115, 145∼147, 203, 236쪽]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하도록 하렴. 그것이 예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참된 길이란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연을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단다 …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처럼 펜도 종이를 따라야 하는 거야 … (예술은) 사람들이 옳게 이해하고, 사물을 왜곡하지 않는 경우에 한정되고, 그 사람의 인격의 참모습을 손상시키려 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어 … 사람들은 굴뚝 위에서 연기가 조금씩 나오는 것을 볼 뿐, 그대로 지나쳐 … 예술가는 언제나 처음에는 자연의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지. 그러나 자연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런 저항에 기가 꺾이기는커녕, 자극으로 받아들여 근본적으로 자연과 성실한 예술가는 하나가 되는 거야 … 모든 주의를 그 나무에 집중하여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은 저절로 만들어진단다 … 만일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그냥 그대로 계속한다면 현상에 머물거나 답보하면서 후퇴하겠지 … 생명이 있는 존재를 소묘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정말 어렵지만 멋진 일이지 …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화가들의 말이 아니라, 자연의 말이야.

[58, 64, 80, 95 177, 236쪽] 이곳은 정말 아름다워. 사람들이 멋지고 소박한 눈을 가졌다면, 그 눈 속에 수많은 대들보가 없다면 말이야 … 삶에서 우리의 몫이 신의 나라 속의 가난한 자, 즉 신의 심부름꾼이 되는 것인지 물어 보자 … 아우야, 낙담과 병과 분쟁을 만날 때마다, 이러한 시간을 우리에게 내린 신에게 감사하도록 하자. 그리고 온화한 마음을 잃지 말도록 하자 …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살기 때문이라고. 또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마케도니아 사람 같은 인간, 괴로운 생활을 보내는 노동자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계몽할 수 있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 성직자들이 말하는 신은 나에게 완전히 죽었어 … 예술은 끈질긴 작업,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작업, 그리고 끝없는 관찰을 요구하는구나. 끈질기다라는 말은 무엇보다 쉼 없는 노동을 뜻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의 말에 휩쓸려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 





[100, 126∼127, 211, 246, 412쪽] 갱부들과 사귀려면 그들의 심정을 알고, 그 기분을 나누어야 해. 다라서 교만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는 금물이야 … 광부나 방직공은 아직도 다른 노동자나 직공들과는 다른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단다. 언젠가 이들의 모습을 그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거야 … 점점 이 가난하고 슬픈 노동자들, 소위 최하층 인간들, 가장 경멸받는 사람들, 보통사람들이 전혀 근거 없이 마치 범죄자나 악당처럼 생각하는, 그 가장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감동적인 무엇, 비통한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어 … 신 앞에서 정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해. 옳은 일을 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라는 거야 … 나는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저질이거나 진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 … 그러나 옛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새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104, 137, 203, 235, 325, 413쪽] 나는 대학에서 죽을 각오로 공부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수명을 다하고 죽는 편이 좋아. 가끔 독일인 계절노동자에게 배우는 것이 그리스어 수업보다 더 도움이 돼 … 나는 반드시 땅을 파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 경작하는 남녀를 쉬지 않고 그려야 해 … 이제 나는 화상이나 화가들을 쫓아다니지 않기로 했어. 그들이 누구라도 말이야. 내가 쫓아다녀야 할 사람은 모델뿐이야. 모델 없이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래 …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고뇌야 …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팍스러운 사람, 불쾌한 사람일 거야 … 그래, 좋아,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고 해도, 언젠가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괴팍한 사람, 그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의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겠어. 그것이 내 야망이야. 그것은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 근거하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근거하는 거야 …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막신을 신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는 말, 즉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에서 농민이 만족하는 정도에 자신도 만족한다는 점이야. 밀레는 그것을 실천했고, 사실 그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이는 이스라엘스나 모베처럼 꽤나 사치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은 길을, 밀레가 인간으로서 화가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해 … 네가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놀랐어. 아니야, 사랑하는 어린 누이야, 차라리 춤을 배우고, 공무원이든 장교든 간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렴. 요컨대,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차라리 더 많은 바보짓을 하렴. 공부란 사람을 둔하게 만드는 것 외에 어떤 목적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110, 178, 195, 261, 324, 410쪽] 너도 잘 알 듯이 나는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아. 나도 그걸 알고 있고, 내 꼴이 충격적이라는 것도 인정해. 그러나 생각해 봐. 그것은 내가 외모를 꾸미는 일에 환멸을 느낄 뿐더러 그런 데 쓸 돈이나 재산이 없기 때문이야. 게다가 그것은 자신의 공부에 깊이 전념하기 위해 필요한 고독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해 …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삶은 정말 경이로운 거야 … 내가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씀드렸다고 해서, 심지어 이성을 잃고 신랄하게 말씀드렸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적으로 본 것은 아니야. 단지 아버지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뿐이지 … 작은 바다 스케치에는 황금색의 부드러운 효과가 있고, 숲 스케치는 더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야. 인생에는 두 가지 모두 있다는 게 기뻐 … 나는 밀레가 “나는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가 그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 …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에게도 싹을 틔우는 힘이 있어. 따라서 자연스러운 생활이란 싹을 틔우는 거야. 곡식의 싹을 틔우는 힘이란, 우리에게는 바로 사랑에 해당하지.

[113, 155, 169, 175∼176, 280, 493쪽]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려워. 지금 내가 직장을 잃고, 몇 년 동안 직장 없이 살고 있는 이유의 하나는 자신들과 생각이 같은 자들에게만 일자리를 나눠 주는 신사들과 생각이 달라서야 …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 너나 내가 사랑에 빠진다면 그냥 사랑하는 것이고, 그게 전부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과 빛을 끄지 말고 머리를 맑게 유지하도록 하자 … 당신도 언젠가 사랑에 빠지면 좋겠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어. 그럴까, 교수도 사랑에 빠질까? 성직자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까? …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새벽녘에도 곁에 친구가 있음을 발견하면, 세상살이가 더 즐겁지 않겠니? 그것은 성직자들이 사랑하는 교훈적인 일기나 교회의 흰 벽보다도 훨씬 즐거운 것이야 … 구빈원 노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들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비록 이스라엘스가 그들을 완벽하게 그렸지만, 그런 눈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이 놀라워. 여기 헤이그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세계가 존재하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야 … 어떤 사람은 색채의 뛰어난 관현악법을 알고 있으나, 사상이 결여되어 있네.

[266∼267, 311, 353, 388쪽] 실패를 거듭한다고 해도, 가끔은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해 … 중요한 것은 행동이지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야. 나는 원칙이란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인정될 수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 원칙만 나열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칙으로부터도 얻을 게 전혀 없지만, 네가 말한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마음을 다잡고 사려 깊게 산다면,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 위대한 일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야 … 나는 우리가 자연 자체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또 자연 속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틀리에 작업의 속임수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네 … 나는 “밭갈이하는 농부에게는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 농부는 진짜 농부여야 하고, 밭 가는 사람은 밭을 갈아야 그 그림은 진정으로 현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고 말이야 … 그 누구보다 평온했던 코로는 봄을 깊게 느꼈고, 평생을 노동자처럼 간소한 생활을 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타인의 불행에 언제나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297, 333∼335쪽] 사람은 왜 평범하게 되는가? 그건 세상이 시키는 대로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순응하고 타협할 뿐, 결코 세상에 반대하지 않고 그 의견에 얌전히 따르기 때문이야 … 나는 램프의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의 감자를 먹는 그 손으로 대지를 팠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어. 따라서 그 그림은 손 노동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양식을 정직하게 얻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나는 우리들 문명화된 인간들의 생활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어. 따라서 나는 사람들이 그런 이유도 모른 채 감탄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아 … 언젠가는 이 그림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거야. 나는 그런 그림이라고 확신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이는 농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가장 맞는 것을 찾으면 돼. 나로서는 농민을 조합한 그대로 그리는 쪽이, 그들에게 상투적인 감미로움을 갖게 하는 것보다 길게 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어 … 만일 그 소녀가 귀부인의 옷을 입는다면 본래 개성은 사라져 버릴 거야. 농민은 일요일, 신사용 코트를 입고 교회에 갈 때보다 무명옷을 입고 들판에 있을 때가 더 멋지거든. 마찬가지로, 나는 농민화를 상투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 농민화에 향수 냄새가 나서는 안 돼 … “웬 쓰레기 같은 그림야!”라는 소리를 들을 게 틀림없지만, 그것은 각오해야 한다. 나 자신도 그렇듯이. 그래도 우리는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해 … 농민을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들 자신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려야 해.

[326, 339, 345∼346, 348쪽] 밀레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도시 화가들이 그린 농민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역시 파리 근교의 농민을 생각나게 할 뿐이라고 네가 지난번 편지에서 썼기 때문이야. 나도 같은 인상을 받았어. 이는 그 화가들이 인간적으로 농민생활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밀레는 또 말했지. 예술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 아무리 견고한 기초를 다진 신앙이나 종교도 결국은 썩어 버리고 말지만, 농민들의 삶과 죽음은 언제나 똑같이 이어진다는 거야 … “천사를 그린다니! 흥, 누가 도대체 천사를 보았지?”라는 쿠르베의 말에 남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계속 말하고 싶어. “〈하렘의 재판〉이라니! 흥, 도대체 누가 하렘의 재판을 보았지?”라고 … 그 모든 역사화들이, 보지도 못한 것을 계속 높이거나 넓혀 온 것이 아닌가!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모두 무엇을 위해 그런 그림을 그렸는가? 그것들은 대개 몇 해가 지나면 진부하고 재미도 없으며 더욱더 따분한 것이 되어 버릴 텐데 말이야.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그림을 잘도 그렸으니, 앞으로도 여전히 그렇게 하겠지 … 나는 그 모든 이국적인 그림이 아틀리에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모든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어 … 하루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농가에 살면서 농민처럼 들판에 나가야 한다는 거야. 여름에는 태양의 열기 속에서, 겨울에는 눈과 서리를 참아 가며, 실내가 아닌 툭 트인 야외로 나가, 잠시 산책하는 게 아니라 하루 진종일 농민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야. 





[371, 492, 520, 535∼536쪽] 현실의 삶 자체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감동이지. 나는 길거리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귀부인보다 하녀가 흥미롭고 더욱 아름다워. 그런 평범한 남녀 속에서 기력과 활력을 발견한단다. 만일 그들을 그 특유의 성격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확고한 붓놀림과 간단한 기술로 그려야 해 … 정확한 소묘, 정확한 색채를 추구하는 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모습을 색이나 무엇으로 정착시키려고 해도,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사진 이상일 수 없기 때문이야 … 수확을 그리는 동안, 내 일은 수확하는 농부들보다 더욱 힘들었어 … 이곳에 온 어느 날, 어떤 화가가 이렇게 말하더군. “이런 걸 그리기는 너무 지리할걸.”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네. 이 풍경이 너무나 훌륭했기에 그 바보 녀석을 야단칠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이지.

[414∼415, 571, 608, 662, 773쪽] 책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하렴. 그림을 그리렴. 생명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생한 인간이어야 해 … 가능한 많이 즐기고, 가능한 한 재미를 느끼렴 … 공부를 너무 많이 하지 마라. 그것은 독창성을 고갈시킬 뿐이야 … 파리에는 나막신 그림이 전혀 없어 유감이야 … 파리에서 나는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밖에 배우지 못했어 … 마치 자신이 꽃인 듯이 자연 속에 사는 그런 일본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종교가 아닐까? 더욱더 즐거워지고, 더 행복해지며, 인습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노동과는 반대로, 자연으로 되돌아가지 않고서는, 일본 미술을 연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 모든 게 인상주의인 인상주의 일변도가 되어서는 안 돼. 결국 다른 무엇인가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을 놓쳐서는 안 돼. 확실히 색채는 인상주의를 통해 진보했어. 비록 길을 잃었을 때도 그랬지. 그러나 들라크루아는 이미 그들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어. 그리고 거의 색채를 갖지 않은 밀레는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남겼는지! … 나는 조카녀석을 자주 생각한단다. 모든 신경을 기울여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쪽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발길을 돌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바라기에는 지금 너무 늙어 버렸다고 느끼고 있어. 





[504, 663, 707쪽] 도대체 언제쯤 나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는 그 그림을? … 화가는 자신이 본 대로 그리면 위대한 인간으로 남아 … 그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는 것은 좋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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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2-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글은 언제 읽어도 좋은데 의외로 알라딘에선 오시는 분이 드므신것 같아요.참고로 전 프리첼 시절부터 된장님 글을 많이 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