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06 : 문닫을 책방 〈이음아트〉와 늙은이 책

 서울 혜화동은 ‘대학로’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대학교에서 내는 신문 이름은 ‘대학신문’입니다. 혜화동에는 아무런 대학교가 없으나 ‘대학로’이고, 관악구에만 대학교가 있지 않으나 그곳에서 내는 신문은 ‘대학신문’입니다. 그렇다고 나라안 모든 대학 소식을 담는 신문이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혜화동을 대학로라 일컫는다 한들 이곳에 대학생 문화가 숨쉬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혜화동이 모든 대학생과 젊음을 나타내는 문화 터전이지 않습니다. 다만, 혜화동은 우리 젊음과 대학생 숨결을 크게 보여주거나 나타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 혜화동에는 책방이 도무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버티어 내지 못합니다. 물을 팔거나 술을 팔거나 밥을 팔거나 옷을 팔거나 전화기를 팔면 그리 어려울 일이 없으나, 오로지 책을 팔면 어렵습니다. 공연 문화만 문화가 아닐 텐데, 공연 문화는 자그마한 극장에서도 나눌 수 있는 터전이 있습니다만 책 문화는 자그마한 책방에서도 나눌 수 있는 터전이 없습니다. 100만 권을 갖추거나 10만 권을 갖춘 책방이어야 비로소 책 문화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1만 권을 갖추거나 1천 권을 갖추거나 1백 권을 갖춘 책방과 도서관과 쉼터라 한다면 책 문화를 말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삶터를 돌아볼라치면 작은 목소리는 ‘없는’ 목소리요, 낮은 목소리는 ‘따돌려도 좋을’ 목소리로 여깁니다. 돈이 적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여기고, 못생기거나 공부를 좀 못하거나 키가 작은 사람은 ‘뒤처진’ 사람이거나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여깁니다. 말이 좋아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 정작 우리 삶은 조금도 “작은 아름다움을 알뜰히 여기어 사랑하는 매무새”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도 “작은 아름다움을 믿고 애틋하게 섬기는 몸짓”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혜화동에서 명륜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던 책방 〈논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2005년에 꿋꿋하게 문을 열었던 인문예술 책방 〈이음아트(이음책방)〉 또한 다섯 해를 넘기지 못하고 2009년 12월 31일까지만 문을 열어 놓고, 이제는 책방일을 접기로 했습니다. 그야말로 혜화동은 ‘작은 책 문화’와 ‘낮은 책 삶결’을 나눌 수 없는 동떨어진 곳이어야 할까요. 그렇지만, 혜화동과 명륜동을 잇는 더 작은 이음고리인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은 씩씩하게 힘을 내며 다부지게 한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음아트〉가 문을 닫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다섯 해 이음아트 발자취를 돌아보는 사진잔치”를 마련하기로 하고, 제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사진 69장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사진을 들고 찾아갈 생각인데, 안쓰러운 가슴을 쓰다듬으며 일흔 훌쩍 넘긴 할머니 유선진 님이 내놓은 《사람, 참 따뜻하다》(지성사,2009)라는 책을 넘겨 봅니다. “내가 도착한 ‘노년’은 축복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이 걷힌 빈 마음으로 풍요의 고장이었다 … 노년은 젊음보다 아름답다.(147∼148쪽)” 젊음을 넘어 늙음으로 오래오래 이어갈 작은 책방은 한낱 꿈일까요? 젊음은 젊은대로 아름답고 늙음은 늙음대로 아름답습니다. (4342.11.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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