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은 자전거 - 스타일리시한 라이딩을 위한 자전거 에세이
장치선 지음 / 뮤진트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여자가 타는 자전거와 남자가 타는 자전거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1] 장치선,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



 애 아빠는 아직 제 몸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나, 아기는 눈썹 위가 크게 찢어져 병원에 안겨 가서 꿰매었습니다. 애 아빠가 조금씩 몸이 나아질 무렵 이제는 아기가 몸이 뜨거워지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칭얼대기만 합니다. 아파도 아프다 말을 못하는 아기로서는 울고 칭얼댈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칭얼거리니 꿰맨 자리에 자꾸 피가 배깁니다. 저녁과 밤과 새벽에 반창고를 갈아 붙입니다. 관장을 하며 배속에 있는 똥을 내보내도록 해 줍니다. 옆지기는 아기를 내내 안고 어르고 달래고 젖물리면서 긴긴 밤을 더디더디 보냅니다. 아기하고 씨름하면서 보내고 나니 어느덧 아침이 밝아 옵니다. 묵은 똥을 모두 내보낸 아기는 뜨거움이 많이 가라앉으면서 조용해지고, 엄마 품에서 조금 더 옹알거리다가 비로소 새근새근 잠듭니다. 애 아빠는 아직 성하지 않은 몸으로 이불 한 채를 빱니다. 간밤에 아기가 똥을 퍼질러 놓은 이불입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코앞에 닥쳐, 이제부터는 빨아서 개 놓을 이불은 얼른 빨아서 개 놓아야 하니 이불 빨래를 미룰 수 없습니다. 후들거리는 손발로 꾹꾹 누르고 밟고 하면서 이불을 빱니다. 이불 빠느라 손발이 후들거리지만, 내친 김에 기저귀 빨래를 함께 합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일하러 서울로 가야 하지만, 집일을 내버려 두고 홀로 나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밀린 일도 일이지만, 집식구를 함께 건사하지 못하고 바깥일만 챙겨서 좋을 구석은 없다고 느낍니다. 내 이웃한테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손 치더라도 내 식구한테 함께 보탬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사진쟁이 가운데 저처럼 후들거릴 때까지 손발을 놀리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렇게 후들거리는 손으로는 사진기를 쥘 수 없으니까요.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며 쉬어 준다면 후들거림이 잦아들 테지만, 집일이며 바깥일이며 잔뜩 있는데, 이 모두를 남한테 떠넘길 수 없습니다. 비빔질을 하면서 걱정이요, 비빔질을 마치고도 근심입니다.

 아침에 이불을 빨며 곰곰이 헤아려 보는데, 흔히는 ‘자질구레한’ 집일이라고 여기면서 애 엄마한테 이 모두를 맡기고 애 아빠는 슬그머니 몸을 빠져나와 회사로 가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기 관장을 하려면 한 사람이 아기를 붙잡고 한 사람이 줄에다 약을 탄 물을 넣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엄마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죽 하랴 밥 하랴 뭐 하랴, 거기다 빨래하랴 치우랴 뭣뭣 하랴, 아기가 아프지 않아도 엄마들은 혼자서 하루해가 몹시 짧지만, 아기가 아프면 더더욱 하루해가 짧을 뿐더러 잠을 못 이루고 고단함이 가득 쌓입니다.


.. 사람들이 종종 묻습니다. ‘너는 자전거로 멋부리느냐’고. 이런 질문이라면 대답보다는 반대로 물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멋진 물건으로 멋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고 …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니벨로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바퀴가 저렇게 작아서 어디 굴러나 가겠어!” 이는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자전거의 속도는 바퀴의 크기보다는 앞뒤 기어의 비율인 ‘기어비’거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미니벨로는 기어비가 큰 편이어서, 작은 바퀴로도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 미니벨로는 도시에서 타기 좋은 자전거인 것이다 ..  (여는 말, 67)


 오늘보다 더 무겁고 아픈 몸이던 어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서울로 일을 하러 가서 몇 시간 자리를 채우고 돌아왔습니다. 서울로 가는 전철길에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라는 책을 펼쳤습니다.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이 쓴 책이요, 더욱이 ‘자전거를 즐겨타는 여자’가 쓴 책입니다. 이제까지 나라안에 나온 자전거책을 돌아보면 거의 모두 ‘남자만 썼’습니다. 자전거 즐김이가 남자만이 아닐 텐데, 자전거책은 하나같이 남자들만 쓸 수 있는 듯 나왔고, 이 책들은 하나같이 ‘남자가 읽기에 좋도록만’ 엮었습니다. 얼마 앞서 나온 《자전거 홀릭》이라는 책에서는 ‘지름신’을 이야기하며 “가족을 위해 하나를 양보하면 두 개 세 개의 양보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배려와 이해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게 되고, 다음번에는 기꺼이 남편과 아빠를 위해 그들의 시간을 양보해 줄 것이다(86∼87쪽)”라는 대목이 엿보이기까지 하는데, 자전거 즐겨타기를 오로지 ‘남자 일’로만 여기는 눈길에 갇혀 있는 모습입니다. 더 비싸고 더 고급스럽고 더 겉멋을 부릴 수 있는 자전거 부품을 ‘질러대면서도 아내와 아이 눈치를 안 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다’는 ‘요령(?)’을 다룬 대목이라 이 책을 읽다가 그만 질렸는데요,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남자들끼리 자전거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말로 이렇게 ‘여자로서 자전거를 즐기는 일’을 얕잡거나 모른 척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남자끼리만 타기에 더 좋은 부품을 질러대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부부가 함께 타기에 좋은 자전거를 장만하는’ 데에는 돈을 못 쓰는지 궁금합니다. ‘부부와 아이 모두, 그러니까 식구들 모두 즐겁게 자전거 마실을 하기에 좋은 자전거를 마련하는’ 데에는 돈과 마음 모두 못 쓰는지 궁금한 노릇입니다.


.. “자전거 태워 줄게요.” 이건 나의 로망 〈아멜리에〉의 한 장면이 될 수 없는 시추에이션이었다. 나는 저 자전거를 타는 순간 ‘영심이 인증’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탔다. 키다리 아저씨의 자전거도 아니었고, 고가의 근사한 자전거도 아니었고, 내가 꿈꾸는 핑크색 튜닝 자전거도 아니었지만, 나는 탔다. 그리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 나는 작고 아담한 핑크색 자전거를 꿈꾸었지만, 그는 튼튼하고 뒷자리가 넓은 자전거를 꿈꾸었다 ..  (32쪽)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는 오로지(까지는 아니나, 거의 오로지) ‘여자로서 자전거를 마음껏 즐기자’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자로서 자전거를 처음 만나고 장만하고 남자친구하고 자전거를 즐기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찬찬히 나옵니다. 글쓴이처럼 ‘자전거 타는 기본’을 모르고 예쁜 자전거부터 덜컥 장만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끌고 길거리로 나오기 앞서 알아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맞게 적어 넣습니다. 먼저 겪어 본 사람으로서, 자전거를 타는 기본 예의와 교통법규 들을 곰곰이 되새기자는 이야기가 돋보입니다. ‘오랜 동무(여자들)’하고 함께 자전거를 끌고 마실을 다니기에 좋은(서울 시내에서) 곳이 어디인가를 넌지시 알려주는 대목 또한 볼 만합니다.

 다만, 이런 ‘자전거 타는 기본’ 이야기를 이 책에서 글쓴이가 굳이 왜 적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자전거 타는 기본’은, 새 자전거를 살 때 자전거와 함께 곁들여 오는 ‘자전거 설명서’에 훨씬 꼼꼼하면서 알기 좋도록 그림까지 그려서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쓴이가 제법 긴 쪽수를 마련해서 적바림하는 일은 나쁘지 않지만, ‘자전거 타는 기본과 예의’ 이야기는 딱 한 줄로, ‘자전거를 살 때에 설명서를 반드시 챙겨서 꼼꼼하게 읽읍시다!’ 하고 적어 주면 넉넉해요. 헌 자전거를 산다 할지라도, 동네 자전거집에 들러서 ‘자전거 설명서 한 부 얻을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면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은 거저로 줍니다. 우리 나라 자전거꾼치고 자전거 설명서를 꼬박꼬박 챙기고 읽는 사람이 거의 없어, 자전거집마다 설명서가 잔뜩 쌓여 있거든요.


.. 오지랖이 넓은 탓일까?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아니, 어쩌면 늘어나는 중국집 스티커만큼이나 내 머리속도 그 무언가로 채워졌기 때문일까? 환경 비용을 줄이는 일, 그리고 환경운동가가 되는 일은 대부분 이처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나 플라스틱 포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자장면 배발도 자전거를 이용하면 된다 … 자전거도로가 충분하고 제대로 정비되어 있다면 정장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지 못할 이규가 있을까.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되었다면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꺼릴 이유가 있을까 ..  (46, 100쪽)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옆지기가 묻습니다. 아침에 들고 간 그 자전거책을 읽으니 어떠하느냐고. 머뭇거립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다가, 재미없었다고 대꾸합니다. 값비싼 자전거가 아니라 ‘좋은’ 자전거라고 느끼기 때문에(누구한테나 도움이 되고 지구환경에 보탬이 되며, 잘생기고 쓸모 많은 자전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좋은 자전거로 한껏 멋을 내면서 살고 싶다는 분이 엮은 자전거 이야기라서, 남달리 눈여겨볼 이야기가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무슨 멋을 부리는지는 몇 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 자전거길 현실 몇 쪽에다가 남자친구 자전거 얘기 몇 쪽에다가 아버지와 짐자전거가 얽힌 ‘로망’을 몇 쪽쯤 이야기하다가 책 1/4을 ‘자전거 설명서’에 뻔히 나오는 이야기를 길게 적바림하는 바람에 지루했거든요.

 여느 ‘남자 자전거꾼’이 여느 ‘자전거 타는 삶을 이야기한 책’하고 짜임새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끼니 몹시 뻔했습니다. 그래도 여느 남자 자전거꾼처럼 ‘어떤 스펙’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 반갑다고 느꼈습니다. 이거를 갖추고 저거를 갖추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 하는 듯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라서 괜찮았습니다. 산을 타는 재미니 강을 달리는 즐거움이니 하면서 휴일에 놀러다니는 이야기에만 치우치지 않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전거 하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다루고 있어서 새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왜 글쓴이 이야기를, 글쓴이 자전거 이야기를, 글쓴이가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쏘다니던 산뜻함과 기쁨과 고단함과 슬픔을 좀더 낱낱이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을까요. 왜 어설픈 가르침이나 길잡이에 빠져들고 말았을까요. 왜 몸소 부대끼거나 겪으면서 받아들인 ‘서울 시내에서 일하고 살면서 자전거를 타는 여자로서 내 삶은 이러했고 이러하며 이러하리라 본다’는 고갱이를 붙잡지 못했을까요.

 우리 자전거 문화가 아직은 밑바닥이기에, 자전거를 말하는 책 눈높이조차 밑바닥에서 허덕여야만 하는지요? 우리 자전거 정책이 아직 씨앗이 뿌려졌다고 하기도 어렵기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 목소리 담은 책 또한 이렇게 제 줏대를 잃고 시류나 유행에 끄달려야 하는가요?


.. 자동차는 불편하게! 자전거와 보행자는 편하게! 이것이 암스테르담을 암스테르담답게 만드는 기본이다 … 남자친구의 허리둘레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핸들 하나가 더 생긴 것도 자동차와 혼연일체로 생활했던 탓은 아닐까 …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청담동에서는 자전거를 주차하기가 왠지 조심스럽다. 자동차 주차 공간을 조금만 할애해 자전거족을 위한 주차 공간을 만들어 주면 고급스러운 청담동 분위기에 어울리는 자전거족이 되어 줄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  (54, 58, 122∼123쪽)


 자전거는 틀림없이 굽높은구두도 신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고무신도 신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짐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짧은치마도 입을 수 있어야 하고, 청바지나 반바지나 양복 또한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빨리 달리는 자전거와 함께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가 골고루 길을 누빌 수 있어야 합니다. 아기를 태운 자전거와 함께 사랑하는 짝꿍이 나란히 앉은 자전거가 어깨동무하며 거리를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 빵빵 소리에 세발자전거와 네발자전거가 놀라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골목길에서든 아파트 주차장에서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달리는 어린이들 자전거보다 빨리 내달리는 자동차가 사라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경주하는 자전거는 경륜장에 가거나 곧게 쭉 뻗은 길로 가야 합니다.

 평화가 되는 자전거이며, 사랑이 되는 자전거에다, 어깨동무가 되는 자전거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라 한다면, 끌신을 신은 자전거한테도 살짝 눈짓 한 번 보낼 수 있겠지요. 이야기책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는 살그머니 눈짓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예 콧대를 높이며 흥 하고 돌아섭니다. (4342.11.4.물.ㅎㄲㅅㄱ)


 ┌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뮤진트리 펴냄,2009)
 ├ 글 : 장치선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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