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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인간 (특별보급판) - 1957-2006 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 ㅣ 최민식 사진집 휴먼(Human)
최민식 지음 / 눈빛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예식장 비싼 밥이 아닌 사진책을 선물로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 최민식, 《HUMAN 1957∼2006》
- 책이름 : HUMAN 1957∼2006
- 사진 : 최민식
- 펴낸곳 : 눈빛 (2006.12.7.)
- 책값 : 6만 원
(1) 사진에 담는 삶
너른 터가 생긴 광화문 앞길을 가로질러 보았습니다. 한글회관에서 나와 문화체육관광부로 건너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땅밑길로 지나다녔다 하고, 몇 해 앞서 비로소 건널목이 생겼으며, 이제는 너른 터가 생겨 자동차 흐름은 조금 줄면서 걸어다니기에 한결 나아졌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나와 서울 시내 이런저런 모습을 찍는 사람이 제법 있고, 남녀 짝을 지어 오붓하게 하루를 즐기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리쉼을 하는 공공근로 할매와 할배가 보이고, 개인옷을 입은 경찰과 제복을 입은 경찰이 곳곳에 많이 보입니다.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대리석으로 보이는 돌을 새로 깔았습니다. 너른 터가 되었으나 아스팔트 밑에 있던 흙바닥을 밟을 수 있지는 못하며, 사람들이 집회나 시위를 하지 못하게끔 꽃밭을 가꾸어 놓았습니다. 시청 앞 너른 터에는 잔디를 심고 광화문 앞 너른 터에는 꽃밭입니다.
이나마 너른 터 한 곳이 늘어나니 반갑다고 해야 할까 싶지만, 돈을 지나치게 많이 들인 너른 터요, 꼭 무엇무엇을 세우고 놓고 마련해야만 하는 너른 터입니다.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어 억지로 무엇인가를 만들지 않으면 땡볕에 그예 드러나야 하고, 비라도 올라치면 고스란히 맞아야만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으면 흙땅은 딱딱해진다지만, 우리한테는 시멘트나 아스팔트나 대리석이 아닌 맨흙을 풀기운과 나무그늘을 함께 느끼면서 밟을 수는 없는가 궁금합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숲길을 마련할 수 없고, 조그맣게라도 나무숲을 이룰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문득 오늘날 사진이 자꾸자꾸 날카롭거나 차갑거나 딱딱한 채 겉멋과 겉치레와 겉꾸밈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는 사진만 판치거나 넘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러운 멋도, 자연스러운 움직임도, 자연스러운 손길도, 자연스러운 눈길도 찾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푸나무와 흙이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이렇게 사람만 오갈 수 있으며, 참새나 비둘기 한 마리 깃들 틈조차 없으니까요. 이렇게 차 소리 가득한 가운데 귀가 멍멍해지는 터전에서 돈만 버는 일을 해야 하고, 돈만 쓰는 문화를 누려야 하고, 돈만 들이는 집을 얻어서 살아야 하니까요.
.. 내 앞선 세대에 그토록 불멸의 사진을 찍었던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을 보며 나도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고, 몸을 조이는 긴장감을 주는 그런 사진을 찍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 (책 끝에 붙인 말 / 최민식 - 나의 사진 인생 50년)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지옥철에 시달리며 인천에서 서울로 옵니다. 새벽에 아빠가 일을 나갈 때면 어김없이 깨어나 ‘아빠 가지 말라’며 울면서 종아리에 달라붙는 아기를 달래며 홀로 떨어져 나와 하루 절반 남짓을 집 밖에서 보냅니다. 쇠와 시멘트로 지은 건물에 놓은 책상 앞에 앉아 셈틀을 또닥거립니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 소리를 듣고, 모임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며,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다시 찻길에서 차 소리며 사람들 수다 소리며 가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들에 휘감긴 채 전철역으로 걸어갑니다. 전철은 쇠를 긁는 소리를 내고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에어컨 소리와 방송 소리를 냅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다 해도 옆에까지 들리는 디엠비 소리를 듣고, 전철에서 울리는 소리보다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나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걸쳐 놓고 있지만, 새벽에 집을 나서며 전철에 올라 서울에 닿은 뒤 일터에서 아홉 시간쯤 보내고 나서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사진기 단추를 누를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이 쳇바퀴 같은 하루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쳇바퀴 삶’을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길과 전철에서 부대끼거나 스치는 아가씨들 반바지와 치마를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길과 전철에서 부딪히거나 뒤엉키는 아저씨들 담배 꼬나문 모습이나 침 뱉는 모습을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전철에서 잠든 사람들 모습을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전철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모습만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으며, 사람들 다리께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틈틈이 바뀌는 전철 광고판만 찍어도 재미있는 사진감이 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건물 들머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울퉁불퉁한 길바닥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며, 건물 10층이나 20층에서 길거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루 스물네 시간 흐름을 담을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무엇을 사진감으로 하느냐도 크게 돌아볼 대목일 터이나, 무엇을 사진감으로 삼든 사진쟁이 스스로 무슨 생각과 마음과 뜻과 넋을 담느냐가 훨씬 크게 돌아볼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 또는 《HUMAN》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데, 최민식 님 사진감은 늘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쟁이들은 최민식 님이 사람을 찍든 말든 ‘당신들 깜냥껏 바라보거나 느끼는 사람’을 찍습니다. 모델을 찍든 알몸을 찍든 만듦사진으로 꾸미든 다큐로 찍든,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누구나 으레 사람을 사진감으로 삼습니다.
.. 진정한 사진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사색, 그리고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은,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 것은 그 현실 자체에 이미 예술이 추구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책 끝에 붙인 말)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이 사진감을 얻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이 어울리는 마을이나 도시가 사진감을 찾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나 사람한테 바람과 물과 먹을거리를 대어 주는 자연이 사진감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을 마주 바라보며 찍어도 사람 사진입니다. 사람이 아닌 길이나 건물을 찍어도 사람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길이건 건물이건 사람이 짓기 때문입니다.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뒷골목이든 앞골목이든 사람 사는 터전이라, 골목을 어떻게 담더라도 사람 이야기가 스며듭니다.
그런데, 사람을 찍은 사진 가운데 사람맛이나 사람멋이 나지 않는 작품이 있습니다. 섬뜩하거나 밋밋한 사진이 있습니다. 지루하거나 눈 버리는 사진이 있습니다. 빼어난 솜씨를 선보인다 하지만 손재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남다른 눈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손놀림 말고는 무엇도 스미지 않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 사진은 나를 찾아 주었다. 나는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사진기에 나를 송두리째 맡겨 버렸고, 내 인생을 사진으로 가득 채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 (책 끝에 붙인 말)
나 스스로 우리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때에는 내가 담는 사진에 힘찬 넋이 서립니다. 나 스스로 내 이웃을 사랑스레 바라보거나 껴안으며 살아갈 때에는 내가 찍는 사진에 사랑스러운 얼이 스밉니다. 나 스스로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삶일 때에는 내가 이루는 사진에 따스한 기운이 녹아듭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도시문명에 젖어든 삶이라 할 때에는 자본주의 도시문명을 깊이 느끼는 사진이 됩니다.
(2) 사진책 《HUMAN》을 이룬 최민식 님 삶이란
1928년에 태어나 1950년대 끄트머리부터 사진을 찍어 온 최민식 님 《HUMAN 1957∼2006》은 당신 사진길 쉰 해를 그러모읍니다. 사진길 쉰 해를 기리는 뜻에서 새롭게 사진책이 하나 나오기도 했고, 이무렵 《진실을 담는 시선, 최민식》(예문,2006)과 《뭘 그렇게 찍으세요, 사진 작가 최민식》(우리교육,2006)과 《소망, 그 아름다운 힘》(샘터사,2006)이 잇달아 나왔습니다.
사진찍기 한길을 쉰 해나 이었다는 대목은 무척 놀랍고 대단하며 기릴 만한 일입니다. 사진쟁이 최민식 님을 기리는 책이 한꺼번에 네 가지 나오는 일이란 마땅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쩌면 예전에 나오고 다시 못 나오는 책을 새로 펴낼 수 있으며, ‘최민식 사진전집’을 묶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2006년 사진길 쉰 해를 맞이하기 앞서인 2005년에는 《사진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라는 이름으로 ‘사진쟁이 최민식이 생각하는 사진’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좀더 앞서인 1996년에는 사진길 마흔 해를 돌아보는 가운데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한양출판)이 나오기도 했고, 이 책은 2004년에 고침판으로 다시 나옵니다.
.. 나의 사진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험난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내 사진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체험이 있었기에 일관되게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삶의 진실을 추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휴머니즘의 정의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 (책 끝에 붙인 말)
그런데 궁금합니다. 사진길 쉰 해를 걸은 최민식 님을 말하는 사람들은 최민식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샅샅이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들여다보거나 만나거나 껴안거나 부대끼거나 감싸안으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을까요. 곧게 한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최민식 님처럼 당신 스스로들 남다른 한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길동무 최민식’을 바라보는지, ‘넘볼 수 없는 위인전 주인공’으로 바라보는지, ‘눈물 콧물 웃음 쏟아내는 사진을 선사한 고마운 이’로 바라보는지, ‘꾀죄죄한 사람들 꾀죄죄한 삶 꾀죄죄한 사진’으로 바라보는지, ‘가난한 사람을 찍어 거룩하거나 아름다운 사진’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에 몇 마디 말이나 시나 글을 붙이는 분들은 얼마나 최민식 사진을 당신 마음속 깊이 부둥켜안으면서 말마디나 글줄을 뱉어내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는 최민식 님 사진을 놓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부터 군부가 등장한 1960년대, 그리고 민주화 투쟁이 가열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을 지닌 모습으로 포착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최민식 님을 놓고 “최민식은 한국 사진예술의 1세대로서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존재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진이란 찍는 사람 삶이 그대로 묻어나기도 하지만, 사진이란 보는 사람 삶결 그대로 느끼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보는 사람이든, 제 깜냥에 따라서 사진을 이루거나 즐깁니다. 내 눈길뿐 아니라 손길과 마음길과 몸길에 따라서 내 손으로 빚어내는 사진이 달라집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사진을 다르게 느낍니다.
어떤 이로서는 최민식 님 사진에 담긴 사람들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을 지닌 모습’이라고 느낄는지 모르나, 최민식 님은 당신 사진에 담긴 사람들을 바라보며 ‘비참한 현실’이 아니라고 느낄는지 모르며, 사진에 담긴 사람들 스스로 당신 삶을 ‘비참한 현실’인 적이 없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흔히들, 골목동네를 가난하고 구질구질하고 어둡고 퀘퀘하다고 여기지만, 골목동네 바깥에서 겉스치는 눈으로 잘못 바라보거나 대충 바라보니 이렇게 여길 뿐입니다.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가난 또한 어느 만큼 영향을 끼치겠지만, 가난보다도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훨씬 영향을 끼칩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밥 한 그릇에 흐뭇할 수 있으면, 가난하면서도 웃습니다. 돈이 없이도 즐거운 삶이요, 기쁜 삶이며, 보람찬 삶입니다. 큰도시 큰 아파트에서 깊은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불을 켜 놓고 있어야 ‘구질구질하지 않고 어둡지 않’은 삶이겠습니까. 청소부들이 바지런히 손을 놀려 쓰레기를 치워 놓는다고 ‘퀘퀘하지 않고 지저분하지 않’은 삶이겠습니까. 우리 눈앞에 안 보인다고 ‘없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최민식 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를 당신 사진에 담았을 뿐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을 때에는 가난한 그대로를 담습니다. 멋부리고 어여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일 때에는 멋부리고 어여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그대로를 담습니다. 싱그러운 웃음은 싱그러운 웃음 그대로, 하품하는 졸린 낯빛은 하품하는 졸린 낯빛으로 찍습니다. 아이 키우며 고단한 주름살은 아이 키우며 고단한 주름살 그대로 찍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그대로 찍습니다. 힘겹게 얻은 국수 한 그릇 허둥지둥 먹는 아이는 힘겹게 얻은 국수 한 그릇 허둥지둥 먹는 그대로 담습니다.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른 느낌 그대로 살리면서 다 다른 삶임을 느끼도록 보여줍니다.
.. 사진작품 속에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이를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소중한 친구가 된다 .. (책 끝에 붙인 말)
최민식 님을 놓고 “한국 사진예술의 1세대로서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추켜세우는 말마디는 어쩐지 몹시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먼저, 최민식 님은 사진예술 1세대가 아닙니다. 우리네 사진예술 1세대는 임응식 님이나 이해문 님 같은 분들입니다. 또는, 이 나라에 사진을 처음 들여온 지운영 님 같은 이름을 들어야 합니다. 지운영 님 또래를 사진예술 1세대라 한다면, 임응식 님이나 이해문 님은 2세대가 될 테지요. 그러고 나서 최민식 님이나 이해문 님 같은 분들은 3세대라 할 테고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사진 발자취가 어떠한가를 참으로 잘 모릅니다. 참으로 잘 모를 뿐 아니라 참으로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참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참으로 안 알아봅니다. 참으로 안 알아볼 뿐 아니라 참으로 느끼려 하지 않고, 참으로 깊이 곰삭여 새로 태어나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이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최민식 님 사진을 ‘넘어서’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사뭇 다른 길에서 사뭇 다른 아름다움을 꽃피우’거나 하는 우리들 사진동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사진길 쉰 해를 기리면서 이 책 저 책 나오기는 했으나, 무엇보다도 최민식 님 사진열매 가운데 가장 눈여겨보면서 아끼고 사랑해야 할 《HUMAN 1957∼2006》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인데, 우리네 얕은 사진문화로서는 어찌할 길 없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2008년 3월에 ‘특별보급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와 주었습니다. 2006년판은 6만 원이었고, 특별보급 2008년판은 3만5천 원입니다(저는 2006년판 6만 원짜리 책을 장만해서 보았습니다).
‘삼청각’ 같은 곳에서 혼인잔치를 하면 밥값이 5만5천∼10만 원이라고 합니다. 여느 예식장에서 혼인잔치를 해도 밥값이 몇 만 원쯤 합니다. 돌잔치를 해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식구는 혼인잔치도 안 하고 돌잔치도 안 했습니다. 문득문득 새로운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데, 우리 식구가 나중에 어느 만큼 살림이 펴서 ‘늦깎이 혼인잔치 또는 돌잔치’를 하는 날을 맞이한다면, 최민식 님 사진책을 500권쯤 한꺼번에 장만해서 손님들한테 ‘밥은 안 주고 책을 한 권씩 드리면’ 더없이 좋겠구나 싶습니다. 돈은 제대로 못 버는 주제에 꿈만 꾼다고, 새로 꿈 하나 꾼 만큼 이 꿈을 이루도록 돈을 신나게 벌어 볼까 합니다. (4342.8.19.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