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람의 말 - 6·9 작가선언
작가선언 6·9 지음 / 이매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미친이는 미친소와 함께 물러나라고 외치려면
 [잠깐 읽기 51] 작가선언 6ㆍ9, 《“이것은 사람의 말”》



- 책이름 : “이것은 사람의 말”, 6ㆍ9작가선언
- 글 : 작가선언 6ㆍ9, 192 사람
- 펴낸곳 : 이매진 (2009.6.29.)
- 책값 : 5000원



 (1) 오늘 우리가 하는 일과 읊는 말


 아침에 일본 만화쟁이 ‘나가이 고’ 님 작품인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와 《Z 마징가》 아홉 권을 금세 읽어냅니다. 그러께에도 한 번 보았고 지난해에도 한 번 보았는데, 오늘 아침에 스캐너로 겉그림을 긁다가 문득 한 번 다시 넘겨 보는데, 한 번 이야기에 빠져드니까, 아홉 권을 내리 다 읽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합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첫머리에 그렸고, 우리 나라에도 곧이어 들어온 ‘마징가 제트’가 일본 로봇이었음을 어릴 때부터 찬찬히 알았던 사람은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어릴 때에는 알지 못했으며, 어른들은 옳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이라 해서 굳이 꺼려야 할 까닭이 없으며, 일본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아름답게 일구는 문화와 문학이라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즐길 노릇입니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들은 이웃나라 훌륭한 문화와 예술을 꾸밈없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일구는 문화와 예술 또한 꾸밈없이 바라보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반성이 멈추는 순간 우리의 말은 오물이 되고, 민주주의가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은 허깨비가 된다. (고나리)
― 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여기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고인환)
― 민주주의는 공기와 같아서, 숨쉴 수 없게 된 후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권혁웅)



 모처럼 되넘기며 읽는데, 지난해와 그러께 책장을 넘길 때에는 눈여겨보지 못하던 대목 몇 군데가 새삼스레 눈에 박힙니다. 1권 첫머리에서는 “이 녀석의 악마와 같은 파괴력을 써서, 신과 같은 온화한 마음으로, 내가 세계를 구한다!” 하고 외치는 대목이 눈에 뜨이고, 4권 첫머리에서는 “올림푸스의 별들도 예전엔 괴수신이 아니라 지구와 똑같은 생물의 사람들로 가득했었지. 지구인보다 훨씬 거인이긴 했지만 지구인과 다름없는 생활이 있고, 사람들 사이에는 ‘사랑’이 있었어!” 하고 외는 대목이 눈에 뜨입니다.

 마징가 로봇 이야기를 살피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로봇들이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죽고’ 하면서 지구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싸움판이 나옵니다. 그저 싸우고 또 싸웁니다. 그예 죽이고 또 죽입니다. 나쁜 마음으로 죽이고 착한 마음으로 죽입니다. 나쁜 이도 착한 이도 맞은편보다 더 힘이 세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왜 싸우려 하는지, 왜 서로서로 악다구니가 되어 괴롭히고 들볶으며 ‘세계 정복’을 하려고 드는지는 밝히지 못합니다. 오로지 ‘세계 정복’이 꿈일 뿐입니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이들은 어디에서 돈이 철철 흘러넘쳐 그 숱한 무기와 로봇을 만드는지, 또 지구를 지키는 쪽 또한 어느 메에서 돈이 콸콸 솟아나서 그 대단한 무기와 로봇을 만드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나쁜 쪽이든 착한 쪽이든 온통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 돈과 땀과 힘을 바칠 뿐이요, 싸움로봇이 휩쓸면 그 어떤 문명이든 문화이든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됩니다. 주먹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아닌, 주먹 앞에 역사가 없고 문화가 없으며 교육이 없습니다. 오직 주먹힘 하나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납니다.


― 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경제발전 운운하는 거창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 아래 억압된 정직한 욕망이다. (김남혁)
― 이제 더는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억울한 사람들을 때리지 마라. (김연수)
― 술 마시고 깨어 보니 역사를 몽땅 훔쳐가 버렸네. 일어나자, 친구야. 도둑 잡으러 가야지. (신용목)



 어제부터 《생태학 개념어 사전》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죽 읽다 보니, 자연 삶터에서 모든 목숨붙이는 ‘텃세, 제거, 경쟁, 분산’에 따라 서로서로 살아남기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읽다가 ‘경쟁’이라는 말마디에 오래도록 눈길이 멎습니다. 말 그대로 좀더 힘세고 좀더 슬기로우며 좀더 튼튼한 녀석들이 살아남습니다. 좀더 여리고 좀더 어리숙하며 좀더 가냘픈 녀석들은 밀려나다가 죽어납니다.

 그런데 이 ‘겨루기’란 푸나무와 짐승한테서만 볼 수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사람 또한 아주 예전부터 겨루기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겨루기가 아닌 텃세인지 모르며 ‘없애기(죽이기, 제거)’라 할 수도 있고, ‘나누어 모여 살기(공동체, 분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겨루기를 하지 않고 ‘어깨동무’나 ‘품앗이’를 하기도 할 테며, ‘사랑’과 ‘나눔’으로 서로 함께 살아나기도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푸나무이든 짐승이든 서로서로 기대어 살아가기도 하니까요.

 그나저나 이 ‘겨루기’라는 대목을 오래도록 곱씹어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터는 어찌 된 노릇인지 그렇게 ‘경제성장’을 높디높이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겨루기는 나날이 거세고 거칠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터는 국민소득도 오르고 물질문명도 거의 마음껏 누리는 데다가 자가용 끌면 못 가는 데가 없는 판인데, 이렇게 느긋하게 잘살 수 있게 되었는데도, 더욱 불꽃 튀도록 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남보다 더 높이 오르려 하고, 남보다 더 누리려 하며, 남보다 더 가지려 합니다. 나한테 없으면 빼앗든지 못 쓰게 하든지 들볶든지 깔보든지 깎아내리든지 합니다.


― 사람의 마을에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곳에도 사람이 지나갑니까? (우대식)
― 사랑이나 꿈 때문에 절망해 볼 권리를 달라. 돈 때문이 아니라. (윤이형)
― 내 이웃이 헌법적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도멸을 삼키며 죽어갈 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이안)


 아주 많은 어버이와 교사 들은,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떼도록 하고 무슨무슨 책을 읽히며 ‘영재교육-재능교육’ 따위를 ‘조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시킵니다.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아이한테 더 많은 지식을 더 어릴 때부터 머리속에 집어넣도록 하는 데에 힘쏟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이 집 바깥으로 나와 신나게 뛰어놀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 골목이나 놀이터를 깡그리 없앤 데다가 너른터(광장)마저 꽁꽁 틀어막았는데, 이렇게 없애고 틀어막고서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유익한 교육방송’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이야기도 체험학습’이요, ‘동네 문화와 역사도 체험학습’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땅을 딛고 놀고 넘어지고 어울리는 길은 뿌리뽑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을 보면서 역사와 문화를 몸과 몸으로 배우도록 하는 길은 내팽개칩니다.

 그러고 나서 지식인들은 한 마디씩 합니다. ‘시골에 아이들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도시에는 아이들이 많지만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권력을 움켜쥐었다는 제도권 공무원과 정치꾼이 아이들을 이처럼 못살게 군다지만, 제도권 공무원과 정치꾼을 누가 뽑았겠습니까. 제도권 공무원과 정치꾼이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어른들이 뽑은 공무원과 정치꾼입니다. 바로 우리 어버이들 스스로 공무원이 되어 일을 해서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정치꾼이 되어 집식구를 거느립니다.


― 이성은 행동하지 않는다. 너의 울고 있는 말들을 보여줘. (정은경)
― 자유와 사랑을 원합니다. (허윤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먼저 바꾸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은 바꾸지 않는 가운데 화살만 남들한테 돌리고 있다고 할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먼저 들여다보고 느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은 거들떠보지 않거나 지나치는 가운데 남 탓과 남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할까요. 우리 아이들은 바로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남김없이 받아들이면서 크고 있는데, 정작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 앞에서 아름답고 훌륭하고 싱그럽게 살아가지 않고 있다고 할까요. 우리는 우리 모습과 삶을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기 마련이지만, 우리 참모습은 숨기거나 감추거나 내버린 채 나라밖 그럴싸한 껍데기만 아이들한테 들씌우려고 한달까요.


 (2) 《“이것은 사람의 말”》에 담긴 글쟁이들 말


 ‘작가선언 6ㆍ9’라는 이름으로 글쟁이 백아흔두 사람이 한 마디씩 외친 목소리를 그러모은 책 《“이것은 사람의 말”》을 읽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은 책상맡에서 머리만 굴리며 펜놀림으로 뽑아낸 글모음이 아닙니다. 보름이라는 짧은 동안에 엮어낸 글모음이기는 하나, 너른터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든 돌멩이를 들든 빈손으로 말없이 선 채로 자리를 지키든 하던 글쟁이들이 온몸으로 부대끼며 헤아리던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글쟁이 백아흔두 사람 목소리는 꼭 한 사람한테 가 닿습니다. 아니, 꼭 한 사람한테 보내려고 쏘아붙이는 말화살이요 말칼입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한테.

 그렇지만 이 책을 쥐어들어 읽는 저는, 백아흔두 사람 외마디소리를 읽는 저로서는, ‘틀림없이 이명박 대통령한테 하고픈 말’을 외쳤다는 백아흔두 사람이었을 터이나, 어쩐지 제대로 화살을 쏘는 말을 꺼낸 사람은 꼭 두 사람만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퍽 부질없는 말잔치, 꽤 달콤한 말사탕, 제법 날카로운 듯한 말채찍, 썩 힘알이없는 옹알이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 이명박 정권은 문화와 민주를 파괴하는 광기의 야만을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가라. (박민규)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 탓만 할 수는 없으리라 봅니다. 대통령 한 사람만 잘못했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는 않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좀더 옳고 바르게 살아내지 못한 탓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일 테니까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나 스스로한테 외치는 말마디’조차, 나한테서 무엇이 잘못되거나 어긋나거나 뒤틀렸다고 느끼는가 하는 대목에서 엉성궂습니다. 흐리멍덩합니다. 모두들 글쟁이라서 글솜씨가 빼어나서 ‘은유와 비유’로 이야기를 펼치시는지 궁금합니다만,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작가선언 6ㆍ9”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청계천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살아 있는 물이 아니다. 이대로 모두가 유령이 될 순 없다. (정주아)


 《“이것은 사람의 말”》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오늘날 정권이 엉뚱한 길로 마구 내달리는 모습을 꾸짖으려는 마음으로 책을 펴냈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몹쓸 정권을 바로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값을 퍽 값싸게(5000원) 붙여서 내놓았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느끼는 한편, ‘작가선언 6ㆍ9’를 더욱 힘차고 또렷하고 널리 나누려 하던 마음결이라면 한 쪽에 한 줄씩 넣는 책짜임이 아닌, 백아흔두 줄에 이르는 외침을 더 작은 판으로 더 수수하게 묶고 책값은 아예 1000원쯤 붙일 수 있도록 엮어내어 수만 권을 찍어서 뿌려야 알맞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백아흔두 줄을 열 몇 쪽짜리 더 작은 책자로 꾸며 한 권에 500원씩만 받으면서 수십만 권을 찍어서 뿌려야 한결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뭇소리 없이 입다물고 있는 우리들이 아님을 느끼니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이만한 몸부림이라도 보여주는 글쟁이들이니, 이와 같은 발버둥으로라도 치면서 우리 삶터를 새롭게 바라보고 부둥켜안고자 하니 반갑습니다. (4342.8.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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