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표절하라 - 세상을 바꾸는 18가지 즐거운 상상
트래피즈 컬렉티브 지음, 황성원 옮김 / 이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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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은 ‘구호’가 아닌 ‘삶’이다
 [잠깐 읽기 49] 트래피즈 컬렉티브, 《혁명을 표절하라》



- 책이름 : 혁명을 표절하라
- 글 : 트래피즈 컬렉티브
- 옮긴이 : 황성원
- 펴낸곳 : 이후 (2009.4.9.)
- 책값 : 2만 원


 영어로 나온 책에는 “Do it yourself”라는 이름이 붙은 《혁명을 표절하라》를 읽습니다. 이 책은 모두 열여덟 갈래로 나누어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 삶과 내 삶터와 내 나라를 뜯어고칠(혁명) 수 있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따지고 있습니다.

 한글판 책이름이 “혁명을 표절하라”처럼 세게(?) 나와서 그렇지, 이 책은 반체제 불순분자(?)들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반체제’가 될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 흐름을 그대로 둔다면 왼날개이든 오른날개이든 가리지 않고 쫄딱 무너지면서 죽음바다에 빠질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잘 빠진 자가용을 싱싱 몰면서 거리낌없이 즐긴다 하여도, 이처럼 즐길 수 있는 나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습니까. 태평양 섬나라 별 다섯짜리 호텔에서 멋진(?) 나날을 보내며 신나게 노닥거릴 수 있다 하여도, 이렇게 태평양 섬나라에 호텔을 짓고 비행기가 날게 하고 자가용이 달리게 하는 만큼 우리네 삶터와 자연이 얼마나 허물어지거나 망가지고 있는가요.


.. 우리가 일생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하는 것은 투표용지에 있는 후보자나 정당에 도장을 찍는 일뿐이다 … 불쌍하게도 우리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는 대신 일생 동안 15차례 정도 국회의원 투표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것을 민주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적 원칙들이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지역들이 많이 있다 … 대부분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과 지위, 돈이다 ..  (21, 94쪽)


 지난주에 어느 책읽기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그때 마침 이 책 《혁명을 표절하라》를 다루었습니다. 예닐곱 사람이 모여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좋은가를 나누는데, 다들 갈팡질팡입니다. 좀처럼 이 책 줄거리를 새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정부는 꼭 있어야 하는가?’와 ‘우리한테 군대는 꼭 있어야 하느냐?’ 두 가지 이야기로 제법 오래도록 말이 오갔습니다.


..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날” 혹은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날 이후에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무거운 기대의 짐을 지고 산다. 하지만 현실은 더 느리고 예측불가능하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향하는 길은 곧은 직선이 아니다 … 언론의 미래는 훨씬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요청들이 그 내용을 장악하는 훨씬 더 큰 복합체의 모습을 띠게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두리에서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발행 부수를 적게 하고 주류에 대항하겠다는 자세를 버리면, 대안적인 관점을 가진 집단들이 신문과 전단지, 팸플릿, 자립형 잡지를 발행할 수 있다 … 사람들에게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설득한다면, 이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돈독이 오른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당신 마을 주변에 있는 녹지 공간에 건설허가를 어떻게 받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독자들은 왜 당신이 탐욕과 돈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  (25, 383, 399쪽)


 인도가 평화로운 나라이면서 홀로 우뚝 서는 나라가 되기를 꿈꾼 간디 님은 ‘주먹힘 안 쓰고 굳이 맞서지 않기’를 외치면서 몸소 이와 같이 살았습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문학뿐 아니라 《국가는 폭력이다》와 같은 책을 써낸 톨스토이 님은 ‘군대 때문에 우리 삶이 더 팍팍해진다’고 외치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쪽은 이웃한 나쁜 나라 정부가 아닌, 바로 군대힘을 거머쥔 우리 나라 정부’임을 밝혀냈습니다.

 군수산업이니 군산복합체이니 하는 말도 있습니다만, 군대라는 곳은 총칼이라는 무기만 들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매한가지이지만, 군대를 거느리면서 가장 많이 들이는 돈은 바로 ‘인건비’입니다. 군인한테 주는 일삯과 군인을 먹여살리는 밥값과 군인을 입히고 재우는 옷값과 집값 따위입니다. 총칼을 장만하는 데에도 적잖이 큰 돈을 쓰지만, ‘수십만 군인을 부리는 데’에 더 많은 돈이 쓰입니다. 그리고, 군인이 쓸 물건을 만들고 군인이 잠잘 집을 만들고 군인이 휘두를 총칼을 만들며 군인이 먹을 밥을 빚는 따위 일을 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 품과 땀과 세월이 들어야 합니다.

 이런 데까지 통계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만, 군대를 두는 우리들은 ‘나라를 지키는 일’보다 ‘군대를 지키는 일’에 어마어마한 돈과 품과 땀을 바치면서(어쩌면 나라살림 절반 넘게 바쳐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네 교육과 문화와 복지와 사회와 기술과 의료와 기초생활을 다스리는 데에는 거의 아무런 돈이든 품이든 땀이든 안 바치고 있는 셈입니다.


.. 값싼 석유는 갈수록 희소해지고, 이주가 증가하며, 기후 혼란은 악화되고, 오염이 폭증하고 있다. 생존은 점점 더 격한 투쟁이 될 것이다 … 의약품을 좀더 높은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북반구에서는 시장화할 수 있는 약물들에 대한 연구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 빈곤한 국가에 있는 사람들의 약 50퍼센트는 형편없는 수질과 위생 수준 대문에 발생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지만, 현금이 넉넉한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  (64, 147, 151쪽)


 《혁명을 표절하라》라고 하는 책은 이러한 대목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권력자가 권력자 그대로 세상을 거머쥐면서 뒤흔드는 틀거리는 다치지 않게 하면서, 이 틀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어야 함’은 틀림없이 옳습니다. 세상 어느 혁명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지’ 않는 가운데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혁명이 아닌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이 아닌 보수라 하여도 매한가지입니다. 늘 그대로 고인 물로 머무는 보수는 ‘썩어문드러’집니다. 보수가 참다운 보수가 되려면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뼈를 깎듯 애써야 참다운 보수입니다. 진보도 똑같고 혁명도 똑같습니다. 세상만 뜯어고친다고 해서 혁명이 아닙니다.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목소리라 하여 진보가 아닙니다. 진보이든 혁명이든 개혁이든 보수이든, 또한 수구이든, 언제나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는’ 일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소수의 앞서 나간 사람들이 거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 우리의 감추어진 투쟁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런 투쟁의 역사는 도처에 있기 대문에 쉽게 발굴할 수 있다. 이런 역사들은 냉담함(그건 해 봤자야)과 무기력(그건 너무 막강해)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교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자유와 진보의 대부분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행동하고 집단적으로 투쟁을 통해 성취한 것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  (23, 190쪽)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이웃 삶을 사랑하고, 내 몸을 아끼면서 내 이웃 몸을 아끼며, 내 터전을 돌보면서 내 이웃 터전을 돌봅니다.

 삶을 사랑하는 길은 여러 갈래이고, 몸을 아끼는 매무새는 여러 가지이며, 터전을 돌보는 슬기는 숱하게 많습니다. 《혁명을 표절하라》라고 하는 책은, 우리가 우리 깜냥껏 우리 삶터를 좀더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돌볼 수 있는 길을 ‘미국(이나 유럽) 문화와 사회 틀거리에 알맞게’ 갈무리해서 보여줍니다. 집회를 하든 시위를 하든, 대안언론을 꾸리든 빈집점거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우리 스스로 즐겁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길찾기를 보여줍니다.

 이리하여, 《혁명을 표절하라》라고 하는 책은, 아직 세상흐름을 잘 읽지 못하는 분들이라든지 세상흐름을 어설피 짚고 있는 분들한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길잡이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찌감치 길찾기를 해 오고 있는 가운데 제 깜냥껏 제 길을 걷는 분들한테는 ‘미처 모르거나 자칫 놓치기’도 했던 몇 가지를 고맙게 얻을 수 있는 책이 되리라 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나 스스로 즐거웁자고 하는 이야기를 열여덟 가지로 알맞게 나누면서 한눈에 알아보기 좋도록 꾸려 놓았기에,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실용서’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다만, 실용서입니다. “Do it yourself”이든 “혁명을 표절하라”이든, 이와 같이 내 삶을 꾸려 나가는 밑생각이나 밑슬기를 깨닫거나 얻는 생각깊은 책은 아닙니다. 《즐거운 불편》처럼 온몸 부딪힌 실천을 보여주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처럼 삶에서 우러나온 슬기를 손쉽게 보여주는 책은 아닙니다. 《국가는 폭력이다》처럼 사회 권력자가 감추거나 숨기는 뒷모습을 낱낱히 밝히는 책은 아닙니다.


.. 빈 공간을 점거하고자 하든, 구입하거나 임대하고자 하든 간에 건물을 물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관심 있는 지역의 모든 도로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차를 몰고 다녀 보는 것이다 ..  (355쪽)


 ‘혁명’이 무엇이기에 ‘표절’까지 하면서 배우거나 몸소 해 보아야 하는가를 다루는 책으로 《혁명을 표절하라》를 집어들려고 했다면 479쪽에 이르는 책을 넘기는 내내 거북하거나 짜증스러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Do it yourself”라는 영어책 이름대로 ‘나 스스로 어떻게 바꾸면서 이 삶터를 바꾸고 내 삶도 한결 나아지도록 할까?’라는 갈림길에서 헤매는 분한테는 새롭게 생각을 틔워 주면서 마음문을 열어 주리라 봅니다.


.. 자원이 지금보다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자원 경쟁도 줄어들 것이다 ..  (472쪽)


 책읽기 모임에서 발제를 맡은 분이 쪽글을 하나 써 와서 읽었습니다. 이분이 쓴 쪽글 끄트머리에 “나부터 바꾸지 않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가 아니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이제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적혀 있습니다.

 이 글줄마따나, 곰곰이 따지면 혁명은 나부터 즐겨야 합니다. 혁명은 표절할 수 없습니다. 혁명은 따라할 수 없습니다. 혁명은 배울 수도 없습니다. 그저, 헉명은 내가 ‘살아내’면서 시나브로 이룰 뿐입니다.

 지루했던 책읽기를 마치면서 새삼스레 ‘혁명하는 이야기를 바보처럼 책에서 찾으려 했단 말이야?’ 하고 생각하며 뒷통수를 벅벅 긁습니다. (4342.8.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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