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7 ― 자전거 타기뿐 아니라 살기도 어려운 한국에서
 : 후쿠오카 켄세이, 《즐거운 불편》



- 책이름 : 즐거운 불편
- 글 : 후쿠오카 켄세이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 (2004.4.5.)
- 책값 :


 (1) 한국땅에서 자전거 타는 어려움


 아침에 자전거를 몰고 일터인 도서관으로 나옵니다. 살짝 골목마실을 하고 도서관으로 올까 하다가, 무서운 빠르기로 날아가고 있는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해서, 다른 데에 한눈을 팔지 않고 곧장 도서관으로 옵니다. 가파른 계단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와서 창문을 여니, 이내 바깥에는 빗줄기가 후둑후둑 떨어지고, 곧 굵은 빗방울로 바뀝니다. 자칫 1분만 늦게 왔어도 큰비를 쫄딱 뒤집어쓸 뻔했습니다. 비옷을 따로 챙겨 나오지 않았으니,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지만, 비가 그치지 않으면 우산을 쓰고 자전거는 두고 가야겠습니다.

 동네에서 가게를 여는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들은 으레 자전거를 타고 당신 댁에서 일터로 나오곤 합니다. 헌책방 앞, 문구점 앞, 구멍가게 앞, 쌀집 앞에는 으레 자전거가 서 있습니다. 짐을 나르기도 하는 자전거이지만, 집과 일터를 오가는 자전거이기도 합니다. 요사이는 ‘자출-자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하는 사람이 제법 늘고 있는데, 이런 자출-자퇴가 있기 앞서부터, 동네 가게 일꾼들은 언제나처럼 자전거로 집과 일터를 오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전거 문화가 퍼지고, 한 해가 다르게 번쩍번쩍하는 나라밖 고급 자전거가 나라안에 물밀듯 들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전거집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길거리에서 ‘자전거옷 쪽 빼입고 달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분들 가운데에도 ‘자출-자퇴’가 있겠습니다만, 좀더 많은 분들한테는 ‘레저-취미-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들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에도 더러 이 자전거를 탈 테지만, 집과 일터 사이는 ‘인천과 서울’ 사이일 때가 많고, 이러다 보면 으레 자가용이나 전철로 집과 일터를 오가기 마련이며, 쉬는 날이나 주말에 자전거를 끌고 나오기 일쑤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하고, 자전거에서 내린 다음 생각하고, 두 다리로 골목마실을 하면서 ‘짐자전거’를 만날 때하고 ‘레저-취미 자전거’를 만날 때마다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삶자전거’라 할 만한 생활자전거란 무엇일까 하고. 우리는 어떤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내 삶으로 스미는 자전거’라 할 수 있을까 하고.


.. 사람들이 자동차 타기를 그만두기만 한다면, 일본 국내에서 연간 8천 명이 넘는 교통사고 사망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수많은 부상자들이 상처 입는 일도 없을 것이다 … 차라는 교통수단으로 우리의 생활은 날로 편해지고, 산업은 발전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반드시 희생자가 발생한다. 희생자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제한된 예산을 거기에 투자를 한다면 산업발전이나 안락한 생활을 지탱해 주는 자동차를 위한 사회적 생산기반의 정비가 늦어진다 … (정부와 사회는) 자동차의 장점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 보험료를 지불하고, 그것으로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타협을 도모하자는 방법을 제시했다 … 차의 안전성을 말할 때,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은 항상 차 안에 있는 사람의 안전뿐이었다. 안전벨트도 에어백도 그것을 위한 장치다. 사고를 당한 상대방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5∼6쪽)


 저전거로 먼나들이를 떠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옵니다. 자전거를 자전거집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손수 고치거나 만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책이 나옵니다. 자전거 정책을 다루는 책이 나옵니다. 나라에서는 새 자전거길을 놓는 데에 몇 조에 이르는 돈을 쓰겠다는 공약을 내놓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책’을 들춰보고 몇 가지를 장만합니다. 저 스스로도 자전거책을 씁니다. 다른 분들이 쓴 자전거책을 읽다가는 끝까지 못 읽고 덮곤 합니다. 자전거 정비를 다룬 책을 읽으며 ‘자전거를 처음 살 때 주는 설명서에 담긴 이야기하고 무엇이 다를까?’ 하는 궁금함을 풀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라안 자전거책이 어느 대목에서 서로 닮은지를 어렴풋하게 느낍니다.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자전거잡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한국땅에서 자전거책이라 할 때에는 꼭 두 가지 자전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첫째, 산타는자전거, 영어로 하자면 ‘엠티비’. 둘째로는 길에서 내달리는 자전거, 영어로 하자면 ‘로드바이크’, 이른바 ‘사이클’.

 드문드문, ‘작은자전거’를 ‘미니벨로’라는 이름으로 다룹니다. 그렇지만, 드문드문 다룰 뿐이요, 속깊이 들여다보는 눈길이나 매무새가 되지 못합니다. 어쩌다 들여다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고 아끼도록 이끄는 힘을 보거나 느끼기란 퍽 어렵습니다.


.. 남은 길은 오직 하나다! 선진국 국민들이 에너지와 물자의 소비량을 줄이는 길뿐이다. 지금, 선진국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은 자원과 에너지의 효율화를 추진하여, 낭비를 제거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느 일부에서 낭비를 없애고 절약을 할라치면, 절약된 돈을 유혹하는 새로운 소비가 뒤이어 등장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 계단이 찾기 어려운 외진 곳으로 쫓겨나고, 그 존재조차 눈에 잘 보이도록 표시해 두지 않게 된 배경에는, 계단보다 안락하고 빠른 엘리베이터를 누구나 선호할 것이라는 ‘상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꾸준히 계단을 이용하다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만도 없다 ..  (17, 50쪽)


 툭 까놓고 하는 말이지만, 자전거 문화이든 정책이든 취미이든 삶이든 무엇이든 말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치고, 여느 사람들이 예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타고 있는 자전거(짐자전거와 장바구니자전거)를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나서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제오늘앞날에 이르기까지, 조용히 꾸준히 자전거를 즐겨 온 사람들 매무새는 한 번도 살갗으로 느껴 본 적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게 일꾼이 타고, 아저씨 아주머니가 타는 여느 짐자전거치고, ‘자전거 설명서’가 붙어 있은 적이란 없습니다. 설명서가 붙어 있는 자전거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유사산악자전거’쯤 되어야 합니다. 튜브에 바람을 넣든, 구멍난 튜브를 때우든, 이래저래 손질을 하건, 안장 높이를 맞추건 손잡이를 맞추건, 언제나 ‘값나가는 자전거’한테만 눈길을 맞춥니다.

 우리네 땅에 자전거길을 놓아야 한다면, 취미나 운동을 삼아서 놓을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집하고 일터를 오가거나 집하고 학교를 오가거나 내 집에서 이웃이나 동무네 집을 오가는 길에서 걱정이 없도록 하는 길을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한강 같은 데처럼, 강줄기를 끼고 자전거길을 새로 큰돈 들여 닦아 놓는다면 보기에도 좋고 달릴 때에도 좋고 할 터이나, 정작 자전거 쓰임새 가운데 아주 작은 대목만 누리거나 나눌 뿐입니다. 취미나 운동은 채워 준다지만, 우리가 취미나 운동만 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을 꾸리고 우리 일을 하는 가운데 취미가 있고 운동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늘 살아가는 가운데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자전거 정책이요 문화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있는 가운데 한 번 더 마음을 쏟아 즐거이 운동도 하고 취미로도 삼을 자전거 이야기를 펼쳐야 하지 않을는지요?


.. 소유하는 물질과 정보도 훨씬 많고, 에너지도 먹을 것도 넘칠 정도로 소비하고 있으면서, 30년 전의 어버이들이 아이들에게 주었던 정도의 행복감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눠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아니, 오히려 우리 자녀 세대에게 환경파괴니 식량위기니 자원고갈이니 하는 무거운 짐을 떠넘기려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에너지와 돈을 써 가면서 자가용이나 전철로 이동하고, 운동부족 해소니 체중감량이니 하는 명목으로 냉난방이 잘 갖춰진 스포츠센터에서 또 에너지와 돈을 들여, 바퀴도 없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런닝머신에서 제자리뛰기. 내 자녀와 손자들의 자원을 야금야금 축내고, 그 미래를 짓밟아 가면서 ..  (19, 33쪽)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저는 마땅히 ‘대통령 관용차’를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원이 되든 시장이나 군수가 되든 마찬가지입니다. 모오든 관용차를 없애고 누구나 ‘관용자전거’를 타도록 틀거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행정과 정치를 맡으며 차를 타고 어디를 가야 한다면 택시를 불러야지요. 요새 부름택시가 얼마나 잘 옵니까. 더구나, 관용차 아닌 택시를 쓰면 유지비와 경비는 훨씬 덜 들 뿐더러, 인건비 또한 훨씬 적게 먹습니다. 게다가, 택시는 우리가 가려는 데까지 얼마나 빠르게(?) 모셔다 줍니까. 이러는 가운데, 택시업자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으니, 우리네 일자리 지키기에도 더욱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러면서 관용차를 제멋대로 굴리는 일을 막을 수 있어 공직사회 썩은물 갈기에도 이바지를 합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공무원이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도록 하면서 배불뚝이 공무원은 머잖아 사라질 수 있고, 공무원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집과 일터를 오가는 동안 ‘대한민국 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뼛속 깊이 깨달을 테며, 애먼 돈을 해마다 보도블럭 갈아엎는 데에 쏟아붓지 않고 ‘어디에 그 돈을 써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자전거 타기가 늘 몸에 배었을 테니까, 굳이 비행기 타고 머나먼 나라로만 여행을 다니지 않고, 식구들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라안 곳곳을 찾아다니는 마실을 떠나기도 하며, 이렇게 나라안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허튼 나라사랑’이 아닌 ‘참된 자연사랑’을 조금씩 키울 수 있고, 우리 아이들한테도 땀흘리는 보람과 이웃과 사귀는 기쁨을 가르칠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생각은 아직까지는 덧없는 꿈 같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부질없는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무원뿐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돈을 밝히고 이름에 매이고 힘에 휘둘리고 있으니까요. 내 몸을 나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기보다, 내 입과 손만 께작거리며 살아가려고 하니까요.


.. 우리 식구들이 먹을 채소인 만큼,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 후 처리에 문제가 있는 비닐 등의 화학합성재료도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기 위해, 신문지로 대신 쓰고 있다 … 본가의 어머니께 여쭸더니, 봄에서 가을까니는 무농약으로 양배추를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신다. 시판되고 있는 ‘곱디고운’ 양배추의 대부분은 흙에 뿌려진 약제를 뿌리로부터 흡수하며 자라기 때문에 벌레들이 좀처럼 기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벌레도 먹지 못할 것을 인간이 먹고 있는 셈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편하게 곱디고운 상품을 생산할 수 있으니 분명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먹는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진다. 단가가 낮아지면 대량으로 보급되고, 보급 후에도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소비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로 사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낮은 가격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64, 66, 55∼56쪽)


 그러나, 자전거를 탄다고 좀더 튼튼한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전거를 안 타거나 못 타면서도 얼마든지 생각과 마음을 튼튼하게 일구거나 지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전거를 모르면서도 세상을 똑똑히 깨달으며 ‘아름다운 땀방울’ 값어치를 널리 나누는 분이 많습니다.

 꼭 자전거 한 가지를 들어야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한 사람이 한 아이를 낳고 기를 때와 마찬가지로, 좀더 넓고 깊이 들여다보거나 깨닫거나 부대낄 실마리를 하나 더 열 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 키우기에서도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인데, 아이를 낳지 않고 키워 보지 않는다 해서 아이 사랑을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아이를 돌본 적이 없다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 어우러짐을 잘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 이음고리가 없다뿐입니다. 그리고, 아이 키우기를 하면서 한 가지 이음고리를 더 뼛속 깊이 깨닫습니다. 갓난쟁이부터 큰 아이가 될 때까지 한팔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팔로는 장바구니를 들면서 한두 시간을 땀 뻘뻘 흘리며 저잣거리 마실을 하고 돌아와서 식구들 밥상을 차려 본 사람과, 이런 일을 치러 보지 않은 사람 삶과 생각은 같을 수 없습니다. 헬스클럽에서 역기를 들며 한두 시간 운동할 때하고, 아기를 안고 한두 시간 거닐며 어르고 재우는 삶은 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두 다리로 걸을 때하고 자전거로 달릴 때하고 자가용으로 지나칠 때는 사뭇 다른데, 두 다리로 걷던 길을 자전거로도 오가면 더욱 깊이 이 길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안는다고 할까요. 아기한테 젖을 물려 본 삶을 치러내고서 ‘엄마젖 먹이기’를 말하는 삶하고, 아이 키울 마음은 따로 없으나 ‘엄마젖 먹이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삶하고 다른 셈이라고 할까요. 목소리는 같아도 목소리에 담는 삶이 다릅니다. 목소리는 똑같이 들릴지 몰라도 목소리에 담는 느낌이 다릅니다.


.. 원래 불황이란 물건이 팔리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되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 않게 되었을까? 그것은 살 필요가 없고, 사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살 필요가 없고, 사고 싶은 것이 없을까? 그것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물질이 팔리지 않으면 당연히 만들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만들 필요가 없으면, 또 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결론이 된다 …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돈은 이제 그다지 필요없다는 것이다. 돈이 그다지 필요치 않게 되었다면, 억척같이 일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늘어난 자유시간을 그런 공생을 위한 활동으로 돌린다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더불어 인간관계의 폭도 넓힐 수 있고, 삶의 보람도 찾을 수 있다 ..  (125∼128쪽)


 사람들이 자전거를 제대로 안 타 버릇하기 때문에, 자전거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렵고 자전거 정책이 올바르게 나오기 어렵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와 문화와 역사와 경제를 올바로 읽지 않기 때문에, 자꾸자꾸 옳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꾼으로 나설 뿐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까지 뽑히고 시장이나 군수를 여러 차례 지내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도, 내 삶으로 곰삭이는 자전거가 아닌 취미나 멋이나 명품이나 뽀대나 레저나 지름신이나 매니아나 유행이나 소비이기 때문에, 자전거 문화가 튼튼히 뿌리내리기 힘들고 자전거 정책이 슬기롭게 나오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헤아리려고 애쓰면서 책을 찾아 읽는다든지, 우리 이웃을 굽어살피고자 마음문을 연다든지 하지 않으니까 자꾸자꾸 범죄가 늘고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말씨가 거칠어지며 갖가지 아프고 슬픈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머리단속과 교복통제를 떨쳐내지 못하지만, 어른들 또한 아이들이 더 높은 대학교에 동무를 짓누르고 들어가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교육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이런 얼거리를 모르는 어른은 드무리라 봅니다.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 아슬아슬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길에 나와야 합니다. 자전거 문화이든 정책이든 제대로 나오고 뻗어가려면 우리 스스로 내 자전거와 이웃 자전거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셈틀 앞에 앉아 인터넷바다를 휘저으며 지름신을 꿈꾸는 가운데 자전거 문화란 싹이 트지 못합니다. 값비싼 자전거이든 값싼 자전거이든 언제나 스스로 즐겁게 타고다니는 버릇을 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엉터리 자전거 정책만 쏟아지면서 나라돈을 엉뚱한 데에 쏟아붓고야 맙니다.


 (2)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려움


 며칠 앞서 어느 혼인잔치에 다녀왔습니다. 여느 혼인잔치와 거의 똑같이 이루어졌으나, 신랑과 신부가 혼인서약을 할 때에 조금 다르던데, 저마다 맞은편 앞에서 ‘내 다짐’을 읽는데, 신부 되는 분께서 “신랑 내조를 잘하겠으며……”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읽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스물너덧밖에 안 되었을 신부는 ‘남편 내조 잘하는 아내’가 꿈이라고 하더군요.


.. “지금 현대인의 생활상을 보면, 그런 생생한 삶의 근원과 관련된 작업을 모두 가정 밖으로 몰아내서, 눈에 보이지 않게 하고 있잖아요? 출산도 사람이 죽는 것도 병원에서 하고, 고기도 생물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얻어진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포장돼서 진열냉장고에 깨끗하게 장식되죠. 그것을 들고 계산대에 가서 돈만 내면 내 것이 되니.” … “지금은 교육비가 많이 들어간다며,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우리 아이들은 실제 돈보다는 부모님의 시간과 정성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149, 150쪽)


 남편을 잘 모시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아내를 잘 섬기는 일 또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더 알뜰히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앞에서는 받드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깎아내리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신부 되는 젊은 아가씨 다짐을 들으면서 더없이 거북했습니다. 당신 스스로 그렇게 밝히지 않아도, 2000년대 한국 삶터에서는 옛날하고 크게 다르지 않도록 ‘남편 모시기’를 해야 할 텐데, 굳이 스스로 더 굽히고 들어갈 까닭이 있느냐 싶고, 젊은 아가씨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젊은 아가씨한테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쏭달쏭했습니다.

 그나마 저는 한국땅에서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땅 여자와 견주어 ‘먹고들어가는 뭔가’가 있습니다. 덧붙여, 저한테는 형이 있으니, 첫아들이 아닌 데에서 ‘홀가분한 뭔가’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오늘과 같이 저 하고픈 일을 제 꿈대로 하나하나 이루어 가면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첫째였다면 이제와 같이 저 가고픈 길을 제 깜냥껏 우격다짐으로 걸어올 수 없습니다.


.. “폐기물처리장이나 댐은 대개 시골에 만들어집니다만, 지금까지는 시골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도시사람들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둔 점도 있지 않았습니까?” … “지금의 아이들은 환경문제 등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들만 들으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밝은 꿈을 갖기가 어려워졌어요.” … “결국 모든 것이, 생명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큰 기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4, 206, 311쪽)


 옆지기는 가끔 저한테 “형한테 고마워 해야 해요”나 “형한테 미안해 해야 해요”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이 아니더라도 형한테 늘 고마우면서 미안합니다. 그런 한편으로, 제가 형이었다면, 또는 제가 맏이이면서 여자였다면, 또는 둘째이면서 여자였다면 어떠했을까를 곱씹어 보는데, 저는 제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어도 오늘과 같은 길을 걸었다고 느낍니다. 그저, 이 길을 걷는 동안 부딪힌 울타리가 달랐을 테고, 달랐던 울타리만큼 제 마음밭도 다르게 일구었을 테고, 다르게 일군 마음밭만큼 더 일찍 거듭났거나 더 늦게 거듭났을 테지요. 아직도 어리숙한 자리에서 헤맬는지 모르고, 일찌감치 훌륭히 거듭나면서 더 바지런히 제 삶을 붙잡고 있는지 모릅니다.

 맏이이자 남자였다면, 집안일 짐이 어마어마했을 터이나, 이 어마어마한 짐 때문에 또다른 눈길로 또다른 삶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맏이이자 여자였다면, 내 앞길을 헤쳐나가는 데에 나 스스로 더 많이 애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테니 더 다부지고 단단해졌을 테지요. 둘째이자 여자였다면,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설렁설렁 살았을는지, 저도 며칠 앞서 혼인잔치 자리에서 본 젊은 아가씨처럼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지아비 섬기는 한 사람’으로 머물자고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외려 더 홀가분하게 저 가고픈 길을 마음껏 갔을는지도 모릅니다.


.. “시간에 쫓기다 보면,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해 보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죠.” … “모두 너무 바쁘니까 좀처럼 그렇게 해 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잘 모르겠지만.” … “세상은 어쨌든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편리해졌다고 행복한가 하면, 반대로 아주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이들이 놓여 있는 상황은, 그대로 어른의 상황과 똑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어른도 지금보다 장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노후를 위해서라거나 좀더 유명해진다거나 하는 잡음이 끼어들죠. 지금을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준비해라, 오늘은 내일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라 하고. 내일이 되면, 또 다른 내일을 위해 희생하라고. 그러니 아무리 내일이 오고 또 와도 생명을 구가할 수 없게 되는 거죠.” ..  (215, 225, 230, 236쪽)


 지난 2008년 8월 16일에 딸아이를 낳으면서, 저는 속으로 제발 제발 딸아이가 나와야 한다고 빌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땅에서 아들아이로 태어나면 어김없이 군대에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설렁설렁 노닥거리는 군부대도 틀림없이 있으나 우리 아이가 그런 데에 갈는지 알 길이 없는 한편, 노닥거리는 군부대에 간다 해서 아이 삶자리가 걱정이 없거나 나아지리라 여길 수 없습니다. 착하고 풋풋한 열아홉스물짜리 젊은 한 사람을 살인병기로 만들면서 바보가 되도록 굴리는데다가 주먹다짐을 몸에 배도록 하는 군대라는 곳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둘레에서 만나는 어린 후배한테마다 ‘웬만하면 군대에 안 가는 길을 잘 찾길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군대에서 썩는 젊음은 돌이킬 수 없음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군대라는 곳에서 스물여섯 달을 썩어 보았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삶터가 얼마나 살기 팍팍한가를 새삼 깨닫고 보고 삭였습니다. 베트남전쟁 때에도 고엽제를 써서 많은 분들이 뒤탈을 앓고 있는데, 제가 있던 군부대에서도 비무장지대 철조망을 가리는 푸나무를 베어내거나 뽑아낸다면서 고엽제를 뿌렸습니다. 고엽제를 ‘당까(‘들것’이 바른 말인데,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에 두어 포대씩 얹어 신나게 날랐고, 포대를 그냥 북 뜯어 하이바로 퍼서 뿌렸습니다.

 간첩이 아닌 ‘귀순’을 한다던 북녘 병사를 옆 중대 아이들이 잘못해서 쏘아죽였던 일이 있고, 이웃 소초 말년병장이 지뢰를 밟아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밤새 근무를 서면서 지뢰 터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일이 있으며, 온도계로 영하 47도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며 이를 덜덜 떨었던 일이 있고, 우리가 사격을 엉터리로 한다고 마구 총질을 해대며 ‘다 죽어 버려!’ 하고 외치던 중대장이 있었습니다. 이 중대장 방을 청소하다가 침상 밑에 빨간 잡지 두 권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 녀석도 사람이긴 사람이네. 군대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나 보군’ 하고 생각했고, 고참병들이 쉴새없이 주먹질을 해대며 울먹여야 할 날이면 주먹을 불끈 쥐면서 ‘군대에서 죽을 수 없어. 나한테도 전역날이 있을 테니까 기다려라, 밖에 나가서 보자 xxx들’ 하고 다짐하는 한편 ‘나는 너희처럼 고참병이 되어도 이 따위 주먹질 발길질은 안 할 테다’ 하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군대였지만, 영하 22도를 오르내리던 혹한기훈련 때 ‘우리 주둔지보다 따뜻하잖아?’ 하고 생각하며 국을 뜨다가 그만 숟가락이 입천장에 붙는 바람에 뜨거운 물을 입에 얼른 부어 떼어내던 일을 겪으며, 추위란 이렇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배고픈 행군을 열 몇 시간 끝없이 하면서 눈을 퍼먹는 동안 그 옛날 한국전쟁 때 피난 가던 사람들도 이렇게 눈을 퍼먹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고슴도치를 두 눈으로 보며 살며시 품에 안아 보던 기쁨은 전역한 지 열 몇 해가 되었어도 어제일처럼 떠오릅니다. 산에서 우쑥우쑥 자라는 돌배와 개복숭아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이때 처음 알았고, 내 뺨으로 두 번을 재야 할 만큼 날개가 큼직한 사향제비나비 무리를 보았을 때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맨눈으로 금강산을 바라보고 스탈린고지와 김일성고지를 바라볼 때에는 그저 하염없이 좋았습니다. 남과 북은 고작 저 쇠가시울타리로 가를 수 없다고, 저쪽에서도 맨눈으로 남녘땅을 바라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통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되뇌었습니다.

 누구나 치러내기 나름이니, 잘 치러내면 군대라는 곳은 좋은 배움터가 됩니다. 누구나 치러내기 나름이라서, 군대에 가지 않고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하여도 어영부영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꼭 젊은 넋한테 살인병기 되는 솜씨를 가르쳐야만 할까요. 젊은 넋이 더 젊고 싱싱하고 푸르게 거듭나는 길을 보여주거나 이끌 수 없을까요.


.. “지금까지는 소비를 위해 일한다는 면이 강했죠. 즉 소비를 위한 노동이었던 셈입니다 … 필요없으니까 사지 않는 것인데, 필요없는 것을 만든다는 건 곧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 “왜 자전거도로는 그대론데, 고속도로만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 역시 정치가 자동차 회사나 물류기업, 즉 기업 생산자들 편만 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  (251, 276쪽)


 아들아이 아닌 딸아이를 낳아 군대 시름은 살짝 놓았지만, 더 깊이 헤아리면 우리 아이가 군대를 안 간달지라도 우리 아이가 나중에 만날 남정네는 하나같이 군대를 갔다 와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군대에서 살인병기 되는 훈련을 안 받는달지라도 우리 아이하고 사귀거나 함께 살아갈지 모를 남정네는 군대에서 살인병기 되는 훈련을 받으며 사람을 깔보거나 얕보는 마음이 어느새 깃들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앞날까지 근심하기 앞서, 바로 오늘 우리 아이를 가르치도록 할 학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더 큰 근심입니다. 교육부장관이 누가 되고 교육감을 누구로 뽑느냐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교육 정책이 달라지는데, 교과서는 아이한테 삶을 밝히는 빛줄기가 아닌 시험성적으로만 다가가도록 짜여 있는데, 교사들은 큰어른이나 스승이기보다는 월급쟁이에 훨씬 가까운데, 도시락을 안 싸도 되고 급식을 내어준다지만 급식 밥차림이 생채식이거나 생협 물품일 수는 없는데, 학교 건물은 어디나 감옥소와 똑같이 지어져 있고 모든 아이 생각과 몸을 한 가지로 틀에 박히도록 짜맞추고 있는데, …….


 (3) 《즐거운 불편》을 읽는 어려움


 이야기책 《즐거운 불편》을 읽습니다. 2005년에 한 번 읽었고 2008년과 2009년 이태에 걸쳐 거듭 읽습니다. 《즐거운 불편》을 쓴 후쿠오카 켄세이 님은 일본 〈마이니치신문〉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몸도 ‘즐거운 불편’을 겪은 열두 달 이야기에다가, 일본에서 ‘맑고 밝은 앞날을 생각하며 뜻있게 사는’ 열두 사람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로 묶습니다. 그러니까, 글쓴이 스스로 꼭 이태에 걸쳐 쓴 책이라는 소리입니다. 이에 따라 읽는이까지 글쓴이 흐름에 맞출 까닭은 없지만, 《즐거운 불편》 같은 책은 꼭 이태에 걸쳐서 한 달에 한 꼭지씩 읽어낸다면 한결 새삼스럽지 않겠느냐는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즐거운 불편》은 ‘읽기책’이 아니거든요. ‘하기책’입니다. 이론이 아닌 실천을 밝히는 책이요, 지식으로 생각하라는 책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면서 세상과 내 삶을 바꾸자는 책입니다.


.. 자전거 통근으로 쉽게 배가 고파지고, 배가 고프면 아무리 찬밥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외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지참한다’는 불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도시락을 싸는 시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도시락을 아내와 함께 준비하다 보면, 부부 간의 대화 시간도 늘어나니 그 또한 즐겁지 않은가! … 여기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즐긴다’는 것이다. 머리를 불끈 동여매고 결연히 뭔가에 도전하는 식의 금욕적 방법으로는, 한때 공산주의 국가가 만들어 냈던 모범시민처럼, 소소의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만의 행동을 유발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  (31, 38쪽)


 1인출판사 ‘달팽이’에서 펴낸 《즐거운 불편》은 이 조그마한 출판사를 대표하는 책입니다. 첫발부터 1인출판 길을 걸었고, 첫발부터 오늘날까지 생태환경책을 중심으로 바른 사회눈과 종교눈을 틔워 줄 이야기책을 펴내 오는 이곳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즐거운 불편’이니까요.


.. 그처럼 날씨나 기후의 변화를 몸으로 직접 느끼기는, 참으로 자극적이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거기에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하나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강변을 따라 달리고 있을 때, 한 마리 갈매기가 내 자전거 바로 옆을 나란히 날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 이 작은 논에 두둑을 치는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기계화가 되기 전의 농촌 노인들의 허리가, 그렇게 ‘ㄱ’자로 굽어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우리가 감상에 젖어 바라보는 농촌의 황금들판이, 허리가 ‘ㄱ’ 자로 굽어질 정도의 중노동을 묵묵히 해내는 농부님들 공덕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 ‘지키라’고 입으로 말하기야 쉽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노동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춥다. 산다는 것은, 이 정도로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현대인이 지금처럼 불손해진 것은, 아마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32, 77, 138쪽)


 어린이들 또는 갓난쟁이들 앞에서 담배를 태우지 않는 매무새도 ‘즐거운 불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불편이지만 즐거운 불편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 또는 갓난쟁이들 앞에서 담배를 태우지 않는 매무새라 한다면, ‘아이 밴 엄마’ 앞에서도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겠지요. 나아가, ‘아이 키우는 아빠’가 가까이 있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애 아빠는 집에 가서 아이를 품에 안을 텐데 애 아빠 옷이나 몸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으면 어떡합니까.

 즐거운 불편이란 생각이 생각 꼬리를 잡고 이어집니다. 이런저런 생각 꼬리를 잡고 이어지다 보면, 나 스스로 담배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여도 ‘길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내가 담배를 좋아해서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아이이든 아이 엄마든 아빠이든 또 아이와 얽힌 사람 누구한테라’도 담배 냄새를 퍼뜨리거든요. 담배를 안 피우거나 담배 냄새 때문에 골치를 썩는 사람한테도 잘못하는 노릇입니다.


.. 엄마에게 배워 가면서 찢어진 의자를 바느질하는 큰딸. 누덕누덕 기운 만큼 정성이 가득 담겼다 … 운전을 즐기는 마음이 없다면 안전운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즐기는 마음이 아닐까? … 농촌생활은 결코 안락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광활한 자연을 상대하는 만큼, 몸과 머리와 마음을 움직일 기회가 듬뿍 있다.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고는 본질적인 것으로 향하게 된다 ..  (95, 162, 260쪽)


 담배 한 가지를 들었지만, 담배 한 가지만을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삶터 모든 곳에서 똑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즐긴다고 하는 온갖 ‘일과 놀이’가 얼마나 내 삶을 북돋우거나 채워 주는 일과 놀이인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가운데, 내 둘레로는 어떻게 퍼져 나가는가를 톺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ㅈㅈㄷ이라는 신문을 좋아해서 나 스스로 이 신문을 받아본다고 한다면, 이 신문을 보는 나는 나대로 좋을는지 모르나, 내 이웃은 어떻게 될는지, 그리고 내 이웃한테는 어떤 삶결이 펼쳐지게 될는지를 곱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자봉지 하나를 길바닥에 그냥 버리면 나쁜 일이라고 아이들한테 말할 노릇이 아니라, 이렇게 버려지는 과자봉지가 어떻게 흐르고 흐르는지, 또 이 과자봉지는 어떻게 누가 만들었고, 버려진 과자봉지는 길바닥에서 어떻게 뒹굴게 되는지를 살피면서 쓰레기 문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돈 한 푼을 쓰면서도, 이 돈이 누구 손을 거쳐 어떻게 쓰이는지를 좇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즐거운 불편’이라는 명목으로 자전거 통근을 사람들에게 권장하던 당사자가, 2년 간의 자전거 통근 끝에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불편은 결국,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기만 하다는 걸 증명한 셈이 되고 말았다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책까지 낸다는 것은, 진정한 ‘즐거운 불편’에게 죄를 더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나를 격려해 준 사람은 아내였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면서 말했다.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전거를 타고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위험한 것을 타도록 면허증을 내준 나라가 잘못한 거지! 당신이 주장하고 실천해 왔던 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  (363쪽)


 어찌 보면 딱딱하고 따분하다 여길 수 있을 텐데, 《즐거운 불편》은 일부러 ‘어렵게 살자’고 말하는 책이 아닌 ‘즐겁게 살자’고 말하는 책입니다. 불편한 몇 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우리 삶이 한결 즐거워진다고 몸소 치러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불편한 몇 가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삶이야말로 더없이 즐겁지 못하며 아름답지 못하고 반갑지 못함을 글쓴이 스스로 겪어낸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글쓴이 옆지기 말마따나 “당신이 주장하고 실천해 왔던 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위험한 것을 타도록 면허증을 내준 나라가 잘못한 거지!”입니다.

 책 맨끝에 실린 글쓴이 마지막말을 거듭거듭 읽으며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습니다. 저 또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숱하게 뺑소니 사고를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고, 이렇게 가까스로 살아난 저를 보고 제 둘레 좋은 벗님과 옆지기는 언제나 “당신이 잘못하지 않았어요!” 하고 북돋워 주었거든요. 좋은 벗님과 옆지기는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자동차 모는 사람들이 당신을 죽도록 치어 놓고 꽁무니를 빼도록 가르치고 이끈 우리 사회와 교육과 정치가 잘못이지!” (4342.7.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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