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들 봉기하다 : 영화 감독 김기영 - 오마주아 총서 003
이효인 지음 / 하늘아래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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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라안에 ‘드문’ 영화감독과 영화책이긴 한데
 [잠깐 읽기 41] 이효인,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


- 책이름 :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
- 글 : 이효인
- 펴낸곳 : 하늘아래 (2002.10.1.)
- 책값 : 1만 원


 (1) 영화와 삶


 아기와 함께 살기 앞서도 극장마실은 거의 못했다고 떠오릅니다. 딱히 극장까지 찾아가서 볼 만한 영화가 있었는가 싶기도 했고, 먹고살기에 바빠서가 아니라 동네 문화 지키는 일에 힘을 쏟느라 극장마실은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독립다큐영화인 〈어느 날 그 길에서〉(황윤 감독)를 마지막으로 극장마실은 해 보지 못했지 싶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저 사람들은 극장 한 번 안 가느냐?’ 할 텐데, 우리 사는 동네에 극장은 꼭 하나만 살아남은 가운데 이곳에 걸리는 영화는 온통 ‘흥행’과 ‘값싼 시간 죽이기’ 느낌이 짙기 때문에 굳이 극장마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뭉클뭉클 움직이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를 꾸준히 내거는 극장이 가까이 있었다면 열 일을 젖히지는 못했을 터라도 한두 일은 젖히고 극장마실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김기영)는 스스로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예술적 성취를 이룬 행복한 감독이었고, 영화 시장에서도 결코 운 나쁜 감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전무후무한 독창성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길을 한국 영화사에 열어 놓았다 … 그는 ‘한국 영화다운’ 감독이었지만,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한국 영화를 벗어던진 감독이기도 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1960년대 한국 영화계는, 얼치기 장사치들이 도박하는 심정으로, 또 여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재미로 돈 보따리를 싸들고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영화 기자재나 시설에 투자하는 제작자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일확척금을 노리는 투기꾼들로, “예술 같은 소리하네” 하며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대중의 속류 취미에 영합하는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  (12∼13, 35쪽)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기 때문이라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아기를 함께 보고 있기에 함께 극장마실을 못한다 할지라도, 한 사람씩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올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하자면 몹시 힘이 들기는 들지만, 극장마실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극장에 아기를 데리고 찾아가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시설을 바라기란 꿈 같은 노릇이라 할는지 모르는데, 이 나라에 애 키우는 어버이가 한둘이 아님을 헤아린다면, 이렇게 바랄 수 있어야 하고, 또 바라야 하며, 또한 시설을 갖추어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여, 바퀴걸상을 타고도 극장을 드나들 수 있게끔 시설을 갖추어야 할 테고, 나무다리 짚고도 어려움 없이 극장을 찾아갈 수 있게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철역에만 ‘장애인 화장실 자리’를 마련할 일이 아니라, 극장에도 마련해야 하고 큰 건물뿐 아니라 작은 건물에도 바퀴걸상을 끌고 들어갈 만한 뒷간을 마련해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영화란 ‘있는’ 사람만 즐기는 문화나 예술이 아닐 테니까요. 책이란 ‘있는’ 사람만 즐기는 문화나 예술이 아닌 한편, ‘배운’ 사람만 누리거나 맛보는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누구나 누리거나 맛볼 문화나 예술이며, 언제 어디서라도 함께할 만한 문화나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좀더 나아간다면, 팔다리가 없는 사람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터전이 닦여 있어야 할 테며, 영화찍기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드나들 대학교 문턱이 활짝 열려야 합니다. 스크린쿼터제를 말하기 앞서, 우리가 영화를 영화답게 즐기면서 받아들일 터전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시골이나 도시 변두리에도 극장 하나 들어서기를 바라기 앞서, 영화를 우리 삶으로 느낄 만한 터전이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 그런 와중에 김기영이 〈이어도〉를 생각해 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주류였던 속류 리얼리즘 영화의 외풍 속에서 한국의 무속적 주술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을 참담할 정도로 끝까지 밀고 간 것이다. 또 곁들인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는 그때 이미 생태계 문제까지 거론했다. 김기영이 ‘김기영’일 수 있는 것은 (당대의 역사적 문맥을 벗어난) 완벽성보다는 (당대의 미학적 문맥을 향하여) 먼저 미끄러지면서 속류 리얼리즘이라는 억압적 주류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  (81쪽)


 영화만이 아닙니다. 또, 책만이 아닙니다. 춤과 노래도 매한가지입니다. 연극과 공연도 한동아리입니다. 모든 문화와 온갖 예술은 우리 삶에 밑바탕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자락을 함께 이루는 이웃들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동네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이면서 너른 공연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즐길 수 있는 책 하나이면서, 먼 뒷날 우리 뒷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책 하나여야 합니다. 우리 겨레가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춤과 노래이면서, 이웃 겨레가 손잡고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춤과 노래여야 합니다. 돈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이나 공연이 아니라, 돈이 없이도 넉넉히 즐기고 돈이 있으면 있는 만큼 푸지게 잔치판을 벌이는 연극과 공연이어야 합니다.

 계급이 아니니까요. 신분이 아니니까요. 내려다보기가 아니니까요. 올려다보기 또한 아니니까요.

 하늘나라에서 베풀어 주는 선물이 아닌, 바로 이 땅에서 우리 손으로 일구어 영글도록 하는 문화로서 영화입니다. 바깥나라에서 보내어 주는 선물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땀흘리며 이루고 맺도록 하는 예술로서 영화입니다.


.. 산만하게, 마치 모래를 흩뿌리는 것처럼 김기영은 ‘…다’로 끝나는 각양각색의 삼류 잠언들을 영화 곳곳에 심어 놓는다. 그에게는 사랑도 없고, 믿음도 없으며, 오로지 관객들을 ‘놀래킬 영화’만이 중요했는지 모른다 … 단순히 ‘비참한 현실을 봉합’만 한 것이 아니라, ‘하녀들’을 실컷 욕보이다가 우리들의 세상을 ‘욕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기영의 ‘하녀들’은 세상에 ‘능욕 당하면서도’ 세상을, 아니 우리들을 ‘능욕한’ 것이었다 ..  (95, 126쪽)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터를 우리 손으로 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만남터를 우리 손으로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쉼터를 우리 손으로 짓뭉개고 있습니다. 우리 살림터를 우리 땀방울로 허물고 있어요.

 여럿이 어울릴 너른 터를 버리고 자가용 세워 놓는 터로 바꾸어 놓습니다. 옹기종기 어울리면서 살아갈 마을을 없애고 높다란 아파트로 부동산 노릇을 하도록 고쳐 놓습니다. 조그마한 골목길까지 자가용으로 밀고들어오며, 학교 운동장을 줄이고 교사들 자가용 세울 자리를 마련해 놓습니다. 운동기구나 놀이시설이 변변하게 없었어도 너른 운동장에서 갖가지 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은 하나둘 사라졌는데, 노는 아이들만 사라지지 않고 ‘서로 어울려 노는 어른들’ 또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으레 ‘골목길에 아이가 사라지고 시골에 아이가 사라진다’고만 말하지만, 아이들이 사라지기 앞서 ‘어른이 먼저 사라’졌습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이름값과 더 많은 권력을 바라보면서 시멘트와 쇠붙이로 이루어진 사무실에 틀어박혀 버렸고, 이웃이 사촌이 되고 옆집 사람과 서로 동무를 맺던 흐름을 깨 버렸습니다. 깨어진 틈바구니에서 아이들이 끼어들 자리란 없었고, 아이들은 놀이터도 운동장도 골목길도 고샅길도 빼앗긴 가운데 방구석으로 움츠러들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내어주는 옷이며 밥이며 집이며 교육제도며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할지라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는 사랑이며 믿음이며 따스함이며 넉넉함이며 송두리째 스러져 버렸어요.

 이리하여, 오늘날은 책은 책대로 넘치지만, 껍데기 책이 훨씬 많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은 지난날처럼 온갖 가위질에 쩔쩔매는 영화가 거의 없다지만, 알맹이 영화는 외려 나오기 힘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삶이 망가진 자리에는 책 또한 망가지니까요. 삶이 망가진 자리에서 영화 또한 망가지고 마니까요.


 (2)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라는 이야기책


 영화이야기를 즐겨쓰는 이효인 님이 2002년에 펴낸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를 읽습니다. 벌써 일곱 해나 흘렀고, 이 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김기영 님은 저승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화뿐 아니라 모든 문화와 예술이 뒤처져 있는데다가 제대로 자료를 간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노릇이지만 김기영이라고 하는 영화감독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갈무리하기로는 이효인 님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고, 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낱권책 하나로 영화감독 한 사람을 다루는 일로는.


.. 그는 이런 자신의 가족들의 관계와 이력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인텔리 집안 출신이며 예술적 재능을 지닌 혈족의 일원이라는 점이 김기영 자신에게는 평생 동안 남들과 구분 짓는 선민 의식의 뿌리였다. 그의 영화가 거의 언제나 대중들의 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가끔 ‘너희들은 몰랐지?’라는 발언을 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 김수용과 유현목 (감독)은 대체로 예술 엘리트주의의 입장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서민의 고통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엘리트들의 연민으로 보이거나 그 묘사 방식에서도 엘리트적이다. 신상옥은 대중의 고통 따위는 영화적 소재에 불과할 뿐 진정한 문제제기나 해결책의 모색과는 전혀 거리가 먼, 보다 더 고압적인 엘리트의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이만희는 비교적 김기영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만희는 통속적이기는 하되 통속  그 자체에 묻혀 버린 영화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 김기영 역시 통속적인 흥행성을 대단히 추구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감성은 대단히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영화의 매혹에 대해 아마도 성 묘사가 노골적이며 많았기 때문이며,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손님이 안 드니까 장르로 관객과 씨름한 데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  (23, 44쪽)


 저는 김기영 님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김ㆍ기ㆍ영’이라는 이름 석 자 또한 낯섭니다. 영화를 잘 몰라서도 그러할 테지만,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던 고등학생 때까지(1993년까지) 텔레비전에서 ‘김기영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잠깐 스쳐 보았을는지 모릅니다. 보고도 모를 수 있고, 보고도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널리 이름난 몇몇 영화감독이 아니고서는 여느 사람한테까지 두루 알려지지 못할 테니 어쩔 수 없다 말하고 넘어가도 되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과 ‘개성’이란 좀처럼 스며들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양성이든 개성이든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삶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권력이, 제도권교육이, 월급쟁이 회사원 얼거리가,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 얼거리를 넘어 바로 우리들 삶부터.


.. 특히 박정희 군사 정권의 집권 연장을 위한 강압적 통치는 한국 영화를 말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선 박 정권은 비현실적인 영화사 등록제를 시행하여 일정한 시설과 장비 그리고 인력을 갖추지 않은 영화사는 영화 제작조차 못하게 했다 … 이런 행정적인 규제보다 더 불리한 조건은 박 정권의 정치적 검열이었다. 가혹한 검열에 의해 많은 영화들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거나 미미한 신체 노출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 빌미가 되어 ‘반공’과 ‘도덕’이라는 잣대로 가위질을 당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 어두운 면이란, 가난한 동네가 배경이 된다던가, 길거리에 연탄재가 나와 있다거나, 방안에 요강이 있다거나 하는 따위의, 실제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들이었다 … 당시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정부 기관의 검열을 거친 뒤 허가가 나야만 제작에 착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뒤에도 제작자는 제작자대로 검열을 했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촬영장, 편집실, 시사실 등 모든 과정은 검열의 과정이었다 … 결과적으로 한국의 명망 있는 감독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밖에 없었다. ‘반공 영화’, ‘새마을 영화’, ‘이순신 장군 영화’같이 국책에 부응하는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그 하나였고, 무색무취하되 말초적인 흥행 감각만을 좇아 만드는 방법이 두 번째 방법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외화 수입 쿼터를 따낼 수 있는 ‘우수 영화’ 선정을 노리는 방법이 세 번째 방법이었다 … 그(김기영)는 영화 인생을 유지하고 빚을 갚기 위해 사십대와 오십대를 보냈고, 억압적인 정치 환경과 이율배반적인 검열을 빠져나가기 위해 뒤틀린 표현을 하느라 오십대와 육십대를 흘려보냈다 ..  (47∼49, 67쪽)


 영화감독 김기영 님은 ‘빚 갚기’와 ‘뒤틀린 골짜기에서 허덕이기’를 하면서, 당신 영화문화와 영화예술을 빛내도록 할 나날을 허투루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이제 와 돌이켜볼 때에 ‘김기영한테는 김기영 빛깔이 있다’는 영화를 빚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영화며 책이며 연극이며 춤이며 온갖 문화와 예술을 짓밟는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면, 김기영 영화는 어떠한 쪽으로 흘렀을까요. 그때에는 한결 아름답고 훌륭하며 거룩한 길을 걸었을까요. 그때에도 오늘 우리한테 남겨진 영화와 마찬가지인 길을 걸었을까요. 그때에는 영화에는 아예 눈길 한 번 안 보내고 의사라는 길을 걸었을까요. 그때에는 더더욱 상업주의 영화로 깊이 파고들었을까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영화를 찍는 분들은 어떤 매무새로 영화를 만나고 있는가요. 오늘날 영화 감독들께서도 ‘빚 갚기’에 허덕이고 있으신가요. ‘뒤틀린 골짜기에서 허덕이기’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으신가요. 애써 만들었어도 걸어 놓을 극장을 얻지 못해 고달프신가요. 돈이 되는 영화를 빚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으신가요. 돈에 앞서 사람마음을 건드릴 영화에 온 넋과 얼을 바치고 있으신가요.


.. 그는 모든 허례나 허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왜 영화 속에 비정상적인 체위가 나오느냐?”고 묻자 그는 “난 변태니까”라는 말로 그냥 받아넘길 정도였다. 그에게는 실질, 실속, 실익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영화에는 상업적 코드가 대단히 많이 들어 있다. 그가 “어린이 같은 사람”이라는 견해를 수용한다면, 김기영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예술 영화를 추구하는 감독으로 인식되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는 예술가다 ..  (152쪽)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를 덮습니다. 나라안에 드문 영화감독 김기영이었던 만큼, 이 책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 또한 나라안에 드문 ‘영화를 말하는 책’입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영화 이야기를 다루어 주었고, 여느 사람은 건드리기 힘든 영화 자료를 곳곳에 잘 자리잡아 놓으면서 ‘글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즐겁게’ 넘겨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펼치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무언가 자꾸 까끌까끌하게 입안에 남습니다. 애써 책 하나로 ‘나라안에 드물었던’ 영화감독 한 사람 삶과 생각을 다루려 했는데, 이렇게밖에는 못하나 싶은 까끌까끌함입니다. 아직은 ‘책 하나로 영화감독 김기영을 속속들이 밝혀 말하기 어려웁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좀더 차분하게 발자취를 밟아 볼 수 없었나 싶어 아쉽습니다. ‘남다른 영화감독한테 바치는 꽃다발’로 엮은 책인지, ‘남달랐지만 아쉬운 영화감독을 바라보며 오늘날 영화감독은 거듭나기를 바라는 채찍질’로 엮은 책인지, ‘나는 김기영을 좀 아는데, 김기영은 이렇더라구’ 하는 수다떨기를 하려고 엮은 책인지 갈피를 잡기 힘듭니다.

 그리 길지 않은 책임에도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된 대목이 있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집어넣은 대목이 자주 보입니다. 이를테면 “그 특정 장르에 어울리는 도상圖像icon이 필요할 때마다”처럼 글을 쓴 대목입니다. ‘도상圖像icon’이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모쪼록, 그동안 일곱 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그사이 김기영 감독과 얽힌 새로운 자료가 더 나왔을는지 모르고, 여러 증언과 이야기와 필름이 나왔을는지 모릅니다. 글쓴이 스스로도 좀더 글매무새를 다독이는 세월이 되었을는지 모르고요.

 부디 이 책 《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가 그저 ‘나라안에 드물었던 영화감독’을 다루는 ‘나라안에 드문 책’쯤으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영화에 온삶을 바친 영화감독 발자취와 삶자락이 좀더 깊고 너르게 드러나는 이야기꽃을 피워내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지식’을 얻자고 들여다보지 않는 만큼, 영화감독과 영화작품을 다루는 자리에서도 ‘지식’이 아닌 ‘감동’이 있는, 그러니까 영화감독 ‘삶’이 물씬 묻어내는 이야기꽃을 펼쳐내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2.6.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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