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아베 하지메 지음, 위정현 옮김 / 계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나한테 있는 ‘돈 석 닢’
 [그림책이 좋다 65] 아베 하지메, 《호두》



- 책이름 : 호두
- 글ㆍ그림 : 아베 하지메
- 옮긴이 : 위정현
- 펴낸곳 : 계수나무 (2006.4.25.)
- 책값 : 8500원


 (1) 돈과 콩과 나무


 한창 마음을 다잡고 글 한 줄 끄적이는데 전화통이 울립니다. 무슨 전화인가 싶어 받으니 비과세저축 하나 들라고 하는 소리가 흐릅니다. 내 살림에 무슨 비과세저축 투자를 하느냐 싶지만, 전화 거는 일을 하는 사람도 고단할 테지 하고 생각하며 조금만 듣다가 끊으려 합니다. 그런데 전화기 건너편은 좀처럼 전화를 끊어 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물건을 팔겠다는 뜻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쉴 사이 없이 입을 놀리느라 지친 느낌만 물씬 받습니다.

 저 또한 하루하루 삶을 꾸리고 아기하고 복닥이면서 그리 튼튼하지 않은 몸이요, 아주 잠깐 동안 아기보기를 쉬면서 글쓰기에 품을 들이는 이맘때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나마 애를 보고 있다면 ‘저기, 지금 애보고 있어 힘드니 그만 끊을게요’라 말할 테지만, 늘 애를 보기는 해도 지금은 안 보고 있으니 거짓말로 둘러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제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뿐입니다. 줄줄줄 흐르는 말을 끊으며 ‘저는 그런 투자를 안 해도 됩니다.’ 하고 말을 건네지만, ‘네, 그렇지만 ……’ 하면서 다시 말을 잇습니다. 외려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하려는 낌새입니다.

 더운 날 몸이며 마음이며 그예 지칠 뿐임을 새삼 느끼는 가운데 더 버티지 못하고, ‘저는 전화 받을 겨를도 없고, 그런 데에 쓸 돈도 없습니다. 이제 그만 끊겠습니다.’ 하는 데에도 굳이 몇 마디를 더 보태며 전화기를 붙들어 매도록 합니다.

 이런 데에서는 마음이 모질어야 할까요. 아니, 이런 데에서조차 모질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서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는 느긋함을 갖추어야 할까요. 맞은편도 힘든 줄 생각한다면, 이만한 투자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게끔 돈 펑펑 벌어들여야 할까요.

 전화를 끊고 나니 기운이 쪽 빠집니다.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책상맡에 앉지만, 아까처럼 일손을 잡기 힘듭니다. 전화 걸어 물건팔기 하는 분한테는 당신 먹고사는 일일 테지만, 당신 먹고사는 일 때문에 그런 데에 아무 눈길을 안 두거나 미처 눈길을 못 둘 수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나한테 돈이 어느 만큼 넉넉하게 있다 한다면, ‘이 돈을 더 크게 불리는 데에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틀림없이 예전처럼 출판사에 몸을 두고 달삯을 꼬박꼬박 받고 있다면, 달삯 가운데 2/3나 3/4를 어김없이 은행에 착착 맡겼을 텐데, 요즈음 들어서는 저한테 다달이 꾸준히 들어오는 돈이 있다 하여도 은행에 착착 맡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꺼번에 다 쓰지는 않을 테지만, 푼푼이 모였을 때마다 ‘이 돈을 알맞게 쓸 곳’을 찾아서 아낌없이 써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 유다가 아직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일이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강가에서 호두 씨 한 개를 주워 와, 집 마당에 던져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싹이 나온 거예요. ‘이렇게 단단한 껍데기를 뚫고 나오다니! 굉장히 힘이 센 나무인가 보다!’ 엄마와 아빠는 그 초록색 싹을 보고는, 아기도 이 나무처럼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더욱 더 소중하게 보살폈습니다 ..  (3쪽)


 적금이든 보험이든 ‘나 하나만 생각하는’ 일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틀림없이 먼 뒷날 내 몸을 헤아리면서 쓰든 다른 이 몸을 헤아리면서 쓰든, 큰돈이 들어갈 데가 있을 테니, 그때 흐뭇하게 쓰게끔 모아 두는 일은 값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굶주릴 걱정이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만큼이나 ‘코앞에서 굶주리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깜냥만큼 ‘내 코앞에서 굶주리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내 살림을 가르고 쪼개고 나누어 어깨동무를 한 다음, 이렇게 하고도 어느 만큼 남는다면 티끌만큼밖에 안 되더라도 조금씩 모아 놓아야지, 처음부터 ‘앞으로 굶주릴 걱정이 있는 사람을 도와야지!’ 생각하면서 적금을 붓는다든지 보험을 든다든지 투자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목돈으로 이루어 낸 다음 환경운동 하는 모임에 척 갖다 바쳐도 좋은 일이 될 테지만, 다문 오천 원이나 만 원이라 하여도 다달이 모임 뒷배를 하는 일이 한결 뜻있고 즐거웁지 않겠느냐고 느낍니다.


.. “아빠, 뭘 하세요?” “으응, 여기에 할머니 방을 만들려고 해.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2층 방이 불편하시거든.” “네에? 여기다요?” 아빠는 자를 대고 땅 위에 표시를 했습니다 ..  (11쪽)


 일산에서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멀디먼 길을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굳힙니다. 그리 넓지 않아 그리 시원하지는 않으나 조그맣게 그늘을 드리우는 골목길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와 같은 생각을 다집니다. 어제 하루 서울마실을 하면서 나무 한 그루 제대로 뿌리내릴 만한 땅뙈기 없이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발라 건물을 세우고 차를 대고 하는 길에서 여러 시간 걷고 다니고 하는 가운데 이 생각을 곰곰이 해 보았습니다.

 우람한 나무 몇 그루만 있는 공원보다는, 아이들 키만큼밖에 안 되는 어린나무라 할지라도 크고작은 나무가 골고루 어울리면서 숲을 이룬 공원이 한결 낫다고 생각합니다. 50층, 60층짜리 건물이 비죽비죽 솟는 도시보다는, 고만고만한 건물이 골고루 섞이면서 어느 건물에서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한편, 건물과 건물 사이에도 넉넉히 틈을 두면서 차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사람도 다니고 바퀴걸상과 아기수레도 밀 수 있는 데다가 길짐승과 날짐승도 구석구석 보금자리를 틀 수 있으면 더없이 즐겁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온 산 가득 계단논과 계단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기보다는, 제 식구 먹을 만큼만 계단논밭 일구고 숲이 있는 산을 살려 놓을 때가 한결 아름답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유다는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만 하고, 곧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책상 위에는 호두가 놓여 있었어요. 그때 할머니가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랑 얘기 좀 할까? 나는 내일 시골로 돌아갈 거야.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살던 시골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러니 아무 걱정은 하지 말거라.”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  (17쪽)
 





 배터지게 먹는 밥차림보다는, 배터지게 먹고도 남아 버리거나 냉장고에 넣도록 하는 밥차림보다는, 좀 모자라게 마무르더라도 밥그릇과 반찬그릇 싹싹 비울 수 있는 밥차림이 한결 반갑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일삯을 주는 일자리보다는 더 많은 말미를 주면서 내 삶을 돌아보도록 하면서 내 살림을 알뜰살뜰 꾸릴 수 있게끔 일삯을 나누어 주는 일자리가 훨씬 반갑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만 ‘콩 세 알 심기’를 할 수 있지 않을 테니까요. ‘콩 세 알 심기’란 농사꾼만 보여주는 매무새는 아닐 테니까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먹는(알고 보면 새와 쥐와 사람이 먹는 셈이지만) ‘콩 세 알’처럼, 내 손에 들어온 ‘콩 세 알(내 몫으로 1/3 쓰고 남아도는 2/3라는 돈. 그러니까 도시사람한테는 ‘돈 석 닢’.)’이라 한다면, 얼마든지 두 알을 내 이웃한테든 동무한테든 후배한테든 선배한테든 낯모르는 먼나라 사람한테든 시민모임한테든 가난한 둘레사람한테든 베풀 수 있습니다. 아니, 베푼다기보다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줄 수 있습니다. 아니,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히 건넬 수 있습니다.


.. 그날 아빠는 나무를 베었습니다. 유다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잘린 나무를 보고 “미안하다, 미안해……” 하며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  (25쪽)
 





 (2) 그림책 《호두》를 보면서


 그림책 《호두》를 보면서 마음을 푸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더없이 보드라이 매만질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린이 스스로 어릴 적 겪은 일을 담아냈다고 하는 만큼, 좀더 살속 깊숙하게 파고듭니다.

 다만, 그림 가운데 몇 군데는 잘못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 앞에 서 있는 아빠 손이나 몸이 어딘가 어설프도록 그렸고, 아이가 뿔이 나서 골목을 달려나가는 뒷모습에서는 팔과 다리가 함께 움직입니다. 그림결은 아주 품을 많이 들였음이 눈에 선하지만, 이렇게 품을 많이 들인 그림임에도 자잘한 잘못을 덮어주지는 못합니다. 일본에서 이 책이 처음 나올 때, ‘일본은 그림책을 참 잘 만드는 나라인데 왜 이런 잘못을 못 잡아챘을까? 왜 못 고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말로 옮겨낼 때 일본 원작자한테 고쳐서 새로 주십시오 하고 바라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렇다 하여도 아쉬움은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그린이가 어릴 적 겪은 일이라 하여도, 이 그림책은 ‘옛날이야기를 보여주는 흐름’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어느 집에서나 겪을 만한 흐름’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빠는 마루에 있는 푹신한 걸상에 앉아 있고, 엄마는 부엌에서 차를 끓이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그립니다. 이런 대목 또한 좀더 꼼꼼히 살피면서 다룰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적어도, ‘엄마가 차를 끓인다’ 하여도,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푹신한 걸상에 앉아 차를 즐기는 모습’으로 그릴 수 있고, ‘아빠 엄마 둘이 부엌에서 함께 차를 끓이는 모습’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 “유다야,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난 이 씨를 넓은 강가에다 심을 거예요. 이렇게 좁은 마당에서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없어요.” 유다는 호주머니에서 호두 씨앗을 하나 꺼냈습니다. “그럼 할머니도 도와주마.” “강가는 여기서 멀어요.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시잖아요.” “괜찮아. 천천히 가면 되지.” 두 사람은 강가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  (27쪽)


 강가에서 자라던 호두가 열매를 맺어 땅으로 몇 알 톡톡 떨어뜨렸습니다. 이 호두알을 주워 집 앞 마당에 던져 보았는데 용하게 싹을 틔워 우람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호두나무는 베어내야 했고, 베어내면서도 이 호두나무에서 떨어뜨린 열매 하나를 ‘처음 열매를 얻던 그 강가 호두나무 옆’으로 가지고 가서 새로 심습니다.

 호두씨 새로 심는 강가 뒤편으로는 높직한 공장 굴뚝에서 매연을 내뿜습니다. 강가 또는 바닷가라면 물이 많아 으레 공장 한둘은 있는 요즈음일 테니까요.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이 없이 살아갈 수없고, 자연한테 고마운 선물을 듬뿍 받아 살아가게끔 되어 있는데, 자연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있고 어찌어찌 앓고 있는지를 느끼지 않습니다.

 돈벌기에 바빠 느낄 겨를이 없고, 돈을 많이 벌어 제법 느긋하다 하여도 새로운 돈굴리기에 바빠 느끼려는 가슴을 잃었습니다.

 그림책 《호두》는 바로 이런 대목을 넌지시 짚어 주지 않느냐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내버리거나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랑이야말로 우리한테 반갑고 고맙고 흐뭇한 값이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고 느낍니다. 호두씨 한 알이 베푸는 선물을 느끼듯,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 이웃이건 동무이건 식구이건 누구한테건, 또 푸나무한테건 날짐승과 들짐승과 물짐승한테건, 또 바다와 들판과 산한테건, 어떤 사랑씨라도 함께할 수 있음을 들려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우리들 누구나 ‘콩 세 알’, ‘씨앗 세 알’, ‘돈 석 닢’을 가지고 있습니다. (4342.6.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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