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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04 - ‘1급 장애인’ 아닌 ‘문학사랑이’ 장영희 님 떠난 길
: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책이름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글 : 장영희
- 펴낸곳 : 샘터 (2005.3.15.)
- 책값 : 12000원
(1) ‘장애인’ 아닌 ‘한 사람’이 죽은 길
지난 5월 9일,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 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영희 교수라 하면 먼저 ‘장왕록 박사 딸’이라는 이름에다가 ‘1급 장애인’이라는 이름이 달라붙곤 합니다. 틀림없이 장왕록 박사 딸이 맞고, 1급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끈과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껴안으려 한다면, 아무개 딸이건 몸이 어떠하건 우리한테는 ‘장영희 한 사람’만 보거나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 아직 우리 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ㆍ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장왕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 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가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 (38쪽)
장영희 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뜻밖에 듣고는, 몇 해 앞서 읽고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아 놓고 있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가는 전철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죽 읽습니다. 이 책은 2005년에 나왔고(이무렵 300쪽 조금 넘는 책이 12000원이면 꽤 비쌌습니다), 책에 실린 글은 2001년 8월부터 세 해에 걸쳐 〈조선일보〉에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이름으로 이어썼다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 머리말은 늘 맨 마지막에 들여다보는 터라, 다시금 책을 읽어내고 머리말을 훑다가 깜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조선일보〉에 이어썼던 글이구나.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분 장영희 님 글을 다른 매체에서, 이를테면 ‘사회에서 힘여린 사람한테 등돌리지 않고자 애쓴다’ 하는 매체에서 기꺼이 받아안을 수 없었을까요. ‘사회에서 돈없는 이가 푸대접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매체에서 넉넉히 껴안을 수 없었을까요. ‘사회에 따돌림과 괴롭힘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입시지옥과 갖은 갈등이 평화로이 풀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매체에서 살포시 손을 내밀 수 없었을까요.
.. 운명은 인간의 것이지만 생명은 신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고, 그 무슨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의 꿈, 소망, 사랑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125쪽)
저로서는 쉰일곱 해를 살다 떠난 장영희 님하고 만날 일이란 없었습니다. 나라밖 문학에 그리 눈길을 안 두고 있기도 했기에, 장왕록 님이 펄 벅 문학을 숱하게 우리 말로 옮겼다는 대목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헌책방을 찾으러 신촌 둘레를 자전거를 타고 돌거나 두 다리로 골골샅샅 누빌 때 서강대 옆도 곧잘 스쳐 지나가곤 했고, 서강대 앞에 잠깐 문을 열었다가 그야말로 금세 문을 닫은 헌책방마실을 더러 하곤 했지만, 이 울타리 안쪽에 목발을 짚고 강의를 하는 장영희 교수라는 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연세대 건너편에 있는 헌책방 〈정은서점〉 아저씨가 가끔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이분 따님 가운데 한 분도 장애인이었고,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나 대학 입시를 치를 때에나 대학에 다니는 동안까지도 몹시 힘들었기에), 마음은 모르나 몸은 멀쩡하다 싶은 사람들 둘레에 몸 어느 곳이 다치거나 아파 못 쓰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얼핏설핏 느끼곤 했습니다. 바퀴걸상을 타고 헌책방마실을 하던 사람을 꼭 두 번 만났습니다(열여덟 해 헌책방마실을 통틀어). 팔이나 다리 어느 한 군데라도 아프면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자전거모임에서도 몸 아픈 이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통계로는 ‘한 나라 10%는 신체장애인’이라 해서, 우리 나라로 치면 오백만 가까운 숫자가 신체장애인일 텐데, 길거리를 누비는 사람 가운데 신체장애인을 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걸쳐 신체장애인하고 함께 배운 적이란 없고, 이웃 학교에서도 못 보았습니다. 어쩌면 ‘취학면제’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처음부터 교육권이나 평등권을 누려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화교 선거권’을 준 일도 고작 한 해가 된 듯 싶습니다. 그나마 화교 아닌 ‘외국사람이라고 하는 한국사람’한테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이웃 일본이 한겨레붙이한테 선거권을 안 주는 일하고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요. 재일‘조선인’이든 재일‘한국인’이든, 일본에서 ‘코리아’ 국적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선거권을 비롯해 기초권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라밖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 일이요, 우리 어버이 또래 일이며, 우리 삶하고 곧바로 이어진 이와 같은 일에 우리들 눈길이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옳고 바르게 누리면서 어깨동무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이 책(펄 벅, 《자라지 않는 아이》)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나의 어머니이다. 기동력 없는 딸이 발붙일 한 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운명에 반항’하여 싸운 나의 어머니. 장애는 곧 죄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마음속으로 피를 철철 흘려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딸을 지킨 나의 어머니. 무엇보다 이 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것은 부모님과 내게 너무나 힘겹고 고달픈 싸움이었다.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던 나의 어머니.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학교들을 찾아가 제발 응시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사정하며 다니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문간을 서성이던 나의 어머니. 조금만 도와주면 나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제발 한몫 끼어 달라고 애원해도 자꾸만 벼랑 끝으로 밀쳐내는 이 세상에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업도 그 위대한 이름, ‘어머니’에 비할까 .. (131쪽)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영문과 교수로 영문학을 가르치는 장영희 님 삶에 박힌 ‘좋은 문학’이 당신 삶에 어떻게 ‘좋은 마음밥’이 되었는가를 돌아보는 책입니다. 펄 벅 문학을 다루는 글에서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은 1951년에 발표한 《자라지 않는 아이》이다(1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펄 퍽 문학 가운데 이 책처럼 안 읽힌 책이 또 있을까 싶은데, 《자라지 않는 아이》는 2003년에 새로운 판으로 옮겨지기 앞서 두어 차례 옮겨졌고, 샘터사에서 우리 말로 옮긴 판이 이제까지 나온 옮김판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습니다. 저는 이보다 앞서 나온 낡은 판으로 읽으며 ‘펄 벅 문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낳아 기른 아이가 ‘자라지 않는 아이’여서 장애인 삶을 온몸으로 부대끼게 되고 이렇게 부대끼면서 숨기거나 꺼리지 않고 고이 사랑으로 껴안으면서 뭇사람한테 참다운 어머니길이요 사람길이 무엇인가를 밝힌 대목도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당신은 장애를 안은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어도 언제나 얼마든지 어깨동무할 만한 마음밭이 있었다고 느낍니다. 마음밭이 없으면 아무리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설 생각을 못할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다시 일어서더라도 슬기로움과 튼튼함을 갖추지 못합니다.
.. 신체장애는 단지 의학적 케이스일 뿐, 악이든 선이든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한 인간 치유의 역할을 가진 문학이 한 집단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 없는 재주로 무리해서 수필집을 낸 적이 있다. 가끔 방송이나 신문에서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1급 장애 여교수의 인간 승리, 그녀의 치열한 삶’ 등등으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책을 소개하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문인 220명에 의해 설날에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내 책이 뽑혔다고 했다. 시간에 맞춰 TV를 보니 마침 사회자가 내 책을 들고 소개하고 있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의 단 한 번》은 자서전적 에세이집입니다. 요새 암투병 중이라 투병 중 느낀 바를 적은 책입니다.” 옆에 있던 여자 사회자가 때 맞춰 “쯧쯧” 혀를 찼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 책은 이미 4년 전, 내가 암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때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코미디언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저자 장영희 씨는 1급 신체장애인이라네요.” 순간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숙이며 죽은 사람에 대해 묵념하듯이 눈을 내리깔고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책에 대한 소개는 그게 다였다. ‘자서전적’ 에세이니 불가피하게 나의 신체장애에 관한 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도는 ‘장애인 장영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형태의 삶의 장애를 갖고 있는 ‘인간 장영희’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암만 생각해도 내 삶이 별로 ‘치열한’ 것 같지 않다. 아니, 내 삶이 치열하고 감동스럽다면 난 이제껏 치열하고 감동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226∼227쪽)
전철은 어느새 대화역에 닿습니다. 다 읽은 책은 앞가방에 넣습니다. 사람들이 자동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는 돌계단을 하나나 둘씩 밟으며 밖으로 나옵니다. 장애인 권리를 생각해 준다는 말은 많아 새로 생기는 전철역에는 으레 승강기가 놓이고 점글판이 붙고 오돌토돌 새긴 돌을 바닥에 깔아 놓곤 합니다. 그나마 전철역 둘레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버스역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으로서 시내버스를 타기란 꿈조차 꿀 수 없는 노릇입니다. 목발을 짚든 바퀴걸상을 끌든 이때에도 시내버스는 탈 수 없으며, 광역버스 또한 탈 수 없습니다(고작 몇 대에만 탈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어떻겠습니까. 시골버스는 어떠하고, 마을버스는 어떠할까요. 학원버스는 어딘가 나은 대목이 있을까요. 학교버스나 유치원버스는 어떻습니까.
승강기나 자동계단 같은 시설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을 생각해서 마련한 시설임을 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비장애인은 마땅히 돌계단으로 다닐 뿐이요,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 승강기와 자동계단을 타도록 마련해 놓았음을 깨닫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어버이 된 분들은 아이들한테 이런 대목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교사 된 분들은 학교에서 얼마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2) 글 하나에 담으려 했던 사랑
세상 떠난 한 사람이 죽은 일을 앞두고 여러 매체에서 ‘궂긴 소식’을 실어 줍니다. 모두들 ‘장애인 장영희’한테만 눈길을 맞추고, ‘한 사람 장영희’한테는 눈길을 맞추지 않습니다. 아니, 눈길을 맞출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눈길은 장영희 님한테만 맞춰지는 매무새가 아닙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았고, 앞으로도 그리 달라질 듯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오로지 돈만 바라보도록 맞춰져 있으며, 사회로 나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며 더 높은 이름을 날리며 더 큰 힘을 누리는 사람’이 되도록 ‘네 동무를 미워하라, 밟고 타 올라서 너 혼자 1등이 되어라’ 하고 내모는 제도권입시교육이기 때문입니다.
..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은 언제나 이별의 슬픔과 기다림의 갈증을 견뎌내야 하는 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필연적 고통은 그녀로 하여금 시인으로 새로 태어나고, 시의 세계에서 삶의 궁극적인 비상구를 찾게 했다 … 무정한 모정에 대한 비난이 혹독하지만, 아마도 두고 가는 자식들도 결국은 자신처럼 ‘안’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 죽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를 밀치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까지 안고 뛰어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에 자식들을 두고 가기가 너무나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작품 중에서 유독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낯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73, 108쪽)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새삼 놀랐습니다만, 장영희 님 글을 실었다는 〈조선일보〉는 장영희 님 글을 받으며 어떤 느낌 어떤 생각이었을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신문 〈조선일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이 더욱 단단해지도록 하는 데로 모아져 있지 않습니까. 사랑보다 돈을, 믿음보다 이름을, 나눔보다 힘(권력)을 높이 추켜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장영희 님이 그런 신문에 그런 글을 실은 모습은 엇박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금 곰곰이 헤아리면 그리 엇박자는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 하나요 살가운 사람 하나라 한다면, 돈바라기 사람이든 사랑바라기 사람이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일찍 철이 들었든 나이먹어도 철이 안 들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뜨거운 가슴은 누구한테나 깃들어 있습니다. 제힘으로 알아채지 못하는 너른 넋은 누구한테나 잠들어 있습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장영희 님은 ‘몇몇 깨인 사람한테만 사랑을 말하려는 목소리’이기보다, ‘깨인 사람이고 깨이지 않은 사람이고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사랑을 말하려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책을 거듭 읽으면서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깨인 사람이고 깨이지 않은 사람’이고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 그때부터 마아너는 딱딱하고 차가운 금화 대신에 딸 에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며 자기를 버렸던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절을 베풀기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도 마아너를 따뜻하게 대한다. 그는 에피를 통해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준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이 세상에 선이 존재함을 새롭게 배운다 …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지만, 이 소설에서 강조되는 점은 돈에 집착했을 때 고립되고 의미 없는 삶을 살던 마아너가 그 돈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발견한다는 아이러니이다 … 거울에는 자기만 보인다. 금ㆍ은으로 사방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거울 속 사람들처럼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돌보며 감옥인 줄 모르는 채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 (135∼136쪽)
ㅈㅈㄷ이라는 신문들만 골프 이야기입네 외국여행 이야기입네 비싼 자동차 이야기입네 떠들지 않습니다. ㅎㄱ이라는 신문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서민’은 옛날 ‘백성’과 달라, 큰차 몰고 나라밖으로 골프를 즐기러 떠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는지 모릅니다만, 주식투자이든 펀드투자이든 돈 놓고 돈 먹는 일거리는 오늘날 ‘부자’뿐 아니라 오늘날 ‘서민’도 함께 즐기는 일인지 모릅니다만, 정규직 노동자만 갖은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라 하여 타워팰리스를 꿈꾸지 말란 법 없습니다만, 딱히 더 나은 신문이나 방송이란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신문도 ‘한 달 벌이 50만 원으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 눈높이’에서 찾아 읽을 만한 이야기거리를 기사로 다루지 못하고 있거든요. ‘쉬는 날 없이 한 달 빽빽하게 열 시간 남짓 일하여도 백만 원 받기 어려운 형편’인 가운데 지친 몸으로 펼쳐들어 읽을 만한 이야기거리를 다루는 신문이란 글쎄, 하나도 없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다루는 기사뿐만이 아닙니다. 기사로 쓰는 말과 글도 그렇습니다. ‘여느 노동자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읽을 만한 높낮이로 글을 다스릴 줄 아는’ 지식인이나 기자가 이 나라에 몇이나 있는지요. 다루는 기사도 기사이지만, 기사에 담는 말과 글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가를 헤아리면서 늘 힘쓰는 분들은 몇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는지요.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인지, 한국사람 아닌 이들이 읊는 섞임말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눈만 뜨면 떠드는 ‘세계화’는 실상 자존심도 오기도 없는 ‘강국화’일 뿐, 힘없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짐승, 버러지만큼도 취급하지 않는 것이 진정 ‘세계화’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부모 형제들도 바로 지금 우리가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때 간호사로 광부로 낯선 나라에 가서 고된 노동을 하고 고향에 부친 달러는 겨우 우리가 인간과 짐승도 구별 못하는 ‘부자’가 되는 데 일조했을 뿐인가 보다 …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맞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는 사람만이 절망이기도 하다 .. (277, 279쪽)
장영희 님이 서양문학이 아닌 한국문학을 했다고 하여도, 또 한국문학으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펼쳐냈다고 하여도, 당신이 부대끼고 곰삭이며 차근차근 나누려 했던 이야기는 매한가지였으리라 느낍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하고 노래할 수 없는 이 땅에서 끝없이 걸려 넘어져야만 하는 삶을 꾸리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고 느끼고 담아내는 목소리는 한결같았으리라 느낍니다. 우리는 ‘달러(돈)’ 아닌 사랑을 보아야 하고, ‘달러’에 매인 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스스로한테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한테도 ‘달러’만 보여주고 가르치고 물려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풀어냈으리라 봅니다. ‘사람만이 절망이다’고 느끼는 가운데에도, 이 절망을 딛고 설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한편, 절망을 딛고 선다기보다 절망은 또 절망대로 고운 벗님이니 고마이 껴안으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려는 목소리를 펼쳐냈으리라 봅니다.
.. 어른들의 닫힌 마음으로 아이들의 열린 마음까지 꽁꽁 걸어 잠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결국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 끝에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을 지켜 주는 것은 피비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아이러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 가까이에서 공부할 수 없으니 학교에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이 세상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누구나 조금씩의 모자람, 불편함을 갖고 있어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이고,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키는 진정한 파수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 (184∼185쪽)
장영희 님이 아직 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때 방학을 맞이해 한국땅으로 돌아와 동생하고 ‘명품을 많이 판다는 패션가를 지날 일’이 있었고, 이때 동생이 옷 구경을 하러 들어간 가게에서 당신은 못 들어가고(계단 턱이 너무 높아) 문밖에 서서 기다리니, 가게 임자가 나와서 당신을 거지로 여기고는 어서 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아마, 장영희 님으로서는 이런 일을 겪으며 또다시 ‘걸려 넘어지기’를 하는 가운데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라는 영국 시인 문학과 삶을 찬찬히 읽어낼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저는 목발까지 짚지는 않으나 헐렁한 차림새에 고무신을 끌고 자전거를 슬슬 몹니다. 늘 큰 가방에 책을 가득 채우고 다니니 언제나 온몸에서는 땀내가 풍기기까지 합니다. 몇 해 앞서 ㄱ이라는 국립기관에서 한 해 동안 ‘우리 말 이야기 강사’로 일한 적 있는데, 그때 ㄱ이라는 국립기관 건물 지킴이들은 ‘잡상인 출입금지’를 내세워 눈을 부라리고 막말을 하며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그 국립기관에서 강사로 일하는 사람인 줄 알고는 갑자기 거수경례를 하더니 높임말로 바뀌더군요. ‘여느’ 강사처럼 까만 양복을 빼입고, 까만 차를 몰며 다녔다면 어느 누구도 저를 가리켜 ‘잡상인’이라든지 ‘노숙자’라든지 ‘미친놈’이라며 삿대질을 안 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늘 겪는 동안, 제가 이런 제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지 않았다면 세상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다만, 이런 일을 겪고 저런 일을 치르면서도 제 어리숙한 마음밭은 좀처럼 자라나지 못하지만.
(3) 문학으로 꾸려 온 삶
몸이 아픈 가운데에도 글쓰기와 문학즐기기를 멈추지 않은 장영희 님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가면서 책 하나를 더 우리한테 남깁니다. 며칠 앞서 나온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마지막 남긴 선물로, 이제까지는 ‘몸이 살아온 기적’이라면, 앞으로는 ‘마음이 살아갈 기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시와 사랑의 강’. 아인슈타인이 시인인지 물리학자인지 모를 정도의 문학적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아침에 눈만 뜨면 세상이 달라지고 아인슈타인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 세 가지 이상,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도 점차 힘을 잃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로봇같이 움직이고, 시와 사랑의 강은 자꾸 말라만 간다 … 나는 새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별로 ‘특별’하지 않은 가장 보통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특별하게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대박이 터지거나, 대단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기괴한 일이 없고, 별로 특별할 것도, 잘난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서로 함께 조금씩 부족함을 채워 주며 사는 세상 .. (89,141쪽)
생각해 보면, 살아온 기적이든 살아갈 기적이든 조금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쬘 수 있으면 살아 있음이요 기적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더는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죽어 감이요 또한 기적입니다. 내 몸은 다른 목숨붙이를 받아들이며 숨을 이었고, 내 몸이 숨을 멎으면 흙으로 가면서 다른 목숨붙이가 살아갈 거름이 됩니다. 내가 사는 동안 나한테 스며든 목숨들이 바친 몸뚱이가 기적과 같으며, 내가 죽은 다음 내 몸뚱이가 새로운 밥이 되어 다른 목숨한테 옮아 감이 또 기적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몸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새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어 몸이 움직이는 우리들인 가운데, 새 마음을 먹으며 새 넋을 일깨우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이 세상을, 이 나라를, 아니 가족조차 변화시키려는 야심이 없이 아버지는 늘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즐기는’ 학자의 외길 인생을 기쁘게 살다 가셨다 …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104, 316∼317쪽)
틀림없이 장영희 님은 수많은 마음자리를 고이 얻으면서 마음삶을 이었습니다. 당신 몸뚱이 때문에 ‘걸려 넘어진’ 온갖 일이 있었다는데, 당신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진’ 일도 숱하게 많았으리라 느낍니다. 그렇지만 몸 때문에 걸려 넘어진 온갖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몸삶을 이었듯,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진 숱한 일을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면서 마음삶을 이었습니다.
이 마음삶은 언제나 수필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되었으며, 한 벌 두 벌 선보인 옷을 모두어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든지 《축복》이라든지 《생일》이라든지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든지 하는 이름으로 고이 묶어내어 나누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세상을 떠난 장영희 님 목소리는 더 들을 수 없고, 앞으로 또다른 장영희 님 선물이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겠지만, 숱한 마음밥이 장영희 님한테 스며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피어났듯, 우리는 우리대로 장영희 님이 나누어 준 마음밥을 달게 받아먹으며 우리 깜냥껏 새로운 마음밥을 일구어 우리 이웃한테 나누어 줄 삶을 이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 누운 자리가 고즈넉하고 따뜻하기를 빕니다. (4342.5.12.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