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카르페디엠 12
토마스 야이어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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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을 전쟁 미치광이로 만든다
 [잠깐 읽기 32] 토마스 야이어,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책이름 :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글 : 토마스 야이어
- 옮긴이 : 신홍민
- 펴낸곳 : 양철북 (2009.3.25.)
- 책값 : 9800원



 (1) 제도권학교와 정치


 4월 29일 국회의원 재보선을 마치면서, 인천 부평을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뽑히고, 울산 북구에서는 진보신당 후보가 뽑혔습니다. 인천에서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시민들한테 지난 1월 편지를 띄우며 ‘새 차를 살 때 대우 자동차를 사면서 지역경제를 살려 주십시오’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공장 한 곳이 지역살림을 크게 움직이는 셈이라 할 테지만,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마음은 가볍지 못했습니다. 왜 자동차 공장을 살려야 지역살림이 산다고 하는가 싶어서. 기름을 먹는 자동차는 석유값이 끝없이 오를 뿐 아니라 오래잖아 석유가 마르면 그예 깡통이 되어 버릴 텐데, 더구나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동안에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공기를 더럽히는데, 지역살림 살리기를 오로지 ‘대우 자동차 한 대 더 사며 살리기’로만 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우리 아버지 머리속에는 미식축구밖에 없어. 우리 아버지에게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세상의 중심이야.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남편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따라. 어떤 때는 우리 어머니가 앨라배마의 촌구석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아버지하고 결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  (15쪽)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뽑힌 조승수 님은 진보신당으로서는 첫 번째 의원입니다. 꼭 어느 정당 첫 번째 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정치밭에 진보정당 사람이 발을 디딛기 어려운 모습을 돌아본다면 좀더 뜻있게 이와 같은 소식을 다루어 줄 법하지만, 옆지기 식구네 집에서 모처럼 텔레비전으로 이런 소식 저런 소식 찾아 들어 보아도 딱히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종이신문 소식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온통 ‘여당-야당’이라는 두 갈래길만 있고, 두 갈래길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교 가는 아이들’만 신나게 다룰 뿐, ‘대학교 안 가는 아이들’은 거의 한 번조차 다루지 않는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잡지 들은 ‘수험생 아이를 둔 독자님’을 생각한다며 ‘수능 문제’를 따로 찍어서 나누어 주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꽤 넓은 자리를 내주며 입시 이야기를 실어 놓습니다. 그러나 입시가 아닌 ‘초중고등학교 삶’을 다루는 일이란 없으며, ‘대학교 안 가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딜 청소년한테 도움이 될 삶’을 다루는 일 또한 없습니다.


.. “나, 린다 코르먼은 모든 적군에 맞서 미합중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린다는 의식에 맞추어 진지하게 대령의 말을 복창했다. 심지어 장교가 금빛 소위 계급장을 건네주며, “이 세상 끝까지 행운을 빈다.”고 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린다는 멋진 외출복 차림을 한 자기를 보고 몹시 자랑스러워 할 아버지를 생각했다 ..  (54쪽)


 열네 살 처남은 다섯 해 뒤면 선거권을 받습니다. 어쩌면, 처남한테는 어느 날 갑자기 선거권이랍시고 뚝 떨어지는 셈일 텐데, 그때까지 학교나 집에서나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어떤 일인지’를 제대로 배울까 궁금하곤 합니다. 아니, 가르칠 일이란 없을 테지요. 학교 공부 시키는 데에도 바쁠 테니까요. 처남한테는 학교 공부보다도 놀기에 바쁘기도 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문이든 잡지든 다른 어느 매체이든, 아이들한테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이야기만 들먹일 뿐입니다. 적어도 ‘대학교에 들어갈 아이들이 정치 바라보기’를 어찌 해야 하는가를 들먹이지도 못합니다. 대학생이 되면 대학 공부를 비롯해 동아리라든지 학생운동도 있기 마련이지만, 토익-토플, 학과공부, 사랑, 놀이를 빼고 이 아이들한테 세상과 사회와 나 스스로를 읽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조금도 들먹이지 못합니다.

 하기는. 언론 탓을 하기 앞서 어버이 탓을 해야 할 노릇이요, 학교 교사 탓을 해야 할 노릇입니다만. 제도권교육 틀거리를 탓할 노릇이요, 교과서를 탓할 노릇이지만.


.. 데비는 지미가 어떤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래전부터 데비는 종종 학교를 더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한껏 차려입고 하루 종일 ‘미식축구팀의 화끈한 남자아이들’과 외모와 옷에 대해서 수다를 늘어놓는 치어리더들을 만날 때는 더 그랬다 ..  (153쪽)


 지금은 어떠한 과목으로 이름이 바뀌었을는지, 또는 그대로 과목이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정치ㆍ경제’라는 과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과목 이름은 이러하여도 ‘고등학생인 제가 겪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곧바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고등학생인 우리한테 선거권이 있다 할 때에 선거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를 알 수 없었고, 안다 할지라도 이런 발자취와 다짐을 어떻게 지켜보아야 할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은 우리들(고등학교를 마칠 사람)을 교과서 지식으로만 머리가 가득 차도록 하고 나서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야 할까요. 기껏 아는 재주라 해 보았자 시험풀이 하는 재주요, 몇 가지 자질구레한 지식쪼가리뿐입니다. 실업계학교는 인문계학교하고는 달라 바로바로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우리들이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할 수 있는 일이라 한다면 찻집에서 물잔 나른다거나 공사판에서 잔심부름 하기쯤? 이를테면 삽질 호미질 낫질조차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니, 학교에서 이러한 일매무새를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세상 보는 눈을 슬기롭게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거들지 못하고,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을 우리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일솜씨를 하나하나 가다듬도록 북돋우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우리들을 ‘책상물림 지식인’으로만 키우는 공장하고 같다고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 밤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물었다. “베트남은 어땠니?” “더웠어요.” 린다가 대답했다 ..  (307쪽)


 대통령을 뽑는 1992년 선거를 지켜보던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들한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정주영 백기완 이러한 분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해 줄 만한 교사는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저마다 어찌 다른 공약을 내놓았는지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란 고작 ‘선거에서는 가장 나쁜 사람을 하나씩 덜어내어 마지막 사람을 뽑아야 한다’에 머물 뿐이었고, 그렇게 덜어낼 ‘나쁜 사람’이 누구이냐고 물으면 ‘모두 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비판적 지지’라지만,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비판’은 없이 ‘지지’만 있는 채로 ‘1번 찍기’와 ‘2번 찍기’에 그치도록 하는 우리네 학교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르는 일이긴 하나, 아이들을 낳은 어른이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키우는 어른 모두 ‘슬기롭게 비판하는 정치눈’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아이들 앞에서도 옳고 바른 눈썰미를 기르도록 못 가르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맞고 자라던 교사가 오늘날 학교에서 때리며 가르치는 쳇바퀴가 이어지듯, 어릴 때부터 정치눈을 기르지 않으며 얕은 생각에 허우적거리던 어른이 오늘날 아이들을 당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들이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2) 전쟁 미치광이 미국을 이야기하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거짓되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면서 허울좋은 평화로 사람들 눈을 속이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꾼과 군인이 말하는 평화란 ‘돈많은 미국 시민권자 평화’일 뿐, ‘미국사람 모두가 누릴 평화’조차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1등으로 세계경찰 노릇을 해야 할 미국이 지구에서 지켜 주는 평화’이지, ‘1등이나 꼴등에 매이지 않으며 스스로 조촐하게 살림을 꾸리는 크고작은 뭇나라마다 애틋하게 어깨동무하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싸움터에서 총에 맞아 죽는 군인한테 훈장을 주는 미국입니다. ‘평화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상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다가 다치거나 죽었으니 ‘동료 군인을 비롯한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적을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숱한 주검과 핏물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싸움이 벌어졌고, 이 싸움은 누구를 지켜 주는 일인가’는 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원수! 돌격!’ 두 가지만 생각하게 됩니다.


.. “당신은 악마예요.” 린다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잔인한 악마! 당신들이 우리 병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 눈으로 봤어요.” 린다는 자기가 수술한 수많은 부상자들과, 희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분류해 옆으로 제쳐 놓았던 병사들을 생각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 마을을 파괴하고, 우리 식구들을 살해했는지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그 사람(베트콩)이 비난하듯 물었다. “미군 장군들은 딴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  (225쪽)


 공산주의가 퍼지지 않도록 막는다고 했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를 사람들한테 옳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이기는 하나, 사회주의란 참말로 어떠한 틀거리인가를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닐, 집회ㆍ시위ㆍ결사 같은 자유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한테 재갈을 물리고, 제 생각과 뜻을 펼칠 자유란 민주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평등해야 하며, 학력에 따라 일삯을 달리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언제나 말에서 그칩니다. 우리 나라에는 자유도 없고 민주도 없고 평화도 없으며 평등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길들어 버립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되고 회사 정규직이 되면, 그만 제 이웃과 동무를 싹 잊습니다. 금을 그어 놓습니다. 울타리를 쌓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미국은 총칼을 들고 힘여린 나라에 군화발로 쳐들어갔지만, 우리들은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하는 짓에 손뼉을 치고 나팔수가 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총칼만 안 든 전쟁 미치광이 짓’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 미 공군이 작전을 도맡아 이 지역에 있는 베트콩의 보급로에 샅샅이 고엽제를 뿌렸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벌건 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231쪽)


 그런데, 이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이 나라 청소년 가운데 얼마나 속속들이 알아보거나 느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어떠한 나라인지 하나하나 배우지 못할 청소년들 아닙니까. 한국 사회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는 눈길조차 안 둘 뿐더러 슬기롭고 바르게 가르치는 어른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 아닙니까. 청소년들한테 보여지는 이야기란 〈꽃을 든 남자〉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이 이야기에 똑같이 얼이 빠져 버리지 않습니까. 〈꽃을 든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꽃을 든 남자〉에만 묻히며 우리 눈에 흐리멍덩해지고 우리가 걸을 길과 우리 이웃이 걷는 길을 모두 놓쳐 버리면 우리 삶이 어찌 되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 군은 부상병들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았다. 여섯 달이 지난 뒤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못한 사람은 퇴원 조치되어 친척과 친구들 손에 맡겨졌다. 그 사람들은 팔다리가 없고, 목 아랫 부분이 마비되고, 급히 임시방편으로 꿰맨 탓에 얼굴과 상처 부위가 기형이 되고, 자기 이름조차도 모르는 정신 장애인이 된 절망스런 남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청춘을 잃고, 무기력한 불구자가 된 20대 남자들이었다 … 그 남자들은 따뜻한 정을 절실하게 바랐지만 받지 못했다. 아들이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마치 무슨 치욕이라도 되는 듯, 부모들이 거의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들과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그 남자들 곁을 떠났다 ..  (338∼339쪽)


 《그리운 매화향기》(2001)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우리 삶터를 어떻게 옥죄었는가를 깊이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2008)이라는 어린이문학이 하나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를 잊고 지내던 우리들이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보가 되어 무너졌는가를 너른 눈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2003)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에는 가해자 나라와 피해자 나라가 나뉘지 않고, 힘센 이가 힘여린 모두를 찍어누를 뿐임을 환하게 밝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배경 지식’이 좀 모자라거나 없더라도 작품으로 말하는 이야기에 어렵잖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우리네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경 지식’도 있어야 할 테지만, 문화와 삶자락이 아주 다른 서양 청소년 눈길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흐르는 빛줄기는 틀림없이 ‘전쟁이 싫고 평화가 좋다’입니다만, 그리고 이 빛줄기가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우리 청소년과 어른 들한테도 고운 목소리로 다가오겠지만, “미국은 말 그대로 전쟁 미치광이 나라이지. 자, 그러니 그 미치광이 짓이 무언지 차근차근 살펴볼까?” 하면서 우리 목소리와 눈높이와 마음결에 알맞게 맞춘 작품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어 주는 어른들이 있으면 얼마나 더 기뻤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번역 백 권이 나오는 동안 좋은 창작이 한 권이라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4.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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