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바보 어른’이 아닌 ‘숨쉬는 참사람’으로 거듭나다
 [살가운 만화 45]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2》


- 책이름 : 페르세폴리스 2
- 그린이 : 마르잔 사트라피
- 옮긴이 : 최주현
- 펴낸곳 : 새만화책 (2008.4.15.)
- 책값 : 12000원



 (1) 한국을 못 보는 눈은 이란을 못 본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 1권은 2005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2권은 세 해가 거의 지난 2008년 4월에 나옵니다. 2005년 10월에 1권이 나온 뒤로 곧 2권이 나온다고 했으나 그 ‘곧’은 한 달 두 달 늦어지고 미루어지고 하다가 한 해 두 해가 되었고, 비로소 2008년 4월에 마무리가 됩니다.

 이토록 늦어진다면 출판사는 살림이 괜찮은가 걱정이 되고, 자칫 2권이 빛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모두 사라지지 않느냐 근심이 되었습니다. 한두 권짜리가 아닌 열 권 스무 권 넘는 긴 만화가 때때로 ‘번역을 그만’하면서 더 안 나오는 일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다시 나오기는 하지만, 《피아노의 숲》 같은 만화도 꽤 오랫동안 뒷권이 안 나와서 ‘설마 그 어중간한 가운데 이야기가 끝나 버렸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 “너희들 그거 알아? 이란에는 크리스마스가 없어…….” “스키 타러 간다고? 좋겠다!” “별로, 그저 그렇지 뭐.” “이란의 새해는 3월 21일이고, 그 ……” “나는 앙시에 갈 건데, 알프스랑 별로 안 멀잖아. 우리 만나도 되겠다.” ..  (18쪽)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는 한국 만화밭에 퍽 낯설게 느껴질 만한 책입니다. 이야기도, 만화결도, 그린이 고향나라도 모두 낯설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이란’이라는 나라는 고작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에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이란사람이 이란말을 쓰는지 무슨 말을 쓰는지 배우지 않습니다. 나라안에는 ‘이란말’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꼭 한 곳 있습니다만, 이 이란말을 가르치는 대학교에서조차 ‘이란이라는 나라에 이란말이 따로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 학년에 고작 서른 학생뿐이고, 이 가운데 몇몇은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두니, 몇 천에 이르는 ‘그 학교 대학생’이라 해서 이란말을 가르치는 학과를 눈여겨보거나 곰곰이 들여다볼 일은 없어요. 또한, 이란말을 배웠다고 하여 이란 대사관에서 일할 수 있느냐 하면, 아니면 이란 문학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아니올시다’이곤 합니다.

 저는 네덜란드말이라는 바깥말을 한동안 배웠는데, 이 학과에서 배울 때까지, ‘안네 프랑크’가 네덜란드사람인 줄 몰랐고, 일기를 네덜란드말로 쓴 줄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네덜란드말에서 우리 말로 옮긴 딱 하나 있는 번역책’은, 이 학과 교수인 김영중 님이 옮긴 판입니다. 다른 번역책은 ‘독일 번역판을 한국말로 옮기’거나, ‘일본 번역판을 한국말로 옮긴’ 책일 뿐입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제법 많이 읽었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작품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분은 스웨덴사람이라 모든 문학을 스웨덴말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분 작품을 우리 말로 옮긴 분들은 ‘독일 번역책을 우리 말로 옮기’거나 ‘일본 번역판을 우리 말로 옮기기만’ 했지, 제대로 된 ‘스웨덴판 번역책’은 아주 드뭅니다(저는 딱 한 권 가지고 있습니다. 1982년에 종로서적에서 옮긴 《말괄량이 삐삐》는 판권에 스웨덴책에서 곧바로 옮겼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 루시아의 가족은 이란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나를 알고 싶어하는 삼촌이나 고모네에 초대되었다. 나의 독일어 실력은 아주 기본적이었고, 그들의 독일어는 독특했다. 불어권의 스위스에서 4년을 보낸 한 사촌이 내 통역자 역할을 자청하며 즐거워했다. 우린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학교 친구들이 좋아하는 전쟁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선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 ..  (22쪽)


 우리는 이란이라는 나라를 거의 모릅니다. 그리고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무엇 하느냐고 여깁니다.

 우리는 네덜란드라는 나라 또한 거의 모릅니다. 굳이 알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네덜란드 지식은 거의 겉핥기일 뿐, 제대로 된 네덜란드 지식을 아는 사람이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끈 감독 몇 사람이 네덜란드사람이었으나 이이들 이름을 ‘네덜란드말’로 적거나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 ‘영어 투로 읽고 말했’습니다. 이분들 스스로 네덜란드말이 아닌 영어만 쓰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에 버젓이 네덜란드말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음에도, 그 학교에서는 통번역 학생을 길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있다 하여도 사회나 나라에서 안 씁니다.

 우리 나라에서 쓰이는 바깥말은 오로지 영어입니다. 다음은 일본말입니다. 그리고 중국말과 프랑스말쯤입니다. 독일말과 러시아말이 더러 쓰여도 그렇게까지 잘 쓰이지 않습니다. 중남미 문학을 읽자면 스페인말을 북돋워야 하고, 서양 옛 문화와 역사를 헤아리자면 그리스말이나 이탈리아말도 키워야 할 테지만, 이와 같은 바깥말을 골고루 가르치는 배움틀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뿐더러, 애써 배워도 써먹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 우리가 아무리 이란 삶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샅샅이 살펴서 올바르게 안다 한들, 한국땅에서는 그예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지식부스러기가 될 뿐입니다.


..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고, 나의 과거를 없애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의식이 그걸 다시 불러왔다. 급기야 국적을 속이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어느 파티에서, “넌 어디서 왔어, 마리-잔느?” “난 프랑스인이야.” “아, 그래? 프랑스인치곤 재미있는 억양이구나.” 당시엔 이란은 ‘악의 전형’이었고, 이란인이라는 것은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이었다. 거짓말하는 게 그 짐을 지는 것보다 더 쉬웠다 … 그리고 저녁에 집에 와서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언제나 네 존엄성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 ..  (45쪽)


 생각해 보면, 이란 삶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바로 꿰뚫는 눈길만 쓰레기 대접이지 않습니다. 한국 삶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올바로 헤아리는 눈길 또한 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나 나라나 정부에서는, ‘올바른 눈길’과 ‘곧은 매무새’와 ‘착한 마음’을 바라지 않거든요.

 돈 잘 버는 매무새를 바라고, 돈을 바라보는 눈길을 바라며, 돈을 키우는 마음을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도 더 많은 돈을 바라는 데다가, 더 많은 돈을 준다 하면 얼씨구나 하고 달겨듭니다. 집도 돈이요 학교도 돈이요 옷과 밥도 돈이며, 사람 또한 돈으로 재고 따집니다.

 돈이 되는 일이면 붙잡고, 돈이 안 되는 일이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들여다보는 기사거리만 언론매체에서 다루고, 사람들이 적게 들여다보는 기사거리는 언론매체에 실리는 법이 없고, 실려도 코딱지 만한 자리를 겨우 얻습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한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 한들,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우리 스스로 아끼지 않습니다.


.. “그래도 이곳은 테헤란 북쪽이지. 남 테헤란의 가난한 동네로 가 보면 거의 하나같이 무슨무슨 순교의 거리로 불린단다. 사람들은 왜 8년 동안 전쟁을 했는지 잊어버렸어. 왜 그들의 아이들이 죽었는지. 이번 전쟁은 전적으로 이란과 이라크 양쪽 군대를 파괴하고 재정비하려는 것뿐이었지. 이란 군은 1980년대에 중동에서 가장 강성한 군대였고, 이라크 군은 이스라엘에게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으니까. 서구는 이 두 편에게 무기를 팔았고, 우리는 이 우스운 게임에 말려들어갈 만큼 멍청했던 거고. 아무런 명분 없는 8년 간의 전쟁이라니. 그래서 정부는 길 이름을 순교 어쩌구 하는 것으로 바꾸어,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하는 거야. 아마도 그들은 이 부조리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요, 하지만 다른 것도 있었어요. 오후에 텔레비전에서 자기 자식들의 죽음으로 기쁨이 충만했다는 어머니들을 봤거든요. 그게 신앙심에서 나온 건지 거짓인지, 난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는 둘 다일 수 있을 거야. 10년 동안 그 순교자들이 별 5개짜리 천국에 산다고 믿게 하려고 했잖아! 그동안 전쟁은 지옥 같았거든! 네가 알았다면 ……. 정전 직전 몇 달 동안은 가장 참혹했단다.” “이야기해 줘요, 아빠, 듣고 싶어요.” ..  (103쪽)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착하게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슬기롭게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깨동무하며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같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기운을 얻습니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도 길거리로 내몰리는 가운데 다부지게 싸움을 맞아들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스스로 부딪히고 피가 터지고 머리가 깨지면서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당신 스스로도 ‘이제부터는 바보가 되지 않’고자 다짐하고, 당신들이 낳아 기르는 ‘아이들 또한 바보가 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를 꿈꿉니다.

 아주 적은 숫자라 할지라도, 찬밥 대접이 되고 푸대접이 되고 똥대접이 되는 사람들이 밑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세상을 깨닫습니다. 당신들 스스로 돈바라기 삶자락에 매여 톱니바퀴로 굴러가기만 하던 얼거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당신들을 돕는 손길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지만, 스스로를 스스로 돕습니다. 남이 도와주는 당신들 삶이 아니라, 스스로 돕는 당신들 삶입니다.


.. 쿠웨이트 이민자들은 알아보기 쉬웠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겪은 이후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이란인들과 달리, 그들은 최신형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그들을 접했던 것은 어느 여름날 거리에서였다. 이 기분 나쁜 일을 쿠웨이트를 잘 아는 삼촌에게 말하자, 이렇게 말해 주었다. “여느 아랍 국가들이 그렇듯, 쿠웨이트에서는 워낙 여성의 권리가 박탈되어 있어서, 밖에서 콜라를 마시며 걷는 여자는 그들에게 매춘부로 보일 수밖에 없단다.” ..  (170쪽)


 만화책 《페르세폴리스》에 나오는 주인공 또한, 스스로를 스스로 돕습니다. 1권에서는, 또 2권에서도 어느 만큼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주인공은 ‘얼토당토않은 곳에서 내빼려’고만 했습니다. 벗어나려고만 했고, 잊으려고만 했습니다.

 스스로를 잊고, 제 식구와 동무를 잊고, 제 고향과 나라를 잊으려 했습니다.

 어디론가 떠나면 길이 열리리라 믿었고, 이곳만 아니면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몸은 이란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사회며 세상이며 여자는 사람이 아닌 이란 터전이었기 때문에, 《페르세폴리스》 주인공이 괴로운 나날을 보낸 일은 아주 마땅했다고 느낍니다.


.. “할머니.” “아이구, 얘야! 무슨 일 있니?” “할머니, 너무 끔찍해요.” “그 머리에 쓴 우스꽝스런 천쪼가리는 좀 벗으면 안 돼? 나를 밀실 공포증에 시달리게 한다니깐!” “왜? 뭐가 그렇게 끔찍해?” “그거야? 네가 ‘끔찍하다’는 게? 어이구! 괜히 겁먹었네. 난 또 누가 죽은 줄 알았지.” “난 레자(지금 남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우리 이혼해야 될 것 같아요.” “내가 심장이 안 좋다는 걸 너도 알잖니! 그깟 이혼으로 그렇게 울어? 잘 들으렴! 나도 이혼했어. 55년 전에. 그 시대엔 아무도 결혼을 깨지 않았어. 하지만 난 언제나 짜증나는 남자랑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첫 결혼은 두 번째를 위한 연습장이란다. 다음 번엔 더 만족스러울 게다. 그렇게 우는 거 보니, 아마도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꼭 지금 당장 레자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법은 없어. 시간을 갖고 잘 생각해 보고, 정말 그를 원하지 않으면 그때 떠나라! 이가 썩었으면 뽑아내야지!” ..  (183쪽)


 그래도 주인공한테는 슬기로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슬기롭게 키운 할머니가 있습니다.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던 주인공은 아버지와 어머니, 또 할머니한테서 기운을 얻습니다. 아니, 벼랑으로 굴러떨어진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용을 쓰며 다시 기어오르는 기운을 스스로 내게 됩니다. 또는, 그 벼랑으로 다시 올라가기보다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제 나름대로 새 길을 뚫어 보고자 다짐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당신 꿈을 붙안고 살면서 당신 아이를 길렀고, 당신 아이는 또 당신 아이대로 스스로 꿈을 붙안고 살면서 당신 아이를 낳아 이 아이한테도 스스로 제 꿈을 찾아서 펼치도록 기릅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딸이 됩니다. 태어난 해와 곳은 모두 다르고, 겪고 치러야 할 고비는 저마다 달랐지만, 바라보는 곳은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고 스스로 일으키고 스스로 가꾸는 삶으로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는 세 사람 눈길은 언제나 한 자리에 있습니다.


 (2) 숨쉬는 어른이 되어 가는 《페르세폴리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에는 이야기가 아주 많이 실려 있습니다. 만화라는 틀을 빌었으나, ‘이야기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빼곡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페르세폴리스》를 제대로 읽어내자면, 그림은 그림대로 넘겨보면서 글은 글대로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을 보아서는 안 되고, 어느 한 가지에 매여서도 안 됩니다.

 숨을 쉴 수 없도록 막힌 곳에서 태어나 자라야 했던 그린이 숨결을, 칸 가득 채워진 깨알 같은 글씨를 또박또박 읽어 나가면서 한 쪽 두 쪽 더디게 넘기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예를 들면, 하루는 치과에 들러야 했는데, 수업이 예상 밖으로 늦게 끝났다. 갑자기 확성기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파란 옷 입은 여자 분, 뛰지 마세요! 파란 옷을 입은 여자 분! 뛰지 마십시오! 야! 거기 파란 옷! 뛰지 말란 말야!” ‘나?’ “아가씨, 왜 뛰는 겁니까?” “너무 늦었어요! 버스를 잡아야 한다구요.” “아, 그렇지만, 당신이 뛸 때 당신의 뒤쪽이 움직이잖아요. 어떻게 말해야 하나. 적나라하다는 거죠!” “그럼 당신들이 내 궁둥이를 쳐다보지 않으면 될 거 아냐!” 내가 너무나 소리를 크게 질렀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체포하지도 않았다 …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 ‘내 바지가 충분히 긴 건가? 베일이 잘 씌워졌나? 화장한 게 너무 진한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들을 던지는 사람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 만한 걸까?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걸까?’ ..  (150∼151쪽)


 1969년에 태어나 어린 나날을 보내다가 전쟁 불길에서 몸을 빼내어 유럽나라에서 지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여러 해를 보내면서 뼛속 깊이 아픔과 생채기를 받지만, 이 아픔과 생채기를 스스로 다시금 우뚝 서려는 눈물로 삭이는 이야기가 담기는 만화 《페르세폴리스》입니다.

 주인공은 더는 내빼지 않고자 이란으로 돌아왔지만, 다시는 내빼지 않으려고 다시 이란을 떠납니다. 주인공한테는 자기가 어디에 발을 붙이고 있느냐보다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훨씬 큰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아버지만큼이라도 튼튼해지자면, 할머니만큼이라도 당찬 사람이 되자면, 아직은 너무 어리고 철없는 풋내기임을 깨닫고 ‘더 배우’려고 새 길을 나섭니다.


.. “20일 동안 난 그가 영웅이라고 생각했는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그 번지르르한 빈말들을 봐! 자기 부인에게 말 한 마디 하게 놔두질 않잖아! 아, 이란 남자들이라니!” “그런 말 마! 이건 이란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야. 남자들은 모두 다 그래. 2년 전에 스페인 외교관이랑 사귀었는데, 겉보기엔 나은 것 같았지만 속은 다 똑같더라.” “여기선 모든 법이 남자들 편이잖아! 만약 어떤 남자가 15명의 여자 앞에서 여자 10명을 죽인다 해도, 누구도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없어. 왜냐하면, 살인 사건에 대해서 우리 여자들은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게다가 이혼할 권리도 남자들에게 있어. 설령, 남자가 이혼을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권리는 남자들에게 있지! 어떤 종교인이 이 법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자는 씨앗이고, 여자는 그 씨앗이 자라는 땅이래. 그러니까, 아이는 당연히 아빠에게 속한다는 거야! 믿을 수 있니?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이 나라를 뜰 거야!” ..  (187쪽)


 그러나 주인공은 아버지만큼이나 할머니만큼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주인공 스스로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또래가 이란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면서 살아가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고 익히면서 살아나갑니다. 할머니는 할머니 또래가 이란에서 사람됨을 잃지 않으면서 뿌리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부딪히면서 배우고 살아왔습니다.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고향나라 이란이 볼썽사나운 꼬락서니로 나뒹굴기를 바라지 않는 한편, 이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디딘 지구라는 땅떵어리에서 저마다 볼썽사나운 꼬락서니가 아닌, 아름다운 몸짓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란 남자만 얼간이가 아니라 스페인 남자도 얼간이요 프랑스 남자도 얼간이입니다. 그러면 한국 남자는 어떻겠습니까. 일본 남자는? 중국 남자는? 미국 남자는? 아니, 남자와 여자 울타리를 넘어 이 땅에 발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어떻게 제 삶을 꾸리고들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다움을 스스로 즐기며 이웃과 넉넉히 나누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고운 목숨임을 깨닫듯 이웃 또한 고운 목숨임을 깨닫고 있을까요.

 입에 발린 평화만 외치는 우리는 아닌가요. 겉치레 자유와 민주를 들먹이는 우리는 아닙니까. 껍데기 평등과 생태를 내세우는 우리는 아니온지요.


.. “너희들 그거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걔는 자기 나라나 부모 얘긴 절대로 안 해.” “당연히 그렇겠지! 전쟁을 겪었네 하는 거 다 거짓말이야. 그게 다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거라구.” “어쨌든 걔 부모도 걔한테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해. 아니면 왜 애를 혼자 외국에 보냈겠어?” “너희들, 입닥쳐! 아니면 내가 닥치게 해 줄까! 나는 이란인이고 그게 자랑스럽다구!” “쟤, 완전 돈 거 아냐?” ..  (46∼47쪽)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돌아온 《페르세폴리스》 주인공은 고향나라 이란을 사랑합니다. 고향나라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고향나라가 어처구니없이 굴러떨어지거나 비뚤어지거나 얼빠진 모습으로 치닫는 일을 슬퍼합니다. 고향나라 사람들이 제 넋과 얼을 잃고 스스로 바보가 되어 가는 모습을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이란사람’인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고 따뜻해져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 사는 이 땅에서도, 우리가 우리 고향나라를 더욱 사랑한다면, 아니 참다이 사랑한다면 오늘날과 같이는 살아가거나 정치꾼을 뽑거나 입시지옥을 붙잡고 있거나 돈벌이에만 눈이 벌건 채로 억눌려 있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고향마을 사람을 사랑한다면, 아니 아름다이 사랑하는 마음결이라면, 다른 이 얘기를 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 제 삶을 고치고 키우고 북돋우며 날마다 새로워지고 애쓰리라 봅니다. 어린이였던 ‘마르잔 사트라피’는 《페르세폴리스》 2권을 거치며, 드디어 어른이 되었습니다. (4342.4.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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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09-04-1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만화책이 있었는지 오늘에야 알았는데
참... 멋진 만화책이네요... ^^

따뜻한 4월인데 '잔인한 4월'이란 말에 공감하게 되는 날이라서
님 블로그 찬찬히 보고 있습니다

다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책은 정말 훌륭한 친구네요.

잘보고 갑니다 ^^

숲노래 2009-04-14 14:50   좋아요 0 | URL
만화책 전문가게를 가지 않고는, 좋은 만화를 놓치게 된답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