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 -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어린이미술관 13
신수경 지음 / 나무숲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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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아닌 ‘좋은’ 그림쟁이 이인성
 [그림책이 좋다 61] 신수경,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이인성》


- 책이름 :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이인성
- 글 : 신수경
- 펴낸곳 : 나무숲 (2009.3.4.)
- 책값 : 10500원



 (1) 즐거운 삶이 될 때 비로소


 지난밤, 책 하나 만드는 일을 하면서 날밤을 홀딱 새웠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누구나 날밤 새우는 일을 밥먹듯 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지 않은 터라 딱히 일감이 많지 않아 날밤 새울 일이 드뭅니다. 1인잡지를 엮을 때 며칠쯤 밤을 새우다시피 하지만, 아기 함께 돌보고 기저귀 빨고 해야 하기에 밤을 새우지 않기도 합니다. 다만, 어제 하루는 홀몸으로 인천집에 머물면서 책 만들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날밤 새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녘에 살풋 잠든 다음 다시 일어나서 여러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일손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손을 붙잡으면서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즐겁습니다.

 따로 어떤 돈을 버는 일이 아니요,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나, 저한테는 그지없이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등짝이 쑤시고 팔 어깨 손목이 저리지만, 이렇게 아프고 쑤시고 저리고 결리는 몸뚱이를 다독이면서 눈을 밝힙니다.

 다른 책쟁이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그예 돈만 벌려고 일하는 분도 어김없이 있는 한편, 그저 좋아서,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적은 일삯을 받으면서도 책마을에 오래도록 몸담는 분이 많을 테지요.


.. 이인성은 ‘우리의 풍경’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자연의 색을 표현한 화가입니다. 색채의 마술사였던 이인성은 땅과 하늘, 산과 나무에서 우리 고유의 색을 찾아냈습니다 ..  (3쪽)


 사진을 찍으러 골목마실을 하고 헌책방마실을 하면 온몸과 손목이 저리고 결립니다. 골목에서는 사진만 찍지 않고 햇볕과 바람을 함께 받아들입니다. 헌책방에서는 사진만 담지 않고 반가운 책을 바지런히 살피고 보듬습니다.

 햇볕과 바람이 있고, 밤냄새와 이야기소리가 있어 즐거운 골목마실입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있고, 마음을 건드리는 헌책방 일꾼과 책손 말씀이 있어 고마운 헌책방마실입니다. 이리하여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진을 찍게 되고, 두 손이 꽁꽁 얼어서 손가락을 꼬부리지 못하게 되어도 사진을 찍습니다. 가방이 터질 듯 책을 채워서 집으로 돌아오고, 두 손이 책먼지로 시커매져도 까만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씨익 웃게 됩니다.


.. 이제 갓 스무 살의 이인성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까지 하자, 지역 유지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려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울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문을 들은 경북여자고등학교 시라가 주키치 교장이 이인성의 유학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일본의 킹 크레용 회사 사장에게 재주가 뛰어난 학생이 있는데 화가로 키우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  (12쪽)


 둘레 사람들은 저보고 왜 세탁기를 안 쓰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탁기를 쓰겠습니까. 제 옷이며 옆지기 옷이며 아기 옷이며, 손으로 빠는 느낌이 얼마나 풋풋하고 싱그러운데요. 기저귀 빨래를 하느라 하루 가운데 1/5쯤 잡아먹고(요사이는 아기가 오줌을 적게 누기에) 널고 개고 뭐하느라 다른 일을 할 시간을 빼앗긴다고 하지만, 시간을 빼앗긴다기보다 시간을 넉넉히 나누어 쓰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북북 비비고 헹구고 탁탁 물 빼어 너는 동안 마음이 얼마나 고요해지는데요.

 몸이 여위고 힘들다 하여도 손빨래를 놓을 수 없습니다. 몸이 아프고 지쳤다 하여도 손빨래를 미룰 수 없습니다. 하루 한두 끼니 먹는 밥과 같이, 하루에 몇 차례 손빨래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고이 다스립니다. 날마다 누런쌀에 온갖 콩팥 섞은 밥으로 몸을 다스리는 한편, 훌륭하고 거룩한 책들로 마음을 다스리듯, 손빨래로 제 넋과 손발을 다스립니다.

 앞으로 아이가 무럭무럭 크면, 아이한테도 손빨래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이 기쁨을 혼자서만 즐기기란 얼마나 아까운가를 차근차근 물려줄 생각입니다. 저부터 즐겁고, 저부터 기쁘고, 저부터 고마운 일이며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 이인성은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을 캔버스에 풀어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모델로 하여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  (33쪽)


 열 해 남짓 사귀어 오는 술동무를 낮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제 모두들 시집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얼마나 바쁜 몸이 되었는지, 예전에는 거의 날마다 만나 술잔을 비웠는데 이제는 한 해에 한 번 잠깐 얼굴 보기도 힘들어집니다. 다들 아이가 좀 자라면, 다들 일이 좀 느긋해지면, 이리하여 우리들 나이가 쉰이나 예순쯤 되면 한갓지게 다시 어울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한창 바쁠 때에도 연락을 못하거나 만나지 못하는 사이이면서 나중에도 어울릴 수 있으려나요.

 좋은 사람들이라 저 스스로도 벗님들한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고, 좋은 동무들이라 저 스스로도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어깨동무를 하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좋은 자연과 벗삼으면 자연이 선물하는 좋음을 받는 가운데, 나 스스로도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자연한테 선물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됩니다. 좋은 이웃과 좋은 마을에서 살게 되면 이웃과 마을이 베푸는 선물을 받는 가운데, 나 스스로도 좋은 이웃이요 마을문화 일구는 사람으로 새로워지자고 마음먹으면서 내 다른 이웃과 마을에 좋은 땀방울을 바치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살아가는 기쁨이라면 하루하루가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하루하루가 비손하는 믿음이라면 하루하루가 서로 손 맞잡으면서 부둥켜안는 넉넉함입니다.

 삶이란 문화이며 문화란 삶이고, 사랑이란 믿음이며 믿음이란 사랑이고, 일이란 놀이이며 놀이란 일이라고 느낍니다. 모두 한동아리가 되어 흐를 수 있을 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빚어진다고 느낍니다. 자연스레 생겨나는 무지개이고, 자연스레 비가 되고 눈이 되는 물방울이며, 자연스레 싹이 트고 움이 돋고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로 뻗어나가는 푸나무입니다. 우리 사람한테도 이와 같은 자연스러움이 온몸과 온마음에 깃들면서 나와 너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저마다 선 자리에서 즐거이 호미 한 자루 쥘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2) 그림쟁이 이인성 님 이야기를 담은 《이인성》


 그림이야기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이인성》을 넘깁니다. 1912년에 태어나 1950년까지 짧게 살면서 그림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온 한 사람 발자취를 고이 담아낸 그림이야기책입니다.

 이인성 님은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둘레에서 일본으로 그림을 배우도록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인성 님이 살던 때는 일제강점기 때였고, 이인성 님을 일본으로 보내준 사람은 일본사람입니다.

 발자취와 그림밭을 찬찬히 살피다가 흠칫 놀랍니다. 아니, 우리 나라를 짓누르고 있던 일본인데, 그 일본에서도 조선사람을 눈여겨보면서 고이 보듬던 손길이 함께 있었다는 소리인가? 그러면, 오늘날 독립된 나라로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어떠하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림밭에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진밭이나 글밭에서 놀라운 솜씨를 선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농사짓기를 훌륭히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집살림을 알뜰살뜰 잘 꾸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바른 넋과 착한 마음으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숱한 사람들도 ‘일제강점기 그림쟁이 이인성’ 님과 마찬가지로 고운 손길과 따순 사랑을 받고 있을까요?


.. 이인성은 평생 우리 자연과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  (21쪽)


 그림쟁이 이인성 님 그림밭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책에 실린 풀이말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인성 님 붓질은 더없이 밝으며 맑다고 느낍니다. 그림을 즐기는 동안 눈이나 머리나 마음이 짐스럽지 않습니다. 홀가분하게 넘기고 가붓하게 헤아리게 됩니다. 아무래도 ‘자기와 같은 이웃을 그리고, 자기가 발디딘 터전을 그렸기’ 때문인가 생각해 보는데, 자기와 같은 이웃을 그리더라도 엉망으로 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가 발디딘 터전을 그린다 하여도 ‘우리가 어깨동무하는 삶터’가 아닌 ‘좁거나 치우친 눈길로 허투루 바라본 삶터’를 그리는 사람이 많아요.
 





.. 세상을 떠나던 해에 쓴 그의 글에는 화가의 자부심과 단호함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나의 천직은 그림을 그린다는 신세인 만큼, 그림 속에서 살고 그림 속에서 괴롬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는 누구에게도 자기의 개성을 짓밟히기는 싫다.” ..  (43쪽)


 그렇다면, 그림쟁이 이인성 님한테는 여느 그림쟁이와는 사뭇 다른 마음결이 있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똑같은 밑바닥 사람을 보더라도 바라보는 눈이 다르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짓눌린 이 나라 이 땅을 바라보더라도 여느 사람들 눈결과는 다르지 않았겠느냐 싶어요. 그리고 이런 다름을 고이 돌보고 북돋우면서 당신 나름대로 그림에 말을 걸었을 테고, 이런 말걸기는 그림을 즐기려는 우리한테 보람과 눈물과 웃음과 기쁨을 남기게 될 테고요.

 어떻게 본다면 이인성 님은 ‘천재화가’일는지 모릅니다만, 제가 느끼기로 이인성 님은 ‘천재’라 하기보다는 ‘좋은’ 그림쟁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살가운’ 그림쟁이로, ‘가슴 열린’ 그림쟁이로, ‘눈을 뜬’ 그림쟁이로, ‘제 길을 제 다리로 뚜벅뚜벅 걷는 동안’ 조금도 흐트러짐이나 망설임이 없이 힘차고 다부졌던 그림쟁이로 보아야 알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그림을 즐기고 나누려는 많은 이들이 ‘천재’나 ‘뛰어나다’라는 이름에 매이기보다는 ‘좋다’나 ‘아름답다’나 ‘즐겁다’나 ‘반갑다’는 소리를 듣는 이웃 같은 그림쟁이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오랜 벗님 같은 그림쟁이로 뿌리내릴 수 있으면, 언제 보아도 허물없고 반가운 풀꽃과 같은 그림쟁이로 이어갈 수 있으면, 그림그리기와 그림즐기기는 모두 사랑이요 믿음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4342.3.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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