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92 ― 자유롭지 못한 넋이라면 죽은 목숨
 : 싼마오, 《흐느끼는 낙타》


- 책이름 : 흐느끼는 낙타
- 글 : 싼마오
- 옮긴이 : 조은
- 펴낸곳 : 막내집게 (2009.2.11.)
- 책값 : 9800원



 (1)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세 식구가 옮겨갈 살림집을 알아보려고 수봉공원 둘레로 찾아갑니다. 아기는 아빠가 등에 업습니다. 옆지기는 나날이 몸이 안 좋아지고 있어, 아기를 안거나 업고 걸을 수 없습니다. 배다리 한켠에 있는 우리 살림집에서 나와 도원역을 지나 숭의동 109번지 골목을 가로질러 제물포역에 닿습니다. 역 앞으로 나오니 1000원짜리 호박엿을 파는 할머니가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나 아기 몸에 아토피가 나는 가운데 젖을 먹여야 하는 옆지기는 길에서 파는 엿을 먹을 수 없습니다. 못 들은 척 지나가면서 미안합니다.

 저 멀리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옵니다. 아기 업고 뛰기에는 벅차기에 건널목에 미처 안 닿았음에도 찻길을 건넙니다. 우리처럼 건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아 그 김에 섞입니다. 옆지기는 그리 건너지 말자고 했지만, 차 싱싱 다니는 길에서 신호 기다리며 서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 업고 서 있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아기 무게가 조금씩 느껴집니다.


.. “사막의 어떤 게 당신을 그렇게 사로잡았어요?” 샤이다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어떤 게 나를 사로잡았냐고요? 높은 하늘과 넓은 땅,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 …… 고적한 생활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사랑도 느끼고 원망도 느끼고요. 뒤죽박죽 헷갈리네요. 에이! 나도 분명히 모르겠어요.” “만약 이 땅이 당신 고향이라면 어쩌겠어요?” “아마 당신처럼 간호를 배우지 않았을까요. 사실 …… 내 고향이 아닌 곳과 고향인 곳을 어떻게 가르겠어요?” ..  (108쪽)


 천천히 천천히 거닐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살아야 좋을지를 이야기 나눕니다. 가장 좋은 집이라면 도시집이 아닌 시골집인데, 우리가 도서관까지 함께 옮겨서 꾸릴 만한 살림집이 있을 시골이 어디일까는 쉽게 종잡지 못합니다. 강원도로, 지리산으로, 제주로, 익산으로, 음성으로, …… 아는 이들 있는 곳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지만, 아는 사람만 보고 옮길 살림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만 권에 이르는 책들을 즐거이 나눌 마을사람이 있는 터와 공장이나 고속도로 따위가 깃들지 않을 조용한 시골마을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저런 일과 책을 떠나,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생각한다면. 아이도 아이다운 삶과 생각을 지키며 어버이도 어버이다운 삶과 생각을 지키자면. 옳게 먹고 옳게 일하고 옳게 놀고 옳게 생각하고 옳게 이야기하며 옳게 어울리고 옳게 죽어 흙으로 돌아갈 나날을 헤아리면.


.. 우리는 결혼하면서 서로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을 뿐, 피차 무리한 요구나 집착은 없었다. 내가 호세를 선택한 것은 그에게 의지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평생 독신으로 살까 하는 걱정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건 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호세가 나를 원한 것도 밥하고 빨래해 주는 여자가 필요해서는 아니었고, 미인 아내를 원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바깥의 세탁소와 음식점은 값싸고 서비스도 좋았고, 지지배배 재잘대는 여자들은 집에 있는 이 사람보다 상냥했다. 그런 데 쓰는 돈을 다 합쳐도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비용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  (215쪽)


 한 시간 남짓 아기를 업고 걸으니 아기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아기를 업은 등판과 이마로 땀이 살짝 돋고 흐릅니다. 수봉공원 기슭 숭의동 8번지 골목집 사이를 걷습니다. 비어 있는 집이 많이 보이고, 동네는 무척 고즈넉합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우리가 깃들 만한 데가 있으려나. 인천 같은 도시에서도 가까이 산이 있기는 하다만, 이곳은 우리 식구가 머물 만한 집자리가 되어 줄 수 있으려나.

 인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쉼터에서 잠깐 숨을 돌립니다. 옆지기는 걷기도 벅차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택시를 타야겠습니다. 잠든 아기까지 세 식구는 말없이 해지는 시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온통 시멘트로 올린 집과 아파트만 빼곡한 시내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꽃그릇이 있고, 손바닥 만한 땅뙈기에 심어 가꾸는 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인천 도시행정이 마련한 조각숲이나 조각공원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도시란 데가 워낙 나무며 흙이며 풀이며 꽃이며 없는 데라고 하지만. 산이며 냇물이며 바다며 파란하늘이며 볼 수 없는 곳이라 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쓸쓸합니다. 더없이 서늘합니다. 그지없이 팍팍합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푸나무 없이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없다’고 배우는데. ‘비료나 풀약에 더럽혀지지 않은 흙이 없으면 사람이 먹고살 수 없다’고 배우는데.

 아니, 이제는 이렇게 안 배우는지 모르지요. 푸나무 없이도 공기청정기를 쓰고, 튼튼한 흙 없이도 식품공장에서 먹을거리를 쏟아내니까요. 돈을 많이 벌면 걱정없이 맑은 물이며 시원하거나 따뜻한 바람이며 배부른 밥이나 빠른 차나 큰 집이나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다고 배우는지 모르지요.


.. 창녀, 내 눈에 비친 이 여인에겐 직업도 도덕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감각하고 습관적인 일이었다. “사실 여기서 기숙사를 청소하는 사람도 매월 2만 페세타는 벌 수 있어요.” 나는 부자연스럽게 한마디 했다. “2만 페세타? 청소하고 침대 정리하고 빨래하고, 죽도록 고생하고 고작 2만 세페타를 버는 일을 누가 해요!” 그녀는 깔보듯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야말로 고생스러워 보이는데요.” 나는 느릿느릿 말했다. “하하하!” ..  (30쪽)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문을 연 부동산집은 없습니다. 유리창에 붙인 쪽글을 읽습니다. 보증금 100에 달삯 10 받는 집이 없을까 생각하며 눈알을 굴립니다. 200에 15나 100에 20짜리 집은 몇 군데 보입니다.

 둘레에서 우리보고 ‘나라에서 해 준다는 전세금 대출 지원’을 받으라며 따뜻한 말씨로 알려주곤 합니다. ‘6000을 받아 다달이 25만 원씩 이자로 내고 여섯 해 뒤에 갚으면 되고, 못 갚아도 다시 이으면 된다’면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이 돈으로 아파트에 들어가서 지내야 하지 않느냐고들 합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며 ‘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립니다만, 참말 아이를 생각하는 길이라면 물과 바람과 흙이 맑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나라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걱정한다면 ‘전세금 대출 이자’를 받으려 하기보다, 전세금와 이자돈 없이도 걱정과 근심을 털어내고 지낼 만한 대책을 내놓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보다는,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개발바람에 속썩이지 않는 가운데 맑은 숨과 물을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쇠고기를 먹을 자유’를 생각해 주시면서 나라밖에서 이러한 고기를 들여와 주셔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맑고 튼튼한 농사로 일군 좋은 푸성귀와 곡식을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먼저 생각해 주셔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전에는 다들 휘파람 말을 할 줄 알아서 멀리서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외지의 경찰이 들어와서 자기네가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휘파람 말을 못 쓰게 했어요.” “당신들이 휘파람 말로 그들을 속여 넘겼군요.” 내 말에 그들은 깔깔거리며 말했다. “당연하죠. 경찰이 범인을 잡으러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이 인적 드문 골짜기에 숨어서 계속 휘파람 말로 경찰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준 거죠. 그러니 어떻게 범인을 잡겠어요.” 가게 주인이 말했다. “젊은이들이 휘파람 말을 배우려 들지 않아서 세계에서 유일한 휘파람 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요. 오직 우리 섬에만 있는 말인데. 이렇게 섬세한 휘파람 말이 사라지다니 정말 안타깝죠!” ..  (169쪽)


 택시를 타고 우리 집 있는 동네로 돌아옵니다. 집 가까이에서 내립니다. 잠에서 깬 아기를 품에 안고 걷는데, 옆지기가 “엄마나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고 싶다”고 혼자말처럼 말합니다. 열흘쯤 푸성귀를 빻아 우린 물하고 김하고 능금 몇 쪽에다가 콩밥 몇 숟갈만 먹고 지낸 터라, 궁금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겠지요. 적게 먹으니 속은 홀가분하다는데, 아기한테 젖을 물려야 하고 날마다 씨름을 해야 하니 고달프기도 할 테고요.

 집에 거의 다 와서 발걸음을 돌립니다. 동네 밥집으로 갑니다. 집밥이 생각날 때면 가끔 들르는 곳입니다. 밥 한 상과 오징어데침을 시키고, 막걸리 반 주전자도 시킵니다. 밥집 할머니가 막걸리 안주로 먼저 내어준 김치 한 접시를 먹는 옆지기는 아주 맛있다며, 이런 집김치를 먹고 싶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밥집에서 ‘백반’을 먹어 볼 일이 거의 없는 옆지기는, 밥집 할머니가 차려 주는 반찬이 아주 많다면서,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느냐 묻습니다. 그러나 백반은 으레 이처럼 차려주는걸요. 아기는 잠깐 엄마젖을 물다가 그만두고, 밥집에 있는 다른 손님과 할매 할배한테 눈웃음을 칩니다. 엄마와 아빠는 반찬그릇을 모두 깨끗하게 비웁니다. 속이 든든해진 옆지기는 시원한 게 당긴다고 합니다. 얼음과자 사러 구멍가게로 찾아갑니다. 저는 제 몫으로 보리술 한 병을 삽니다.

 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기 양말 한 짝이 없습니다. 오는 길에 흘린 듯합니다. 구멍가게까지 오던 길을 거스릅니다. 동사무소 앞 골목 네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양말을 줍고 아기 발 한쪽을 담요로 더 똘똘 감싸며 걷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옆지기는 우리가 도시에서 더 살려면 다른 동네로 가서 이웃 하나 없는 데에 있기보다 지금 이 동네에서 찾아야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낫다고 느낍니다. 얼른 새 살림집을 찾아 옮기고, 옆지기 다른 피붙이들이 살고 있는 용현동이며 포천이며 거창이며 나들이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싼마오, 이리 와 봐.” 호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꼬치를 내려놓고 따라갔다. “저 아이는 노예야.” 호세는 아이가 듣지 못하게 나지막이 말했다. 나느 깜짝 놀라 입을 가리고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아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노예라니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아리에게 차갑게 물었다. “그들은 대대손손 노예예요.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흑인의 얼굴에 씌어 있었나요? 나는 노예라고?” 나는 아리의 갈색 얼굴을 들여다보며 추궁했다. “당연히 아니죠. 잡아 온 거예요. 사막에 사는 흑인을 보면 잡아다 때려서 기절시키고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달 간 밧줄로 묶어 놔요. 온 식구를 잡아 오면 더더욱 도망칠 수가 없죠. 이렇게 대대로 내려오면서 재산이 된 거예요. 지금은 사고팔 수도 있어요.” 내 불편한 기색을 보고 아리는 곧바로 덧붙였다. “우리는 노예를 학대하지 않아요. 저 아이는 저녁에 부모가 있는 천막으로 돌아간다고요, 마을 밖에 있는. 아주 행복한 거죠. 날마다 집에 가는데.” ..  (37∼38쪽)


 아기 얼굴을 씻기고 풀물을 바릅니다. 젖을 물려 재웁니다. 그러고 우리 두 식구는 인터넷을 켜고 ‘미디엄’이라는 미국 연속극 5부를 챙겨 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5부 다섯째를 보니, ‘피 안 섞인’ 손녀 때문에 ‘피 섞인’ 딸을 죽이고 마는 할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 섞인 딸은 어떤 까닭에서인지 간호사로 일하던 때 한 번 사람을 죽이고(자기가 혼인하려는 남자 아내), 나중에는 그 집 어린 딸아이도 얼음과자에 약을 타서 차츰차츰 말려죽이려 합니다. 할머니는 이를 알아채고는 딸아이를 불러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외려 당신이 딸아이를 죽이고 땅속에 파묻는데, 주인공은 이를 알게 되지만 끝내 할머니를 고발하지 못합니다. 주인공 또한 세 딸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슬픔과 아픔이 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해서가 아니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셈틀을 끄고 잠든 아기를 꽁꽁 싸매고 함께 자리에 누워 잠이 들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연속극 이야기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들 제 배속을 챙기면서 다른 이 삶을 밟거나 괴롭혀야 하는지, 왜 다른 이 삶을 끝장내면서 제 삶만 이으려고 하는지. 함께 살아갈 길은 그예 찾을 수 없는지, 서로 웃고 함께 울면서 어깨동무할 삶은 찾을 길이 없는지.


.. “외투를 입어요! 당신들에게 국립공원을 구경시켜 줘야지. 나는 수도 없이 다녀 봤다오.” 과연 높은 산 험준한 고개 속에 기개가 넘치고 비범한 소나무숲이 펼쳐졌다. 운전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차에 탄 시골 사람들은 아무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 역시 자기네가 사는 아름다운 땅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더없이 평온하고 정겨운 광경이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천만 년 전에도 천만 년 후에도, 이 들판은 이 모습 그대로 변치 않을 것만 같았다 ..  (173∼174쪽)


 길지 않은 밤, 아기가 칭얼댈 때 틈틈이 깨는 가운데 꿈을 꿉니다. 아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꿈인데, 아침에 일어나면서 영 개운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둘레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하나도 달갑지 않을 뿐더러, 달가울 만한 목소리나 손길을 느끼기 어려운 탓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는 해도 아기가 좀더 자라서 어느 만큼 자기 어릴 때를 떠올릴 수 있을 무렵까지는 이곳 인천이라는 데에서 터잡으면서 살아내고 싶은데, 얼마나 살아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도시 아닌 시골에서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고 있으나, 도시라는 데에서도 지금 우리 동네 같은 골목길 같은 데는, 여느 도시 삶자락과는 사뭇 다름을 느끼게 한 다음 도시를 떠나고 싶은데, 아기가 살짝 철이 들 무렵까지 얼마나 인천 골목길이 골목길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낮은자리도 아닌 밑바닥자리에서 복닥복닥 치고받고 하여도 살가움을 나누고 있는 이 골목집 사람들 삶을, 모자라다기보다 아예 없는 가운데에도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나누는 사랑이 있는 이 골목동네 사람들 삶터를, 이 나라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이 끝내 모르게 되더라도 우리 아이가 이런 느낌을 살갗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어느 만큼 견디며 발붙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2)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가 살아온 이야기, 《흐느끼는 낙타》


 《사하라 이야기》에 이은 싼마오 님 두 번째 산문모음 《흐느끼는 낙타》를 읽습니다. 《사하라 이야기》를 읽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한 넋이라면 죽은 목숨이라고 여기고 있구나 싶은 싼마오 님 이야기책은 중국에서 스물여섯 권짜리 전집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몇 권쯤 더 옮겨질 수 있을까요.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언론매체에서는 하나도 안 다루어 주지만, 책 좋아하는 이들은 입소문으로 퍼뜨리고 나누면서 새로운 싼마오 님 문학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와 같은 흐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가게 될까요.


.. 그는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음료수를 조금 마시고 자기가 가져온 마른 빵을 먹었을 뿐, 다른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벙어리 노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일어나서 손짓을 했다. “화내지 말아요. 집에 가져가서 아내랑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안 먹었어요.” … 그는 내가 봉투에 음식을 담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보고 나는 울컥했다 … 사소한 음식을 얻고도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벙어리 노예는 자신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틀림없었다. 분명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 벙어리 노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기의 피부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는 또 미소를 지으며 자기의 가슴을 가리켰고, 새를 가리키며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로워요.” ..  (46, 50쪽)


 《사하라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싼마오 님이 남달리 사막을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산문모음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며, 싼마오 님은 사막뿐 아니라 섬도 사랑하네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도시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꺼려하지 않으나, 복닥이는 사람물결은 반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멀리멀리 떨어지고자 합니다. 전기제품을 쓰고 자동차를 몰지만 이런 물건을 쓰기도 할 뿐이지, 이런 물건에 매이지 않습니다. 아무런 물건 없이 얼마든지 살림을 꾸리고 어떠한 물질을 두 손에서 놓더라도 홀가분합니다.

 이웃사람은 모두 꺼리고 놀리고 들볶는 사막 노예한테 처음으로 말을 걸며 동무로 사귀는 싼마오요, 싼마오네 남편 호세입니다. 노예 몸을 자유롭지 못하고 얽어맨 이들은 한껏 자유를 누리는 듯하지만 외려 마음은 갇혀 있을 뿐이고, 몸이 갇혀 있어도 마음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노예한테 삶을 배우고 슬기를 듣는 싼마오요, 싼마오네 남편 호세입니다. 이 둘은 그 무엇으로도 서로를 옭매지 않는 가운데, 둘레 다른 사람을 옭매고픈 마음이 없는 한편, 사회나 나라가 사람을 옭매는 일을 거스릅니다.


.. 스페인 정부가 이곳(그란카나리아 섬)을 자유항으로 개방한 이후로 가전제품, 사진기, 시계 등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거리거리 가득 늘어섰다. 난잡한 도시는 꼭 홍콩 같은 분위기였고, 벌떼처럼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로 복잡하고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 대만 어업계의 대가 추 선생에게 그란카나리아 섬의 인상이 어떤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어선 일로 해마다 몇 번씩 이곳을 다녀갔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개성이 없어요. 아주 조잡하고.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  (183쪽)


 아무래도 싼마오며 호세며, 그리고 또다른 숱한 ‘싼마오와 호세’ 들은 저마다 다 다른 삶임을 깨닫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다르고 네가 다른 삶임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름을 아니까 껴안을 줄 압니다. 다름을 알기에 사랑할 줄 압니다. 다름을 알고 있으므로 어깨동무할 줄 압니다. 다름을 알려 하니 기꺼이 손길과 눈길을 내밉니다.

 다름을 모를 때 어깨동무를 못합니다. 다름을 모르는 가운데 사랑이란 없습니다. 다름을 모르면서 믿을 수 없고, 나눌 수 없으며,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다름을 모르니 막개발이 이루어지고, 다름을 짓밟으니 독재자가 일어서며, 다름을 내리누르니 군사쿠테타가 일어납니다.

 다름을 깨닫는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선물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깨달은 어른이라면 돈바라기 정치나 경제를 펼치지 않습니다. 다름을 깨달으려는 어른이라면 지식으로 권력을 세우지 않습니다.

 산 사람이 되고자 하니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산 넋이 되고자 하니 서로를 꾸밈없이 맞아들입니다. 죽은 사람이 되었기에 서로 똑같이 되려는 겨루기를 하면서 1등으로 올라설 꿈을 키웁니다. 죽은 넋이 되었기에 서로서로 겉치레와 겉꾸밈으로 뭔가 돋보이거나 남달리 보이려고 애쓰고 맙니다.


.. 낯선 곳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과 완전히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무례한 짓 같아서 사진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  (62쪽)


 자유를 사랑했기에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입니다. 평화를 사랑했기에 섬을 사랑한 싼마오입니다. 평등을 사랑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찾고 만나고 어울리며 스스로도 아름다워지고자 한 싼마오입니다. (4342.3.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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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09-03-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끔와서 읽고 갑니다
님 글 보면서 우리가족이 왠지 같이 생각이 들어서 흐흣
아무튼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숲노래 2009-03-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고맙습니다.
곰돌이 님 식구들
언제나 즐거우면서 씩씩하고 튼튼하시길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