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소동
전수일 지음 / 작가마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9 ― 돈바라기 삶이 ‘페놀소동’과 ‘경부운하’ 부른다
 : 전수일, 《페놀소동》



- 책이름 : 페놀소동
- 글 : 전수일
- 펴낸곳 : 작가마을 (2008.12.20.)
- 책값 : 1만 원



 (1) 물과 바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아버지가 자동차를 장만하신 뒤부터, 우리 집은 수돗물을 안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끌고 큰 물통 여럿을 차에 싣고는 약수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차에 물통 여럿 가득 채워 돌아오면, 4층에 있는 집까지 나르는 일은 형과 제 몫이었습니다. 이웃집들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데 우리 집만 아버지가 남달리 약수터 나들이를 하며 물을 떠와서는 큰소리로 우리를 부를라치면 이웃집 들을라 부끄러웠습니다. 다들 먹는 수돗물 똑같이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기름 쓰고 시간 버리면서 약수터까지 다녀온다고 그러시는지 하면서.


.. “이 기사는 냄새가 느껴집니까?”흠, 흠, 조금 느껴지는 것도 같고,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머금었던 수돗물을 뱉어내며 이준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수돗물이 멈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정상기나 이준성, 두 사람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수돗물이지만 정지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자 정수계장 마규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정상기의 뇌리에 맴돌던 막연한 불안감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하여 현실화되어 갔다. “정 기사, 수돗물은 그냥 묵어도 되는 기가?” “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수돗물을 날로 먹는 사람도 없으니까.” ..  (21쪽)


 몸을 더 튼튼하게 지키려면 수돗물은 안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었을 테지만, 이러는 한편으로 ‘자가용 없고 수돗물만 마시는 다른 집 앞에서 자랑하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줄곧 약수터 물만 드셨고, 제금나와 사는 저는 홀로 살림을 꾸리는 동안 수돗물만 마십니다.

 그러나 수돗물을 마시면서 이 수돗물이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흘러서 저절로 깨끗해지는 물이 아니라 약품으로 다루어 맑게 보이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나라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물 맑거나 산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산골 깊숙하게 들어가면 골짜기 물을 마실 수 있고,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마시기도 하지만, 돈과 집이 없는 여느 사람한테는 꿈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마시는 셈이라 할 텐데,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뽑아올리느라 이 나라 땅이 푹 꺼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울릉도 앞바다 밑에서 퍼올린다는 물이나 제주섬에서 길어 온다는 물도 걱정스럽습니다. 제주는 물이 모자란 땅인데 그렇게 모자란 물을 자꾸자꾸 바깥으로 빼내어 돈벌이를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 페놀유출사건을 규탄하는 아우성이 사라질 무렵 또다시 구미의 선도전자에서 페놀이 유출된다고 보도되었다. 유출 이유는 페놀 저장탱크 수리와 선도전자가 독점 생산하는 제품이 중단되면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것이다. 낙동강가의 주민들은 또다시 아우성을 쳤다. “이 기사,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선도전자가 독점하는 제품을 생산하드라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상기가 흥분하자 이준성도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서울사람들은 낙동강 물 안 묵는다 이거지요.” 정상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낙동강이 하수처리장입니까? 저장탱크가 하나만 있으란 법도 없고, 여의치 않으면 희석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선도전자는 높은 데하고 모두 이야기됐으니까 걱정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지예, 국가 자체가 환경에 대한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  (57쪽)


 어릴 적, 1980년대 첫머리에도 인천 앞바다는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쓰레기물 때문에 그리 안 맑았습니다. 그러나 갯가에서 망둥이를 낚거나 쏘가리를 낚곤 했고, 영종도 갯벌은 꽤 깨끗했습니다. 오늘날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에다가 새로 짓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한테 영종도는 섬을 한 바퀴 빙 걸어서 돌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기도 하다가 아무 바닷가집에나 “계셔요, 물 좀 얻어 마실게요!” 하고 소리지르곤 들어가서 무자위를 길어 등목을 하고 물 얻어마시고 하던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영종섬에 두루 걸쳐 있던 넓디넓은 소금밭.

 중학교에 다니던 1990년까지, 아버지는 장봉섬 작은 분교에서 교사로 일했기에, 어머니와 형과 저는 방학 때면 함께 섬에 들어가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쯤 주말을 잡아 섬 나들이를 했습니다(어머니는 주마다). 이때면,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배를 타고 들어간 다음, 섬 버스를 잡아타고 삼목도까지 갑니다. 그런 뒤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들어갔는데, 영종도에서 막 배에 내려 섬 버스를 타고 사십 분 남짓 구비구비 섬을 구석구석 돌아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금밭에 또 소금밭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진으로 이런 모습을 찍는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버스에서 운전사 자리 바로 옆에 겨우 낑겨 타며 버스 앞창으로 내다보는 마을 모습은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두 사람이 주위를 살펴도 하수구와 연결된 옥계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물 흐르는 소리는 들렸다 … 어젯밤의 소나기로 옥계천에는 황토물이 고르게 밀려오고 고물상 뒤편으로 하수관 두 개가 매복호의 총구처럼 두 사람을 겨누고 있다. “야아, 절묘하네, 절묘해. 저런 곳에 하수구를,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살인을 위한 총구 같아.” 이웅찬의 감탄에 정상기의 흥분된 목소리가 강물처럼 쏟아졌다. “오폐수의 무단방류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살인행위지. 이 나쁜 놈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비만 오면 무단방류를 해. 예상 강수량이 삼사십 밀리미터 이상 되면 틀림없이 폐수를 방류하지. 그날도 주말에다 일기예보에 한 삼 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니까 미리 계산해서 마음 놓고 페놀을 내뿜은기라. 그런데 이튿날 비가 그치는 바람에 들통이 났지. 이 나쁜 놈들, 그래도 물어 보면 저거만 재수가 없어 들켰다 그럴끼라.” ..  (152∼153쪽)


 1993년 어느 날, 원자력발전소 쓰레기(핵폐기물)를 모으는 곳을 안면섬에 짓겠다고 하여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진 적 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94년에 이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인천 앞바다에 있는 ‘굴업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짓겠다는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천이란, 온갖 화학공장 제철소 제강소 유리공장을 비롯해 쓰레기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공장이 꾸역꾸역 지어져도 시민들 입 하나 벙긋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혐오시설’이라 일컫는 시설을 지어도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어 내쫓길 뿐 군소리를 못한 곳이었거든요. 그리 많지 않은 안면섬 주민은 저렇게 싸워서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못 들이게 막았다지만, 인천이라는 데는 막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었고, 더구나 고작 일곱 사람만 살던 작은 섬 굴업도를 후보지로 삼았다고 했으니.

 그때 일은 지금 와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천을 모르고 인천 앞바다를 모르는 다른 곳 사람들은 ‘인천 앞바다는 어차피 똥물인데 그깟 핵폐기물쯤이야 인천 앞바다에 있는들 무슨 대수냐?’ 하고들 대꾸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진보니 사회운동이니 환경이니 이야기하는 선배나 동기 들도 하나같이 시큰둥해 했고, ‘거긴 워낙 지저분한데다가 외진 곳이니 괜찮지 않냐?’ 하는 대꾸뿐이었습니다. 인천에 사는 동무는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겠니? 뭐, 인천은 옛날부터 그랬잖아.’ 하면서 싸우기 앞서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으로 겪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나마 아버지가 장봉섬 같은 데에서 여러 해 일한 탓에, 그 장봉섬 물이 ‘인천 앞바다임에도 얼마나 맑고 파랗던가’를 잘 알았습니다. 굵기가 팔뚝 만한 도라지를 섬에 있는 얕은 산에 올라 캘 수 있었고, 섬에 사는 아이들은(그땐 저도 아이였으나 저보다 어렸던 아이) 맨손으로 갯벌에서 낙지를 잡았으며, 섬에서 기르는 김은 ‘진짜 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일 돕는 섬 아저씨는 ‘우리 선생님네 아이들이 왔으니 아주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호미로 땅을 파더니 구더기를 잡아서 ‘이거 드셔 보셔요. 얼마나 맛이 좋고 몸에 좋은지 몰라요’ 하고 건네주었습니다. 아저씨가 주시니 먹기는 먹어야겠지만 차마 못 먹었는데, 저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몸이니 꺼렸을 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하얀 구더기는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섬에서는 참말 ‘귀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봉섬은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뭍사람한테 ‘여름철 피서지’로 소문이 나게 되었고, 관광객이 수십 수백 수천 사람 몰려오면서 깨끗하던 물과 모래밭과 산과 나무는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잔뜩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분교살이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고 몇 해 뒤 다시 장봉섬 옹진분교를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본 분교는 ‘여름철 피서객과 교회 젊은이들이 깨뜨린 유리창과 더럽힌 건물과 운동장과 ……’ 차마 더 돌아볼 수 없을 노릇이었습니다.


.. 정상기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일과를 마치고 세 단체(정수장 공무원, 페놀유출 회사 직원, 시민단체)의 저녁식사 모임에 앞서 정상기는 수도과에서 여비를 받았다. 특별하게 지급될 조건도 아닌 관내 출장업무인데 많은 돈이 봉투에 들어 있었고 신길태의 여비도 똑같았다. 페놀 피해 조사를 실시하는 날 저녁회식은 언제나 선도그룹에서 주최하였다. 밥과 술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지는 순서였다 …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선도그룹에서 택시비가 지급되었다. 일인당 이만 원이었다. 마산의 끝자락 댓거리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택시요금은 삼천 원이 채 못 나온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거절 표시에도 이산두의 끈질긴 노력으로 택시비는 빠짐없이 전달되었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고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의기양앙하게 돌아온 이산두는 절도 있는 손동작을 보이며 소리쳤다. “돈 앞에는 장사 없어요.” ..  (164∼168쪽)


 나고 자란 곳이지만 새파랗게 젊던 때는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곳인 인천에서 보고 듣고 겪는 온갖 모습은 예나 이제나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걸어서 오간 학교길에는 늘 제일제당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제일제당 옆으로는 개천 하나가 바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개천은 늘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하여, 이 길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길에 이 길로 안 가고 돌아가면 곱배기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자면 ‘옐로우하우스’ 앞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또다른 길은 연안부두에서 인천제철이니 유리공장이나 제재소니 하는 월미도공단으로 큰짐 실어나르는 산업도로 옆이라서 이쪽으로는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마찬가지였기에, 공장에서 내뿜는 온갖 빛깔 쓰레기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다가는, 코를 막고 몇 초 동안 숨을 안 쉬고 이 더러운 개천 옆을 지나갈 수 있는가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해 보면 늘 미처 다 지나가지 못하고 캑캑 재채기가 나와 더 많이 구린 냄새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비라도 온 날은 냄새뿐 아니라 질척거림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제일제당을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나가야 하는 연탄공장에서 까만 연탄재를 맡으며 몸을 털곤 했습니다.

 딱히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환경 지키기’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991년에 낙동강에 페놀이 흘러들어 크게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때 속으로 피식 웃으며, ‘뭐야?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는 허구헌날 저렇게 코를 찌르는 쓰레기물이 흐르고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연탄공장과 식품공장 옆에 있는 학교 본 적 있어?’ 하는 생각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화학공장과 원목처리장이 학교 둘레에 있어서 ‘우리는 화학공장 옆에서 온갖 매캐한 연기 다 마시고 사는데 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 흐르던 쓰레기물은 ‘정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과 섞이지 않’고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 인천 앞에 있는 섬 갯벌을 더럽히고 바다에 사는 목숨붙이를 죽일’ 뿐이어서 이야기거리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싶은데, 바다로 흘러든다고 해서 우리가 안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이 물을 마시고 우리는 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 똑같이 ‘쓰레기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꼴’입니다. 인천 앞바다로 흘러나가는 쓰레기물은 연평섬 둘레 게한테도 조기한테도 갈치한테도 실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이 물이 흘러흘러 남쪽으로 내려가 수많은 또다른 물고기와 바다목숨한테도 영향을 끼칩니다.


 (2) 소설 《페놀소동》과 우리 삶


 소설 《페놀소동》을 읽습니다. 금세 읽어냅니다. 소설을 펴내 준 출판사에서 교정교열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뿐 아니라 문장부호 잘못된 곳이 참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릴 만큼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글쓴이 전수일 님은 문학쟁이가 아니라 아직 글 여밈새는 어수룩한 곳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수룩함이야 이분이 처음으로 내놓은 문학작품인 만큼 앞으로 얼마든지 탈바꿈하면서 한결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전수일 님 당신이 몸소 겪고 치러낸 ‘페놀소동’ 이야기 속내로 빠져듭니다.


.. 한국 같으면 복개하여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실적을 쌓았을 (일본 오사카) 시내 중심가 하천에서 푸른 물이 폭포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상큼한 물 냄새까지 솟아올랐다. 마산의 하천이라면 쥐새끼가 먹이를 찾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자리에 버섯 모양의 하얀색 기구가 촘촘히 장치되어 있다. “저기 뭐이고?” 마규현이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서 소리쳤다. “소형 폭기조 같은데?” … 더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개되는 하천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코를 박고 누워 있다. 정상기는 자기도 몰래 얼굴이 찌부러졌다. 어릴 적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심 하천은 이제 이룰 수 없는 우리의 꿈이 되는가? 무산보다 더 복잡하고 현란한 오사카의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머리속에 울려나온다. 오사카의 도심 하천을 넋 빠지게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에 정상기는 짜증이 났다 ..  (127, 173∼174쪽)


 책을 덮으면서 일본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님이 쓴 《소설 복합오염》이 떠오릅니다. 일본사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 쓴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가 떠오르고,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가 떠오릅니다. 세 가지 모두 일본에서뿐 아니라 일본 밖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환경문학’이라고 하는데, 소설 《페놀소동》은 이에 못 미치지만, 곰곰이 읽고 생각하고 되짚을 우리 삶이 아니냐 싶습니다.

 문득, 일본은 일본대로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치르고 이겨내면서 새로운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구나 싶은 한편, 우리는 우리대로 수없이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있지만, 한바탕 ‘소동’으로만 그치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문학으로 꽃피우지 못하는가 싶습니다. 소동이 터지는 그때부터 얼마 동안 세상을 뒤흔드는, 그러니까 바람 따라 지나가는 이야기거리로만 그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정 기사님, 우리 실장님은 맑은 물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  (114쪽)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 미국이든 러시아든, 또 유럽이든 아시아든, 환경을 업신여기면서 일어나는 모든 아픔은 돈 때문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돈 앞에 다른 모두를 눈감은 매무새 때문에, 또한 돈을 휘두르는 이 앞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똑같은 일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원진병과 온산병은 똑같고, 온산병과 페놀오염은 똑같으며, 페놀오염과 중금속오염은 똑같습니다. 중금속오염은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수은 문제와 똑같고, 예방주사 수은은 식품회사에서 ‘이제는 MSG를 더는 안 쓴다’고 밝히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느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 “정 기사님, 지금도 낙동강 원수에서 페놀이 잡힙니다. 비가 오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  (201쪽)


 참말로 우리는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애써 번 돈은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쓰고 있을까요. 돈을 버는 동안, 또 돈을 쓰는 동안 우리 삶터는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땀흘려 일을 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동안 우리 터전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뚫으려는 물길은, 나라를 살리는 물길이 아니라 나라를 집어삼키는 돈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 삶을 살찌우는 돈푼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 돈벌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만 쌓아 놓으면서 물길을 파고 있음을 꿰뚫어보았기에 거침없이 돈바라기 물길을 뚫으려고 하며, 이런 물길트기를 손뼉치며 반기는 사람도 꽤 많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2.2.14.흙.ㅎㄲㅅㄱ)


글쓴이 전수일 님은
1955년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고, 영남대학교에서 공과대학을 마친 뒤 1983년부터 남해군 보건소에서 일하다가 1987년에는 마신시 칠서수자원관리사무소 실험실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청수환경’ 대표로 일했다. 소설 《페놀소동》은 전수일 님이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환경 문제에 등돌리고 있는 잘잘못을 파헤치면서 고발하고픈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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