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작가의 상수리 나무집 사람들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공선옥 지음, 이형진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81 ― 아픔을 먹고 사랑으로 나눈 ‘정신대’ 할머니
 : 공선옥, 《상수리나무집 사람들》



- 책이름 : 상수리나무집 사람들
- 글 : 공선옥
- 그림 : 이형진
- 펴낸곳 : 어린이중앙 (2005.5.31.)
- 책값 : 8500원



 (1) 아픔을 먹고 살아가는 할머님들


 한국땅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으로 살았던, 그러나 한국 여자였기에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국 정부에 등록한 ‘성노예 피해자’는 이백서른네 분이라 하고, 이 가운데 백 사람이 채 못 되게 살아 있다고 합니다. 성노예 피해자는 공식 집계로 잡히지 않았고, 또 나라에서 소매 걷고 찾아나서거나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는 강제징용자와 강제징병자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원폭피해자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토지조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빼앗긴 사람들 아픔을 고이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농사꾼들 쌀을 빼앗아갈 때 굶어죽거나 굶주린 사람들 슬픔을 두루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또 그 만주와 일본에서 다른 데로 보내진 사람들을 하나도 어루만지지 않았습니다.

 참을 숨기고 거짓을 드러낸다는 새 교과서가 나오는 까닭은 먼 데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우리가 몸소 겪은 아픔과 슬픔을 아픔과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껴안지 못했는데, 어찌 참다운 교과서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예 거짓스런 교과서가 나오고 아이들한테는 거짓된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가르치게 되며, 아이들 스스로 참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알아보고자 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해 보았자, 참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일러 줄 마땅한 책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도서관 가운데 책을 알뜰히 갖춘 곳이 드물 뿐더러, 이런 도서관까지 갈 겨를조차 없이 입시에 매이고 돈벌이 회사일에 얽히는 우리들입니다. 학교를 다니건 학교를 안 다니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발자국과 참모습을 알고 느끼고 새기면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 옥주가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을 때, 길거리로 젊은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관계를 끊고 살았던 일본하고 다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협정을 맺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 일본에서 돈을 받았다고 했다. 소문에는 그 돈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많은 조선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서 일을 시키고,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해서 주는 돈이라고도 했다. 일본에서 받은 돈 중에 얼마를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을 치르다가 죽었거나 다친 사람들을 조사하여 위로비로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도 정신대에 끌려갔던 여자들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옥주는 동사무소에 가서 물었다. “혹시 정신대에 끌려갔다가 온 사람들에게도 나라에서 돈을 주나요?” 동사무소 사람은 옥주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말했다. “아줌마가 정신대 갔다 왔소?” “…….” 옥주는 대답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동사무소 사람이 마치 나무라듯이 물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조사를 한다 해도 정신대 갔다 왔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소? 정신대는 솔직히 일본 군인의 노리개가 아니었소. 누가 알까 부끄럽지도 않소?” 옥주는 그만 동사무소 사람을 때려 주고 싶었다. 옥주가 뭘 잘못했다고 부끄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옥주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일본 군인한테 속아서 따라간 것뿐이다 … 동사무소 사람은 제 어머니나, 누나나, 여동생이나, 딸이 정신대로 끌려갔어도 노리개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  (42∼45쪽)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1982∼1993년 사이에, 우리한테 역사를 가르쳐 준 분들 가운데 ‘정신대’든 ‘종군위안부’든 ‘성노예’든 한두 마디라도 올바르게 일러 주면서 깨닫도록 했던 목소리가 얼마나 있었는지.

 글쎄, 저로서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고 떠올립니다. 스쳐 지나가는 말마디로는 들은 적 있으나 ‘시험문제에 안 나오는 이야기’라서 그랬는지, 또 우리가 그리 재미있어 하지 않을(?) 듯하다고 그랬는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운 적은 없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그러니까 도서관에서도 못 찾고 인천에서 크고 책 많다고 내로라하는 새책방 어디에서도 정신대 할머니를 다룬 책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비로소 정신대 할머니들 다룬 책이 흘러나왔을 때 알아보고 깜짝 놀랐고, 그 뒤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알아가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부터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는 소설에 이르기까지, 또 《정신대실록》부터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까지, 또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부터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까지, 또 《일본군 군대위안부》부터 《위안부 리포트》까지, 샅샅이 찾고 보면 고작 열 권 남짓밖에 되지 않는 ‘성노예 피해 여성’ 이야기를 다룬 책들입니다. 제 깜냥껏 찾고 살피며 읽고 간직하고 있는 책으로, 이밖에 《증언, 여자 정신대 8만 명의 고찰》(센다 가꼬오), 《위안부》(조지 힉스), 《실록 여자정신대 그 진상》(한백흥), 《자료집, 종군위안부》(吉見義明), 《강제징병자와 종군위안부의 증언》(강용권), 《봉선화에 부치는 고백》(히노 순조, 쯔즈끼 쯔토무), 《종군위안부》(千田夏光), 《나, 내일 데모 간데이》(혜진), 《할머니 군위안부가 뭐예요?》(한국정신대연구소), 《종군위안부》(이토 다카시), 《종군위안부》(노라 옥자 켈러) 들이 있습니다.


.. 옥주는 완전히 정신을 놓아 버렸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몸을 닥치는 대로 두들겼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옥주는 안다. 그것은 분노 때문이라는 것을. 어린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나쁘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 옥주는 그런 사람을 보면 분노가 일었다 ..  (92쪽)


 우리 스스로 돌아보자니 너무 괴로워 묻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되새기자니 참으로 부끄러워 덮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알아보자니 자료가 턱없이 모자라 두 손 드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가르치자니 성교육조차 제대로 안 되는 가운데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를 알지 못하는 탓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태일을 추모하고 떠올리듯, 백범을 떠올리고 되새기듯, 우리들은 우리 땅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한 가슴을 읽고 슬퍼한 마음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않을 수 있어야 우리 세상과 삶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잊으면서 잘못되거나 뒤틀린 쪽으로 마음이 끌리게 되고, 되새길 일을 되새기지 않으면서 엉뚱하거나 비뚤어진 샛길로 눈길이 쏠리게 되지 않느냐 싶어요.


.. “히로시마랍니다. 원자탄이 떨어졌지요. 차라리 그때 다른 사람처럼 죽어 버렸다면…….” 옥주는 혹시 아낙의 입에서 정신대라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원자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라고 했다. 정신대 갔다 온 사람이건 원자탄을 맞은 사람이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정신대 갔다 온 옥주와 아낙이 다른 건, 그래도 이 아낙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비록 건강하지 못한 아이라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본 아낙이 옥주는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123쪽)


 정신대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군대위안부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때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노예란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날 이 나라 우리들과 이웃들 이야기입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내 이웃과 동무가 겪은 일이고, 내 이웃과 동무가 아니라면 내 식구와 살붙이가 겪은 일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일어나고 우리 옆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못하던 때 어이없이 짓밟히면서 겪어야 한 일입니다.


.. “팔자도 내림이라, 듣자 하니 떡장수 할멈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하더니 그 딸은 또 미군 위안부라. 모녀가 팔자도 기구하네.” 그러면서 사람들은 또다시 왁자하게 웃어댔다. 시장 사람들은 영희가 미군 부대 여자라서 더럽다고 한다. 한국사람과 다른 새까만 아이를 낳아서 영희는 사람들에게 더 손가락질을 받는다. 옥주도 안다. 영희가 말 안 해도 옥주는 이미 영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다 안다. 영희가 미군 부대 여자였다는 것을 옥주도 알고 용화도 알고 길수도 안다. 알아도 모른 척했다. 아니, 아니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영희가 왜 더러운가. 영희는 절대로 남한테 못살게 굴거나, 남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남을 욕하거나, 남을 속여먹거나 하지 않았다. 영희는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송희를 낳았고, 송이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송이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  (139∼140쪽)


 한미자유무역협정은 하루아침에 터져나오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나 4대 강 정비라는 토목일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한다는 역사왜곡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저지르는 역사왜곡은 몇몇 사람 손으로 일으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지지 않은 일이란 없으며, 얽히지 않은 일이란 없습니다.

 성노예 피해자를 지켜 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원폭피해자 1세뿐 아니라 피해 2세와 3세도 끌어안지 못합니다. 원폭피해자를 끌어안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재일조선인과 재러조선인과 재중조선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재외국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는 이 나라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를 돌보지 못하며, 이주노동자를 돌보지 못하는 나라는 노동자를 보살피지 못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 보금자리를 흔들리게 합니다.

 나라를 일구는 노동자(와 농사꾼 모두)를 땀흘리는 보람으로 갚음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고,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지 않는 마당에 정치가 정치답거나 경제가 경제다울 리 없습니다. 정치가 정치답지 않은데 신문이 신문다울 턱 없으며, 방송이 방송다울 턱 없습니다. 신문방송이 옳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가운데 사람 삶터에다가 자연 삶터는 제다움을 잃고 무너지게 되고, 사람과 자연이 사람 그대로 자연 그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판에 책이 책다울 바탕은 서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성노예 피해 여성 이야기를 살피지 못하는 뿌리는, 또 이와 같은 이야기책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바탕은, 또한 이런 책이 가까스로 한두 권 나와도 거의 알려지지 못할 뿐더러 읽히지도 못하는 흐름은, 오늘날 우리 나라를 아주 단단히 휘어감고 있습니다. 정신대 할머님들이 850번째 수요집회를 넘기고 900번째 수요집회를 넘기며 1000번째 수요집회에 이르도록 목숨을 다부지게 이어나가면서 목소리를 낸다 하여도, 우리 사회 틀거리는 이분들과 우리들 모든 밑바닥 사람들 목소리를 귀담아듣거나 받아들일 만한 매무새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이런 매무새를 갖추고자 애쓰지 않습니다.


 (2) 어린이책으로 읽는 ‘정신대 할머니’ 이야기


 소설쓰는 공선옥 님이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책 하나 써냈습니다. 써낸 지 벌써 네 해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는 아픔이란 아픔은 빠짐없이 온몸으로 겪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상수리나무집 이야기입니다.

 상수리나무집 임자는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된 점쟁이 할머니입니다. 점쟁이 할머니는 참으로 오랫동안 혼자 차려 먹는 밥상이 외로워, 자기마냥 외로운 정신대 할머니인 옥주 할머니를 받아들입니다. 점쟁이 할머니와 정신대 할머니 두 분은, 아프고 힘든 나날을 함께 겪어내다가 자기들과는 사뭇 다른 아픔을 안고 살던 장님 아버지와 어린아이를 받아들이고, 또 떠돌이 개를 받아들인 다음, 양공주 노릇을 했던 아줌마와 살갗 까만 어린아이를 마지막으로 받아들입니다.


.. 아이 엄마는 마음이 많이 다쳐서 이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다친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다친 사람 스스로 열기 전에는, 다친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다른 사람은 그저 도와줄 수 있을 뿐 ..  (67쪽)


 있이 살아도 모자란 판에 없이 살면서 밥숟가락 하나 더 얹으며 꾸리는 상수리나무집 살림살이입니다. 없이 사니 맨손으로 세상과 부딪히면서 저마다 다 다른 밥벌이를 제 깜냥껏 하는 가운데 서로서로 돕습니다. 이웃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고 손가락질이지만, 이런 손가락질은 ‘더는 흐르지 않는 눈물’로 삭이면서, 당신들보다 마음이 더 다친 또다른 이웃을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옆에 가까이 있으면 이웃이라 할 수는 있을 테지만, 눈물나는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없다면 이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상수리나무집’ 이웃이라는 사람들은 이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입니다.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 속여먹는 사람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고, 달삯을 너무 높게 올려받으려는 집임자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휙휙 던져 버리는 사람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고, 아는 체 모르는 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이웃을 사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옆집 사람한테 이웃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쇳덩어리로 되고 빈틈없는 열쇠로 잠긴 문을 빠꼼히 열고 승강기로 씽하고 내려가 자동차에 열쇠를 꽂고 부릉 하고 내달리면서 집과 일터, 또는 놀 곳으로 움직이는 거의 모든 우리들입니다. 승강기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까딱이기는 하겠지만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이름은 어찌 되며 나이는 얼마인지 식구는 누가 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서로서로 가슴에 품은 기쁨과 슬픔을 하나도 함께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서로 모르는 채 따로 떨어져 지내니 서로를 더 모르게 되고, 서로를 더 모르게 되니, 이웃사람 삶에도 눈길을 안 두고, 우리 둘레 사람 모두한테 눈길을 못 둡니다.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하건 말건, 정치꾼이 무슨 공약을 내놓다가 무슨 일을 하건 눈길을 안 보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시험문제가 어떤 지식을 다루고 있거나 말거나 마음을 안 씁니다. 그예 아이들이 시험점수 잘 받으면 그만이고, 그저 내 은행계좌에 일삯이 많이 들어오면 장땡입니다.


.. 일어나서 미음을 한 숟갈 떠먹으려는데, 눈에서 뭔가 핑글 돌면서 죽그릇 위에 투둑, 하고 떨어졌다. 눈물이다. 지금껏 마음껏 흘리고 싶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지금, 영희가 끓여 준 죽그릇에 투둑, 보석처럼 떨어지고 있다. 사실 옥주도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만들어 준 음식을 너무도 오랜만에 먹어 보는 것이다 … 어느새 영희는 울음을 멈추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옥주의 말에 수줍게 웃는 영희는 지난봄 처음 봤던 그 영희가 아니다. 옥주는 서서히 변하는 영희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갑자기 용기가 생긴다. 슬픈 사람에게는 오히려 슬픔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옥주는 생각했다. ‘내 얘기를 하면 영희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예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랬던 것처럼.’ ..  (107, 110쪽)


 우리 모양새를 돌아볼라치면,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은 퍽 지루하달지, 뭔 소리인지 모른달지, 구태여 이런 책까지 왜 읽어야 하느냘지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 이웃뿐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한테 생채기를 입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개나리는 개나리이고, 별이는 별이입니다. 잘한 일은 잘한 일이고 옳지 않은 일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지 않은 일이나, 돈을 많이 벌게 해 주면 할 만한 일이 되겠습니까. 옳지 않은 짓을 하는 사람이나, 얼굴이 잘생겼다든지 이름값이 높다든지 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 “별이야, 지금만 울고 나중에는 울지 마라. 별이가 울면 송이도 운단다.” “할머니, 내가 왜 우냐면요,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분해서 울어요.” “별이가 강해지면 분하지도 않단다. 별이는 강해져야 한다. 몸과 마음이 다 강해지면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괜찮단다. 저기 예쁜 개나리꽃이 피었구나. 개나리꽃이 예쁜 건 추운 겨울을 이겨내서 그렇단다. 강해지면 꽃처럼 예뻐진단다. 예쁜 것들은 모두 강하단다. 예쁜 사람을 보고 누가 뭐라고 하겠니. 개나리를 보고 아무리 개나리가 아니라고 해도 개나리는 개나리란다. 별이는 별이가 되어라.” “알았어요, 할머니.” ..  (173쪽)


 그런데 한 가지, 이야기책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을 읽으면서 아쉬움 한 가지가 걸립니다. 이야기 끝에, 상수리나무집이 헐리며 아파트가 새로 지어지는데, 상수리나무집에 살던 정신대 할머니와 ‘장님 아저씨와 양공주 아주머니네’가 따로따로 임대아파트를 얻어 이웃집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돼요. 그렇지만 참말 오늘날 우리네 임대아파트란 집이 이렇게 쉽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한테 군말없이 주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이제까지 고되고 고달프게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서 비로소 빛을 구경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면서도, 어쩐지 우리 세상살이하고는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초등학교 높은학년이나 중학생 나이임을 헤아린다면, 이렇게 살며시 웃음을 띠면서 끝을 맺는 일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자꾸자꾸 이야기 마무리가 아쉽고 허전하고 어딘가 바람이 피식 빠져 버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4342.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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