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폴 콜먼 지음, 마용운 옮김 / 그물코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2 ― ‘환경파괴’는 이명박 아닌 우리가 하고 있다
: 폴 콜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책이름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글쓴이 : 폴 콜먼
- 옮긴이 : 마용운
- 펴낸곳 : 그물코 (2008.8.20.)
- 책값 : 12000원
(1) 도시에서 듣는 소리
..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밤이고 낮이고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소리만 계속 들릴 것이며, 이곳 주민들은 평화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 (269쪽)
지난달(또는 지난해. 2008년이니까) 첫머리에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에 아기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며칠 머물며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만 하루이틀 길어지면서 ‘성탄절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고, ‘새해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으며, ‘아버님(장인 어른) 생일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습니다. 그렁저렁 지내는 사이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머물게 되었고, 저 혼자 인천과 일산을 오가면서 집살림을 꾸리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겨울에 집이 얼지 않게 보일러 돌리고 하면서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제, 옆지기 어머님이 차를 몰아 우리 식구를 인천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외곽순환도로와 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데, 창문을 닫아 놓고 있음에도 우리 차에서 나는 소리와 옆을 싱싱 달리는 차에서 나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참 시끄러웠습니다. 차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언론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 (208쪽)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옆사람과 이야기하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차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웃한 다른 손님들이 내는 소리가 몹시 크기 때문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면, 맞은편에서 건네는 말이 잘 안 들려서 애를 먹는데다가, 내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소리를 높여야 하니 괴롭습니다. 자가용이든 전철이든 버스이든, 길에 나와서 무슨 탈거리에 몸을 싣고 움직이는 삶이 이어지다 보면, 저절로 우리 목소리는 커지고 짜증이 묻어날밖에 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가만히 있어도 귀가 막히는 느낌입니다.
..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어디를 가든지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흥미로운 정경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골목에서 길을 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 (168쪽)
아기를 안고 옆지기와 함께 골목마실을 할 때면, 도시에서 그나마 귀가 뚫리면서 시원합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깊숙한 골목을 거닐 때에는 나즈막한 목소리로도 넉넉히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더러, 골목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살며시 들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 텔레비전 소리가 골목으로 흘러나오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보일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마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며, 마루를 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립니다. 많지 않아도 참새 소리를 듣고, 때에 따라서 어치와 박새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길고양이가 소리 없이 담과 지붕을 넘어다니며 먹이를 찾거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네 마실을 하는 가벼운 소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빨래줄에 걸린 채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 소리를 듣고,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소리를 듣습니다.
.. 2001년 11월 10일, 루마니아에서는 말이 끄는 수레가 주요한 교통수단인데, 나는 이것이 아주 정겹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거나, 미소를 짓거나, 서로를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 (154쪽)
인천집으로 오니, 늘 듣던 전철소리를 집안에서 다시 듣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겨울이라 문을 꼭 닫고 있어 조금은 작게 들립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아 텔레비전 소리가 없습니다. 라디오도 듣지 않아 라디오 소리도 없습니다. 오로지 아기 칭얼대는 소리, 아기 젖 빠는 소리, 아기 꽁꽁대는 소리와 어울리는 애 아빠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옆지기 식구들 집에서 지내다 보니, 아기를 그리워하게 된 아기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손전화로 아기한테 말 거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기 엄마는 아기 할머니와 손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 아빠는 글쓴다며 언손을 비빕니다. 슥삭슥삭 손 비비는 소리가 우리 사는 작은 방 한 칸에 살며시 감돕니다.
.. 네덜란드는 벨기에보다 자전거도로가 더 많았고, 누구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자전거도로가 형편없고, 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영국 런던이 이곳을 본받아 자전거도로를 확충했으면 좋겠다. 요즘 런던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대기오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치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처럼 보인다.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어린 아기 때 자전거 손잡이에 장착된 의자에 앉기 시작하여, 자라면서 자전거 뒷자리에 앉다가, 나중에는 작은 자전거를 타고 부모와 나란히 달린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것들이 아주 안전해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 자전거 타기는 환경보호에 아주 좋다 .. (138쪽)
아기는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혼자 뒤집기를 합니다. 눕히면 싫어하고 어깨죽지를 잡고 일으켜세워 주어야 좋아합니다. 그렇게 일으켜세워 주고 있으면, 지 혼자 방방 뜁니다. 아직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기를 좋아하다니. 하긴, 서지도 못하면서 앉지도 않고 서려고 하니까.
이제 좀더 자라고 돌이 될 무렵이면, 또는 돌을 조금 지날 무렵이면, 우리 집 자전거에도 아기 태우는 바구니를 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잣거리 나들이를 다니건 골목마실을 하건, 자전거 바구니에 아기를 앉히고 자전거를 끌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는 바람소리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고, 바람소리와 바람결을 느끼는 아이는 무슨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할까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게 되면, 아이는 페달 밟는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큇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도 차츰차츰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2) 우리 둘레에서 보는 모습
서울 서교동에 자리하고 있던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 내내, 동네를 도는 경찰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서교동에 깃들어 지내는 ‘대통령 아들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고, 둘씩 짝을 지어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동교동 골목을 지날 때면 으레 경찰들을 마주했습니다. 동교동에는 ‘대통령 되신 분이 살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네 골목 안쪽에 자리한 우리 집 둘레로도 경찰들이 틈틈이 짝을 지어 지나다닙니다. 동네를 지켜 주고자 돌아다니는 일은 고마운 한편으로, 구멍가게에 간다든지 골목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때마다 늘 마주쳐야 하니 퍽 껄끄럽습니다. 저이들은 ‘내가 구멍가게에 가는 회수마저 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용한 동네 골목에 이들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거닐거나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리면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여기에 살든 저기에 살든, 또 저곳으로 가든 그곳에 있든 경찰이며 군인이며 아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막아야 한다는 전경도 많지만, 휴가를 나오는 군인 또한 꽤나 많아요. 크고작은 도시며 시골이며 군부대 없는 데가 없고, 미군부대도 퍽 많이 남아 있는데다가 서울 한복판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청와대 가는 길목이나 광화문 미 대사관 둘레는 온통 경찰과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 대사관 앞을 굳이 지나갈 일이 없지만, 어쩌다가 걸어서 지나가야 할 때면 등골이 오싹하거나 소름이 돋습니다.
여느 때에도 부러 군인옷을 입는 분들(거의 해병대)이 많은 가운데 의경은 둘씩 여럿씩 짝을 지어 길을 다 차지하고 서 있거나 막아서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 나라라고 이야기됩니다.
.. 대체 어디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큰 아파트 단지를 새로 만드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한 지역주민이 “돈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즐기기 위해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하고 설명했다. 이 얼마나 슬픈 아이러니인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살기 위해 산비탈이 사라졌고 숲을 파괴한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 수많은 건설공사는 일부 사람들만 부유하게 만든다. 때로는 이러한 건설사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당선시키기도 한다 … 계룡산에 도로와 터널을 건설하려면 국민세금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이다. 이동시간을 줄여서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하기 위해 국민세금을 들여 도로를 만든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만 좇는 삶은 어디로든 빨리 가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 (264, 266쪽)
프랑스 학자는 우리네 아파트 건설을 바라보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파트 문명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책이 먼저 나왔음직하지만, 우리네 지식인들 또한 아파트 문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나게 즐기고 있기에, 한국판 《아파트 공화국》이란 나오기 아주 힘듭니다. 더욱이 이 책을 칭찬하거나 높이 사는 분들 또한 아파트 삶에서 떠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아요. 아니, 아파트 삶에서 벗어난다기보다, 아파트를 얻으면서 할 수 있는 돈굴리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한국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이렇게 해 보자》나 《놀라운 아파트 전도 어프로치》 같은 책을 써냅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많이 살게 되니 마땅히 아파트에 찾아가서 종교를 퍼뜨리는 데에 마음을 쏟겠지요.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무섭습니다. 참 끔찍하기도 하고요. 참 너무한다 싶으면서, 어리석구나 싶고, 우리는 스스로를 옭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살밖에 없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 아파트만 보이니, 프랑스 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쓰고,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를 쓰며, 이 나라 여느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올라 주기를 바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파트만 그려지고, 어른들이 아이한테 읽히거나 보이려고 쓰고 그리는 동화책과 그림책에도 아파트만 그려질 테지요.
.. 해안 대도시를 만나게 되면서 일본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은 다 사라졌다. 맨 처음으로 나타난 도시는 나고야였는데, 이곳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요타 같은 큰 기업과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조밀하게 서 있는 건물과 고속도로는 콘크리트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곳 온도는 다른 곳보다 몇 도나 더 높은 것 같았다. 길가에는 나무나 그늘도 거의 없어서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으며, 다시 걷기에 합류하게 된 고이치와 나는 열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제까지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열사병에 걸린 것은 처음이었는데 … 수많은 트럭과 자동차들이 다니는데,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컴퓨터까지 장착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일본에서는 보행자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대한 도시들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으며, 오직 소비만이 삶의 방식이었다. 도쿄는 한마디로 ‘약에 취한 디즈니’ 같은 곳이었으며, 미래의 암울한 세계를 그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 (228쪽)
쌀을 씻어 담그고 마늘을 까며 아침을 마련하는데, 집 앞 길가에서 교통경찰이 주차단속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집 앞 길로 시내버스 하나가 지나가는데, 앞길은 두찻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차가 서 있으면 버스가 지나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자동차 모는 이는 한쪽만 차를 세우지 않고 두 쪽 모두 세워 버립니다. 그러면 다른 차는 어찌 지나가라고 그럴까 싶지만, 차를 세워 놓고 볼일 보는 이들은 이런 데에는 마음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만 못 지나가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나쁜데 말입지요.
그래도 이 길은 버스라도 다니니 교통경찰이 단속을 합니다. 골목길 안쪽에 세워 둔 차를 놓고 단속하는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시내에서도 찻길 한쪽에 세워진 차를 단속하는 일이 드물어요. 찻길을 닦은 까닭은 한쪽을 차대는 곳으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 아닐 텐데, 전국 어디이든 찻길 한쪽은 어김없이 차대는 곳이 되고 맙니다. 이에 따라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나, 전동휠체어 타는 사람이나, 모두 다니기에 안 좋습니다.
온통 자동차이고, 온통 자동차와 얽힌 교통 흐름이며, 온통 자동차에 쏟아붓는 나라살림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판이면서도 고속도로에 들이붓는 정책과 돈과 품은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자원이 말라간다고 하면서도 고속도로 새로 닦는 일은 멈추지 않고, 외려 더 늘어납니다.
..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곳 관리 한 사람이 “콜먼 씨, 지금 밖에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한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을 만나려고 몇 달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들어오게 할까요?”라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할머니에서 아들 손자에 이르는 한가족이 왔는데, 할머니는, “우리는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보고는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가난한 농사꾼 가족이지만, 지금 이 땅에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잘 알아요. 내가 젊었을 때에는 신발은 없었지만 물은 풍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신발은 신을 수 있지만, 물을 긷기 위해 12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해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 환경문제는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 (68∼69쪽)
이제는 아기를 낳아 기르니 똑똑히 알고 있는데, 지난날 머리로만 ‘천기저귀 쓰기와 종이기저귀 쓰기가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따졌을 때에는, 천기저귀를 쓰면 물을 아주 많이 쓰게 되는 줄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종이기저귀는 ‘빨래할 일’이 없으니 물을 안 쓰게 된다는 대꾸에 딱히 맞서지 못했어요. 그러나 손수 천기저귀 빨래를 하노라면, 기저귀 한 장을 빠는 데에 손바닥 한 뼘 길이가 되는 작은 대야에 반쯤 담는 물이면 넉넉합니다. 종이기저귀를 쓰자면 공장을 돌려야 하고 비닐로 물건을 싸야 하는데다가 마트에 쟁여 놓으며 전기불을 가득 켜 놓아야 합니다. 종이기저귀 사오는 이들은 자가용을 끌고 마트에 가서 수레에 담아서 산 다음 카드로 긁어서 사고 다시 자가용을 끌고 집으로 가지고 옵니다. 다 쓴 종이기저귀는 쓰레기봉투에 담는데, 쓰레기봉투도 종이기저귀와 똑같은 흐름을 거쳐서 만든 다음 놓입니다. 더욱이 쓰레기봉투에 담긴 종이기저귀는 청소부가 하나하나 들어서 치워야 하고 쓰레기묻는 데로 가져가서 묻습니다.
이런 흐름을 살필 때, 천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하고, 종이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를 견주면 어찌 될까요. 우리가 마트에서 사들이는 값은 ‘꽤 싼 편’일지 모르지만, 이 싼값 뒤에 숨은 엄청나게 큰 돈과 품과 자원 씀씀이가 있음을 우리들 모두 잊고 있습니다.
..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던 기회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2백 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에 어느 어린 남자아이가 손을 들더니 “배가 고픈 적은 없었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있지”라고 대답하며 루이지애나에서 하마터면 뱀을 밟을 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그 뱀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중에 뱀이 도망가 버린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학교를 떠날 때 교장 선생님이 모자를 주셨는데, 그 안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신이 다시는 굶지 말라고 아이들이 점심값을 모아 주었소.” 나는 멕시코에서 한 번도 배를 곯은 적이 없었다. 멋진 집과 많은 봉급, 예금통장, 주식과 채권을 가진 미국사람들이 더 부유할까? 아니면 소박하지만 활력과 인정이 넘치는 멕시코사람들이 더 부유한 것일까? .. (52쪽)
(3) 걸으면서 고향과 세상을 지키려는 사람
영국사람 폴 콜먼은 두 다리로 지구를 걷고 있습니다.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지난 2008년 8월에 한국에서 낼 때까지 자그마치 서른아홉 나라 사만칠천 킬로미터를 두 다리로 걸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뒤 여러 달이 지났으니, 폴 콜먼 님은 틀림없이 또 어느 나라에선가 ‘평화사랑’과 ‘환경지키기’를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뚜벅뚜벅 걷고 있으리라 봅니다. 당신 스스로 늘 느낀다고 하듯, 평화를 사랑하는 일은 말로 할 수 없으며, 환경을 지키는 일 또한 입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온몸으로 해야 합니다. 온삶을 바쳐서 이루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평화와 우주가 담겼으면, 어느 한때 한 번 비우는 밥그릇만 헤아릴 일이 아니라, 날마다 비우는 밥그릇을 늘 헤아려야 합니다. 밥그릇을 받을 때에도 헤아릴 평화와 우주이지만, 밥그릇으로 얻은 기운으로 살아가는 여느 때에도 한결같이 헤아릴 평화와 우주예요. 그러니, 평화사랑이라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고이 잇는 일이 됩니다. 환경지키기도 이와 함께 온삶에 걸쳐서 하게 됩니다.
‘지구환경의 날’ 하루에만 할 수 없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에서 해 줄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환경 이야기를 교과서로 배운다고 해서 알 수 있는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새벽과 밤에 청소부가 길거리 쓰레기를 치운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담금을 내면 환경지키기가 이루어질까요. 탄소배출을 꾸준히 줄이는 일은 환경지키기와 얼마나 이어져 있을까요. 맥주 한 병과 볼펜 한 자루와 버스표 한 장에도 간접세금이 붙어 있듯, 이런 물건과 차편 하나에도 생태환경이 얽혀 있습니다.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걸어갈 때와 자전거를 타고 갈 때와 자가용을 타고 갈 때와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갈 때가 사뭇 다릅니다. 똑같은 밥을 먹더라도 손수 짓거나 길러 먹을 때와 생협에서 사다 먹을 때와 재래시장에서 사다 먹을 때와 마트에서 사다 먹을 때가 크게 다릅니다.
.. 한국은 생물다양성협약과 습지보호를 위한 람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인데도 이토록 중요한 습지이자 야생동식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2008년 람사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러한 정부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 내가 전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건설 공사가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과거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던 전국의 산들이 커다란 굴착기와 폭약으로 마구 훼손되고 있었다 … 4번 국도를 따라 대구로 들어가는 길은 한국에서 걸은 최악의 길이었다. 차들이 하도 많이 다녀 소음이 어찌나 심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려면 고함을 질러야 할 정도였다 … 수천억 원이 들어갈 공사에 몇 사람은 즐거워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15분 빨리 가려고 대구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자연환경의 보고를 파괴해도 좋은 것일까? … 부산에도 커다란 터널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경부고속철도 터널이 관통하게 될 금정산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아름다운 산들을 파헤치고 터널을 뚫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인 것 같았다 .. (254, 266, 269, 270쪽)
통신사에서 공짜 전화기를 준다 한들, 이 전화기가 참말 ‘공짜’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 주머니에서 곧바로 나가는 돈이 없다고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마실 물과 공기는 지저분해집니다. 우리가 디디는 땅은 거칠고 메말라 갑니다.
어느 텔레비전 풀그림에서 ‘오렌지를 한 방울도 짜넣지 않고 색소와 화학조합물만으로도 오렌지쥬스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런 풀그림을 보는 우리들 삶이 달라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미국에서 교통경찰이 차 짐칸에 콜라를 상자째 넣고 다니면서 사고 현장에 흐르는 피를 말끔히 닦아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콜라를 사다 마시고 있는데, 우리들 삶이 어느 만큼 거듭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같은 책이 곧잘 나오지만, 햄버거집이나 피자집이 문닫는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되레 나날이 아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더 좋아하고 즐긴다는 소리만 듣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들이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기 앞서, 어른들부터 햄버거와 피자를 즐겨먹고 있는걸요.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까닭은 어른 범죄가 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입시지옥이 풀리지 않는 까닭은 어른들이 가방끈에 따라 사람을 푸대접하거나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얼굴과 몸매에 온마음을 쏟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얼굴과 몸매에 따라 재며 값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나어린 주제에 돈을 밝히는 까닭은 어른들이 허구헌날 돈타령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며 학교에서며 돌림뱅이 짓을 하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눌 뿐더러 이주노동자를 살빛에 따라 갈라 놓는데다가 학력과 갖은 연줄에 따라서 계급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을 걸으며 아주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는 도로와 아파트를 건설하는 모습은 보기에 흉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보다 몇 배나 큰 나라만큼 도로가 많이 건설되고 있었다 …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파괴적인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할 주체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부와 소비 형태를 선택한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일 당장 석유가 고갈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 그렇다면 한국이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이 왜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도록 정부와 산업계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출근시간을 줄이고 제품을 수송하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은 차를 구입하고 교통량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런 소비 행태를 통해 우리는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등을 끄지 않은 채 놔두거나, 모든 길거리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화려하게 장식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력회사는 더 많은 댐과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 (282∼283쪽)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더없이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훌륭한 그대로 받아들일 가슴이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하고.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그대로 받아먹을 마음자리가 이 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죽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탱자탱자 놀면서 살 수 있던 폴 콜먼이 모든 돈과 놀음놀이를 벗어던지고, 베낭에 나무 한 그루 꽂고는 뚜벅뚜벅 걷는 까닭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곱씹을 넋이 이 땅에 얼마나 있는가 하고. (4342.1.6.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