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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소년들 - 수단 내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전하는 세 소년의 충격 실화
벤슨 뎅 외 지음, 주디 A. 번스타인 엮음, 조유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2 ― 총칼 든 전쟁과 돈다발 든 전쟁
: 수단 난민 세 소년이 쓴 《잃어버린 소년들》
- 책이름 : 잃어버린 소년들
- 글 : 벤슨 뎅, 알폰시온 뎅, 벤자민 아작
- 엮은이 : 주디 A. 번스타인
- 옮긴이 : 조유진
- 펴낸곳 : 현암사 (2008.6.20.)
- 책값 : 13500원
(1) 평화란 어떤 삶일까
우리 집 아기를 보러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느즈막하게 찾아온 손님은 저녁을 미처 못 먹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찐 다음, 먹기 좋게 송송 썰어서 도시락에 담아서 내어 드립니다. 한손에는 도시락통을 들고 한손으로는 냠냠 집어먹으면서 율목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따 집에 와서 마실 술 몇 병과 안주거리를 가게에서 산 다음, 가까운 닭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닭집 안이 무척 시끄러워서 우리는 밖에서 먹기로 합니다. 조금 선선하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이라서 우리 둘은 호젓하게 앉아서 튀김닭을 밥 삼아 맥주를 마십니다.
집에서 가까운 골목길 닭집이기에, 두 시간쯤 옆지기가 저한테 말미를 내어주어서, 고맙게도 아기 돌보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쉽니다. 아기를 혼자서 돌보기에는 옆지기 혼자서 힘들 텐데, 제 몸을 생각해서 이럴 때 손님하고 쉬기도 하고 술도 한잔 걸치라고 해 줍니다.
이리하여 손님과 저는 닭집 둘레 오래된 골목가게 간판을 구경하면서 간판 이야기도 하고, 서울 골목길과 전국 골목길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울산은 아마 시내버스로 다니기가 전국에서 가장 나쁜 곳이라며, 모두들 자가용을 끌게 되니 자연히 시내버스가 줄게 되어, 낯선 이들이 울산을 찾아가면 택시 아니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아직 울산을 못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울산만한 도시라면, 자가용보다는 자전거를 몰면 훨씬 즐거울 테고, 찻삯도 아낄 테며, 몸도 한결 나아질 텐데. 가까우면 걷고, 조금 멀면 자전거를 타고, 좀더 멀면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 될 텐데. 우리들은 지구자원이 메마르는 일에는 거의 걱정을 않으면서 살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술잔을 걸치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지난날 서울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던 때 동무나 선후배를 만나 술집에 가던 때를 떠올립니다. 술집을 찾아가는 길은 늘 시끄러웠고 불빛이 번쩍거렸으며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웬만한 술집은 노래소리로 시끄럽거나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가웠습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시끄러운 소리보다 높은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우리도 목소리를 안 높일 수 없었습니다. 술집에서 두어 시간 술을 걸치고 나오면, 술기운보다는 귀가 홀가분해지고 머리도 가벼웠습니다. 젊을 때는 시끌벅적한 데를 곧잘 즐겨찾았는데,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면서 호젓하고 조용한 술집이 아니면 있기 어려워집니다. 같은 술이고 같은 사람이지만, 시끄러운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한테 오롯이 마음을 기울이기 힘들어 애써 마신 술도 그리 맛나지 않게 됩니다. 조용하고 호젓한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 얼굴을 더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고, 이야기도 훨씬 너르고 그윽하게 나눌 수 있어 술맛도 한결 맛나곤 합니다.
..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려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 갔다. 난민촌에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다 … 난민촌의 삶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곳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야수에게 먹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배급날이 되어 새벽에 나가서 하루 종일 줄을 서는 일이었다. 3일을 굶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는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끓어오르는 뙤약볕 아래에서 경찰에게서 곤봉으로 얻어맞으며 줄을 섰다 .. (알레포, 403, 407∼408쪽)
옆지기가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전화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나 싶어 시계를 보고는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율목동 골목 닭집에서 일어납니다.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동 골목길 안쪽을 살짝 돌아봅니다. 오래된 문패, 오래된 대문, 오래된 방범창살, 오래된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 들을 어둠 밝히는 거리등불에 기대어 살짝살짝 느끼면서 걷습니다.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이라 밤에는 더 한갓지며 고즈넉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고요함, 이 한갓짐, 이 고즈넉함, 이 아늑함,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느낌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평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한켠에 조그맣게 마을을 이루어서 쉰 해고 백 해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평화를 맞이할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스무 해조차 한 집에서 버틸 수 없이 서너 해에 한 번씩, 아니 전월세 계약이 끝나는 한 해나 두 해마다 새로운 살림집을 알아보고 또 짐을 꾸리며 옮겨서 다시 짐을 풀고 해야 하는 삶이란 싸움터와 마찬가지로 고달프고 힘겹고 마음아픈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재개발에 따르는 이익이 아니라 재개발에 따라 자꾸만 집터에서 내쫓기며 더 구석과 더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는 삶이란 전쟁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피터는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나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형 모습이 조금도 못 자란 어린아이 같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피터를 뒤로 하고 요셉 형과 내가 팔라타카를 떠난 뒤부터 지금까지 지내 온 고통스런 순간들에 대해 어떻게 이제 와서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팔라타카에서 피터를 버리고 떠날 때와 같은 고통과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나팅가에 남은 요셉 형, 벤슨 형, 벤자민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요셉 형은 수없이 많이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비록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안전한 곳에 도달했는데, 요셉 형은 이미 전선에 배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더러운 감옥에 갇힌 벤자민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모두 벤슨 형 덕분이었다. 다른 소년들과 함께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아픈 나를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한 벤슨 형은 이제 나 때문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난 아팠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 (알레포, 349∼350쪽)
집으로 돌아와 옆지기까지 마주앉아서 술잔을 부딪힙니다. 옆지기도 모처럼 가볍게 술 한잔을 하면서 마음을 쉽니다. 아기는 우리 두 사람과 손님을 너그러이 헤아려 주는지, 잠에서 깨지 않고 시간마다 오줌만 눌 뿐,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새벽 네 시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고,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엊저녁에 불려 놓은 콩과 쌀을 냄비에 담고 밥을 끓입니다. 손님은 열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고, 말끔히 씻은 다음 둘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 마실을 합니다. 서울에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지만, 약속은 뒤로 미룬 채 자전거를 타다가 그냥 끌다가 하면서, 골목집 텃밭을 구경하면서 사진으로 담고, 텃밭에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인사를 하다가 사진으로 남기고, 바람에 나부끼며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흐뭇하게 올려다보다가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받이 골목길 끝까지 올라가면서 곳곳에 알뜰히 가꾸어 놓은 꽃그릇에 웃음꽃을 돌려줍니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고 하면서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진찍기에 빠집니다. 아름다이 여미어 놓은 골목길은, 이곳에 깃들어 사는 사진쟁이한테도, 또 이곳을 처음 밟는 낯선 손님한테도 즐거운 사진 놀이터가 됩니다.
숭의3동 109번지와 송림동이 갈리는 세 갈래 골목길에서 나이든 할아버지가 우리를 불러세우면서 몇 가지 다짐 말씀을 해 줍니다. 당신도 젊을 적에는 자전거 참 많이 탔다고,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고 이가 나가고 여기가 나가고 깨어나니 병원이고 했는데, 이런 비탈길 같은 데에서는 조심조심 타라고, 사람보다 차가 더 빠르니까, 차보다 더 빨리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몸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몇 번씩 힘주어 말씀하시다가는, 즐겁게 자전거를 타라며 한손을 내밀며 뜨겁게 붙잡아 줍니다. 이발소집에서 사는 할아버지를 앞으로 또 뵐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쟁 앞에 우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나방과 같이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혼자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아이는 발길로 걷어차고 나뭇가지로 때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벤슨, 235, 275쪽)
(2) 전쟁은 어떤 삶일까
옆지기 옛동무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기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집 가까이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다음, 저는 집에서 아기를 돌보기로 하고, 세 사람은 바깥마실을 나갑니다. 아기는 잠들 듯 말 듯하다가는 잠들지 않고 칭얼댑니다. 안으면 칭얼거림을 멎고 자리에 눕히면 칭얼거립니다. 히유, 아빠도 좀 다리 뻗고 누워 보자, 응, 하고 아기한테 말을 걸지만, 아기는 아빠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테지요. 외려 아기는, 여봐 아빠, 아기는 아빠 품에 안기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잘 좀 안아 보시라구요, 하고 말을 걸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허리는 아프고 눈은 감기는데, 아기를 품에 안고 둘리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노래를 잇달아 부르면서 아기를 달래고 놀아 주고 어릅니다. 한참을 이렇게 있어도 도무지 잠들 낌새가 없어서, 아기가 꿉꿉해서 이러나 싶어, 물을 끓여 씻기기로 합니다. 뜨거운 물이 튈까 아기를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아기는 싫다며 앙앙 웁니다. 주전자를 한 번 붓고 나서 아무래도 한 팔로 안으면서 해야겠다 싶어, 한 팔로 안고 주전자에 물을 받고 끓이고 하니 아기는 조용합니다. 원, 녀석두, 이렇게 아빠를 힘들게 하고 싶니, 하고 말을 하지만 눈만 말똥말똥.
발부터 살며시 넣으면서 천천히 씻깁니다. 머리를 감길 때까지 보채던 아이가 몸에 조금씩 물을 끼얹어 주니 조금씩 조용해집니다.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아기, 하면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물을 끼얹고 문질러 줍니다. 아기를 거의 다 씻을 무렵 옆지기가 돌아옵니다.
.. 그 무렵, 나팅가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소년들은 모두 모여 지휘관의 연설을 들었다. 그건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너희는 이제 군사 교육을 받을 거다. 학교에 갈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나 총을 가지고 다니게 될 거다.” 소년들 대부분은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지만, 내가 듣기에 그것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생각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우리 소년들을 나팅가에 데리고 와서 잡아 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반군 병사로 만들기 위해 잡혀 온 것이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전선으로 보내져 죽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게 되겠지? 나팅가의 병사들은 말했다. “하루에 천 명이 죽으면 백 명이 태어나는데, 누가 너희 또래 아이들이 죽든 말든 싱경이나 쓴다던?” .. (벤슨, 336쪽)
아기를 안으며 지낸 지 어느덧 두 달. 말이 두 달이지,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거의 종잡지 못하겠습니다. 하루 같은 두 달인지 이태 같은 두 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안고 어르는데 무슨 광고 전화가 오면 몹시 짜증스럽지만, 건너편에서 광고 전화 해대는 사람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아주 큰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아기가 깜짝 놀랄까 걱정이지만, 기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들이 오가는 이 기차길 옆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삶은 거의 헤아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기차 승무원들은 기차길 옆 동네 사람들 삶터를 두 다리로 거닐면서 기차소리가 사람들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몸으로 좀 느껴 보아야지 싶어요.
이런 마음씀은 때때로 아기를 안고 어디를 다녀와야 할 때에도 느낍니다. 아기 포대기를 안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 저나 옆지기를 툭툭 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아기 포대기인 줄 모르기 때문에 저러느냐 싶기도 하고, 아기 포대기이거나 말거나 자기 갈 길이 더 중요하니까 저르느냐 싶기도 합니다. 아기가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걱정되어 살살 포대기를 안으나 그 옆에서 대놓고 뻑뻑 담배 태우며 걷는 아저씨들이 꼭 있습니다. 당신한테 아이가 없어서 못 느끼는지, 당신도 이 아이와 똑같은 어린 날이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지 못해서 그러시는지.
아기와 옆지기만 두고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전철을 타는데, 전철간에서 아기를 업고 타는 아주머니나 아기를 안고 타는 아주머니를 으레 봅니다만, 이이들한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분들을 만나기 퍽 어렵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날이 갈수록 애 어머니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는 눈길이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 나는 리니 형과 티크 형이 하는 얘기를 귀기울여 들었지만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일 나는 다시 가족을 다시 만나겠지만, 전쟁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이상 파제리에서의 평화로운 시간도 다 되어 가는 듯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서는 정부군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땅에서는 반군이 무기를 굴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곳. 반군 병사가 피투성이가 되고, 총알구멍이 뚫린 군복을 입고 정부군 병사의 시체를 치우는 곳. 아, 과연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이기에! .. (벤슨, 290∼291쪽)
왜 이렇게 우리들 삶이 팍팍할까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바쁘기에, 얼마나 고되기에, 얼마나 전쟁통 같은 삶이기에, 얼마나 내 이웃을 적처럼 여기며 밟고 올라서서 우뚝 서는 ‘나홀로 1등’과 ‘나홀로 부자되기’를 이루어야 하기에 이렇게 착한 마음을 잃는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마음을 잃고 돈버는 마음만 키워도 되나요.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 뒷사람들한테, 착한 마음이 아닌 돈버는 마음만 물려주어도 되나요.
어려운 이웃한테 베푼다는 ‘불우이웃돕기’는 성금모금함 부피나 크기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나누고, 돈이 없으면 돈이 아닌 품으로 나누면 됩니다. 품을 들여서 일손을 거들고, 마음을 쏟아서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돈 몇 닢을 나눈다고 해도 사랑과 믿음을 담는 돈닢이어야지, 주기 싫으나 눈치 보여서 억지로 내어놓는 돈닢은, 이 돈닢을 받는 사람한테도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어렵습니다.
.. 나는 멀리서, 정부군이 사로잡은 마을 주민들의 손과 발을 묶고 목에 긴 밧줄을 걸어 엮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부군은 줄줄이 엮인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도록 눈을 가리고는 끌고 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강물에다가 버려. 총알도 사실 낭비야.” 그날 밤, 나는 야자나무가 무성한 우리의 사랑스러운 마을 주올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 (알레포, 177쪽)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울과 부산을 더 빠르게 잇는 고속철도를 놓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 우리 이웃이 서로서로 고르게 권리를 누리고 집없이 살아가는 설움과 고달픔을 맛보지 않도록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을 뚫는다며 공사를 벌이기보다, 또 이런 공사를 하느니 마느니 알아보느라 적잖은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남녘과 북녘 모두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밥나눔을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새 고속도로를 뚫어서 어느 한 곳과 다른 한 곳을 빠르게 잇는 길을 닦는 데에 수십 조라는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이 나라 모든 어린이들이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거저로 배우고 넉넉히 자기 배움을 사회로 되돌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 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스무 해만 되면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비싼 돈 들여 지은 아파트 때려부수지 말고, 적어도 이백 해는 너끈히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지어서, ‘재건축에 들어가는 돈’을 어려운 살림살이 꾸리는 가난한 이웃나라 돕는 데에 쓴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 “벤슨, 넌 아직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줄 모르는 나이야. 그래서 엄마는 너를 두고 걱정이 많구나.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과 의지가 되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그러니 아들아, 엄마가 살아 있는 한, 엄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너도 꼭 살아남아야 해. 앞으로는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전보다 총소리가 가깝거나 크게 들리면 집에서 도망쳐야 해. 죽어라 뛰어서 덤불 속에 숨어. 절대 잡히거나 노예로 붙들려 가면 안 돼. 다쳐서도 안 된다.” 내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의 울부짖음 같았다. “총을 든 병사 흉내도 내지 마라. 딩카 족의 아이답게 너는 소나 다른 동물들의 인형을 만들면서 놀아야 해. 딩카 족은 총을 가지지 않아. 총은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사악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반군 병사 흉내를 내며 총놀이를 하는 건 불운을 가지고 올 뿐이다.” .. (벤슨, 90쪽)
이룰 수 있다면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습니다만, 이루지 못하게 되더라도 꿈이나마 꾸고 싶습니다. 꿈을 꾸면서 앞으로 언젠가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 눈앞에서 즐겁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3) 수난 내전과 끔찍한 죽음, 《잃어버린 소년들》
종교를 놓고 다툼이 생겨서 서로를 끔찍하게 죽이고, 끔찍하게 죽은 뒤 앙갚음을 하려고 똑같은 죽임을 되풀이하게 되는 수단 내전 이야기가 담긴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읽습니다. 《잃어버린 소년들》에 나오는 ‘잃어버린 소년들’은 처음부터 어떤 종교를 믿고 살던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며, 이 아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떤 종교에 몸이나 마음을 맡기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수단사람 어느 누구도 종교뿐 아니라 전쟁무기 만드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나라를 쳐들어간다든지, 이웃에 뿌리내린 겨레를 짓밟는다든지 하는 일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갈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만 하지 않고 죽여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잃고 삶터조차 잃으며 일자리조차 꿈을 꾸지 못하는 데다가 아무런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 연필이 주어지는 일은 드물고,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소총 한 자루 쥐어주어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몹니다. 열서너 살에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몰린 아이들은 소총 한 자루를 믿고 손쉽게 남 목숨을 고꾸라뜨릴 뿐더러, 가볍게 강간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약탈과 도둑질을 일삼습니다.
.. 벤자민이 밑에 깔려 죽어 갈 때 다른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병사만은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제 더는 세상은 우리 같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곳이 아니었다. 엉덩이에 총을 들이민 어린 병사처럼, 나도 총을 가지고 낄낄거리는 얼굴에 들이대고 싶었다 .. (벤슨, 310쪽)
책을 덮고 한숨을 내쉽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하나라도 더 무너뜨리며 밟고 올라설 적’으로 삼아서,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 바쁩니다. 비록 총칼을 들지 않았으나, 어쩌면 총칼보다 훨씬 무서운 돈다발을 들고서 누가 이기나, 누가 지나, 누가 죽나, 누가 죽이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러느라 너무도 바쁜 나머지, 총칼을 들고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는 수단 같은 나라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펼치지 못합니다. 돕지는 못할망정 우리 삶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독이거나 다스리면서 평화로움을 찾도록 애쓰지 못합니다.
.. 하지만 열 살 정도 된 소년들 가운데 많은 아이가, 어른들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그 아이들 마음속에는 복수심만 자라난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자비나 용서를 몰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돌처럼 굳어 버린 것 같았다 .. (알레포, 203∼204쪽)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아름답다고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좋다고 가슴에 돋을새김하면서 일하고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서 발자국을 남기면 좋다고 몸뚱이에 남기고 있는지 곱씹어 봅니다.
수단은 총칼을 든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돈다발을 든 전쟁 때문에 이 나라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내동댕이치고 있는 모습을 날마다 수없이 보고 또 보고야 맙니다. (4341.10.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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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번역이 퍽 많고, 잘못된 번역도 틀림없이 있는 듯하지만, 그런 잘잘못은 건너뛰기로 한다. 다만, 104쪽과 133쪽과 136쪽에는 "빨간 팬티"로 나오지만, 151쪽과 338쪽에는 "빨간 반바지"로 나온다. 책 겉그림에도 빨간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나온다. 그 겉그림을 보아도 알겠지만, "빨간 팬티"가 아닌 "빨간 반바지"이다. 이 잘못된 대목은 2쇄에서는 고쳐지기 바란다.
이밖에 너무 눈에 도드라지는 잘못된 곳은 '묵다'를 '묶다'로 자꾸 잘못 적은 대목. 아무래도 번역자나 편집자가 놓쳤다기보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보여진다. 한 번만 틀렸으면 모르되, 서너 차례 되풀이된다. 또, '처지다-뒤처지다'처럼 적어야 올바르지만, 한 번은 '처지다'로 잘 썼으나, 그 뒤로 여러 차례 '뒤쳐지다'로 잘못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