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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유승호 지음 / 일신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도시는 ‘재개발’ 아닌 ‘사람사랑’ 먹어야 자란다
[잠깐 읽기 15] 유승호, 《문화도시》
- 책이름 : 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 글쓴이 : 유승호
- 펴낸곳 : 일신사 (2008.7.9.)
- 책값 : 2만 원
(1) 버린 삶, 거두어들인 돈
.. 문화도시는 ‘고립’이 아닌 ‘고독’을 즐기면서 세계와 평평히 연결되는 것이다. 미국의 아르코산티도,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도 모두 작고 ‘고독’한 도시들이나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인생과 세상을 함께 호흡한다 .. (머리말)
우리 나라 서울은 너무 큰 도시입니다. 남쪽에 있는 부산도 너무 큰 도시입니다. 가 볼 수 없어 모르지만, 북녘땅에서 평양도 너무 큰 도시가 아니랴 싶습니다. 서울이나 부산만큼은 아니지만 대전과 대구도 큰 도시입니다. 인천과 광주와 울산도 그에 버금가는 큰 도시입니다. 수원, 천안, 부천, 춘천, 안양, 구미, 마산, 통영, 진주, 전주, 익산도 자꾸자꾸 커다란 도시로 탈바꿈하고자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크게 되고자 하는’ 도시는 밖에서 내다보는 크기로는 커다랗게 되기는 할 터이나, 도시다운 빛깔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남다른 도시라는 빛깔, 이곳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빛깔, 강원도면 강원도 전라도면 전라도 충청도면 충청도라고 하는 빛깔을 거의 보여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서울 빛’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부산 맛’이란, 대구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대구 냄새’란 무엇일까요. 따로 있을까요. 따로 있는가요. 부산에서 고갈비를 먹고 인천에서 삼치를 먹는들, 부산다움과 인천다움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천안은 왜 천안이고 청주는 왜 청주이며 남원은 왜 남원일까요.
가만히 보면 도시만 도시빛이 없지 않습니다. 시골도 시골빛을 잃습니다. 시골사람 농사짓기는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어들이는 데에 뜻이 있지 않았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사회와 살림살이는, 시골도 시골답지 않게 도시도 도시답지 않게 바꿔 놓습니다.
.. 나폴리는 우리 나라의 부산과 달리 항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도시 내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제한하였다 … 도심재생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볼로냐는 1985년부터 도심을 6구역으로 나눠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 활용방안을 세밀하게 수립한다 .. (18쪽)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만, 시골 기차역(간이역)은 시골 기차역이었기에 좋았습니다. 건물을 비슷비슷하게 지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시골 기차역은 가는 데마다 모두 다른 느낌이요 저마다 다른 빛깔이요 곳곳이 다른 냄새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고속철도가 뚫리지 않던 때를 돌아보고, 고속도로가 나지 않던 때를 헤아려 보면, 우리 나라 전국 어디를 가도 ‘사람마음이 따뜻했다’고 했습니다. 한자말로 하면 ‘인심(人心)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돈 한푼 없이도 전국을 걸어서 돌아보았다는 말을 곧잘 들었고, 잠자리가 마땅하지 않아도 곁방 하나 어렵잖이 얻어서 지낼 수 있었다는 소리를 퍽 들었으며,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된다는 밥나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전국 어디를 가도 돈이 없으면 이야기동무도 잠자리도 밥도 얻기 어렵습니다. 돈이 없으면 만나 주지 않고, 돈이 없으면 손사래치고, 돈이 없으면 거지를 왜 먹여살리느냐는 소리가 나옵니다.
틀림없이 오랜 옛날과 견주어 우리들 살림살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아졌으며, 우리 주머니는 그지없이 넉넉해졌고, 우리들 집크기와 차림새는 참으로 말쑥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물질만큼 우리들 마음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들 마음은 더 나아질 꼭대기가 없이 서로 오붓하고 조촐했을지 모르는데, 이 마음을 우리 스스로 버리고 주머니 채우기에만 바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유럽문화도시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면,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럽의 문화도시 사업은 유럽 전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국에 문화도시를 지정함으로써 지역분산화를 이루었다 … 문화도시의 시초는 자연환경과 문화재를 바탕으로 눈에 띄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서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객들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 바스크정부가 장기간 수립한 도시 재개발 전략은 고유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주거 지역을 보호하면서 관할 15개의 크고 작은 중소도시들을 각각의 지역 특성에 맞게 특화하는 균형적 발전을 유도했다 .. (74, 93, 97쪽)
지붕이 낮을수록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인사가 오가게 됩니다. 아파트로 바뀌어 층수가 올라갈수록 이웃과 멀어지게 되고 남남으로 갈리게 됩니다.
굴리는 자동차가 없이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자기 마을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게 되고 꼼꼼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굴리는 자동차가 빨라질수록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지게 되고 동무조차 나 몰라라 하게 됩니다.
주머니가 가난하니 나만큼 주머니가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두둑한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리거나 키울까 하고 마음을 쏟게 됩니다.
배운 것 많지 않으니 못 배운 대로 꾸밈없이 말하고 쉽게쉽게 풀어 나갑니다. 배운 것 많으니 배운 대로 꾸며서 말하고 갖가지 지식 섞인 말로 어렵디어렵게 비비꼽니다.
낮은자리에 있으니 낮은자리 동무나 이웃을 눈여겨보며 서로 돌보고 서로 보살피게 됩니다. 높은자리에 있으니 높은자리 경쟁자 눈치를 살피며 서로 선물을 돌리고 서로 다른 이 자리에 눈독을 들입니다.
돈을 얻고 싶으면 사랑을 버리라 했고, 힘(권력)을 얻고 싶으면 믿음을 버리라 했으며, 이름값을 높이고 싶으면 이웃과 나누지 말라고 했습니다. 돈하고 사귀니 사람하고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힘(권력)하고 사이가 좋으니 사람들과 믿음을 나눌 수 없습니다. 이름값에 따라 움직이니 이름없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고 맙니다.
(2)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는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즐거움의 공간이 공존하는 도시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추구하는 일상적인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 (260쪽)
제가 사는 동네는 몇 해 앞서부터 ‘재개발’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고향 삶터만 바람 잘 날이 없지 않습니다. 서울도 부산도 대구도 제주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재개발이 수없이 있고, 재개발에 따라서 보상을 해 주느니 분양값이 어떠느니 하는 말이 끊임없이 떠돕니다. 여태껏 당신들 집자리를 보금자리로만 여겨 온 분들이 몇몇 사람 쑤석거림에 하나둘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서, 이제 ‘집 = 보금자리’가 아니라 ‘집 = 돈굴리기 투자대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살 집이 아니라 좀더 비싸게 내다 팔 투기대상이 되어 가면, 자연스레 잃어버리는 집다움입니다. 집이 집다움을 잃은 마을에서는 사람이 오가는 길이 길다움을 잃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집과 학교를 오가며 느긋하게 걷던 골목길마다 짐차며 학원차며 자가용이며 마을버스며 끊이지 않고 오락가락합니다. 동무와 손잡고 나란히 걷던 길이, 골목집 담벼락에 바싹 붙어서 걷지 않으면 안 될, 때때로 아예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차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무섭고 메마른 길이 되고 맙니다. 시골길에도 길섶이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읍내나 면내 마실을 다니기 어렵지만, 도시 골목길에도 넉넉한 거님길이 없어지면서 어르신뿐 아니라 어린이도 젊은이도 아슬아슬한 찻길이기만 합니다.
.. 이렇게 바스 시는 온천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개발해서 관광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향유하게 하였다. 이 같은 사례는 현재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 자산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하여 이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물질적인 자산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148쪽)
지금도 찻길이 많지만 더 많은 찻길을 자꾸만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입니다. 늘어나는 자동차에 찻길을 댈 수 없음에도, 차를 줄이기보다 찻길을 늘립니다. 자꾸자꾸 새로운 차를 만들어서 자꾸자꾸 길바닥에 굴리게 해야 세금도 많이 걷히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지금도 빈 아파트가 많지만 더 많은 아파트를 자꾸만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입니다. 쏟아지는 빈집에 들어갈 사람이 모자람에도, 작고 소담스러워서 돈적은 이들도 걱정없이 살아갈 집이 아니라, 부동산 값 뻥튀기하는 데에 쓸모 많은 층수 높고 평수 넓은 비싼 아파트만 끝없이 지어대고 있습니다. 재개발을 해야 예산도 많이 쓰고 떡고물도 많이 나오고 세금도 자연스레 많이 걷힐 뿐더러 경제가 산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자동차가 늘어나고 아파트만 올라서는 땅에는 아무런 문화가 서리지 못합니다. 자동차 문명과 아파트 문명은 있을 테지만, 사람 사는 문화와 마을이 엮어내는 문화란 깃들지 못합니다.
자동차와 아파트에 어떤 개성이 있습니까. 모두들 똑같은 회사원이 되고, 똑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사무직으로만 일한다고 할 때에, 그 도시에 어떤 개성이 있습니까.
대물림하여 구멍가게를 꾸릴 수 있어야 도시에 개성이 있습니다. 대물림하여 이발소를 꾸리고 대물림하여 과일집을 꾸릴 수 있어야 도시에 빛깔이 생깁니다. 수십 수백 억을 들여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역사 깊은 기와집이나 벽돌집을 잘 손질해서 동이나 면 하나마다 조그맣게 꾸리는 도서관이 될 때 비로소 마을 문화가 서리게 됩니다. 교보문고 무슨 지점과 영풍문고 어디 지점이 아니라, 동네에 고유한 작은 새책방과 헌책방이 골골에 뿌리내릴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을 문화가 싹트게 됩니다.
영어만 내세우는 특성화 고등학교나 영재 고등학교가 지역 교육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지역 문화를 북돋우겠습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는 집값이 넘실거리는 ‘새로 재개발하여 꾸미는 도심지’가 생명력을 품에 안을 수 있겠습니까. 길어야 열 해나 스무 해 지나면 다시 낡아버려서 또 재개발을 해대는 통에 길이 막히고 먼지 풀풀 날리게 되는 그 ‘새도시(신도시)’가 무슨 중심지가 되고, 무슨 일류도시 거점이 되겠습니까.
.. 어느 도시가 아름답다고 한다면, 이것은 도시의 어떤 특정한 부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 (240쪽)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입니다. 공사를 하든 개발을 하든, 사람이 사는 곳을 ‘그동안 살던 사람’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이 즐겁고 오붓하게 어우러지는 자리로 가꾸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만 살 수 있는 살림터가 아니라 돈이 적은 사람도 살 수 있는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한테만 즐거운 살림터가 아니라 적게 배운 사람한테도 살가운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자가용 모는 사람한테만 마음 기울이는 살림터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 걱정없이 오갈 수 있는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3) 더 깊이 엮어내지 못한 책 《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겠다면서 나온 책 《문화도시》를 읽습니다. 읽다가 몇 번씩 책을 덮고 책상맡에 밀어 두게 되었는데, 마지막 쪽을 넘기고 이제 더는 펼칠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은 여느 사람들이 읽을 책이 아니라 대학교재로 쓰려고 엮은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9월에 읽을 만한 책’ 열 가지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한 책입니다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이 책을 누구한테 추천하고 누구한테 선물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라기보다는 유럽과 미국과 일본)에서 ‘문화도시’라 할 만한 곳을 몇 군데 뽑아서 짤막하게 소개해 주면서, 그 도시들이 어떠한 대목에서 훌륭하고 어떠한 대목에서 모자란가를 다루어 줍니다. 그러나 이 소개와 풀이가 여태까지 여러 가지 낱권책(다른 사람들이 쓴 낱권책 또는 논문)에서 찬찬히 다루어진 이야기를 간추렸다는 느낌이 들 뿐, 그 문화도시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우리 사는 이곳에서는 ‘우리 나름대로 어떤 길을 찾으’며, 세계 곳곳에 있는 ‘문화도시는 그 나라에서 어떤 값과 뜻으로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짚어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학문 열매로 ‘문화도시’를 풀이내리겠다는 글쓴이 마음은 읽을 수 있습니다만, 지금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들려주려는 ‘한국문화와 한국도시’를 바라보는 눈썰미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문화를 보지 못하면서 한국도시를 꿈꿀 수 없고, 한국사람 문화와 삶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 문화도시’가 나아갈 길을 짚을 수 없을 텐데, 왜 이러한 대목에서는 글쓴이 스스로 자기 길을 열지 못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나라밖 학자들 학설을 소개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낱권책 여러 권과 논문으로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 짤막하게 간추려서 모두어 보여주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이름부터 《문화도시》라고 내걸고,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겠다고 내세우고 있다면 아니지요. 두루뭉술한 학문탐구로, 또 나라밖 사례 가볍게 소개하기로 272쪽을 채우기에는 너무 모자라거나 엉성하거나 어설프지 않나 싶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판권을 살펴보니, “이 책의 출판은 교육부 누리사업의 교재출판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굵은 글씨가 보입니다. 그렇군요. 대학교재 맞군요. 그러면 대학생들한테 읽히려고 쓴 책이라는 소리인데, 대학생들은 이 교재를 읽으면서 ‘문화도시’를, ‘한국문화’를, ‘한국도시’를, 그리고 ‘한국땅에 걸맞는 문화도시’를 어떻게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받아들여야 할까 걱정스럽습니다. ‘문화도시’는 책상 앞에 앉아서 넘기는 책과 자료에 있지 않을 텐데요. (4341.10.6.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