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전의우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5 ― 나 또한 ‘아버지 길’을 걸어가면서
 :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 책이름 :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 글쓴이 :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 옮긴이 : 전의우 옮김
- 펴낸곳 : 양철북 (2007.12.26.)
- 책값 : 9000원



 (1)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당신 손주를 보고 싶어도 저 때문에 못 보러 간다며, 저보고 음성으로 와서 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빌라고 이야기합니다. 옆지기는 우리가 아기를 데리고 움직이기 힘들어도 인천에서 음성까지 택시를 타고라도 한가위 명절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화해를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생채기가 나도 자꾸 복닥이면서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고, 아픔이 없이 사랑이 없다고, 접붙이기 하려면 생채기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우리 두 사람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우리가 아버지한테 ‘잘못했습니다’ 하고 빈다는 일이 터무니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한테서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받은 옆지기는 오히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분이 도시에서 오랜 교사살이를 마치고 시골집을 하나 얻어서 조용히 깃들인다고 할 때에, 이제 아버지도 큰도시에서 ‘잘나가고 이름높은 동네(성남시 분당) 교장선생’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떨쳐내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낮추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눈길을 기르시려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아니, 아직 멀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삶터만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을 뿐, 아버지가 얻은 시골집이 조촐하면서 이웃 자연과 어우러지는 작은 집이 아니라 우람하면서 이웃 자연하고 흐드러지지 못하는 비싼 전원주택임을 헤아려 본다면, 아버지는 몸은 시골에 있지만 조금도 시골에 안 있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 당장 눈앞에 닥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이 당한 아픔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우리 처지다. 이렇게 점점 우리는 무관심이라는 덫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 물론 우리는 정부만을 탓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다. 남보다 혜택을 누리는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느라 아이들이 가장 고통받는 빈민가가 생기는 것에 부분적으로 가담한 것이 사실이다. 또 전 세계의 미래를 위협하는 정책 앞에 침묵을 지키고, 다른 인종과 계층의 아이들이 억압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굶어죽거나 노예로 팔릴 때 못 본 체한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4, 17쪽)


 가만히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저는 아버지한테 잘못을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이 쓴 어린이책 《저만 알던 거인》에 나오듯이, 아버지가 ‘아버지 사는 동네 이웃집 아이들이 아버지네 집 앞 뜨락에 놀러와 있는 모습’이 싫다면서 높은 울타리를 친다고 할 때에, ‘아버지,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왜 하십니까? 있는 울타리도 허물며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세상인데, 없는 울타리를 돈까지 들여서 세워서 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겠다는 소리입니까?’ 하고 가로막았어야 합니다. 너른 앞뜨락에 푸성귀를 심어서 이웃집하고도 나누고 아버지 동생과 누님들하고도 나누고 제자들한테도 나누어 주는 삶이 아니라, 앞뜨락을 죄 파헤치고 고쳐서 나무를 심고 징검돌을 놓고 ‘그럴싸한 정원으로 꾸밀’ 때 손사래치면서 ‘아버지가 한삶을 바쳐 교직에 몸담으며 얻은 앎이 고작 이런 모습으로만 드러납니까? 이렇게 하려고 시골에 집을 얻고 시골집에서 시를 쓰겠다고 하셨습니까?’ 하고 말씀드렸어야 합니다.

 아버지 당신이 형과 저를 앞에 앉혀 놓고 ‘나(아버지)는 너희 작은아버지(아버지 동생)들을 학교 보내고 가르치느라 가정교사로 들어가서 죽도록 고생했다’고 수도 없이 되풀이해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아버지 동생들은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에 덥석덥석 붙어 들어갔지만 아버지 당신은 사범고를 나와서 열 몇 살 어린 나이에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 돈을 벌어서 집안살림을 꾸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거듭거듭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셔도 돼요’ 하고 막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동생들 보기에 ‘대학교 못 다닌 설움’을 안고서 늦깎이 나이로 방송통신대 졸업장을 따고 인천교대 대학원에 들어서 ‘교장 신분’으로서 수석 졸업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손뼉이 아닌 회초리를 들어서, ‘아무리 아버지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가야 할 길은 허울좋은 졸업장이 아니라 아이들하고 일 분 일 초라도 더 가까이 지내는 시간을 늘리면서 아이들 마음을 읽어 주는 일’이라고 일러 주었어야 합니다.


.. 돈이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어른들이 이윤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아이들을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재산이나 투자 대상으로까지 보는 부모도 있다 … 응석받이 아이들 뒤에는 언제나 응석받이 부모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하며, 욕구가 생기는 대로 충족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환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별다를 수 있겠는가? … 많은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정신없이 바쁜 생활은, 사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질적 여유를 지키려는 고집 때문이다 … 그런 막대한 수입과 명성이 가족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가족과 함께 그것을 누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변명을 해 보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  (24, 26, 27, 35쪽)


 제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아버지는 저와 형한테 ‘할머니(아버지한테는 어머니)가 아버지 당신한테 얼마나 몹쓸 짓을 많이 시켰던가’ 하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철없는 저는 할머니가 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할머니 손을 잡고 떠나보내시면서 속으로 ‘할머니는 왜 아버지를 못살게 굴었나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당신 어머니인 우리 할머니가 몹쓸 짓을 하셨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계신 분이잖아요.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시는가요? 사랑을 가르치시나요? 믿음을 가르치시나요? 관용을 가르치시나요? 용서를 가르치시는가요? 무엇을 가르치시는가요?’ 하고 되물었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받은 생채기가 컸고,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생채기와 아픔을 남을 깎아내리거나 괴롭히는 데에 쓰지 않도록 아버지 팔을 붙잡고 말렸어야 합니다.

 추운 겨울날, 빚을 받아 오라던 할머니 심부름을 받고, 얇은 옷에 맨손으로 빚 받을 집에 갔더니 돈이 없어서 쌀을 봉지에 담아서 주는데, 그 쌀을 들고 오다가 얼음길에 미끄러져서 그만 쏟았기에, 남은 쌀만 들고 오니까, 할머니는 아버지를 때리고 나무라며 쏟은 쌀을 모두 주워 오라고 하셨다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언손이 불어터지면서 쌀을 주워 왔다고 하셨다지요.

 참 모질게 군 할머니이지만, 이렇게 모질게 굴던 할머니였기에 아버지는 아픔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나 빛을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픔을 그저 아픔으로만 삭이면서 미움으로 키우기보다는, 더 큰 사랑과 너른 믿음으로 다스릴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말은 쉽다고요? 네, 말이야 쉽겠지요. 그러나 저도 겪어 보면서 느낍니다. 겪은 바로 다음부터 몸으로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꾸자꾸 돌이키고 곱씹으면서, ‘내가 그런 아픔을 겪었으니 다른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군대에서 뼈저리게 느꼈고, 사회에서 가슴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다른 이들은 부디 그런 아픔을 겪지 않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고 슬기롭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차츰 커지더군요. 그렇다고 아무런 아픔이 없이 자라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아픔은 있어야 합니다. 씨앗이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느끼며 뿌리를 내려야 하고, 줄기가 잎이 돋는 아픔을 느껴야 하며, 꽃은 떨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는 잡아먹히는 아픔을 느끼며 다시 씨앗을 땅에 돌려놓습니다. 아픔은 얼핏 보면 괴로움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더 크게 자라나는 밑거름이요, 지나쳐야 할 징검다리입니다.

 이참에 옆지기하고 스물네 시간 함께 배앓이를 하면서 새 목숨을 세상에 받아내고 보니 새삼스레 더 잘 알겠더군요. 날마다 하루 1/3을 기저귀 빨고 널고 다리고 채우고 하는 데에 쓰면서, 우리 아버지는 나나 형 기저귀를 빨았을까 궁금하더이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두 형제 기저귀를 빨아서 우리를 키우셨을까 궁금하더이다.


.. 지금 거의 모든 아이들은 오로지 열매 맺는 능력, 즉 ‘성취하고’ ‘성공하는’ 측면으로만 평가하는 사회의 편협한 시각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린 시절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 놓고 있다 …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자장가를 부르면서 아기를 재웠다. 아기는 엄마 목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갈수록 우리 시대는 어린 시절에서 ‘아이’를 제외해 버리고, 이 시절을 어른 세상을 준비하는 재미없는 훈련장으로 바꿔 놓고 있다 … 아이들을 학교에 접어넣는 것으로는 결코 가르칠 수 없는 삶의 기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38, 39, 48, 50쪽)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는 설문조사가 참 많았습니다. 무슨 조사가 그리 많아야 했는가는, 뒷날 대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갖가지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새마을운동이니 뭐니 하면서 교육감이 학교 교사들을 달달 볶으며 온갖 공문이요 통계를 내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때 수도 없이 했던 설문조사 가운데 하나는, 집안식구들하고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느냐였습니다.

 어머니하고는 곧잘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었으나, 어머니 일손을 거들며 마주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제 학교 일을 거의 안 물어 보셨고, 어머니도 당신 살아온 발자취를 거의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머니 어릴 적과 젊을 적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까맣게 모릅니다. 들려 달라고 해도 들려주지 않으셨고, 어머니 스스로 술술술 들려주신 적도 없습니다.

 아버지하고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야기가 없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제가 떠올리는 가장 옛날 나이는 일곱 살 적인데, 그 일곱 살 적부터 이날 이때까지 아버지가 저한테 ‘말 걸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떠올립니다. ‘종규야, 너는 요즘 무엇을 생각하면서 사느냐?’ ‘종규야, 너는 요새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느냐?’ ‘종규야, 네 동무들은 누가 있느냐?’ ‘종규야, 너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느냐?’ 하는 물음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뭐, ‘이야기 나눔’을 한 적이 아예 없으니까, 이런 물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집안 분위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아버지한테 ‘아버지는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아버지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오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여쭌 적이 없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 걸기’와 ‘이야기 나눔’을 배우지 못했으니, 저 스스로 다른 이한테 말을 거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제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아니,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고, 할 까닭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 걸기는 못하지만 늘 말은 많이 하고 싶었는데, 말을 할 줄 모르고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다 보니까, 물끄러미 동무들을 바라보고 둘레를 살펴보는 눈은 기를 수 있었습니다. 제 국민학교 적 동무들은 그때 일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는데, 저는 동무들 얼굴에 점이 몇 개 있었고 어디에 있었고, 무슨 옷을 입고 학교에 왔고, 우리가 서로 어떤 놀이를 했고, 옷차림이 어떠했고, 누가 코에 콧물이 질질 흐르도록 다녔고, 머리 모양은 어떠했고, 무슨 신발을 신었고, 어느 동네 어떤 집에 살았고, 동무가 살던 동네는 느낌이 어떠했고,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 길은 어떠했는지 …… 들을 줄줄 꿰고 있습니다. 지금도 국민학교 적 학교 둘레 모습을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고,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해도 거의 한 가지 빠짐없이 다 그려낼 수 있습니다. 학교 앞 〈승희문구〉와 〈신광문구〉 짜임새며,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그리고 그때 그 문구사에서 어떤 장난감을 팔았는지까지 떠올려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한테 말을 걸지 않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아서,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우리 집은 한 해 동안 아버지하고 30분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라는 항목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말을 걸거나 나눌 줄은 몰랐어도 남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잘 새겨 놓을 줄 알았고, 말은 안 하는 만큼 둘레 사물과 흐름과 짜임새를 꼼꼼히 보는 눈을 제 나름대로 기를 수 있었습니다.


.. 슬프게도 자신이 세워 놓은 원칙에 너무나 눈이 가려져 더 중요한 마음의 소리를 따르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 … 훈계란 무엇인가? 이것은 통제가 아니라 이끄는 것이다 … 훈계에는 아이의 기질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 늘 뒤따라야 한다 … 청소년 문제에 대한 이러한 엄한 처방들이 실패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위험에 놓인 청소년들과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나 이들의 운명을 한 순간에 결정지어 버리는 법률은 해가 갈수록 억압적이 되어 가고 있다 … 어제아 아무리 형편없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  (58, 60, 68쪽)


 참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혼자서 살고 싶어하시는가요. 아버지는 왜 그토록 당신 아이들이 혼자 살도록 가르쳤습니까. 아니,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도록 이끌었습니까.

 제 한몸이 아무리 잘났다 한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데, 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보여주지 않았고, 우리들이 이웃과 어깨동무하도록 이끌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는 앞으로도 혼자서만 ‘어깨 우쭐거리’면서, 아버지 그 널따란 시골 전원주택에 ‘학교에서 교사-교감-교장으로 있는 동안 받은 상패를 줄줄이 늘어놓고서는, 찾아오는 이도 드물어 상패를 보아주는 이도 거의 없을 텐데, 날마다 걸레질을 해 놓고 반질반질 닦아 놓고만’ 있으시렵니까.

 그러고 보니, 이런 아버지 ‘자랑하기’가 내키지 않아서, 제가 집을 뛰쳐나와서 혼자서 살아가는 동안 ‘신문과 방송에 날 만한 큰 상’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그 상패는 후배한테 줘 버리거나 어디 처박아 놓거나 남 주거나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상을 받은 줄 다 잊었습니다. 아버지는 저한테는 거울 같은 사람이 되어서, ‘이런 길로 걸어가면 네가 다친다. 너는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거들랑 아버지를 잘 보고 아버지처럼 하지 말라’ 하는 가르침을 베풀어 주실 셈이십니까. 거울이 아닌 손을 맞잡는 한 식구로서, 거울이 아니라 서로 어깨를 겯고 함께 땀 흘리면서 집 앞 텃밭을 일굴 수 있는 길동무로서, 이제라도 당신 몸뚱이를 짓누르도록 들고 있는 짐덩어리를 내려놓으실 뜻은 없으십니까. 아버지도 이제는 어엿한 할아버지가 되었는데요. 우리 딸 사름벼리네 친할아버지인데요.





 (2) 아이를 생각한다


.. 진짜 문제는 부모들이 ‘내 행동은 따라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말대로만 해라’ 하고 할 때 일어난다 … 부모들이 자신들의 기대가 부당하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할 때, 대부분의 자녀들은 금세 부모를 용서하며 최악의 가정불화도 아주 빠르게 해결된다는 것 … 현실주의자들이 아니라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이 말이 시시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희망의 눈을 통해, 정말이지 현실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 ..  (75, 76, 91쪽)


 옆지기 부모님 댁에서 보름 남짓 머물렀습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마냥 옆지기 부모님 댁에만 머물 수 없어서, 음성에 있는 제 부모님 댁에 갈 생각을 하고, 또 오래도록 비워 둔 인천 우리 집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저 혼자 인천으로 와서 집을 쓸고 닦고 치우고 털고 합니다. 아침에 다시 쓸고 닦고 이불 털고 햇볕에 말리고 합니다. 조금 뒤 목초액 한 번 뿌리고 다시 닦고 치우고 해야지요. 스무 날 가까이 닦지 못한 방바닥은 미끌미끌한데다 먼지가 뽀얗게 앉았습니다.

 방을 훔치고 나무벽을 닦고 부엌 개수대를 갈무리하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오늘 옆지기와 아기는 드디어 세이레를 마치고 인천 집으로 돌아와서 새 삶을 꾸려 나가게 됩니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누는 오줌과 똥도 넘쳐납니다. 지금은 기저귀 한 장만 대고 있는데, 곧 두 장을 대어야지 싶습니다. 빨래감은 늘 터이나,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일감이요, 넉넉히 치를 만한 일거리입니다.

 누워 있기 싫다며 칭얼거리는 아기를 팔에 안고 살살 어르고 있으면 똘망똘망한 바둑알 눈으로 저를 가만히 쳐다봅니다. 이 아이는 아직 사람말을 하지 못하기에 입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 말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지 않습니다. 날씨를 말하고 집을 말하고 세상을 말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된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며 아기한테 건네는 말이며 아이 머리에 고스란히 새겨진다는 마음으로, 말을 삼가고 아끼고 가리고 있습니다. 아직 아기일 때 둘레에서 듣는 말이 아기가 앞으로 익히면서 쓸 말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 말투와 말씨와 삶 모두 추스르고 있습니다.


.. 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장애물과 문제는 빨리 발견하면서 기쁨은 쉽게 놓쳐 버리는 것일까? 왜 우리는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열을 내면서 자녀 양육에 반드시 뒤따르는 어려움을 받아들이기는 꺼리는 것일까? …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우리 세대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그 가치를 전해 줄 수 있겠는가? ..  (94, 95쪽)


 여러 번 훔친 방바닥이 깨끗합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시끄러운 차소리도 함께 들어오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노래가락처럼 받아들여야 할 소리입니다. 그래도 저 차소리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저 차소리가 자전거 소리로 바뀌고, 뚜벅뚜벅 걷는 소리로 바뀔 수 있다면.

 주문만 해 놓고 아이 낳느라 바빠서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전거 바퀴도 자전거집에 가서 찾아와야 합니다. 아기가 자라서 스스로 몸을 가누고 걸을 수 있을 즈음 태우고 다닐 짐수레에 새로 붙일 바퀴를 주문해 놓았거든요. 제가 타는 자전거에도 아기를 앉힐 자리를 붙이려 합니다. 머잖아 아이가 제법 크게 되면, 자전거를 함께 타고 골목마실을 하면서 동네를 살피고 동네 이웃을 만나려고 합니다. 동네 이웃들도 애 아버지와 아이를 보면서 방긋방긋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우리가 아이를 판단하는 것은, 그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묫하기 때문이다 … 마이클의 이야기는 여전히 모든 부모에게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 준다. 바로 자식들은 부모 자신이 아니며, 자식들의 재능을 비교하거나 자식을 통해 부모의 꿈을 대신 이루려는 시도는 결국 아이를 망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  (114, 120쪽)


 마땅한 이야기이지만,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는 미역국과 누런쌀콩팥밥만 먹습니다. 사이사이 과일을 먹습니다. 아무 밥이마 함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면,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는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 되며 아무 공기나 마시면 안 됩니다. 모두 아기한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마실 수 있는 물과 공기는 어떠한가요. 아기나 아기 어머니가 지내는 삶터는 얼마나 조용한가요. 이웃사람은 서로를 얼마나 헤아려 주고 있나요. 우리는 돈 앞에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괴롭히거나 들볶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에 매여서 우리 스스로를 옥죄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에 미쳐서 우리 터전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거나 흔들고 있지 않습니까.

 빨리 가 보아야 고작 1분인데, 아침에 1분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면 그만이거늘, 1분을 더 빨리 자동차로 달리겠다고 수천 억원을 들여서 새 찻길을 뚫어야 하는가요. 찻길 새로 닦는 수천 억원은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하게 지키는 데에 쓸 돈이 아닌가요.


.. 헤세가 생명을 죽이는 힘으로 지적하는 존중하지 않는 마음은 오늘날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장 큰 위험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언어를 비롯해서 문화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다 … 우리들 가운데 스스로 현자나 성자라고 자신할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것이다 ..  (133, 136쪽)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했더니 1회용 물수건을 잔뜩 줍니다. 물수건을 왜 주는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회용 기저귀를 쓰는 집에서는 기저귀를 갈면서 아기 엉덩이를 물수건으로 닦는다고 하더군요. 기저귀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를 쓰면서, 아기 엉덩이도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로 닦는 셈입니다.

 아기한테 채우거나 아기를 닦을 때 쓰는 물건으로는, 언뜻 보면 손쉬운 듯하고 깨끗해 보이기도 한 ‘한 번 쓰는 물건’들인데, 이 물건들은 정작 아기한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물건을 만드느라 어마어마한 자원이 버려졌는데, 이 물건이 쓰레기가 되면서 우리 삶터는 어마어마한 쓰레기터가 되어야 합니다.

 천기저귀를 빨면 물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손빨래를 해 보면서 느끼는데, 물은 그리 많이 안 듭니다. 대야를 여러 개 놓고 ‘헹구기만 하는 기저귀’와 ‘똥을 빨아야 하는 기저귀’를 따로 놓고 빤 다음 목초액 뿌려서 담가 놓고 다시 헹구면 아주 적은 물로도 넉넉히 빨래를 할 수 있습니다. 다 쓴 물은 걸레를 빨 때 쓰면 되고, 걸레를 빤 물도 씻는방 바닥을 닦는 데에 쓰면 됩니다. 여느 우리 살림과 견주어 물을 더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쓰고 버리는 기저귀나 물수건을 만들 때에는, 또 이 물건을 비닐껍데기에 씌울 때에는, 또 이 물건을 짐차에 싣고 가게까지 실어나를 때에는, 또 우리들이 자가용을 타고 이 물건을 가게로 사러 갈 때에는, 그리고 가게에서 이 물건을 팔려고 전기불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얼마나 많은 자원이 쓰이고 있는 셈입니까. 값싸게 사는 듯 보이는 1회용 기저귀와 물수건이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돈을 치르고 있는 셈이며, 우리 삶터를 아주 끔찍하게 더럽히고 있는 셈입니다.





 (3) 후다닥 읽어서는 안 되는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난 2007년 12월 26일에 나온 책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를 8월 28일에 덮었습니다. 꼭 여덟 달을 꾹꾹 채워서 읽었습니다. 크게 나누어 아홉 갈래로 엮인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입니다. ‘무관심, 돈, 지나친 기대, 잘못된 훈계, 위선, 회피, 문제아를 위해, 존중의 발견, 아이를 떠나보내라’, 이렇게 아홉 갈래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기를 들면서 ‘아이는 왜 기다려 주지 않는가’를 들려줍니다.


.. 아이를 구속하는 것은 아이를 짓밟아 뭉개는 짓이다 ..  (150쪽)


 참말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우리 아기도 그런데,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울어댑니다. 똥오줌을 누면 얼른 기저귀 갈아 달라고 칭얼댑니다. 이때, 배고픈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 않거나 똥오줌 눈 기저귀를 갈아 주지 않으면, 아기는 몸에 탈이 납니다. 마음도 다칩니다. 그때그때 놓치지 말고, 아기가 기다리지 않도록 하면서 어른이 움직여야 합니다.


.. 우리 부모들도 모두 한때 십대였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후회할 일을 경험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들에게는 더 높은 기준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자식을 소유하려는 애정과 자식에게서 무언가를 되돌려받으려는 보상심리로 청소년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 어른이 먼저 아이를 존중하면 아이도 어른을 존경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 지금처럼 개인의 중요성에 대하 많은 말을 하면서도 획일된 문화가 사회를 전에 없이 평준화해 버리고, 모든 사람을 다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 시대에 …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바꿔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  (156∼161쪽)


 우리 아버지는 당신 아이들하고 거의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살았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몸담은 학교에서 이웃 교사하고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가르친 아이들하고는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 어머니하고는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대로 형은 형대로, 두 사람은 ‘어버이인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으면서 살아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걸어 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우리가 스스로 이야기를 걸도록 가르쳐 주지도 않았기에,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버릇은 몸에 배지 않았습니다(그렇지만 형은 저하고 많이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가 너무 일찍 되었는지 모르고, 아버지가 일찍 되었다 하더라도 아버지로 살아가는 길을 그다지 깊이 살피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아직까지도 아버지는 당신이 아버지인 줄 못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아버지 스스로 당신이 아버지라는 생각을 못할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란 어떤 사람이며, 아이한테 아버지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거의 못 느낄지 모릅니다.

 그지없이 딱할 뿐더러 안타깝고 슬프고 가슴 저미는 일입니다. 자칫 저 또한 우리 아버지마냥 우리 딸아이한테 어슷비슷한 길을 걸어갈 걱정이 있습니다. 고맙다면, 옆지기가 늘 곁에 있어 주면서, 제가 아버지와 어슷비슷한 길을 갈라치면 따끔하게 일깨워 줍니다. 낱낱이 깨우쳐 줍니다. 그때그때 다그쳐 줍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어떤 옆지기로 살아가실는지. 그예 가만히 계시는 분일는지, 그때그때 꼬치꼬치 말씀을 해 주는 분일는지. 이 땅에서 어머니로 살아가신 분들과 어머니로 살아가는 분들과 어머니로 살아갈 분들은 자기 스스로 ‘어머니 길’을 가고 있음을 또렷이 깨닫고 있을는지.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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