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골목길과 부산 골목길
 ― ‘부산 책방골목잔치 마실’을 앞두고 쓰는 편지



 열 해쯤 앞서부터 해마다 한두 차례 부산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사람이 아니면서 부산을 바라보는 동안, 부산 삶터가 나날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해마다 새삼 느낍니다. 인천과 마찬가지로 산등성이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골목집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층층집들만 가득가득 솟아나고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데에도 층층집만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층층집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을 수 있을까요. 허물린 골목집은 ‘오래되어서 위험하기’ 때문에 허물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돈을 뽑아내려는 건설업자와 공직사회가 ‘재개발 법’에 따라서 밀어냈을 뿐입니다. 골목길에서 살던 사람들 또한 몇 푼 안 되는 돈에 휘둘리면서 스스로 제 삶터를 내동댕이쳤습니다. 무턱대고 밀어대는 사람도 딱하지만, 밀어댄다고 해서 돈에 휘둘리는 골목사람도 안쓰럽습니다. 우리들은 이 짧은 한삶을 보내는 동안 왜 그리도 돈에만 목을 매달아야 하는지요? 러시아 큰스승 톨스토이 말을 빌지 않더라도, ‘한 사람한테는 얼마나 넓은 땅과 많은 돈과 높은 이름이 있어야 하는가?’ 하고 묻고 습니다.

 막말로, ‘재래시장’을 없애고 ‘쇼핑센터’를 들이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쇼핑센터를 짓기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돈은 돈이 아닌가요. 쇼핑센터를 굴리는 데 들어갈 어마어마한 전기와 자원은 돈이 아닌가요. 물건을 사고파는 시세차익으로 돈을 뽑아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우리 땅을 고이 일구면서 알맞춤하게 얻고 넉넉하게 나누며 살아가는 일이란 아무 보람이 없을는지요.

 더 많은 돈이 아닌 더 넉넉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더 큰 집이 아닌 더 따스한 믿음이 그립습니다. 더 빠른 자동차와 고속철도가 아닌 더 애틋한 나눔이 그립습니다. 더 높은 이름이 아닌 더 아름다운 마음결이 그립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나쁘지 않을 터이나, 착한 사람이 훨씬 반갑습니다. 얼굴 예쁘장한 사람도 싫지 않으나, 다소곳하게 이웃을 헤아리거나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더욱 고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서는 돈보다는 사랑을, 큰 집보다는 따스한 믿음을 느낍니다. 날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동네 마실(제가 사는 집이 골목집이니 사진 찍으러 다니는 일은 동네 마실이 됩니다)’을 다니면서, 둘레 이웃들한테 반가운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습니다. 아기자기 꾸민 꽃그릇을 보고, 예술품과 다를 바 없이 매만진 꽃줄기와 벽과 울타리와 문간을 봅니다. 손때 묻은 이름패를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이 땅에서 뿌리내린 사람들 숨결을 느낍니다. 우체통이 비맞아 슬지 말라며 플라스틱 달걀판을 얹은 모습을 보면서, 그저 꾸밈없이 즐기면서 살아가는 맛이 무엇인가를 곱씹습니다. 시멘트 길바닥이지만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아도 발을 다치게 할 병조각이나 쓰레기가 없도록, 골목사람 스스로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비질하는 그 품새가 거룩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따라 배운다고,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오순도순 어울리는 골목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웃사랑과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배웁니다. 이웃이 누군 줄도 모르며 쇠문 철컥철컥 닫아걸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만 빠져들게 되는 층층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나 하나만 잘 되기’를 배우면서 외돌토리가 되어 갑니다. 아이들이 ‘이름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인생 성공’은 아닐 테지요. 아이들이 ‘이름나고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아야 ‘인생 역전’은 아닐 테지요.

 부산 광안리 모래밭이 어느새 시멘트로 덮이고 찻집과 술집으로 떡발린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맨발로 디딜 모래밭이 차츰 줄어들고, ‘비싸디비싼’ 기름을 먹는 자동차를 굴려서 기나긴 다리를 건너야 바다를 내다보며 즐길 수 있게 되는 부산 삶터가 가슴을 무너지게 합니다. 우리가 즐기는 문화라 한다면, 자동차가 없는 사람도 즐기고 돈이 없는 사람도 즐기며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는 사람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전거가 지나갈 수 없을 뿐더러, 걸어서 오갈 수 없는 다리도 다리일까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느긋하게 달릴 수 없을 뿐더러, 아이들이 길바닥에 금을 긋고 놀이를 할 수 없는 동네가 참말 사람 사는 동네가 맞는지 여쭈어 봅니다. 아이들한테 고무줄놀이를 빼앗고 인터넷게임을 가르친 이들은 바로 우리 어른입니다. 아이들한테 술래잡기를 빼앗고 텔레비전에 푹 빠지게 가르친 이들은 바로 우리 어른입니다. 아이하고 손을 마주하면서 실뜨기놀이를 하는 틈조차 내지 못하는 우리 어른입니다. 아이한테 책 하나 읽어 주지도 못하도록 돈 버느라 바쁘지만, 아이한테 들려줄 ‘우리 어른들 살아온 이야기’ 하나 제대로 되새기지 못하는 우리 어른입니다.

 가만히 보면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들한테는 우리 삶이 없으니, 우리한테 고유한 문화 또한 없습니다. 부산에 가 보아도 ‘여기가 부산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집이나 길이나 사람이 없습니다. ‘했어예’ 하는 말투 하나로, 말 높낮이(억양) 몇 가지로만 부산을 느껴야 한다면, 인천사람이 구태여 부산까지 나들이를 가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제 고향 인천이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저 같은 사람이 깃들어 사는 골목집을 와장창 때려부수고, 맨숭맨숭 재미도 없고 비싸기는 우라지게 비싼 층층집만 잔뜩 짓는 재개발을 밀어붙여서 끝내 뜻을 이루어 버린다면, 부산에 계신 여러분들을 인천으로 부를 수 없을 뿐더러, 불러도 재미가 없습니다. 지금은 돈 한푼 안 들이고도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얼마든지 ‘인천 마실’을 즐길 수 있지만, 앞으로는 자가용을 끌고 돈 쓰고 다녀야 비로소 ‘인천 마실’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부산에는 자갈치시장이 있고 어마어마한 개미소굴 같은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저잣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있습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서울 청계천에서도 사라지고, 대구와 광주와 대전에서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있는 헌책방골목이 꿋꿋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해마다 ‘책방골목잔치’까지 엽니다. 부산국제영화잔치도 볼 만한 자리일 텐데, 저로서는 부천에서도 하고 전주에서도 하고 또 어디어디에서도 똑같은 꼴로, 그예 판박이로 이루어지는 영화잔치보다는, 제주는 제주대로 강릉은 강릉대로 청주는 청주대로, 인천은 인천대로, 또 부산은 부산대로 모두 다른 맛으로 꾸려 나가고 있는 헌책방이 깃든 그 골목 그 거리를 두 다리로 사붓사붓 걸어다니며 사진도 몇 장 찍고 책도 몇 권 고르면서 마음과 생각과 얼과 넋을 살찌우는 ‘부산 마실’이 더없이 반갑고 신납니다. 그래서, 이참에 ‘인천 골목길’을 찍은 사진을 들고 부산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그러면서, 다음해에는 부산에서 ‘부산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는 분들이 사진꾸러미를 어깨에 짊어지고 인천으로 나들이를 와서 사진잔치 한 번 열어 주면 얼마나 재미날까,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 하면서 혼자서 꿈을 꾸고 웃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돈을 갖다 앵겨도 바꾸지 않을 아름다운 골목에서 왁자지껄한 놀이마당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 놀이마당을 앞으로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이 가운데 누구보다도 부산 아이들한테 싱그럽고 푸르게 물려주면서, 먼 뒷날에는 아이들이 제 나름대로 새롭게 꾸며 나가도록 널리 베풀어 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341.9.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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