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작가로 걷는 길’과 ‘기저귀 빠는 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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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6일 새벽 다섯 시 사십육 분에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낳기는 옆지기가 낳고, 저는 옆지기 진통을 함께 받았습니다. 스물네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옆에서 부축이고 주무르고 양수와 피를 닦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옆지기가 찬 기저귀를 빨고 밥을 떠먹였습니다. 이제 옆지기는 자기 손으로 밥과 국을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되었지만, 아기를 안아 올리기에도 힘이 모자란 형편. 얼추 한 주쯤 지나면서 혼자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볼 수는 있으나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일을 시켜서도 안 되지요. 예부터 세이레라는 말은 괜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낳는 진통과 아이낳기와 아이 돌보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또 제가 손수 거들면서,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을 넉넉한 시간에 걸쳐서 느긋하게 쉬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서 돌보아 주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며 다른 집식구들이 애먹을 수밖에 없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예전에는 머리속에 깃든 지식으로만 알던 이야기를, 이제는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으로 깨닫습니다.

 처음 진통을 하던 8월 15일 새벽부터 오늘 8월 23일 아침까지, 제가 잠든 시간이 얼마나 되나 손꼽아 봅니다. 한 주 동안 다문 열 시간이나마 잠을 잤나 모르겠습니다. 자리에 눕기로는 열 몇 시간은 누워 있은 듯하지만, 제대로 잠든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쯤밖에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낳는 동안 아파하는 옆지기를 돌볼 때에는 돌본다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뒤에는 몸을 쓰지 못하는 옆지기를 돌본다며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이즈음은 옆지기와 아기 시중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옆지기가 기운을 차려서 조금 움직이며 아기 기저귀를 갈아 주는 낮나절 잠깐 눈을 붙일 뿐, 그 앞과 뒤로는 쉴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쉴 겨를이 아니라 잠들 겨를이 없습니다.

 하루에 열둘∼스무 번 똥와 오줌을 지리거나 누는 아기입니다. 좀 자라면 덜할지 모를 텐데, 그때는 덜하더라도 누는 똥과 오줌이 늘 테지요. 지금으로서는, 젖을 먹으면서도 오줌이나 똥을 누고, 젖을 먹고 잠든 다음에도 오줌이나 똥을 누며, 칭얼거려서 가슴에 안아 줄 때에도 오줌과 똥을 지립니다.




 아기 낳기 앞서, 동네 할머님과 옆지기 집에서 천기저귀를 얻어서 갖추어 놓았습니다. 아기 사타구니에 차는 하나와 등에 받쳐서 싸는 하나, 이렇게 두 장을 날마다 열두 번에서 스무 번을 써야 하니까, 날마다 빨아야 하는 기저귀는 스물 넉 장에서 마흔 장입니다. 그리고 옆지기는 앞으로 한 달 남짓 아랫도리에서 피를 흘릴 터이니, 옆지기 기저귀도 날마다 두어 장씩 빱니다.

 기저귀만 빨면 그래도 낫지만, 아기가 드러눕는 바닥 담요와 포대기도 빨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죄다 빨다가 너무 힘들고 빨래감이 많아서, 포대기는 하루에 한 번만 빨기로 하고 똥오줌 지린 데만 물로 헹구고 살짝 빨아서 다림질로 말린 뒤 다시 씁니다. 담요는 한 주쯤 쓴 다음 빨아야지요. 담요도 젖는 틈틈이 다림질을 해서 말립니다.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해서 먹여야 하니 밥을 합니다. 밥을 하는 사이 “여보, 아기가 오줌 쌌어요.” 하고 부르면, “네.” 하고 쪼르르 달려가서 기저귀를 갈고 아기 엉덩이 닦고 바닥 포대기 살짝 빨아서 다림질을 합니다. 그러고 다시 밥을 해서 쟁반에 받쳐서 대접을 하고, 그런 다음 뒷간 빨래통에 담가 놓은 기저귀를 빱니다. 빨아도 빨아도 끝이 없기는 하지만, 어제는 비가 내내 그치지 않아 집안에 널어 놓은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았습니다. 안 마르는 빨래에 부채질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또 “여보, 아기가 똥 쌌어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며 포르르 달려가서 기저귀 갈고 엉덩이 닦고 포대기 또 빨아서 다림질을 하고 내려놓는데, 이십 분 뒤에 또 오줌을 지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로 갈아 준 기저귀를 사타구니에 받치고 누운 지 이십 분 뒤 또 오줌을 지렸습니다. 옆지기가 웃으면서, “벼리야, 아빠 이제 막 자리에 누웠는데 또 일으켜서 기저귀 갈아야 한다. 아빠 보고 한 번 웃어 줘라.” 하고 말합니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기를 째려보다가는 코로 볼을 한 번 눌러 준 뒤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를 빨아서 다림질을 한 다음 눕힙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며칠 아기 돌보기를 도와주었을 때에도 일감은 많았는데, 옆지기 어머님도 당신 댁을 돌봐야 해서 돌아간 뒤에는 일감이 훨씬 많아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왜 이리 짧으냐 싶습니다. 일은 고되게 하면서도 밥맛이 돌지 않아 밥을 못 먹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밥때를 챙기지 못합니다. 밥때를 챙기지 못하니 어느새 배고픔이 가라앉고, 나중에는 힘이 빠져 먹을 마음을 잃습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날 잠을 못 자면서 빨래하고 뭐 하고 하느라 몸 균형이 깨진 듯합니다. 여느 때 71∼72킬로그램 하던 몸무게가 오늘아침에는 65.5킬로그램까지 줄었습니다.

 오늘 새벽 네 시 오 분에 기저귀를 갈고 나서 다섯 시 십구 분까지 빨래를 하고, 다섯 시 사십오 분까지 다림질을 하다가 아기 기저귀를 또 한 번 갈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지 않는다.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으나, 이 말은 옳지 않다. 사람은 겪은 만큼 볼 뿐이다. 겪지 못했으니까 지식으로 머리속에 있어도 살갗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느낌(감동)이 없다. 때때로, 겪어 보지 않고도 (사물 속살을 꿰뚫어) 보는 이가 있는데, 자기 스스로 바로 그 일을 겪지는 않았으나, 자기가 겪은 다른 일을 미루어 살갗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는 사람은 지식으로 보는 사람이다. 겪은 만큼 보는 사람은 삶으로 세상을 보고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는 사람이다. 우리(나와 옆지기)가 천기저귀를 마련해서 손빨래를 하고 아기한테 어머니젖을 먹이는 까닭은, 돈을 아끼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생각하기 때문이요, 우리 삶을 가꾸고 싶기 때문이다. 천기저귀와 어머니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1회용 기저귀와 가루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몸이며 마음이며 같은가. 하루를 온통 바쳐도 모자랄 만큼 갖은 일에 허덕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나날은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견주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얼마 안 되는 나날을 아이와 우리 자신을 더 헤아리면서 이처럼 보낼 수 있다면, 서로한테 더욱 힘이 되고 즐거웁지 않겠는가.’

 아기 기저귀를 또 갈고 다시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니 여섯 시 삼십이 분. 이제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까 했으나, 옆지기가 “여보, 나 배고파요, 밥 줘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고 대꾸하며 미역국을 뎁힙니다. 잠자는 방에서 날뛰는 모기를 잡고 이렁저렁 있는 사이 아기는 다시 똥을 지리고, 저는 다시 기저귀 빨래를 하니 여덟 시 사십사 분. 히유, 하고 한숨 돌리며 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지만, 또다시 밀려드는 ‘기저귀 갈기와 빨기와 다림질’.

 아기와 함께 산 지 오늘로 엿새째인데, 이제 아기가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기분이 좋은지 꼬리한지, 또는 오줌을 지렸는지 똥을 누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아기는 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윽’ ‘끙’ ‘끄’ 외마디를 아주 나즈막하고 짧게 내뱉습니다. 마루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이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와서 이불 밑으로 손을 넣으면 촉촉하거나 물컹합니다. 기저귀 안 젖은 쪽으로 손을 닦고 다른 쪽으로 엉덩이를 살살 닦으면서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생각해 보면, 또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저런 돌봄이 노릇은 고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 아닌 제가 겪는 일을 돌아보아도 참으로 고단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이 고단하고 힘든 일을 누구한테 맡길 마음은 없습니다. 빨아 놓은 기저귀는 안 마르고 아기는 또다시 오줌과 똥을 지리면 그지없이 까마득해서 부리나케 덜 마른 기저귀를 부랴부랴 다림질을 해서 대어 주는데, 꼭 ‘아버지가 되는 느낌’이어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삶이구나, 사람 삶이구나, 우리 삶이구나, 하는 느낌이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지난주에는 옆지기 양수 냄새가 제 몸에 듬뿍 배어 있었고, 이주부터는 아기 똥오줌 냄새가 제 몸에 잔뜩 배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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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가 아버지한테 잠깐이나마 ‘평화’를 선물해 주는 아침 열 시 반무렵. 조용히 옆방으로 와서 셈틀을 켭니다. 잠을 자고 싶지만, 지금 잠을 자면 아예 셈틀을 켤 수 없기 때문에 눈 둘레를 주물러 주고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뒷간에 갈 때를 빼놓고는 책장 한 번 펼치기 힘든 요즈음, 셈틀을 켜고 글 한 줄 쓸 틈은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걸려오는 전화 받기는 귀찮을 뿐더러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한창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전화가 오면 짜증부터 덜컥 납니다. 맞은편에서는 제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길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얼른 끊고 싶으나, 자기 볼일을 마쳐야 전화를 끊어 주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전화 받기 몹시 힘들어요.” 하고 말해도 ‘얼마나 힘든 줄’을 거의 못 느끼지 싶습니다.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우리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언제나 일하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집에만 계신 어머니이지만, 어머니가 해야 할 몫은 늘 끝이 없었지 싶습니다. 제가 철이 든 뒤에도 그러했으니, 제가 막 태어난 아기였을 때에는 일감이 훨씬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육아책’을 못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볼 겨를도 없지만, 볼 꿈도 못 꾸었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볼 마음을 품어 본 적이 있으셨을까요, 없으셨을까요. 있으셨어도 하루하루 바쁘고 고단해서 연필 들어 일기장 적을 힘이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연필을 들 힘이 있으면 빨래 한 점을 더 하거나 걸레질 한 번을 더 한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고, 몸져누운 할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수발해야 했기에, 어머니 당신한테 ‘작가가 되는 꿈’이 있었다고 해도,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이웃 동네에 사는 할머니 시인인 정송희 님 말을 들으면,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아이가 혼인하기까지 ‘시인이라는 이름은 젊은 날 걸치고 있었으나 시를 쓸 틈과 힘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서른 해 남짓 접어놓은’ 채 사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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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쓰는데 아기가 울어서 안아서 어르고, 조용해지면 밀린 기저귀를 빨고 다림질을 하고, 모처럼 해가 나서 빨래를 앞마당에 옮겨 널고, 옆지기 수박 잘라 주고, 똥 눈 아기 엉덩이 씻기고 하니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아버지도 밥을 먹어야 하건만 밥때를 챙길 겨를이 없고, 밥을 챙겨 줄 손이 모자랍니다. 이제 막 옆지기가 아기 젖을 물렸으니 이십 분이나 삼십 분은 숨통을 틀 듯합니다. 후다닥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와서 제 먹을거리를 챙기고, 남은 기저귀를 빨고 다려야겠습니다.

 새삼스레 ‘아줌마 작가’가 드물고 ‘아이 키우기와는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는 남성 작가’만 많은 우리네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1.8.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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