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산책 - 일상 속에서 건져낸 사진 이야기
한정식 지음 / 눈빛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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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동화 읽으며 자라니, 한국 사진을 못 찍어
 [잠깐 읽기 8] 한정식, 《사진 산책》 또는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 책이름 :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 글ㆍ사진 : 한정식
- 펴낸곳 : 열화당(1999.3.16.)

***
2007년 3월 20일, ‘눈빛’ 출판사에서 고침판을 새로 펴내 주었습니다. 여덟 해 만에 다시 나온 셈인데, 저로서는 새로 나온 판까지는 따로 안 사도 되겠다고 느껴서, 처음 나온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처음 책은 판이 끊어졌으며 1999년에 나왔음에도 책값이 1만 원이었는데, 새로 나온 판이 한결 보기에 나으며 2007년에 나왔는데에도 책값은 똑같이 1만 원입니다.



 (1) 사진이란 무엇인가


 둘레에서 곧잘 ‘도서관에서 사진강좌 안 하나요?’ 하고 묻곤 합니다. 저는 싱긋 웃으면서 ‘사진 강좌라고 뭐 있나요. 10분만 이야기하면 사진 강좌는 끝인데, 그런 걸 어떻게 해요?’ 하고 대꾸해 줍니다. 짧으면 5분에 끝나고, 길어도 30분을 넘어갈 수 없는 ‘사진 강좌’입니다.

 몇 번 사진 강좌랍시고 들어 볼 때마다, 참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사진 ‘강의’라면 다릅니다. 사진 ‘교육’이 될 때에도 다릅니다. 이때에는 지루할 수 없습니다. 말이야 다 같거나 비슷한 말일 텐데, 이 말을 쓰는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자리가 모두 다르니, ‘사진 강좌­’라 한다면 참 꺼려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은 사진 ‘교육이나 강의’는 바라지 않고, 사진 ‘강좌’만을 바랍니다.


.. 모르는 이들은 기념사진이 ‘작품사진’ 바깥쪽에 따로 선 막대기인 줄로만 안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념사진이라고 해서 작품사진일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작품사진’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꿈이 담긴 영롱한 사진이 작품이 아니라면 무엇이 ‘작품’일까 ..  (꿈을 찍는…/31쪽)


 2005년이었지 싶은데, 그때 한 번 자원봉사로 사진 ‘강좌’를 해 본 적 있습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회원들한테 ‘국립공원에서 사진 찍기’를 들려주고 함께 국립공원 나들이를 하며 사진을 찍는데, 5분쯤 지나니 할 말이 없더군요. 사진기 기능이 이렇고 저렇고, 노출이 이렇고 저렇고, 초점이 이렇고 저렇고, 틀이 이렇고 저렇고, 사진 찍는 매무새가 어떻고 저떻고 …… 하는 이야기는 금세 끝납니다. 필름으로 찍어서 손수 인화 현상을 한다면 좀더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모두들 디지털사진기를 들고 국립공원을 오르내리면서 이곳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허튼 짓을 하는 사람을 잡거나, 잘못된 시설을 바로잡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분들한테 가르쳐 줄 ‘강좌 지식’은 그야말로 한줌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줌조차 너무 많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함께 산을 타고 숲길을 지나면서, 발걸음을 조금 늦추고 때때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서 쉬면서 가만히 둘레를 돌아보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눈에 곱고 살갑게 다가오는 모습’이 있을 테니, 그 모습을 그때 그 자리에서 담아내어 보시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보다 사진을 좀더 많이 찍기는 했습니다만, 제 사진이 그분들보다 한결 보기좋거나 훌륭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찍은 곳이 헌책방이거나 골목길이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 터이나, 국립공원을 저보다 훨씬 자주 구석구석 누벼 보신 분들이 국립공원에서 담는 사진은 제 눈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함께 밥먹는 자리에서 넌지시 여쭈었지요. ‘모두들 사진 잘 찍으시는데, 사진 강좌라고 따로 없어도 되잖아요?’ ‘그래도, 한 번도 그런 강좌를 들어 보지 못해서, 우리가 잘 찍나 못 찍나를 알 수 없으니까요.’ ‘강좌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더 잘 찍지 않아요. 오히려 강좌를 많이 받는 분들은, 강좌를 이끄는 사람이 바라보는 틀거리대로 따라가거나 멋부리는 흉내를 내면서 고유한 자기 틀거리를 잃어버리게 돼요. 여러분들은 모두들 고유한 자기 틀거리와 눈을 잃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훌륭하게 잘 찍으시잖아요.’


.. 하지만, 아이들 사진이 밝아야 한다는 까닭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밝은 사진을 뽑는 것이 소위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예술 작품 선정기준이 될 수도 없거니와, 더구나, 아이들이라고 언제나 밝을 수도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는 법인 것을 ..  (슬픈 어린이/82쪽)


 돌이켜보면, 제가 찍는 사진감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인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어 온 분이 있었다면, 얼결에 그이 사진 틀거리를 흉내내거나 베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제 나름대로 제 눈길을 틔울 수 있겠지만, 좀처럼 못 벗어났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둘째 사진감인 ‘골목길’은 찍는 분이 꽤 많으나, 골목길 사진 찍는 분들은 한결같이 ‘골목 바깥 사람’으로서 구경하는 사진밖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웃는 골목사람’이나 ‘꾀죄죄한 뒷골목’ 풍경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습니다. 오히려 골목길 사진은 많은 이들이 찍어도 그 어느 작가들 사진에도 영향을 안 받고 있습니다.

 셋째 사진감인 ‘자전거’는 찍는 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모임 분들 사진은 놀러다니는 사진이나 술마시는 사진이나 그저 싱싱 달리는 사진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또는 멋스럽게 찍으려는 사진. 생활자전거를 찍는 분이나,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나는 모습을 담아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사진감 세 가지를 알뜰하게 담아낸다 싶은 분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홀로 부지런히 제 사진 틀거리를 갈고닦는구나 싶습니다. 배울 사람이 없으니 처음부터 어디 학교나 강좌에 나갈 꿈도 꾸지 않았고, 혼자서 이 책 저 책 들추고, 몸을 움직여 온 하루를 길에서 보내고 사람을 만나면서 사진눈을 추스를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 제 사진, 제 가족사진, 적어도 저와 가까운 사람의 사진일 때에 사진을 보는 흥미는 배가된다. 반대로, 나와 관계가 멀수록 그 사진을 보는 흥미는 또 반감하고. 그래서, 노출이 부족하고, 핀트가 덜 맞았어도 내 아들, 내 손녀의 사진은 볼 때마다 미소가 떠오르고,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남의 사진이면 그저 두어 장 보고 나면 하품이 난다 … 사람 속에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사진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땅 위에서 땅에 속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사진은 가장 커다란 매력을 발산한다 … 그리하여, 우리 선배들은 한때 사진이 예술이 아님을 소리 높이 외쳤다. 사진은 예술 이상이라는 자부심이 거기 있었다. 사진의 예술성을 앞장서서 주장한 사람들은 오히려 아마추어들이었다 ..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90∼91쪽)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무엇을 하는 일인가. 사진은 놀이에 가깝나, 일에 가깝나. 사진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사진을 하는 내 삶은 어떠한가. 사진에 담는 마음이나 얼이나 느낌은 무엇인가. …… 사진을 찍으면서 늘 헤아려 보는 몇 가지 물음입니다.

 아직 이 물음에 마땅히 풀이말을 내놓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섣불리 풀이말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인 한편, 풀이말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늘 되새기고 곱씹으면서 스스로 풀이말을 찾아가야 하는 물음이 아니랴 싶어요. 차근차근 제 길을 걷고, 하나둘 느끼는 대로 곰삭이면서, 서두르지 않되 게으르지 않도록 매무새를 추스른다면, 어느 날 문득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는 물음이라고도 느낍니다.


 (2) 문화란 무엇인가


.. 차례나 제사를 모실 때 지방은 가로체 한글로 한동안 썼다. 한글로 모시려니까 ‘현고(顯考)’ ‘현조비(顯祖妃)’ 등이 안 어울리어 그냥 ‘아버님’ 또는 ‘할머님’ 등으로 고쳐 썼다. 거기에, 축문도 우리 말로 고쳐 놓았다. “유세차(維歲次) … 휘일부림(諱日復臨)…” 어쩌고 해서 알아들을 후손들 거의 없고, 그것을 그대로 한글로 써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겠기에,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우리 말로 고쳐쓰기로 한 것이다 ..  (지방 대신 사진으로/26쪽)


 ‘사진 예술’이라는 말이 쓰이고 ‘사진 문화’라는 말이 쓰입니다. 그렇지만 ‘사진 생활’이라는 말은 그리 쓰이지 않습니다. ‘예술 사진’이라는 말이 쓰이고 ‘상업 사진’이라는 말이 쓰이며 ‘다큐 사진’이라는 말은 쓰이지만, ‘생활 사진’이라는 말은 좀처럼 쓰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곳에서 사진감을 얻어내어 담는 ‘생활 사진’은 ‘다큐 사진’이 되기도 하고 ‘기록 사진’이 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예술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거꾸로 ‘예술 사진’이나 ‘기록’이나 ‘다큐’가 될 수 있을까는 모르겠습니다. 또 ‘예술 사진’이 ‘생활 사진’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넓혀서 살피면, 그림이나 글도, 연극이나 영화도, 체육이나 과학도, 예술이나 상업이나 다큐라는 테두리에서는 움직이지만, ‘생활’이라는 자리로는, 자기 삶이든 이웃 삶이든 우리 모두가 어울리는 삶이든, 삶자리로 다가오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쓰는 말부터 어렵습니다. 전문 갈래이니 전문 낱말을 쓴다고 내세울 수 있습니다만, 전문 갈래라고 해서 우리 삶에서 동떨어진 말로만 주고받는 일이 옳거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퍽 자주, 배부른 이야기가 많아서 꺼리게 됩니다. 배고픈 사람들 이야기, 배고파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못 본 체하는 이야기, 배고픈 삶이란 무엇인가를 도무지 모르는 이야기, 한 마디로 배고픔을 겪거나 부때기거나 찾아보지 않는 배부른 이들 잔치라고만 느껴지곤 합니다.


.. 내가 서 있는 땅을 내려다본다. 내가 지금 편안한 것은 땅 위에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나라, 내 땅이라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 보물이 경주 부근에만 묻혀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나라 어디를 가든 그것은 역사의 땅이요, 유적지이다. 고고학적 가치는 깨어진 기왓장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덩이 자체가 우리의 골동품이요, 유물인 것이다 ..  (사라지는 땅/44∼45쪽)


 살아 있을 때에는 대접 한 번 받지 못하다가, 죽고 난 뒤에야 대접을 받는 수많은 그림쟁이, 글쟁이를 떠올려 봅니다. 사진쟁이는 죽고 난 뒤에도 대접을 거의 못 받고 있는데, 훌륭한 노래를 남긴 분들 가운데에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난과 굶주림과 외로움에 허덕이다가 쓸쓸하게 떠난 분이 무척 많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박물관에 모셔지고 민속마을이 만들어지고 하면서 ‘옛 서민이 쓰던 물건과 살던 집’이 소중한 문화재라며 떠받들리고 있는데, 용인 민속마을 같은 데에서 되살린 옛 서민 살림살이가, 제주민속박물관에서 되살린 지난날 서민 발자취가, 고작 쉰 해나 백 해 앞선 때 우리 모습이었음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스스로도 내동댕이치지만, 나라에서도 업신여기고 틈나는 대로 까부수며 쫓아낸 서민 삶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서민 삶이 뒷날 ‘좋은 유물’로 떠받들림을 받습니다. 오늘날, 서민 삶은 ‘새마을-신도시-뉴타운’이라는 새 이름에 따라서 끊임없이 쫓겨나고 내몰리고 버려지고 죽어 쓰러집니다. 2008년 이날 이곳에서는 푸대접하는 서민 삶인데, 2058년쯤 되면, 아니 2028년쯤만 되어도, 2008년까지 살아남은 서민 삶터를 ‘근현대 골목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린다면서 수천억 원을 쏟아부어 박물관이니 문화마을이니 뭐니 하고 꾸며 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사는 인천 동구에도, ‘송림동 달동네’를 법을 앞세워 싹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운 옆으로, ‘달동네 박물관’을 적잖은 돈을 들여서 되살려 놓았습니다. 이 ‘달동네 박물관’에는 날마다 수백 사람이 찾아와서 ‘좋은 구경하고 간다’고들 이야기합니다.


 (3) 삶이란 무엇인가


.. 옳은 말씀이시다. 내가 부처임을 깨달으면 그 순간부터 나는 부처다운 생각을 하고, 부처다운 말씀을 하고, 부처다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우리가 찍고자 하는 것은 사진이지, 나무나 바위가 아니다. 우리가 찍고자 하는 것은 사진이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우러르는 것은 부처님이지 부처님의 형상을 한 쇳덩이나 나무토막이 아니듯이 ..  (삼존불/114∼115쪽)


 예술이 되는 글도 쓸 수 있고 예술이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예술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돈이 되는 글도 쓸 수 있고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돈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번듯해 보이는 글을 쓰며 이름을 날릴 수 있고 번듯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며 이름을 높일 수 있으며 번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으며 이름 석 자 떵떵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도 돈도 이름값도 안 되는 글과 그림과 사진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 삶을 담아내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내 이웃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에 담을 수 있습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어우러진 삶터를 사진에 새겨 놓을 수 있습니다.

 나라이름은 한국이지만, 한국이라는 고유함보다는 ‘미국처럼 되기를 바라며 어중간함’으로 재개발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한국에서 글을 쓴다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한겨레라 하지만, 한겨레라는 어깨동무를 하지 못하고 북녘하고도 사이가 틀어지고 중국조선족이나 재일조선인 권리를 북돋우지 않는 이 한국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리란 어디에 있을까요. 말은 한국말이지만 한자공동체라는 허울에다가 세계화라는 겉치레에 따라서 제 얼과 넋을 키우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무슨 눈길과 생각을 사진에 담아낼까요.


.. 나는 분명 외국에 와 있었다. 그것도 우리와 인종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유럽에 생전 처음 온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반가움을 느낀 것일까. 무언가 생전에 살던 동네라도 다시 와 본 듯한 착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려서 읽고 자란 통화의 탓이었다. 나만 해도, 안데르센이며 그림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인어공주나 백조왕자를 꿈꾸고, 알리바바나 백설공주가 콩쥐나 팥쥐보다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라인강변의 옛 성이 낯익어 뵈었던 것도, 그 성을 보면서 잠자는 공주를 연상하게 된 것도 모두 그 옛날에 읽으며 자랐던 서양 동화와 그 삽화가 끼친 기다란 그림자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우리의 옛날얘기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 문득, 내 사진이 돌이켜졌다. 내 사진은 과연 내 것일까. 우리 냄새가 나는 그런 것일까 돌이켜졌다. 우리는 서양식 사고방식, 서양식 감정, 서양식 문화에 너무 진하게 물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찍었다고 그대로 우리 사진일 수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서양 동화보다 우리 전래 동화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 왔더라면 내 사진에서도 우리 냄새가 자연스럽게 풍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유럽 여행/166∼167쪽)


 한정식 님은 대학교수 정년퇴임을 앞둔 1999년,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사진산문을 묶어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짜임새를 고치고 책이름을 바꾸어 《사진 산책》을 다시 내놓습니다.

 바뀐 책이름만 놓고 보아도, 한정식 님이 사진을 자기 삶에서 놓지 않고 붙잡는 매무새를 느끼게 됩니다. ‘시간’이니 ‘아름다움’이니 ‘풍경’이니 하는 말을 모두 놓아 버리고 ‘산책’으로 바꾸어 놓은 말마디를 곱씹어 봅니다. 앞으로 세월이 열 해쯤 더 지난 뒤에 이 《사진 산책》을 거듭 찍어내게 될 때, 또는 두 번째 ‘사진 산책’을 나서게 될 때에는 다른 말로 이름을 붙이며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341.7.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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