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살갗 흰 사람


 ‘살갗 누런 사람’들은 ‘살갗 흰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를 높이 우러러 마지 않을 뿐더러, 가장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살갗 흰 사람’ 나라에서 조그마한 일 하나가 터져도 법석일 뿐더러, 신문과 방송에서 큼직큼직하게, 또 여러 번 다룹니다.

 ‘살갗 누런 사람’들은 ‘살갗 까만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를 업신여길 뿐더러, 가장 못났다고 여깁니다. ‘살갗 흰 사람’ 나라에서 커다란 일이 수없이 터져도 모르쇠일 뿐더러, 신문과 방송에 한 귀퉁이로나마 실리는 법이 없습니다.




.. (사루도들은 어디에나 다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무얼 하려는 걸까?) … 이시는 그들이 자기가 소중히 하는 것들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 사루도는 투시가 만들다 만 바구니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었다. (저것이 사루도다. 여자의 집에까지 거침없이 들어가 멋대로 굴잖아. 저 악마들이 약탈한 뒤에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다. 투시와 큰아버지는 재빨리 달아났고, 저들은 어머니에겐 손대지 않았다 …… 그러나 언제나 돌아갈 것인가?) ..  (182∼187쪽)


 여러 해 앞서 어느 술자리를 떠올립니다. 생각이 있으면서 좋다는 책을 펴낸다고 하는 사람하고 어울린 자리였습니다. 미국에 허리케인이 불고 토네이도가 어쩌고 땅이 갈라지고 눈보라가 치고 하는 이야기가 왜 한국땅 ‘아홉 시 새소식’으로 나오고 신문에서도 떠들썩하게 실어야 하느냐 하고 푸념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웃나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사고에다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어이하여 한 마디 안 실리느냐고 덧붙였습니다. 그러고는, 미국 대통령 뽑는 소식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자 뽑는다는 이야기가 왜 날마다 특종처럼 다뤄져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주앉은 나이 지긋한 분께서 ‘미국은 우리 나라한테 중요한 나라니까 그러지’ 하고 대꾸해 줍니다. ‘무엇이 중요한데요?’ 하고 여쭐까 하다가, ‘그깟 나라가 뭘 중요하다고’ 하는 혼잣말만 하고 술잔을 붙잡았습니다.




.. 바깥쪽 방은 마차를 따라온 사람들로 순식간에 꽉 찼다. 남자들은 창살에 기대어 신기한 듯이 이시를 지켜보았고, 이시가 알 수 없는 말로 뭔가를 자꾸만 물었다. “니제 바 야히(나는 야히 족이다).” 이시가 말하자 모두 한꺼번에 크게 웃어댔다. 보안관 조수가 커피와 수프와 빵을 담은 쟁반을 가져다 이시 앞에 놓았지만 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점점 더 많은 사루도가 바깥쪽 창에 와서 창살에 얼굴을 대고는 이시에게 말을 하게 하려고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그들은 바보처럼 헤픈 웃음을 연방 웃었고 담뱃내나는 침을 아무 데고 퉤퉤 뱉었다 ..  (221∼222쪽)


 집에서 일하다가 너무 더워서 혼자서 보리술 한 잔 꼴깍꼴깍 하다가 잠깐 인터넷편지를 열어 보려고 인터넷포털에 들어가 보면, 날마다 ‘살갗 흰 사람’ 나라인 미국에서 일어난 소식이 끊임없이 굵직굵직 다루어집니다. 보려고 하지 않으나 보이게 되고,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광고창을 지우다가 잘못 눌러서 억지로 보게 되기도 합니다.

 문득문득, ‘내가 저 미국이라는 나라 소식까지 들을 까닭이 없으니 텔레비전도 보기 싫고 신문도 보기 싫은데, 인터넷을 하면서 이런 소식을 보지 않을 수 없다면 인터넷도 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만 지나도 쓰레기처럼 쌓이다가 버려지는 미국이라는 나라 소식들인데, 이런 쓰레기 소식이 아니라, 참으로 내 삶을 북돋우고 내가 알아가면서 깨달아야 하는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을 찢고 책을 펼치지 않았나’ 하고 돌이켜봅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외워야 했던 세계사와 세계지리 지식쪼가리로는 다뤄지지 않던 이웃 아시아 나라들 발자취와 삶을 알아보고 싶어서, 똑같은 ‘살갗 흰 나라’이지만, 덴마크며 폴란드며 에스파냐며 헝가리며 체코며 오스트리아며 핀란드며 아일랜드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새책방과 도서관을 쑤시다가 마땅한 책을 만나지 못해 헌책방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지 않았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어쩌면, 저로서는 그 ‘살갗 흰 사람’이 모여 있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제 삶하고는 아무런 이어짐이 없습니다. 이음고리가 없습니다. 잇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 삶과 생각과 터전하고, 우리 이웃 아시아 나라 사람들 삶이나 아프리카 나라 사람들 터전이나 남아메리카 나라 사람틀 생각은 조금도 안 이어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굳이 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꾀죄죄하며 가난뱅이인 나라들하고는 남남이라고 여기지 싶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우리가 우러러 마지 않는 그 ‘살갗 흰 사람’들마냥 ‘살갗 하얗게’ 되고프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살갗 희다’는 사람들 모인 나라에서 밑바닥에서 일한 사람들, 쟁기와 삽을 들고 논밭을 일구던 사람들은 죄다 우리 ‘살갗 누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낯빛이 흙빛이었지만.





.. 이튿날 아침, 이시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보안관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속옷, 셔츠, 웃저고리와 바지, 넥타이, 양말, 구두. 옷을 다 갈아입자 이시는 자기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쳇, 참! 절반은 사루도고 절반은 야히 족이구나!” 몇 번인가 왔다갔다 하며 방 안을 서성거린 뒤 이시는 결국 구두와 양말을 벗어서 보안관에게 돌려주었다. 마침 그때 마쟈파가 들어왔다. 이시가 말했다. “이제야 알았어요. 사루도의 발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상한 것은 당신네들이 구두라고 부르는 바로 이거예요. 발이 직접 땅에 닿지 않았는데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  (232쪽)


 제아무리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서 사무직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며칠 동안 시골 논밭에서 땅을 만지며 흙을 돌보고 풀과 나무를 보듬으면서 일을 하면 어느새 살갗이 구리빛이 됩니다. 조금 더 일하면 까무잡잡해집니다. 느긋하게 여러 달 일하면 조금씩 흙빛에 가까워집니다.

 한국사람이든 필리핀사람이든 벨기에사람이든 캐나다사람이든 멕시코사람이든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몽골사람이라고, 일본사람이라고, 러시아사람이라고, 독일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흙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 살갗은 흙빛입니다. 도시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를 이루는 잿빛과 마찬가지로 잿빛입니다.

 다만, 도시는 ‘시멘트 잿빛’과 ‘아스팔트 죽은 빛’을 감추려고 합니다. 겉에 껍데기를 씌웁니다. 풀 한 포기도 없는 주제에 풀빛 페인트를 입힙니다. 이에 따라 도시사람들은 싱그러움을 스스로 내버린 잿빛을 가리고자, 또 죽음만 도사리는 아스팔트빛을 숨기고자, 화학약품으로 화학교배를 한 화장품과 약을 바르고 기계로 살을 뜯어고치며 돈을 들여서 요가와 헬스 따위를 합니다. 그러면서 꿈에도 그리운 ‘살갗 흰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비로소 ‘허여멀겋게 파리해진 얼굴빛’이 되어 버립니다.


.. “이 바구니는 우리 부족의 바구니예요. 그런데 어떻게 이 박물관 와토구르와에 이 바구니가 있을까요?” … “이 두 개는 내 사촌동생이 만든 거예요. 워누포에서.” 이시는 곁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슴이 몹시 들먹이고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괴었다. (이것은 그 아이의, 투시의 바구니다. 그러나 이 친절한 사루도, 내 새 친구는 워누포에 왔던 놈들 가운데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고, 목소리도 똑똑이 기억하고 있다. 이 사람은 그들 가운데는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 바구니가 여기 있단 말인가?) ..  (246쪽)





 흙을 밟지 않는 사람은,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을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살갗 흰 사람’이 됩니다.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집에만 머무는 사람 ‘핼쑥한 빛’하고는 다릅니다.

 한국에 살든 일본에 살든 중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영국에 살든 프랑스에 살든 라오스에 살든, 흙을 안 밟고 땀을 안 흘리며 일다운 일을 내동댕이친 사람들 살갗은 한결같이 ‘허옇’습니다. 어디에 살더라도 흙을 밟거나 땀을 흘리거나 일다운 일을 제 손으로 찾아서 애써 살아가는 사람은 흙빛을 닮아서 누렇거나 까무잡잡한 살결이 됩니다.

 흙을 밟지 않으니 ‘흙 밟는 사람이 거둔 열매’를 낼름낼름 받아먹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으니 ‘땀흘리는 사람들이 이룬 보람’을 돈푼 치르며 집구석에서 얻어먹습니다. 일다운 일을 하지 않으니 ‘제 손으로 보람차게 일하는 사람들’ 등골이 빠지도록 괴롭히면서 자기 주머니에 돈이 철철 흘러넘쳐도 아직 적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이웃과 나눌 줄을 모릅니다.

 미국땅에 살지 않더라도 ‘살갗 희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들볶습니다. 미국땅에 살더라도 ‘살갗 안 희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6) 《마지막 인디언》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


 북아메리카 토박이로 살던 수많은 겨레 가운데 하나였던 ‘야히 겨레’는 이제 이 지구에 없습니다. 지구에서 사라진 수많은 목숨붙이마냥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지구에서 사라진 숱한 목숨붙이처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남고 다시는 되살아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야히 겨레’였던 ‘이시’는 틀림없이 자기 씨앗을 남겨서 자기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지구에서 마지막 삶이 되었던 온갖 목숨붙이들도 어렵사리 자기 씨앗을 남겨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야히 겨레는 스스로 자연 품에 안기며 조용히 흙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더는 ‘들짐승’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깨달은 목숨붙이들도 ‘동물원 구경거리’나 ‘실험실 연구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이 지구를 떠나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 우리를 찾아낼 때까지 끝까지 찾아다닐 거야. 야히 족의 마지막 마을 마지막 한 사람을 없애버릴 때까지 단념하지 않을 거다. 이제까지 다른 마을, 다른 야히 족에게 했듯이.” ..  (27쪽)


 한국이라는 나라에 미친 소고기를 팔려고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미친 소고기 하나로 끝내지 않습니다. 미친 소고기에 앞서 수많은 물건을 억척스럽게 한국에 팔아 왔습니다. 그동안 적잖은 한국사람들은 이에 맞서며 반대를 했지만, 여태껏 어떤 반대 움직임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에 뭘 팔아서 돈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 생각이 죄 이루어집니다. 이런 장삿속이 한국사람과 한국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만, 이런 장삿속에 따라서 콩고물을 얻는 한국사람 또한 제법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도권 교육이 입시지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한다고 하지만 조금도 고쳐지지 않는 까닭은, 아무리 입시가 지옥이라고 해도 대학교가 졸업장 따서 대기업 면접 볼 때 적는 훈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나와 이웃이 모두 살아남자면, 아니 모두 오붓하게 살자면 입시지옥을 한칼에 걷어치우고 제도권교육도 한달음에 치워버리면 될 터이나, ‘내 앞가림이 우리 앞가림’보다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콩 한 알 함께 나누어 먹기보다는 혼자 먹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콩 한 알을 심어서 백 알을 거두어 더 즐겁게 나누어 먹자는 생각을 안 하고, 이 콩 한 알을 혼자 냠냠짭짭해서 혼자서 끝내고 싶기 때문이구나 싶습니다.





.. 그들은 망설임 없이 떠났다. 미련을 두고 아쉬워하고 눈물 흘리며, 남겨 두고 가는 모든 것의 슬프고 즐거운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뒤돌아보는 일도 없이 ..  (151쪽)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국이든 두국이든 세국이든, 사람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들 사람은 한 번 태어났으니 한 번 죽습니다. 태어나서 사는 동안 1분 동안 숨을 못 쉬어도 꼴까닥 하고 뒈집니다. 며칠 물 안 마시면 말라비틀어 돌아가십니다. 햇볕 안 쬐고 살면 오래지 않아 병들어 몸이 망가집니다. 우리는 돈이 중요한 곳에서 사는 한편, ‘똑같은 자연 목숨붙이’로 살아갑니다. 밥 안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물 안 마시고 살 수 있습니까. 말 안 하며 살 수 있습니까. 이웃사람 도움 안 받고 혼자서 땅 파서 기름 뽑고 누에 키워서 실 뽑고 잣고 옷 해서 입을 수 있습니까, 뭐를 할 수 있습니까. 돈도 틀림없이 있어야 할 터이지만, 돈 아닌 다른 중요한 대목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만 아는 이 나라에서, 돈 아니면 딸아들한테 아무것도 못 가르치는 이 나라에서, 돈 없으면 개떡도 아닌 똥떡도 아닌 빙신떡으로 여기는 이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사람으로 얻은 고마운 목숨을 잘 간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사람임을 깨닫고, 내 이웃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임을 깨닫는 이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곱게 제 뜻과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사루도의 신들, 사루도의 영웅들은 야히 족으로선 잘 모르겠어요. 사루도의 신들이나 영웅은 주프카 신이나 카르츠나 신이나 야히 족의 영웅보다 똑똑해요. 훨씬 똑똑해요. 사루도의 신들은 사루도에게 수레를,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연장을 만드는 튼튼한 무쇠와 강철을 주었어요. 숱은 좋은 것들을 주었어요. 그렇지만 사루도의 신들은 사루도가 지혜롭게 살도록 바라지는 않았던 듯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사루도가 따라야 할 분명한 ‘생활 방법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  (289쪽)





 ‘살갗 흰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살갗 누런 사람’인 야히 겨레를 죄다 죽였습니다. 아주 끔찍하게 죽였습니다. 그러고는 그이 ‘살갗 누런 사람’들이 쓰던 물건도 빼앗아서 기념품으로 삼고 유물로 삼고 박물관도 짓습니다.

 살갗이 처음부터 하얗지 않던 그네들이, 어느 때부터 살갗이 희게 되면서 누리는 단맛을 알게 된 뒤부터, 혀가 굳어서 단맛 아니고는 못 느끼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 한국땅에서 살아간다는 ‘살갗 누렇던 사람’들은 하나하나 ‘살갗 흰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세상 모든 힘과 이름과 돈을 ‘살갗 하얗게 된 사람’이 거머쥡니다. 처음부터 살갗이 누러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흙과 같은 살빛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얗게 안 되려는 놈들은 빨갱이로구만’ 하는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저는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 땅을 내 맨발로 밟으면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물로 목을 축이는 가운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땅에서 난 곡식과 열매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4341.7.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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