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신나게 술 마시고 신나게 놉시다
 [살가운 만화 36] 니노미야 토모코, 《음주가무 연구소》



- 책이름 : 음주가무연구소
- 그림ㆍ글 : 니노미야 토모코
- 옮긴이 : 고현진
- 펴낸곳 : 애니북스(2008.4.10.)
- 책값 : 9000원



 (1) 술 한잔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를 보면, ‘빵이 아닌 쌀로 만든 햄버거’를 만들어서 크게 사랑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이 만화는 1990년대에 그려졌습니다). 2000년대 첫머리쯤인가, 나라안에 있는 ㄹ회사에서 ‘라이스버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며 내놓았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이웃 일본에서는 진작 만들어서 팔고 있었는데, 한국땅에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가 마치 ㄹ회사에서 처음으로 만든 줄 잘못 알면서 퍼지고 ‘히트상품’으로 뽑히고 했구나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라이스버거’ 하나뿐이겠습니까만, 우리 스스로 우리 슬기를 빛내며 가꾸지 않으면서, 이웃나라 형편을 거의 모르는 여느 사람들한테 속임질을 하는 눈가리고 아옹이 먹혀들던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요즈음도 이런 눈가리고 아옹은 그치지 않습니다.


.. “움파♬” “룸파♬” “룸파 디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춤추기) 거리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춤을 추는 25세와 23세의 말 만한 처녀들. 부모님이 ‘결혼은 언제 하니?’라고 물어도 해결책이 없다 … 그것은 무더운 여름날의 일이었다. 그날도 나와 타나카 아츠코는 매우 썩고 있었다. 힘들게 술을 마시고 업된 기분으로 불꽃놀이를 하러 공원에 왔는데. 이게 뭐야! 왜 이래! “제길! 다 죽이자!” “그럴까요?” 공원커플 제거작전 개시! … “쓸데없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의외로 즐겁네♡”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딱이네요♡” ..  (51∼54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GREEN》이라는 만화를 그려서, ‘도시 아가씨가 시골 농사꾼한테 시집 가는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노다메 칸타빌레》를 그리며 두루 사랑을 받습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연속극으로도 만들어지고,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나라안에 소개된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를 보면, 언제 어디서나 ‘술 마시는’ 이야기, 또 ‘술 마시고 죽는(맛가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이참에 소개되는 《음주가무연구소》(1996년에 낸 작품)는 아예 ‘술 먹고 바보가 되어 해롱해롱 노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오는 ‘노다메’는, 술을 안 마시고 있어도 늘 술에 체한 듯하게 살아가는 사람, 바로 그린이 자기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보여주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 “혹시, 술 마실 사람? 맥주 정도라면 괜찮을 거야.” “마실래!” “마실 거야!” “앗! 얘들아, 일은 어쩌고, 철야해야 되는데 맥주라니.”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는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러고도 음주가무연구소장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 나는 음주가무연구소장이었지. 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에게, 적어도 즐거운 시간을.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말이야, 일하면서 술을 마시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 맥주 열세 병을 마시고도 이틀 정도 철야는 문제 없었잖아 … “우리 모두의 죽음에, 건배!” ..  (74∼75쪽)


 《음주가무연구소》를 그려낸 1996년이면, 니노미야 토모코 님 나이로 스물일곱. 만화에 나오는 ‘나(니노미야)’는 거의 스물다섯 나이. 일을 하면서(만화를 그리면서) 맥주 병나발을 열석 병을 까기도 했다는데, 가장 많이 깐 숫자가 열셋일 테지만, 여느 때에도 서너 병은 가볍게 깠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나이 스물다섯 때를 돌이켜봅니다. 그때 저는 신문딸배를 하고 있었고, 살림돈이 없는 가운데에도 책 사서 읽으랴, 보도사진 배우며 필름 사서 찍고 찾느랴 몹시 쪼들렸습니다. 이때, 후배라도 만나서 “형, 술 좀 사 줘.” 하는 말을 들을라치면, 주머니에는 천 원 한 장 없을 때도 잦아서 안절부절 못하곤 했습니다. 그나마 한 살 더 먹은 스물여섯 나이에, 신문딸배 일을 마치고 출판사에 들어가면서 살림이 피니, 후배들한테 술 사 주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라는 곳은 웬만한 일은 술자리에서 풀리고, 또 제가 한 일은 영업부 일이었기에,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 만나서 술자리 지키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한 출판사들은 지은이 선생님한테 글삯은 제때 못 챙겨 주어도 술은 꼬박꼬박 챙겨 줍니다. 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그때 제가 일하던 곳은 근속 1년을 못 채우면 비정규직이었습니다)한테 달삯은 짜디짜서 한 달에 62만 원을 받으며 일했지만, 선배들이 술 하나는 아낌없이 사 주었습니다. 영업을 다니면 낮에도 술 마실 일이 잦았고, 낮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소주 한 병쯤은 가볍게 까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업을 뛰는 사람은 술 마시기가 일이 된 셈이니, 만화를 그리는 분한테도 만화 그리며 밤을 새워야 할 때, 옆에 술 한 병 끼면서 그리기가 일이 된 셈인지 모르겠네요.


.. “술 끊자! 자! 일하자, 일!” 나는 인간이 될 거야 … 그러나, 여전히 일은 되지 않고, 시간만 정처없이 흘러 흘러, 어시가 또 한 명 죽어 버렸다. 술이 없어도 악마는 악마인가? … “그럼요, 소장님은 악마예요. 뼛속까지! 그러니까 포기하고 쭉 들이키세요.” “그래요, 오늘은 갈 데까지 가는 겁니다.” “악마를 위해 건배!” 그러나, 아직 포기하지 앟는 나 … “에이, 그럼 안 돼요. 니노미야 씨는 무조건 취해야 돼요.” “왜 취하라는 거예요?” “음주가무연구소장님이니까!” “이미 그만뒀어요! 그런 멍청한 연구소 따윈! 하하하” “뭐 어때요? 멍청하면 멍청한 대로 즐겁게.” … 아아, 술주정뱅이란 정말 악마구나 … 결국, 금주를 해 봤자 평소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120∼122쪽)


 그렇게 ‘술이여 내 사랑아’ 하던 스물여섯 나이에 한 아가씨한테 눈이 맞았고, 이 아가씨는 저한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으며, 이 말을 들으며 여섯 달 동안 술을 끊기도 합니다. 술자리에는 가면서 술은 안 마시는 미련이로 살았습니다. 동무나 선배들은 술도 안 마시면서 왜 왔느냐고 채근대며 꿍얼댔지만, 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눈 맞았던 아가씨한테 채인 바로 그날부터 다시금 술 마시는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동무와 선배들은 ‘녀석, 이제 제자리로 돌아오는군!’ 하면서 반겨 주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조금 덜 마시거나 안 마시는 날을 만들면 되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싶더군요. 그러나, 제 성격에 조금 덜 마시기는 못했을 듯하고, 아예 마시지 않아야 몸이나 마음을 튼튼하게 지킬 수 있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2) 만화니까, 만화 《음주가무연구소》


 장마가 아닌 무더위로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집니다. 요즘 같은 날씨이던 가난한 신문딸배였을 때는 보리차를 잔뜩 끓여 냉장고에 가득 채워서 끊임없이 마셨습니다. 출판사에 들어가 영업 일을 하던 때에는 낮에도 일터 아래층에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깡통맥주 큰것 둘을 사서 한숨에 들이키고 일했습니다. 나중에 편집부로 자리를 옮기고부터는 낮에 술을 댈 수 없었습니다. 더위를 꾹꾹 참고 저녁에 풀어냅니다. 아무런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몸으로 살아가는 지금, 너무 더운 날이면 동네 구멍가게로 달려가서 보리술 한 병 사서 밥을 안주 삼아서 마십니다. 이렇게 한 병 마시고 잠깐 드러누워서 숨을 돌린 다음, 번쩍 일어나 낯을 씻고 빨래 한두 점을 한 다음 웃통을 벗은 채 옥상마당에 나와 빨래를 널고 기지개를 켜며 해바라기를 하면 제법 시원합니다. 그렇다고 더위를 이겨내지는 못하지만, 낮에 마신 보리술 한 병은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아 주고, 무너지려는 몸을 붙잡아 줍니다.


.. “오늘 말이야, 엄청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뭔데, 대멀?” “거래처 중역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인데, 하도 얄밉게 굴길래 그만 꽃병으로 내리쳤어. 그래서 10억 손해 봤지롱♡” ..  (209쪽)


 저녁까지 어찌어찌 버틴 다음, 저녁밥을 들면서 보리술 한 병이나 두 병을 걸치기도 합니다. 두 병까지 하면 너무 배부르거나 힘들고, 꼭 한 병이 알맞다고 느낍니다. 모자란 듯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조금 더 하고 싶지만, 이만큼만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책 하나를 끄집어내어 펼칩니다. 꼭 한 병만 마신 날은 한 시간 남짓 책을 읽다가 잠들 수 있는데, 두 병을 마신 날은 삼십 분 책을 들기에도 벅찹니다. 가게술은 이렁저렁 들이켜도 집술은 다르더군요. 집술로 한 병만 마시면 씻고 빨래하고 책 읽고 잠깐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할 수 있지만, 두 병이 되면 빨래하면서도 힘들고, 방바닥 훔치면서도 ‘아이구, 오늘은 걸레질 쉬고 싶네’ 하는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스물부터 스물아홉까지 젊은 날 너무 많은 술을 몸속에 넣었다가 빼낸 탓에 서른넷이라는 나이에도 몸이 고단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술을, 한창때 맛도 안 느끼면서 퍼부은 탓에, 좀더 맛깔스럽게 술을 즐기지 못하고 입가심으로 끝내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 “난 이제 끝났어!” “나도 끝이야!” “나도♡” “오늘은 몸이 좀 무거워서.” “난 그만 할래♡” “좋아, 그럼, 한잔 하러 갈까?” “아얏호,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  (240쪽)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는 ‘음주가무연구소’ 이야기와 ‘한잔 하러 갈까’ 이야기에다가 ‘우리, 결혼했어요’ 이야기를 묶습니다. 모두 만화쟁이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스물다섯 안팎이던 때 삶이 담깁니다.

 그래서 만화책을 신나게 처음부터 끝까지 후딱 읽어내면서 궁금해집니다.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는데, 요즈음은 술 마시기를 어떻게 즐기고 있으신지. 지금도 병나발을 불면서 밤샘일을 하고 있으신지. ‘먹고 놀다가 죽자’라는 음주가무연구소장 다짐을 이어나가고 있으신지. 젊은 날과 달라졌다면 어떤 모습이 달라졌는지. 이런 이야기를 지금 형편에 맞게 또 한 번 그려 볼 마음은 있을는지.


.. “어떡하지, 마감 대문에 드레스 보러 갈 시간이 없는데.” “걱정하지 마. 너무 신경쓸 필요 없어. 도쿄에 가면 널린 게 드레스숍이잖아.” “그런가?” “그럼!” “그렇지.” 그리고 결혼식 3일 전 … “저, 죄송합니다. 이 드레스 지금 당장 필요한데요, 살 수 있을까요?” “네엣? 지금 당장은 좀, 저희 드레스는 모두 예약주문제라서요, 빨라도 한 달 정도 걸리거든요. 그런데 식은 몇 개월 후에 올리시나요?” ‘뭐시라고라?’ ..  (260∼262쪽)





 우리 나라에서도 술 마시는 사람들 이야기가 만화책으로 몇 번 나왔습니다. 먼저, 이상무 님이 그린 《포장마차》(자유시대사,1988). 그리고, 이은홍 님이 그린 《술꾼》(사회평론,2001). 다음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송채성 님이 남긴 《취중진담》(서울문화사,2001∼2002).

 《포장마차》는 가게술을 마시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잔에 눈물과 웃음과 기쁨과 슬픔을 쥐어짜내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술꾼》은 말 그대로 ‘술꾼’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취중진담》도 말 그대로 ‘술 들어간 몸에서 속에 감추어둔 생각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고 보면, 《음주가무연구소》는 말 그대로 ‘술 퍼마시고 마음껏 놀자’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꾼다운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술 만화는, 꾼다운 만화다워 반갑고, 여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눈물과 아픔을 보여주는 술 만화는, 말 못하는 이야기를 꽁꽁 묻어둔 채 홀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만화로 반갑습니다. 서민 삶을 꾸밈없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술 만화는, 서민들이 값싼 술 한잔에 이렇게 시름을 달래고 고단함을 씻어내며 조그마한 꿈 하나 품는구나 하고 헤아려 보게 해 줍니다. 그리고, 즐거우니 더 즐겁게 놀고 괴로우니 괴로움 떨쳐내고 놀자는 만화는, 어떤 일을 겪거나 부딪히게 되어도 앙금을 털어내고 홀가분해지자는 마음으로 맞아들일 수 있어 반갑습니다. 그러나 술맛을 모르는 이한테는 따분할 만화로 비춰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술을 즐기더라도 몸을 더 헤아려서 살짝살짝 드시는 분들한테는 좀 꺼려질 수 있을 테고요. (4341.7.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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