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 저쪽 철학 그림책 2
엘즈비에타 지음, 홍성혜 옮김 / 마루벌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평화를 사랑한다면, 돈을 버리셔요
 [그림책이 좋다 47] 엘즈비에타 글ㆍ그림, 《시냇물 저쪽》



- 책이름 : 시냇물 저쪽
- 글ㆍ그림 : 엘즈비에타
- 옮긴이 : 홍성혜 옮김
- 펴낸곳 : 마루벌(1995.5.15.)
- 책값 : 7000원



 (1) 우리 삶터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인가


 어제 저녁, 생협에 미리 부탁해 놓은 감자를 찾으러 길을 나설 때입니다. 아래층에서 참고서 도매상을 하는 분이 우리를 불러서 물값을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물값은 자그마치 삼만구천오백 원……. 도매상을 하는 분들은 당신들도 물을 쓸 일이 많지 않지만, 둘로 나누어서 낸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식구가 쓰는 물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달마다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쯤 물값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어딘가 새는 곳이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도매상 분들은 건물임자한테 따지거나 수도국에 연락해서 물 새는 곳 찾아 달라고 말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애먼 돈이 나가는데. 더욱이, 우리 나름대로 아무리 물을 아껴서 쓰거나 줄인다고 해도 어찌할 길이 없는데.

 마음에 짐이 하나 얹힙니다.


.. 금강이와 초롱이는 매일 함께 놉니다. 어떤 날은 시냇물 이쪽 금강이 동네에서 놀고 어떤 날은 시냇물 저쪽 초롱이 동네에서 놀지요 ..  (2쪽)


 우리가 깃든 집은 올해로 쉰한 해를 묵었고, 바로 옆으로 ‘인천과 서울 오가는 전철’이 다니기에, 전철 오가는 소리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듣습니다. 때때로 짐열차가 지나갈 때면 건물이 웅웅웅 하고 흔들립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용하게 잘 버틴다 싶으면서도, 한 식구가 깃들어 살기에는 나쁘다고 할 대목이 여럿입니다. 그래도 널찍한 옥상마당에 이불도 널고 고양이도 뛰놀 수 있는 대목은 좋습니다.

 옆지기는 ‘건물임자가 이 집에서 안 좋은 곳을 고쳐 줄 마음이 없다면 집 옮길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을 옮겨야 한다라. 수만 권 책을 다시 싸고 나르고 또 새로 자리잡고 풀고 닦고 꽂고 하자면, 품이며 시간이며 생각도 하기 싫은데. 그러나 사람 사는 형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집에서 오래오래 살 수는 없는 법.

 마음에 짐 하나 더 얹힙니다. 달삯 내며 얹혀 지내는 사람이 두 다리 쭉 뻗고 걱정없이 지낼 만한 집을 찾기란 그리도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지요.


.. “쉿! 앞으로 초롱이 얘기를 하면 안 돼.” 엄마가 속삭이셨어요. “왜요?” “초롱이는 우리 편이 아닌 곳에 살기 때문이란다.” ..  (14쪽)


 어제 낮, 집 앞 길가에 소방차가 여섯 대 줄줄줄 들이닥쳤습니다. 하도 큰 앵앵 소리가 나기에 창밖을 내다보니, 온 길바닥을 소방차가 메우고 있습니다. 어디에 불이 났나, 왜 그러지, 하며 내려다보노라니,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소방수 몇 사람이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큰불이라도 났는가 싶었으나 아니었고, 나중에 알아보니, 누군가 담배불을 종이 담긴 부대자루에 집어던져서 창문 밖으로 연기가 꽤 많이 새어나와, 안에서 불이 난 줄 알아서 신고가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며칠 앞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답니다. 그 집에 깃든 어느 아저씨가 술이 체하면서 그렇게 한다는데. 책방이 줄줄줄 이어 있는 이곳에서 참말로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라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이웃 가난한 사람을 조금 더 헤아리면서 껴안기란 어려운 노릇일는지. 없이 살면서도 없는 이웃 사람을 조금 더 쓰다듬으면서 어깨동무하기란 힘든 노릇일는지.

 마음에 짐 하나 또 얹힙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서울까지 먼 전철길을 떠나서 촛불모임에 나가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로서는 동네 지키기와 동네 살리기에도 어깨가 빠듯합니다. 동네 지키기라고 대단한 일이 아니고, 남다른 사람이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느끼는 한편, 오며 가며 인사하고 나눌 것 나누고, 기쁜 소식 함께 기뻐하고 궂은 소식 함께 아파하는 일이 동네 지키기요 동네 살리기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이 어디 있는데요?” 금강이가 물었습니다. “전쟁보고 가시 울타리를 치우라고 할래요. 그리고 멀리 가 버리라고 할래요!”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으셨어요 ..  (16쪽)


 골목집 모여 있는 동네 한복판을 꿰뚫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주민들 모임이 어제 밤에 있었습니다. 모두들 저녁나절까지는 돈버는 일 하느라 바쁘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데, 팔짱을 끼면서 시간만 보내는 인천시 공무원들 매무새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지치기도 합니다. 이런 대안과 저런 대책을 주민 스스로 여러 해째 내놓고 있지만, 시청 공무원은 어느 하나 귀담아듣거나 꼼꼼히 살피지 않았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자는 협의체를 만들기로 다짐까지는 했으나, 답변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청 공무원들은 ‘길은 반드시 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길이라면 찻길입니다. 자동차만 다니는 길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길에는 자전거가 다닐 수 없으며, 처음부터 자전거가 함께 다니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네사람이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안전’은 한 번도 머리속에 집어넣지 않습니다. 건널목 하나조차 안 놓을지 모른다는 느낌도 듭니다. 왜냐하면, 차들이 멈추었다가 가면 ‘기름이 더 들고 매연이 더 나와 환경에 나쁘다’고 하는 논리를 대고 있거든요.

 구름다리를 놓아서 힘겹게 넘어가게 하거나 지하도를 파서 땅밑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게 시키리라 봅니다. 나이들어 걷기 힘들어하는 어르신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말입니다.

 오늘날 차 없는 집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 식구처럼 차 없는 사람은 반드시 있습니다. 차가 있다고 해도 이웃집에 가는데 차를 몰 까닭이 없습니다. 걸어서 찾아가 걸어서 만납니다. 요 앞 송현시장에 가고 중앙시장에 가고 신흥시장에 가고 동부시장에 가는데 차를 타야 하지 않습니다. 답동성당에 가고 송림동성당에 가고 창영교회에 가는데 차를 탈 일이란 없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 우리 동네 한복판에 놓여야 한다면, 인천시장이 큰꿈을 품으며 짓고 있는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잇는 ‘가장 빠른 곧은 길’을 길그림에서 자를 대고 죽 그었을 때 우리 동네를 지나가게 되어 있기에, 그 ‘가장 빠른 곧은 길’을 어떻게든 내서, 자기 업적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길 닦는 데 들어갈 돈은 몇 천 억인데, 정작 환경을 걱정하고 기름값이 근심이 되고 지역 문화와 도시 정체성을 헤아린다면, 이 어마어마한 돈은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사회복지와 문화시설에 쏟아야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마음에 또 하나 짐이 얹힙니다.


 (2) 군대와 전투경찰


 한국땅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돈과 이름과 힘이 없을 때에는 ‘군대 의무 복무’를 해야 합니다. 없는 차례에 따라서 외진 최전방 산골짜기로 깊이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한동안 ‘데모 주동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학생들이 최전방으로 많이 가기도 했는데, 무엇 하나 내세울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을 때에는 알게 모르게 ‘조금 더 수월한 데’로 빠져나가곤 합니다.

 그러하나, 좀더 수월한 데로 빠지든 개가 되고 돌이 되어 뒹구는 수렁에 빠지든, 군대라는 곳은 사람이 사람 아니도록 내모는 곳입니다. 군대에서 가르치는 한 가지는, ‘나한테 적이 되는 사람을 가장 빨리 죽여서 없애라’입니다. 총을 쏘든 칼로 찌르든 주먹으로 때리든 발로 차든, 어떻게 해서든 ‘적을 죽이는 훈련’을 거듭하고 되풀이하여 몸에 배도록 시킵니다.

 군대 복무와 마찬가지인 ‘전투경찰 복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적’을 바라보는 생각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군대에서는 총을 들고 쏴죽여서 적군을 무찌르는 훈련을 한다면, 전투경찰은 방패를 휘둘러 찍고 몽둥이를 내리쳐서 머리통을 깨며 ‘시위대’, 바로 전투경찰인 자기네 식구요 이웃이요 형제이자 동무인 사람들을 무찌르는 훈련을 합니다.


.. 그렇지만 시냇가에는 여전히 가시 울타리가 쳐 있었습니다. 금강이가 소리쳤어요. “아니에요! 전쟁은 가지 않았어요! 아빠, 왜 전쟁을 쫓아버리지 않으셨어요?” ..  (24쪽)


 남녘땅이나 북녘땅이나 ‘평화’가 아닌 ‘전쟁 그침(휴전)’입니다. 언제든 전쟁을 다시 벌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남녘땅에서 미군이 떠날 낌새를 보이지 않습니다. 남녘 군대는 줄어들거나 사라질 움직임이 없습니다. 수십만 군대를 거느리면서 나라힘을 움켜쥐고 있는 통치권자와 통치권 무리들은 전투경찰이라는 또다른 군부대를 키우면서, ‘정치를 잘못해서 사람들이 반발을 하건 말건’ 입을 닥치게 합니다. 왼손에는 국가보안법으로 사람들 마음을 옥죕니다. 오른손에는 총과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사람들 몸을 갈기갈기 찢습니다.

 여느 나라에도 있는 헌법이 우리한테도 있고, 나라님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헌법을 우습게 깔보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주거권과 생존권을 깡그리 짓밟는 재개발촉진특별법이 있습니다. 계급차별과 빈부차별이란 없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스스로 계급과 빈부에 따라 나뉘어 있어서, 말과 생각과 움직임이 다 다른 반편이로 키우고 있습니다.


.. 금강이는 시냇가 풀밭으로 나갔어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초롱이와 자주 놀던 곳이지요. 금강이는 가시 울타리를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초롱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  (30쪽)


 (3) 조그마한 그림책 《시냇물 저쪽》


 고작 서른두 쪽짜리 그림책 《시냇물 저쪽》을 펼쳐 읽었습니다. 프랑스에서 1993년에 나오고, 우리 나라에는 1995년에 옮기진 조그마한 그림책 《시냇물 저쪽》을 찬찬히 넘겨 보았습니다.


.. “나는 커서, 초롱이 신랑이 될 거야.” 금강이가 말하면, “나는 커서, 금강이 신부가 될 거야.” 초롱이도 말합니다 ..  (4쪽)


 우리 아이들한테 평화가 있어야 한다면, 우리 어른들한테도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더럽혀지지 않은 물과 싱싱한 밥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 어른들한테도 더럽혀지지 않은 물과 싱싱한 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 어른들한테도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어하는가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워서 따라하게’ 할 생각인가요. 우리 어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게 하려는가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가르칠 뿐더러, 평화가 아닌 전쟁을 살고 있는 어른이 아니온지요. 사랑이 아닌 주먹질을 가르칠 뿐더러, 사랑이 아닌 주먹질로 일하고 놀고 부대끼고 있는 어른이 아니온지요. 있으니 나눔이 아니라 있어도 혼자 돈굴리기로 나아가고, 조금이라도 주머니를 더 채우고자 눈을 번득이는 어른이 아니온지요.

 아이들한테 시냇물 저쪽은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반가운 님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시냇물 저쪽에는 더 많은 돈도 없고 더 높은 이름도 없고 더 큰 힘도 없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으며 나눔이 있습니다. 아이들마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살뜰한 목숨 하나로 서로를 꼭 안아 주는 넋이 있습니다.


.. 초롱이가 가시 울타리에 작은 구멍을 내고 시냇물을 건너오고 있었던 거예요 ..  (32쪽)


 귀를 막아도 소리는 있습니다. 내 귀로 소리가 안 들려온다고 해도 소리는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움직임이 있습니다. 내 눈으로 움직임이 안 보인다고 해도 움직임은 있습니다. 물은 흘러서 이쪽과 저쪽을 잇습니다. 가시 울타리로 시냇물을 막아도 물은 흘러야 하고,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울타리로 그치지 않고 시멘트로 댐을 세워 시냇물 흐름조차 막아 버리면 ……? (4341.7.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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