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를 잃어버렸다. 밤길을 걸어 구멍가게에 맥주 한 병 사러 가는 길에 곰곰이 따져 본다. 벌써 몇 번째 잃어버렸는가? 도둑맞은 사진기도 여럿이었기 때문에, 모두 더하면 이번이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사진 찍을 생각도 없으면서 남 사진장비에 군침을 흘리면서 훔쳐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돈에 목말랐다는 뜻이 아닌가. 자기한테 돈벌이가 되면, 이웃사람이 울며 불며 괴로워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사람들 탓을 하면 무엇하랴. 내가 좀더 제대로 간수하면서 잃어버리지 말았어야지. 도둑맞은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매달고 죽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전철간에서 너무 고단하고 사진기가방도 무거워서 짐칸에 올려놓았다가, 졸다 깨다 되풀이하던 어느 때, 문득 올려다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던 사진기가방. 무거운 사진기가방은 잠깐 바닥에 내려놓고 책을 읽다가 그만, 내릴 곳에서 책에 눈을 박은 채로 내리다가 사진기가방을 전철칸에 그대로 두고 내렸는데, 역무원한테 전화해서 다음 역을 알아보았더니, 그 자리에는 벌써 가방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어느 날, 사외보 기자들이 취재한다고 찾아와서 헌책방에 함께 간 다음 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져서 술을 한잔 걸쳤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택시기사가 자전거를 짐칸에 실었다고 내내 꿍얼거리는 바람에, 택시에서 내리면서 자전거를 먼저 꺼냈는데, 뒷자리에 실어 놓은 사진기가방을 미처 꺼내지 않았는데 부웅 하고 떠나버리기도 하고.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던 때에는 어떠했는가. 새벽에 배달을 나간 틈을 타서 몰래 들어온 좀도둑이 냉큼 집어가 버린 적도 있지 않은가.

 도둑은 부잣집을 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부잣집은 훨씬 값나갈 뿐더러 비싼 물건과 돈도 많을 터이나, 그만큼 지키는 벽이 탄탄하다. 그렇지만 가난뱅이들은 어쩌다가 한두 가지 어렵사리 장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따로 지키지도 못하고 허술하다. 이리하여 도둑들은 외려 가난한 사람들 살림을 축낸다. 몰래 빼낸다. 벼룩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다. 도둑들한테는, 있는 사람들한테는, 벼룩 간이 소 간보다 맛있다고 느껴지지 싶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옆지기가 나를 꼬옥 안으면서, 잠이 안 오면 좀 걷자고 한다. 그럴까. 걸을까. 부시시 일어나서 옆지기를 슬며시 바라본다. 눈가가 젖어 있다. 나보고는 ‘나 (집에) 없을 때 울었지요?’ 하고 묻더니만, 뭐.

 잃어버린, 또는 도둑맞은 사진기 숫자를 세고 싶지 않다. 세면 셀수록,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속만 쓰리다. 눈물만 난다. 그냥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번듯하게 돈 많이 버는 일을 해 오지도 않은 주제인데다가, 내가 찍는 주제인 ‘헌책방’을, 그래도 내 나름대로 좀더 나은 장비로 담아내고 싶어서, 여러 해 동안 적금을 부어서 어렵사리 마련한 돈으로 100만 원짜리 몸통에 180만 원짜리 렌즈를 끼워서 쓰고 있지 않았던가(이렇게 장만한 사진기와 렌즈를 여러 차례 도둑맞아서 다시 모아 다시 장만하기를 되풀이했는데, 또 잃어버렸으니). 렌즈 앞에 끼우는 필터도 좋은 렌즈를 쓰다 보니 지름이 넓어서 유브이필터 하나만도 이만오천 원이었고, 귤빛 필터 하나도 오만 원이 넘었다. 돈으로 따지기 싫어도, 돈값만큼 제 솜씨를 뽐내어 주던 장비였다. 그래서 직업사진가들이 아무리 못해도 이만한 장비부터는 갖추고 사진을 찍는다고 느꼈다.

 ‘그래, 너는 애써 적금 부어서 산 장비를 몇 해 쓰지도 못하고 잃거나 도둑맞으니, 남 좋은 일만 시켜 주니?’ 한숨과 눈물이 고루 섞인 어머니 푸념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사야지 뭐, 그런데 돈은 있냐?’ 마음으로 함께 울어 주고, 어려울 때마다 슬쩍슬쩍 도와주는 우리 형이 동생을 토닥여 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뭐? 잃어버려? 에잉, 그게 얼마짜리인데.’ 아버지가 아들내미 소식을 들으면 되레 짜증을 내면서 한 마디 하실 테지. 여태껏 장비를 잃어버린 뒤, 속쓰림과 허전함에 몇 달 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에도 어찌어찌 돈을 마련하고 적금 깨면서 가까스로 다시 장비를 마련하곤 했는데, 이제는 깰 적금도 없다. 그렇다고 식구들한테 손을 벌릴 수 있는가.

 옆지기 배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이런 아버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려나. 참 딱한 양반이라고, 참 불쌍한 놈이라고, 참 한심한 분이라고 혀를 끌끌 차려나. 에그, 그래도 자기(아기)가 있고 옆지기가 있으니 기운내서 어떻게든 수를 써 보라고 내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려나. (4341.6.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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