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전진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54 ― ‘원폭피해 2세 환우’한테 인권은 없었네
 : 전진성 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김형률 평전)


- 책이름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글 : 전진성
- 사진 : 윤정은
- 펴낸곳 : 휴머니스트(2008.5.19.)
- 책값 : 12000원



 (1) 사라지는 책


 지난주에 바람 좀 쐬려고 서울로 헌책방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때 서울 노고산동에 있는 ㅅ헌책방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할머니 작품집》이라는 두툼한 그림책 하나를 보았습니다. “문화관광부 복권기금 지원사업”으로 나왔다고 책겉에 글씨를 박아 놓고 있던데, 2004년에 비매품으로 나왔습니다.

 2004년이면, 몇 해 안 되었기에, 그때 이런 책이 나온 줄 왜 몰랐을까 생각하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를 합니다. 이 책과 얽혀서 아무런 기사가 뜨지 않습니다. 비매품으로만 찍고 기자한테도 돌리지 않았을까요. 기자한테 보내어 주기는 했으나 기사로 다루지 않았을까요. 광주 퇴촌면에 자리한 〈나눔의 집〉에 가야만 구경할 수 있을까요.

 문과관광부에서 책 내는 돈을 도와주었다면, 출판사 한 곳에서 일을 맡아서 꾸며낸 다음, 새책방에도 집어넣어서 사람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찾아보고 읽으면서 하나하나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는지 궁금합니다.


.. 합천에서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로 건너갔던 것은 분명히 일제와 그 하수인들의 수탈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합천사람들의 고통은 그들을 히로시마로 내몰고 귀향 후 무책임하게 방치해 온 역사적 전말과 관련지어 규명되어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 응분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 분명히 역사의 피해자들인데도 이들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무책임한 사회라면 우리는 과연 이런 곳을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자발적인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까? ..  (148쪽)


 지난 2002년, 송건호 님 전집이 스무 권으로 나오면서, 그나마 몇 가지 시중에 있던 ‘낱권으로 된 송건호 님 책’은 모두 판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40만 원에 이르는 전집을 사든지, 아예 읽지 말든지 하라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헌책방을 찾아가 보면 송건호 님 책은 어렵잖이 만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아직 절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재판을 찍을 일이 없어 보이는 ‘송건호 전집’이 절판이 되어 버리면, 이제는 영영 송건호 님 책을 시중 새책방에서는 구경해 볼 수 없게 되고 말는지요. 송건호 님 책을 낱권으로 만날 길은, 또는 값싸고 가벼운 판으로 송건호 님 책을 읽을 수 있는 길은, 앞으로도 없을까 모르겠습니다.


.. 일본의 원폭피해자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한국인들이 겪은 식민지 지배와 전후 방치의 고통만큼은 알지 못했다 …… 형률 씨는 자국의 역사적 과오를 덮으려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정당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 소재를 일본 정부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책임은 미국 정부에게도,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도, 또한 한국의 시민사회에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 원폭피해자들 자신에게도 있다 ..  (89∼90쪽)


 지난 2006년, ‘리영희 저작집’ 열두 권이 나올 때, 리영희 님 책도 주루루 절판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다른 책이 절판되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까이 품절을 걷다가 절판까지 이어지고 만 《스핑크스의 코》라는 책도 있지만, ‘리영희 저작집’ 말고도 몇 가지 책은 시중 새책방에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리영희 저작집’ 열두 권이 먼저 품절이 되어버렸습니다.

 말로만 품절인지, 속내로는 절판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송건호 전집과 마찬가지로 ‘리영희 저작집’도 앞으로는 홀가분하게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은 뭉게뭉게 듭니다.


.. 그는 여기서 문제 해결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선지원 후규명’이라는 해법이었다. 날로 악화되는 환우들의 건강은 면밀한 조사와 법적 공방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순수한 인권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의료 원호 사업이 실시되어야 한다 …… 그러나 인권위는 ‘정책권고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원폭 2세에 대한 어떠한 실태 조사도 실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  (211쪽)


 지난 1999년, ‘문익환 목사 전집’ 열두 권이 삼십만 원이라는 값을 달고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책은 품절은 안 된 듯 싶습니다. 그러나 1999년 값으로 열두 권 삼십만 원이란 엄두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어느덧 열 해 가까이 지난 2008년에 와서 헤아리면 열두 권에 삼십만 원은 그다지 안 비싼(?) 값입니다만, 주머니를 열기가 벅차기는 매한가지입니다.

 1997년에 나온 ‘예용해 전집’ 여섯 권을 생각해 봅니다. 1997년 값으로 여섯 권에 십이만 원이었습니다. 예용해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를 곱씹어 본다면, 당신이 펼친 이야기처럼 당신 책도 수수한 아름다움과 멋을 듬뿍 풍기면 좋으련만, 글쎄요.

 한국땅에서 한국 얼과 넋을 빛낸 분들 책을 한 자리에 묶어내는 일은, 오히려 무덤을 파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는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갔어도 그분들 넋을 고이 이어받아서 우리 삶을 가꾸도록 하려는 몸짓으로 전집을 묶었을 텐데, 이 전집들이 받는 대접은 하나같이 겉치레와 껍데기일 뿐, 이 전집들에 담긴 이야기가 알알이 소담스럽고 조촐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르신을 기리고자 야무진 양장에 비싸구려 종이에다가 단단한 종이상자를 씌워 주는 일은 반갑기는 하지만, 무덤에 금을 바르기보다는 살아서 굶주리는 사람들 앞에 밥그릇 하나 골고루 놓아 주는 일이 한결 반가웁지 않으랴 싶습니다.


.. 형률 씨는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다. 현률 씨는 단지 사회복지 차원에서 구호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부채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였다 ..  (233쪽)


 ‘원자폭탄 피해자 2세 환우’ 김형률 님 이야기를 담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읽고 나서, 그러면 ‘김형률 개인을 넘어서 원자폭탄 문제란 무엇이고, 원자폭탄 피해자 이야기는 얼마나 우리가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자료를 뒤져 보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이쪽 일에 눈길을 두면서 자료를 챙겨 놓았기 때문에,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살핍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책이 있으니, 더 읽어 보면 좋습니다’ 하고 소개해 보려고 인터넷 새책방 목록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만화책 《맨발의 겐》을 빼놓고는 절판이나 품절입니다. 죽은 김형률 씨가 그토록 아끼고 되읽었던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책마저 2003년에 처음 나왔음에도 벌써 절판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진작 절판이 되었는데, 이참에 비로소 알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만.




 (2) 사라지는 역사


 나이를 거슬러서, 고등학교 적을 떠올려 봅니다. 1991년부터 1993년. 이 세 해 동안 찾아서 읽은 책을 헤아려 봅니다. 고1이 된 1991년 2월께, 방송 소식으로 ‘1993학년도 대입시험은 학력고사에서 수능과 논술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과목을 배우던 그해부터 교과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같은 학교를 마친 우리 형이 쓰던 교과서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물려받을 수 없었고, 모두 새로 사야 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바뀌기만 하지 않고, 교과서에서 쓰던 말도 한꺼번에 바뀌었습니다.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는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뗀석기’와 ‘간석기’가 쓰였고, ‘지석묘’ 또한 사라지면서 ‘고인돌’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함께, 교과서 지식만으로는 수능시험을 치를 수 없으니, 교과서 아닌 교양서적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문이 내려왔습니다.

 교과서가 바뀐 탓에 살림돈이 많이 나가 우리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이 소식은 ‘교과서 아닌 책을 학교로 마음껏 가지고 가서 읽어도 되는구나’ 하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역사 시간에 박지원을 가르쳐 주면, 책이름을 잘 새겨 놓았다가 박지원이 쓴 글과 책을 책방을 뒤져서 찾아 읽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이름이었지만, 박영문고에는 ‘박지원ㆍ이옥’ 소설이 함께 묶여 있었기에, 또다른 옛 선비 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 지식으로는 ‘박지원 = 열하일기’였지만, 저는 구태여 《열하일기》라는 책을 손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정약용 = 목민심서’로 외우기 싫어서 《목민심서》를 읽고 《흠흠신서》를 읽었습니다. 마침 한문 공부를 꽤 깊이 하였던 터라, 박지홍 님이 쓴 《한문입문》까지 읽으면서 《목민심서》를 아예 원본을 놓고 새기기도 했습니다.


.. (박정희) 군사정권은 국내 원폭피해자들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왜? 민주적 정통성이 결여된 군사정권은 주변국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우두머리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만주관동군에 충실히 복무했던 둘도 없는 친일파가 아니었던가 ..  (83쪽)


 현대역사를 가르치며 ‘박은식’이 나오면 《독립운동지혈사》를 찾아 읽었고, ‘신채호’가 나오면 《조선상고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책은 시중 새책방에 없었습니다. 박은식 님 책은 박영문고와 서문문고로 있었으나, 헌책방에서 겨우 찾았고, 신채호 님 책도 삼성문화재단문고로 나온 판을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찾아서 읽었습니다. 김동인이든 김유정이든 이효석이든 나도향이든 안수길이든, ‘이름 = 작품’이 아닌 ‘이름 → 책’으로 바꾸어서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놓은 다음, 반드시 찾아서 읽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틈틈이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 ‘교과서 아닌 책’을 잔뜩 꺼내는 제 책을 압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을 치르려면 교과서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면서요?’ 하고 대꾸를 하면서 국어 교사나 역사 교사 손을 거쳐서 모두 돌려받았습니다.


.. 원폭 이전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제일 가는 군사도시였다.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은 히로시마에서 승선했고, 메이지 천황은 히로시마를 7개월 간 임시수도로 삼고 육해군을 통솔하는 최고 사령부인 대본영을 히로시마성에 설치했다 …… 이후 반세기에 걸쳐 히로시마는 아시아 침략의 거점으로 크게 번창했다 ..  (115쪽)


 나중에 우리가 꿈꾸던 대학교를 속으로 읊으면서 ‘그 학교 그 학과에 아무개 교수가 있다더라. 우리가 그곳에 가려면 그 교수가 쓴 책은 읽어야 하지 않겠니?’ 하면서, 강만길 님이 쓴 《한국현대사》를 읽고, 《한국의 역사인식》 상하권을 줄줄 외면서, 수업을 듣다 말고 선생님한테 여쭙곤 했습니다. 교과서에는 안 나오지만 수능과 본고사 보기글로는 나오는 고은, 염무웅, 최원식, 백낙청, 김윤식, 김현 같은 사람들 책도 읽어나가면서 이들이 비평하고 소개하는 사람들 책도 가지치기가 되어서 저절로 따라 읽게 됩니다.

 이러는 동안 이오덕, 권정생, 이원수를 알게 됩니다. 성내운, 고정희, 최현배, 박완서, 홍명희, 황석영, 김정한, 천승세를 읽게 됩니다.

 교과서 역사에는 왜 ‘현대 역사가 이리도 짧게 나올까’ 갸웃갸웃하고, 두루뭉술하게 스쳐 지나가는 친일부역자와 독재정권 문제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중간시험과 기말시험, 또는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점수에서는 조금 낮은 점수, 때로는 많이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내 삶터 발자취를 내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 원폭이 차세대에 끼치는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미국의 핵무기에 대해 비판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일본 피폭 2세들은 이 정도 모험을 감수할 만큼 사명감이 투철하지 못하다. 다만, 자신들의 권익에 민감할 뿐이다 ..  (137쪽)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납니다. 이때부터는 거리낌없이 갖가지 책을 더 깊이 찾아나섭니다. 이토 다카시라는 일본사람이 쓴 《사할린 아리랑》과 《종군 위안부》라는 책을 만나면서, 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이분들, 사할린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이나 한국땅에서 제 모습을 숨긴 채 울어야 하는 분들 삶과 아픔을 한 줄로도 적바림하지 않을 수 있는지 짜증이 일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사람이 쓴 《미나마따의 아픔》이나 《촬영금지》나 《보도사진가》라는 책을 만나면서, 왜 한국에서 기자나 사진작가라고 하는 놈들은 우리 근현대사를 이렇게 멀찌감치 에둘러가면서 겉멋만 잡고 있는가 하면서 주먹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책을 만납니다. 한국외대 구내서점에서 일할 적에는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라는 따끈따끈한 책이 나온 모습을 보며 덥썩 껴안습니다. 《심심해서 그랬어》 같은 그림책은 아이들이 볼 그림책이라기보다 어른이 함께 보아야 할 그림책이라고 처음 느낍니다. 《몽실 언니》나 《하느님의 눈물》이야말로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보다 훨씬 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이할 책임을 느낍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대로 학교교육에 파묻히다가는, 책이 아닌 교과서 달달 외우며 살다가는, 교과서가 마치 책이라도 되는 듯 잘못 아는 삶을 고치지 않다가는, 이대로 시험점수에 노예처럼 휘둘리면서 ‘성적표 숫자가 자기 자신을 말하기라도 하는 듯’ 엉터리로 알고 있다가는, 사람도 망가지고 삶터도 망가지고 이 나라도 망가지겠다고 느낍니다.


.. (형률 씨가) 무심코 들춰본 진료기록부에서 그는 한 편의 의학 논문을 발견했다. 〈면역글로불린M의 증가가 동반된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병을 다룬 논문이 아닌가! 환자인 자신도, 그리고 보호자인 부모님도 알지 못한 채 발표된 의학 논문이었다. 1995년 당시 자신에게 병명을 알려주었던 주치의가 형률 씨의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를, 더구나 보호자가 낸 검사비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아무런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형률 씨는 엄청난 소외감을 느꼈다. 한낱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의 몸! ..  (54쪽)


 그렇게 ‘누군가 없애거나 지우려고 애쓰는’ 참된(?) 우리 발자취를 찾아나가던 어느 날, 서울 홍제동 ㄷ헌책방에서 《핵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만납니다. ‘한국 원폭피해자 2세’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돌아본 조그마한 책입니다. 《핵의 아이들》을 써낸 박수복 님은 1975년에도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을 펴내어 ‘한국 원폭피해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핵의 아이들》은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에서 소개한 원폭피해자들이, 그 뒤 열 해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가를 다시 찾아가서 만난 이야기로 묶었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때였던 만큼, 원폭피해자는 ‘여느 장애인보다 더 고달프고 아픈(?)’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왜 아픈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알 길이 없었고, 아파도 병을 다스릴 약값을 댈 수 없었으며, 바로 코앞에 떨어진 밥과 집 문제마저 풀기 어려웠습니다. 1975년에 낸 책에 붙인 이름처럼, ‘소리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삶이라고 할까요. ‘소리를 내도 들어 주는 사람 없’고, ‘이름이 없으니 알아주려는 사람도 없’는 삶이라고 할까요.

 박수복 님은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에서, 원폭피해자들 입을 갈음하면서 “한국피폭자들의 현존이야말로 현대의 전쟁이 무엇이며, 과학무기가 무엇인가를 그들이 온 생애를 통한 고통과 그들의 목숨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30년을 버텨 온 것처럼 앞으로도 버텨 갈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을 것이다. 장구한 미래까지도 결코 마멸되지 않는 흔적으로 그 고통은 메아리칠 것이다(25쪽)” 하고 외칩니다.

 취재를 하면서 울고, 글을 갈무리하면서 울던 그 마음이, 시중에서 사라지고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서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던 책을 우연히 알아보고 읽은 한 사람 마음으로도 이어져서, 서른 몇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쩌렁쩌렁 울립니다.




 (3)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책


..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유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원폭 2세 환우들과 원폭피해자 가족들을 더 이상 방치한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며 인권유린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김형률/288쪽)


 ‘한국 원폭피해자 2세 환우’ 김형률 님은 1970년 7월 28일에 태어나 2005년 5월 29일에 숨을 거둡니다. 서른여섯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피해자인 몸으로 태어나서 아픔 한 번 달래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다가 죽고 만, 원폭피해자 2세 환우 가운데 하나인 김형률 님입니다.

 형률 님 형제가 모두 아픔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다른 원폭피해자 2세들 가운데에도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형률 님은 ‘원폭피해자 2세 환우’라고 해서 ‘환우’라는 말을 뒤에 꼭 붙였습니다. “저와 같은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 2세 환우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 건강한 원폭 2세들도 유무형의 사회적인 편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김형률/38쪽)”한다고 말한 김형률 님. 그렇지만, 문제는 ‘튼튼하게 잘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세’를 뱀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에 있습니다. 더욱이, ‘아파서 힘겹게 겨우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세’를 아예 ‘없는 사람’인 듯 구석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야말로 문제입니다.


.. 생계 지원이나 박물관 건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환우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장치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 공세나 학술적인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  (254쪽)


 하루하루 더 골이 깊어가는 사회 푸대접을 바라보고 있자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처럼 어렵다는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부자가 가난한 이 삶을 돌아보기 어려웁듯, ‘몸이 안 아픈’ 사람이 몸 아픈 사람 삶을 돌아보기도 어려울까요.

 피해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 시름시름 앓거나 괴로워하는 사람 삶을 헤아리기는 꿈일 뿐일까요. 지식으로는 알고, 소식으로는 들어도, 그저 머나먼 딴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질 뿐인가요.


.. 아프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운동을 하는 이유였다. 아픔을 종식시키는 것은 그 운동의 목표였다. 그는 자신의 운동을 ‘인권회복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  (222쪽)


 모자라나마 이런 책이 나왔고, 아쉬우나마 원폭피해자 2세 환우 이야기를 다루며, 늦게나마 이 책 하나로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에 담아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제 첫발입니다. 첫걸음입니다. 김형률 님이 세운 ‘한국원폭 2세 환우회’는 어떻게 보면 첫발도 아닌지 모르거든요. 애써 첫발을 떼려고 했지만, 첫 발걸음을 떼려는 김형률 님과 이웃 아픔이들을 밀어서 넘어뜨린 사람이 숱하게 많았어요. 2004년 여름날,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에서 ‘원폭피해자 담당 사무관’하고 만났을 때, 담당 공무원은 “현재 한국 원폭2세 환우회에 가입한 회원수가 적어 조직을 인정할 수 없으며, 그저 김형률이라는 개인의 민원으로 접수하겠다고 못박았(169쪽)”답니다. 그리고, “박 사무관은 원폭 2세 환우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원폭피해자 실태 조사〉에서 원폭 후유증 자녀수를 2300여 명이라고 밝혔던 사실에 대해 그는 ‘모르는 사실’이라고 일축했(170쪽)”고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보고도 눈을 감았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팔짱을 끼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입니다. 공무원부터 여느 시민까지 한결같습니다. (4341.6.20.쇠.ㅎㄲㅅㄱ)

   
 
 [더 찾아볼 만한 책]

㉠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 조사자료
박수복,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창원사,1975)
박수복, 《핵의 아이들》(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1986)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인 원폭피해자(실태조사보고서)》(한국교회여성연합회,1984)
한국교회여성연합회ㆍ사회사진연구소, 《그날 이후》(한국교회여성연합회,1989)

㉡ 원자폭탄 피해자 수기ㆍ증언
존 허시/이부영 옮김, 《히로시마의 증인들》(분도출판사,1986)
오꾸다 사다꼬/조형균 옮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생각사,1982)
표문태 엮음, 《버림받은 사람들》(중원,1987)
오사다 아라다 엮음/박준희ㆍ홍현길 옮김, 《원폭의 어린이》(학문사,1996)

㉢ 원자폭탄과 평화ㆍ환경 문제
칼 야스퍼스/김종호ㆍ최동희 옮김, 《원자탄과 인류의 미래》(사상계사,1963) 상하 권
간샤 다에꼬/조형균 옮김, 《아직도 늦지 않다면》(백재문화사,1991)
박해전 옮김, 《반핵과 제3세계》(시인사,1986)
히로세 다카시/김원식 옮김, 《위험한 이야기》(푸른산,1990)
리영희ㆍ임재경 엮음, 《반핵, 핵위기의 구조와 한반도》(창작과비평사,1988)
고승우ㆍ윤범모, 《반핵과 미술》(춘추사,1989)
표문태 엮음, 《아시아를 비핵지대로》(일월서각,1987)
윌프레드 버체트/표완수 옮김, 《히로시마의 그늘》(창작과비평사,1995)
이안 부루마/정용환 옮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한겨레출판,2002)
이치바 준코/이제수 옮김, 《한국의 히로시마》(역사비평사,2003)

㉣ 원자폭탄과 얽힌 문학ㆍ예술 작품
신기활, 《핵충이 나타났다》(친구,1989)
앨런 니들/박정은 옮김, 《핵시대의 우화》(현암사,1994)
김원일, 《히로시마의 불꽃》(문학과지성사,2000)
구드룬 파우제방/함미라 옮김,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보물창고,2005)
나카자와 게이지/김송이ㆍ이종욱 옮김, 《맨발의 겐》(아름드리미디어,2000) 10권

㉤ 원자력발전소 폐기장 문제와 얽힌 나라안 문제
전재진, 《핵, 그리고 안면도 항쟁》(충남저널,1993)
박영복, 《굴업도》(학민사,1995)

㉥ 일본은 아무 잘못 없으며, 원자폭탄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외치는 모순덩어리
나스 마사모토ㆍ니시무라 시게오, 《히로시마》(사계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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