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책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 양문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51 ― 수수한 애벌레한테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곤충ㆍ책》



- 책이름 : 곤충ㆍ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대
- 글ㆍ그림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옮긴이 : 윤효진
- 펴낸곳 : 양문(2004.10.20.)
- 책값 : 12000원



 (1) 내 삶터에 함께 있는 꽃과 풀


 망초가 있고 개망초가 있습니다. 살구가 있고 개살구가 있듯, 둘은 조금 다릅니다. 개망초가 먼저 꽃을 피우고, 망초는 조금 늦게 꽃을 피웁니다. 이 풀꽃 이름을 놓고 이런저런 옛이야기가 있는데,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한 가지, 우리들한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풀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농사꾼들도 무척 싫어하는 잡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는 망초, 꺾어도 꺾어도 다시 자라는 망초. 끈질기디끈질기기 때문에 풀약을 치지만, 풀약에도 꿈쩍을 않는 망초입니다.

 이러한 망초이지만, ‘망초’는 느즈막이 꽃을 피우고(7월이 넘어야), ‘개망초’는 일찌감치 꽃을 피웁니다(6월이 되기 앞서). 먼저 꽃을 피운 개망초는 자기 씨를 널리널리 퍼뜨립니다. 느즈막이 꽃을 피운 망초는 일찌감치 개망초한테 자리를 빼앗겨 차츰차츰 구석으로 몰립니다. 구석으로 몰리다 못해, 도시에서는 골목길 담벼락 밑자락 틈바구니에 겨우 보금자리를 틀곤 합니다. 개망초는 손바닥 만한 땅뙈기라도 있으면 먼저 차지를 해 버립니다. 개망초가 한창 꽃을 피워도 푸른 꽃잎만 내보이는 망초를 보고서, ‘오호라, 넌 여기에서도 잘 자라는구나.’ 하고 줄기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질기네. 어쩜 저런 데서도 살아나나.’ 하면서 징그럽게 여기는 사람만 많습니다.

 조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때때로 한갓지기도 하여, 또는 공원 걸상에 잠깐 앉기도 하여, 사람들은 이 풀이 피워낸 꽃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이야, 조그마한 꽃이 퍽 예쁜데?’ 하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조그맣고 예쁘장한 꽃이 무슨 풀인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되면, ‘뭐야, 그랬단 말야?’ 하면서 고개를 모로 돌리곤 합니다.


.. 무르익은 파인애플의 모습이다. 껍질이 엄지손가락만큼 두꺼워 깎아내고 먹어야 하는데, 자칫 어설프게 깎았다가는 날카로운 가시에 혀를 다칠 수도 있다. 포도, 살구, 까치밥나무열매, 사과, 배를 뒤섞어 놓은 것처럼 맛이 절묘하다 ..  (18쪽)


 지난 일요일 아침, 형과 함께 동인천 뒤편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우리 모두한테 고향인 인천이고, 어릴 적 참말로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놀던 곳인 동인천 둘레입니다. 저는 지난해에 인천으로 돌아와서 거의 날마다 이곳 골목길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처음 인천으로 돌아와서 다닐 때에는, 어릴 적 그토록 신발이 닳도록 다닌 길이 잘 떠오르지 않아 낯설기도 했지만, 하루이틀 다시 걷고 또 걷는 가운데 예전 일이 하나둘 떠올랐고, 어릴 적 걷던 일도 차츰차츰 생각났습니다.

 늘 걷는 골목이지만,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철 따라 골목길 꽃이 다르고, 꽃이 다 진 뒤에도 날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꼭 한 해를 보내고 난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도 새삼스럽습니다.

 송현동 골목길을 거닐다가, 늘 지나가는 길을 거닐다가, 낯익인 듯 낯익지 않은 듯한 열매나무를 보았습니다. 뭐지? 앵두인가?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살그머니 열매를 만져 봅니다. 말랑말랑합니다. 앵두 같은데. 그러나 앵두가 열매 맺힐 때 이런 모습이었나? 형은 “앵두는 아닌 듯한데. 앵두 열매를 보면 다르게 생겼잖아?” “그런가?”


.. 이 아메리카 버찌는 유럽의 버찌와는 맛이 틀리다. 하얀 꽃과 붉은 꽃을 같이 피운다. 나무의 크기도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자라는 버찌나무보다 크지 않다. 만약 이곳이 이윤에 덜 눈이 멀고 느긋한 농장주들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이 버찌들도 좀더 완숙한 맛을 내게 되지 않을까 ..  (32쪽)




 나중에 집에 와서 도감을 살펴보고, 찍은 사진을 둘레에 보여주니 ‘앵두가 맞다’고 합니다. 그래, 앵두. 그러나 척 보고도 앵두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앵두인 듯 아닌 듯 느끼는 가운데에도, 앵두나무 줄기가 이렇던가, 앵두잎이 이렇던가 하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했습니다. 정작 앵두를 먹으면서 살아도, 또 ‘앵두 같은 내 입술 예쁘기도 하지요’ 하는 노래를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어도, 앵두나무를 코앞에 두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날, 형과 골목길을 거닐던 날, 앵두나무 꽃그릇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토마토 꽃그릇’을 보았습니다. 처음 토마토 꽃그릇을 보면서도, 이 꽃그릇에서 자라는 녀석이 토마토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란 꽃이 어여삐 피기는 했는데, 무슨 꽃일까 한참 헤아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다가, 바로 옆에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앙증맞은 토마토 열매를 보고서는, 비로소, 아하, 깨달았습니다.


.. 나는 유별나게 생긴 이 애벌레가 어떻게 변신할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런데 1700년 8월 10일 볼품없는 나방으로 변해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처럼 아름답고 특이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별 볼일 없는 녀석이, 평범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와 나방이 탄생하는 일은 흔하다 ..  (50쪽)


 거리마다 은행나무가 가득입니다. 요사이는 벚나무를 아주 많이 심어서, 봄마다 사람들은 벚나무 구경을 갑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를 쿵쿵 찧으면서 은행 열매 거두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태껏 한 번도 은행꽃을 못 보았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도 해대는 바람에 은행꽃이 피었는지 안 피었는지 알아볼 수 없기도 했을 테지요(키높이에서는 은행 열매가 보이지도 않으니, 은행꽃이 피어도 여느 사람 키높이로는 알아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벚나무가 그렇게 곳곳에 피고 지고 하는데, 정작 버찌 열매는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안 큰 벚나무도 많아서 벚꽃은 눈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왜 버찌는 구경할 수 없는지. 누군가 미리 따 가기 때문일는지. 들새가 모조리 따먹어서 버찌를 구경할 수 없었을는지.


.. 수리남에는 형형색색으로 다양한 종류의 포도나무가 사방에 우후죽순처럼 자란다.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두기만 해도 6개월만 지나면 어느새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다. 만약 매달 심는다면 1년 내내 포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년에도 몇 차례씩 포도 수확이 가능한 수리남으로 포도주를 챙겨 온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98쪽)


 성당 나들이를 다녀온 옆지기가 쥐눈이콩 한 봉지를 사 옵니다. 우리는 서리콩도 먹고 까만콩도 먹고 푸른콩도 먹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한테 배우면서 콩을 심어 거두어서 먹곤 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콩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국민학교 1학년 그 어린 날, 제가 손수 심고 날마다 가꾸어서 열매를 맺어 손수 콩깍지를 까서 밥에 넣어 먹은 그 콩맛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으며 군침이 도는 콩맛입니다.

 그때, 콩 열매만 먹는 줄 알고 콩잎 먹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추를 먹으면서도 고추잎을 먹는 줄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깨와 깻잎을 이어서 생각한 지도 몇 해 안 되었습니다. 호박과 호박잎, 무와 무잎, 그리고 김치와 날배추잎, 이 모두를 한동아리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못해 온 삶이었다고 할까요.

 도시내기니 어쩔 수 없다지만, 도시내기라고 해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배속만 채우는, 슬픈 삶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어떤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며, 쬔 햇볕에 따라서 콩맛이 어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저 무슨 콩이 영양소가 어떠하다는 수치와 정보만으로 콩밥을 먹는다면, 너무 딱한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 플로스 파보니스는 높이가 280센티미터 정도이며 노란 꽃과 붉은 꽃을 피운다. 씨는 출산 진통을 겪는 임산부를 위해 사용된다. 네덜란드인들 밑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여성 노예들은 아이를 지우기 위해 이 씨를 사용한다.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아프리카의 기니나 앙골라에서 끌려온 흑인여성 노예들은 보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무자비한 착취가 계속되는 한 이들의 낙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  (127쪽)


 논이 있고 밭이 있는 시골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 논도 없고 밭도 없는 도시에서 자동차 씽씽 달리는 길에 둘러싸인 채 전기불 아래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는 아주 크게 다릅니다. 해와 바람과 물과 흙으로 빚어낸 밥 한 그릇과 돈 몇 푼으로 얻는 밥 한 그릇이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히 갈무리된 도감과 그림책을 보면서 익히는 꽃 이야기, 풀 이야기, 나무 이야기하고, 우리가 손에 흙을 묻히면서 심고 가꾸는 꽃과 풀과 나무 이야기하고 같을 수 있겠습니까. 꽃집에서 소담스레 만들어 주는 장미꽃다발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서 씨앗을 받아서 심는 꽃 한 송이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2) 《곤충ㆍ책》과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수리남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풀과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벌레 또한 가만히 살핀 이야기를 담은 《곤충ㆍ책》이 있습니다. 1600∼1700년대 수리남 자연 삶터를 담았다고 할 만한 책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오늘날 수리남과 견주면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거의 300∼400이라는 햇수이니까요. 열 해만 되어도 강산이 바뀐다고 했거늘,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동안 사라지는 푸나무가 있을 테며 새롭게 생겼다고 할 만한 푸나무가 있습니다. 삼백 해와 사백 해라는 세월 동안 달라지는 우리들 사람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를 놓고도 달라지지 않거나 고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백 해가 아닌 오백 해나 천 해가 가도록 바뀌지 않는 우리들 사람 삶 또한 있습니다.


.. 출판을 통해 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들어간 비용만 회수되면 족하다. 나는 책을 만드는 데 비용을 아낌없이 지출했다. 곤충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려는 일념으로 저명한 장인에게 동판화의 제작을 의뢰했고, 가장 질 좋은 종이를 사용했다.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으로 나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  (12쪽)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 사람들 삶터는, 식민지로 부리던 살갗 하얀 사람들 때문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수리남사람 스스로 즐거웁거나 기쁘도록 농사를 짓고 문화를 가꾸고 마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이 먹고마실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끼리 신나게 어울리며 애틋하게 사랑을 나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리남 삶은, 또 삶터는, 또 자연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나아지고 있습니까. 나아졌다고 할 만할까요.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을는지요. 우리하고는 너무 먼 나라이니까,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이니까, 그곳이 어찌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일인지 모르고, 또 우리들은 우리들 일로도 너무 바빠서 그런 곳까지 헤아릴 까닭이 없을지 모릅니다만, 수리남 사람과 자연 삶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요.


.. 메리안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리남 식민사회를 지배하는 오만한 사탕수수 농장주들과 갈등관계에 놓인다. 그는 흑인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하는 농장주들을 비난했고, 그들은 메리안을 돈도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괴상한 여자라고 비웃었다. 노예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나 노예를 데리고 열대림을 누비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안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농장주들을 의식하지 않았고, 또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 메리안은 아무리 혐오스러운 생물일지라도 가까이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 주목받지 못하는 미물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로 하여금 열대의 자연을 더욱 놀랍고 감동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  (헬무트 데케르트/189∼190쪽)


 어쩌면, 《곤충ㆍ책》을 그리고 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고 하는 사람한테도, 더구나 1600∼1700년대 그때에, 게다가 여자라는 몸으로 미루어보건대, 수리남이라고 하는 식민지 나라에, 또한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고 있지 않던 ‘수리남 벌레들 탈바꿈’에 눈길을 두는 일은 몹시 철없는 짓이고 어처구니없는 짓이며 시간과 돈이 남아도니 하는 짓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할 만한 일이 무엇이고, 자기가 애틋하게 바라볼 만한 일이 무엇이며, 자기가 몸바쳐서 이루어내면 좋을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식민지 지배자들 편견과 끔찍한 날씨와 말라리아와 어려운 살림살이 모두를 견디어내거나 이겨내면서 책 하나를 빚어냈습니다. 《곤충ㆍ책》을. 그리고 새로운 꿈도 꾸었어요. “(도마뱀은) 죽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개미나 파리를 먹기도 한다. 만약 이 책이 독자의 호평으로 많은 판매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런 동물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24쪽).”는 꿈을. (4341.6.6.쇠.ㅎㄲㅅㄱ)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동판화가이자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서지학자로 이름을 날린 ‘마테우스 메리안’이 낳은 딸. 그렇지만 마테우스 메리안 후광은 식구들한테 조금도 퍼지지 못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낳은 어머니는 ‘마테우스 메리안이 나중에 얻은 여자’였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자 그 집안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신분에 하잘것없는 살림에 아무것도 없는 형편으로 스스로 모든 삶을 일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독일 마르크돈 500마르크짜리에 얼굴을 새기기도 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이이가 조그마한 벌레 삶을 헤아리며 그림으로 남기던 때에는,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여기던 때. 마녀로 도장찍혀 죽을 수 있었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오랜 경험과 지켜보기로 빚어낸 책과 그림을 놓고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서 쓴맛을 견디어내야 했다. 그러나 자기 연구와 예술을 지키고 가꾸조가 가시밭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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