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조선의 처녀들 - 훈 할머니 편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50 ― ‘나라’는 내버리고, ‘우리’는 등돌린 여자
 :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


- 책이름 :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
- 글 :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펴낸곳 : 아름다운사람들(2004.2.24.)
- 책값 : 8000원


 (1) ‘미친’ 소와 ‘미친’ 날씨


 유월을 사흘 넘긴 아침, 찌푸린 하늘에서는 비가 오다가 구름이 걷히다가 해가 나다가 슬며시 더웠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합니다. 벌써 유월인데 올해 여름은 어찌 되려나 궁금합니다. 올여름은 지난여름처럼 끔찍하려나. 올해에는 여름이란 싹 사라지고 곧바로 겨울로 이어지려나. 그치지 않는 더위만 이어졌다가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다가 갑자기 얼어붙은 채 두 달 가까이 이어졌던 지난 한 해 날씨인데.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사라지고 철과 절기도 사라진 오늘날, 하루하루 날씨를 헤아릴 때마다 두렵습니다.

 우리들 밥상에 올려질 밥과 반찬도 걱정이지만, 우리 삶에 골고루 영향을 끼치는 날씨도 걱정입니다. 여름인데 덥지 않아서 걱정이고, 여름인데 햇볕이 뜨겁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모기가 온 집안을 휘젓지는 못하고 바퀴벌레도 좀처럼 나다니지 않아서 한숨을 돌리지만, 이 같은 날씨가 우리 몸에, 또 아기 몸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겹겹이 걱정입니다.


.. 이남이는 경상남도 마산 진동에서 나고 자랐다. 집에서 걸어가면 바다 푸른 물결을 볼 수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방파제에 나란히 앉으면 고깃배가 드나들었다. 부두에서 배를 타고 앞바다 섬에도 가 보았다. 부두로 가기 전 지나치는 곳엔 제법 큰 염전이 있었다 ..  (16쪽)


 지난 토요일, 목포에서 일하는 형이 동생을 보러 인천 나들이를 왔습니다. 하루밤 함께 묵고, 이튿날 아침에 슬슬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형은 이 골목을 아주 오랜만에 걷기도 하고 많이 바뀌어서 못 알아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데 중앙시장에서 헤맸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헤맸습니다. 골목골목 늘어서 있던 집들이 죄 사라지고 길이 넓어졌거든요. 없던 찻길이 생기고 없던 넓은 길이 늘어났거든요. 극장은 한 군데 빼고 모조리 문을 닫았고, 극장을 둘러싸고 있던 온갖 집과 길도 싹 바뀌었습니다. 저잣거리도 바뀌었습니다. 다만, 섣불리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들에는 예전 자취가 남아 있어요.

 동인천역 뒤편, 송현동 골목길마다 활짝 피어 있는 꽃을 구경하며 거닐던 때입니다. 조그마한 노란 꽃이 꽃그릇에 줄줄이 피어 있습니다. 오이꽃일까, 생각하며 다가갑니다. 오이꽃이 아닙니다. 토마토꽃입니다. 이야, 이렇게 집에서 토마토를 꽃그릇에 심어서 기르기도 하는구나.

 이제 막 어른 새끼손톱 만하게 열매가 영글기도 하는 토마토. 아직도 꽃을 마알갛게 피우기도 하고, 하나둘 열매가 맺기도 하고. 그래, 5월 끝머리부터 6월 첫머리에 오이꽃도 피고 호박꽃도 피고 참외꽃도 피고 수박꽃도 피지.


.. 그 일본사람은 이남이에게 ‘하나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남이는 왜 ‘이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하나코’가 되어야 하는가. 일본사람은 자신을 ‘주인’이라 부르게 했다. 일본사람을 ‘주인’이라 불러야 하는 조선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도착하고서야 이제 분명해졌다. 조선 여자들은 일본군인의 성노예로 이 먼 곳까지 강제로 끌려온 것이다 ..  (32∼33쪽)


 응? 그러고 보니, 정작 오이며 참외며 수박이며 토마토며, 꽃필 무렵은 유월 앞뒤인데. 커다란 할인매장에는 철없이 늘 토마토가 있었고 오이가 있었잖아. 저잣거리에 참외가 모습을 드러낸 지도 거의 석 주가 되었고, 수박도 두어 주 앞서부터 많이 나왔는데.

 철에 따라 움직인다면, 철에 따라 피고진다면, 참외며 수박이며 이제 막 꽃을 피울 때인데. 토마토도 이제부터 꽃이 필 때인데. 제철을 따지자면, 바로 이맘때 딸기를 먹고 살구를 먹고 복숭아를 먹어야 하지 않어?

 그런데 우리는 포도를 언제 먹지? 딸기가 어느 날부터 저잣거리에서 싹 사라졌지? 밤은 언제 거두지? 능금과 배는 언제 열매가 익어서 언제 우리가 먹었지?


.. 그들에게 조선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남이는 일본군인에게 성욕을 배설하는 도구였을 뿐이었다 … 프놈펜에 도착해서 처음 이틀은 쉬었다. 단지 군인들이 안 왔을 뿐이지 그것은 휴식이 아니었다. 일본병원에 갔다. 성병검사. 그 검사는 여자들을 위한 검사가 아니었다. 성병검사는 일본군인들을 위해서였다 … 그 높은 사람은 이남이의 부탁쯤 군복에 살짝 달라붙은 먼지 털어 버리듯 아무렇지 않게 털어 버렸다. 이남이는 아픈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가지 못했다 ..  (34,38,44∼45쪽)


 모내기는 유월에 했다지만, 요새 유월에 모내기를 한다고 하면 건달농사도 아닌 바보짓을 한다고 할 테지. 보리를 심거나 거두는 때, 밀을 심거나 거두는 때, 수수를 심거나 거두는 때, 옥수수를 심거나 거두는 때가 도무지 어찌 되었나. 지금 우리들은 쌀도 먹고 보리도 먹고 율무도 먹고 겨자도 먹고 파도 먹고 감자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양파도 먹고 빨간무도 먹고 고사리도 먹고 시금치도 먹고 냉이도 먹고 고들빼기도 먹고 두릅도 먹고 하지만, 정작 어떤 나물이 어느 때에 어디에서 나고 자라는지, 정작 어떤 푸성귀를 어느 때 캐거나 따거나 뜯는지를 알고나 먹고 있으려나.

 아니, 우리들한테는 딸기가 언제 어떤 빛깔 꽃을 피우는지, 딸기가 덩굴풀인지 아닌지, 딸기가 한해살이인지 두해살이인지 여러해살이인지, 딸기가 언제 익어 언제 따서 먹는지는 몰라도 될는지 모를 일일는지도.

 가게마다 딸기값이 어떻게 다른가만 알아도 넉넉한지도. 어느 가게에서 사는 딸기가 크고 달고 좋더라, 하는 정보만 알면 그만인지도. 여름이 아닌 봄에 먹든, 여름이 아닌 가을이나 겨울에 먹든 알 바 없는지도.


.. 세상을 다 뒤져도 찾을 수 없는 누나 이남이. 남동생 이태숙은 그렇게 누나를 그리워하다 92년에 암으로 세상을 떴다. 56년 아버지, 72년 어머니, 79년 언니 덕이가 그립던 동생 소식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동생마저 갔다. 이제 이 세상에서 이남이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65쪽)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동무들이 공부를 지루해 하고 모두 축 처져서 힘들어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까, 담임선생님이 당신 옆지기가 아이 낳을 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한겨울이었는데, 입덧을 하면서 딸기를 먹고 싶어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추운 겨울날 어디에서 딸기를 얻겠습니까. 요즘이라면 아무 걱정이 없을 터이나, 1980년대 국민학교 교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입덧을 하면 여자도 걱정이지만, 남자도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느라 참 힘들겠구나. 그런데 나는 나중에 커서 옆지기가 한겨울 밤에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아이 밴 여자가 입덧을 한다 할지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어떤 열매도 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안에서 키우지 않는 먹을거리라 해도 돈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게다가 금세 사들일 수 있습니다.

 한겨울에도 배를 먹을 수 있거든요. 여름날 쌀 떨어질 걱정을 누가 합니까. 식량자급율이 20%를 가까스로 넘는 한국땅이지만, 밥이 없어서 못 먹는 일이란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밥을 굶을 뿐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만 못 사고 못 먹고 못 즐길 뿐입니다.


.. 우리 나라에 캄보디아말을 전공한 사람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어서 훈 할머니의 속마음을 쉽게 헤아리기는 힘들었다. 말로 통할 수 없기 때문에 할머니는 눈빛, 표정, 몸짓을 잘 지켜봐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캄보디아사람이 되어야 했던 훈 할머니. 그래서 더욱더 캄보디아말만 열심히 했을 할머니를 떠올리면 ..  (115∼116쪽)


 ‘미친소’ 고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나 옆지기는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거의 사먹을 일이 없어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 걱정은, 우리들이 늘 먹는 곡식과 푸성귀를 마음놓고 얻거나 먹을 수 없는 대목, 또 싱싱한 푸성귀 구경이 어렵다는 대목에 있습니다. 우리 형편은 닿을 수 없어서 손수 논밭을 일구지 못합니다. 농약과 비료 안 쓴 곡식값이 비싸다고 하나, 제가 느끼기로는, 지금 우리네 곡식값은 너무나도 낮은 헐값입니다. 유기농 곡식을 사먹는 일은 조금도 비싸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외려 싸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씨눈이 살아 있는 누런쌀을 먹고 싶으나, 우리처럼 쌀깎기를 거의 안 한 누런쌀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이런 누런쌀 얻기가 쉽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눈밝히고 귀밝히면서 좋은 곡식을 얻어서 먹는다 한들, 나날이 날씨가 미치고 물과 바람이 어지러워지고 말면, 제아무리 유기농이라고 하는 곡식도 오롯이 살아 있는 밥이 되기 힘듭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 구석구석 공장이 들어서잖습니까. 산골짜기 안쪽까지도 아스팔트가 놓이잖습니까. 손으로 짓고 똥오줌으로 거름내어 짓던 농사가 자취를 거의 감추어 버렸잖습니까. 날마다 똥오줌 안 누는 사람이 없건만, 그 어마어마한 똥오줌이 거름이 아닌 쓰레기가 되어 하수구로 흘러들며 물을 더럽히고 자원을 헤프게 버리는 한편, 쓸데없는 데에 시설투자와 건물짓기가 끊이지 않잖습니까.

 ‘미친소’ 고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나라 땅에서는 이 많은 도시사람들 밥상을 채울 수 있을 만큼 고기소를 기르기 어렵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어쩌다가 한 번 먹는다고 한다면 한국땅에서도 고기소를 기를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한 주에 한 번도 아닌, 거의 날마다 고기를 밥상에 올려 버릇하고, 술안주로 삼는 우리들 삶이라 한다면, ‘미친소’ 고기가 아닌 ‘한국땅 소’ 고기라 하더라도 항생제와 사료로 자라는 소고기일밖에 없어요. ‘미친소’ 고기가 왜 ‘미친소’ 고기가 되었겠습니까. 하루치 사료 값이라도 줄이려고 성장촉진제를 먹이고 갖가지 ‘질병 막는 항생제’를 먹입니다. 사료에는 처음부터 이러한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담아 놓고 내다 팝니다. 우리는 고기를 먹는다기보다 항생제를 먹는다고 해야 옳습니다.


.. 할머니는 누가 누군지 모르니 투표 안 하겠다고 하셨다. 다음날 잔니에게 전화가 왔다. 투표하고 왔다고. 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이 집에 왔었노라고. 할머니는 집에 계시고 싶어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갔다고. 한 회원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해서 방송사에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정말 투표하고 싶으셨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취재를 하는 것만도 관심을 갖는 것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단다. 관심이란 어떤 것일까? 우린 정말 어떤 것을 보고 관심이라고 부르는 걸까? ..  (126쪽)


 한여름도 아닌 5월부터 참외를 먹으면서 속이 찜찜했습니다. 여름도 아닌 3월부터 딸기를 먹으면서 속이 께름했습니다. 나라밖에서 들어온 오렌지를 먹고 바나나를 먹으면서, 시큼달콤한 석류를 먹으면서, 더구나 한국땅에서 석류를 거두어들이지도 못하면서 한국땅에 넘쳐나는 ‘석류 마실거리’를 이웃사람한테 얻어마시면서 속이 껄쩍지근했습니다.

 참말로,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하느님의 눈물》에 나오는 토끼처럼, 바람을 먹고 이슬을 마시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 노릇인가요. 햇볕을 쬐고 물만 마시고 바람을 들이쉬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인가요. 사람으로 태어난 몸, 어쩌는 수 없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면서 살아갈밖에 없나요.

 철을 잊건 말건, 공기가 나빠지건 끔찍해지건,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없고 수도물도 바로 마실 수 없으니 끓이거나 정수기를 집집마다 달아 놓고 마셔야 하건 말건, 이리하여 날마다 더더욱 찌푸려지고 미쳐가는 날씨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우리 삶은 돈벌이만 잘할 수 있으면 그만인 셈인지요. 몸이 무너지고 망가지더라도 몇 손가락으로 꼽히는 대학교에 동무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들어갈 수 있으면 즐거운 노릇인지요. 참사람 되는 매무새를 익히지 않더라도, 어릴 적부터 한자 지식과 영어 지식을 머리속에 많이 집어넣고 있으면, 늙어서 죽는 날까지 걱정 하나 없을는지요.


.. 고향에 와서는 캄보디아에 있는 자식들이 못내 눈에 밟혔고, 그래서 다시 돌아간 캄보디아에서는 다시 이 땅이 그리웠다 ..  (138쪽)


 촛불집회로 그나마 ‘미친소’ 고기 하나라도 막아 보려는 그 발버둥 같은 몸부림조차 주먹질과 몽둥이질과 물뿜질과 발길질과 방패질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하는 이 나라입니다. 이 땅을 어찌 ‘큰 한겨레인 민주 나라(大:크고 韓:한겨레이며 民:백성이 임자인 國:나라)’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이라는 책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이름은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이지만, 정작 이 책에서 다루는 “버려진 조선의 처녀”는 오직 한 사람,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던 ‘훈 할머니(이남이)’입니다.


.. 피해자들을 침묵에 가두고 싶어했던 건 어쩌면 일본 정부만이 아니다. 당연히 피해자들을 대신해 싸워야 할 정부, 그리고 이 사회에 사는 우리도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건 아닌가 ..  (80쪽)


 누군가 훈 할머니가 캄보디아에 살고 있음을 ‘찾았다’고 했지만, 누군가 찾지 않았어도 할머니는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못 보고 있었을 뿐, 아니 보려고 안 했을 뿐입니다.

 가만히 보면 그래요. 훈 할머니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 아니 아시아 곳곳에는 당신들 어린 날 받은 깊은 생채기를 가슴에 끌어안고 조용히 살다가 숨을 거둔 할머님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은 이 숫자를 제대로 모릅니다만, 한둘이나 이삼백이나 삼사천이 아닙니다. 사오만도 아닙니다. 얼추 이십만이라는 숫자를 헤아리고 있습니다. 나라안에서도, 또 나라밖에서도 당신들 아픔과 괴로움을 선뜻 털어내지 못합니다. 정작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달래면서 새힘을 얻어야 할 피해자는 할머님들인데, 할머님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할머님을 고이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일본 제국주의자와 군인이 먼저 이 나라 여자를 괴롭혔다고 하겠습니다만, 일본 제국주의와 군인이 물러간 자리에서 이 나라 사람들(그 가운데 남자들)은 무엇을 했던가요.


.. 할머니가 자신을 되찾은 날은 77년 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날이다. 훈 할머니는 가족을 찾았는데, 할머니가 찾아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범죄를 인정했는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처벌을 받았는가. 당시 끌려간 아시아 20만 일본군 ‘위안부’를 향해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했는가. 일본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알렸는가. 진실을 알렸는가 ..  (89쪽)


 저는 꿈꾸기를 좋아합니다. 꿈을 꾸고 난 다음에는 제 깜냥껏 조금이나마 움직여 보고자 애써 봅니다. 요즈음 꾸는 꿈 하나는 이렇습니다. 제 몸은 인천 배다리라는 곳에 있고, 이곳에서 동네사람하고 힘에 벅차도록 인천시 개발업자 공무원하고 싸워야 할 일이 있어서 멀리까지 힘을 북돋우거나 거들지는 못합니다만, 광화문이나 청계천 둘레, 또 시청 둘레에서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수요일 하루쯤은 한두 시간이어도 좋고 삼십 분이어도 좋으니, 일본 대사관 앞에 함께 찾아가서 할머님(일본군 성노예로 몸과 마음이 다친 할머님)들과 함께 ‘수요집회’를 한 다음, 다시 촛불집회 터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하고 꿈을 꾸어 봅니다.


.. 한 이산가족의 애달픔으로 바라보지 말자. 잠시 흐르는 뜨거운 눈물로 우리 자신을 위로하지 말자. 이 눈물의 현장에 일본 제국주의를 불러다 놓자. 역사를 왜곡하며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는 일본을 불러다 놓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다 끝났다고 재를 뿌리는 정부를 갖다 놓자. ‘다 지나간 일, 좋게 좋게’라고 하는, 역사를 잊은 우리를 불러다 놓자 ..  (97쪽)


 촛불집회를 하려고 날마다 꾸준하게 광화문에 모이시는 분들이라면, 목요일에는 탑골공원 앞으로 잠깐 걸어가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분들하고 목요집회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수요일에는 ‘왜 저 할머니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 해도 넘는 긴 세월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저렇게 싸우시나’ 하고 생각해 보고, 목요일에는 ‘왜 저 아주머니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렇게 국가보안법 문제를 외치나’ 하고 생각해 보는 셈입니다.


.. “내가 살아온 것, 어떻게 다 말로 해요. 말을 하려면 자꾸만 눈물이 나요.” ..  (143쪽)


 이명박 대통령과 이 나라 공무원과 수입업자들이 ‘미친소’이든 ‘미치지 않은 소’이든 자꾸자꾸 들여오는 까닭과 뿌리는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멀리 있지도 않아요. 바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못 느끼거나 안 돌아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조금만 둘러보면 됩니다. 살며시 마음을 기울여 보면 됩니다. 촛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우둥불이 되도록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면 됩니다. (4341.6.3.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