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배영사 교육신서 36
성내운 / 배영사 / 1988년 9월
평점 :
절판




성내운 씀, 《다시, 선생님께》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둔 어젯밤, 우리 동네 후보 가운데 한 분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동네 이웃으로 지켜보았을 때, 지난 여러 해 동안 동네일을 부지런히 하던 분이지만, 지지율은 높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다른 후보 사무실로 전화를 넣습니다. 이분들이 그동안 무엇을 말해 왔고 무슨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신문기사를 훑고 후보자 인터넷방을 살펴봅니다. 진보를 말하는 정당 후보를 빼놓고는, 모두들 ‘돈 들여서 개발하는 공약과 정책’으로 가득합니다.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공약과 정책은 없습니다. 동네 재개발, 항구 개발, 인천 지하철 이야기는 있으나, 동네사람들 삶과 문화와 복지를 헤아리는 눈매와 손길은 없습니다.

 수백 또는 수천이라는 억을 들여서 문화회관이나 도서관을 짓는다고 문화나 복지가 넉넉해지지 않습니다. 아시안경기를 치른다며 큰 운동장 수십 곳을 지어 놓는다고 생활문화나 복지가 발돋움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쉼터가 없다면.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 느긋한 어울림터가 없다면. 도서관을 짓는 데에 100억을 들여도, 책을 사서 갖추는 돈으로 1억도 안 쓰거나 못 쓴다면. 문화회관을 짓는다고 200억을 들여도, 동네 골목길에서 배드민턴 칠 만한 자투리땅이 없다면.

 1000원짜리 막걸리를 한 병에도, 650원짜리 라면 한 봉지에도, 100원짜리 소시지에도 세금이 붙습니다. 이 세금으로 공무원과 국회의원과 대통령 일삯을 치릅니다. 새 찻길을 닦든 새 아파트를 올리든 새 철길을 깔든 새 도시를 만들든,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이루어냅니다. 법원과 경찰서도 세금으로 꾸리고, 군인과 전경도 세금이 없으면 둘 수 없습니다. 서울부터 인천까지 내려는 물길과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려는 물길도 우리들 주머니에서 거둔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끊임없이 토목공사를 하면, 틀림없이 일자리는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어떤 돈으로 일삯을 치러 주는 자리인가요.

 책시렁을 뒤져서 《다시, 선생님께》(성내운 씀,배영사 펴냄,1977)라는 조그마한 책을 뽑아듭니다. 세월이 흘러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안타까움, 세상이 바뀌어도 다시금 꿈틀거리는 슬픔을 가슴속에 접어 두고 읽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어머니도 교사입니다. 아니, 어릴수록 어머니야말로 교사입니다. 한 어린이를 두 교사가 가르치고 있는 셈이지요.(113쪽) …… 학생에게 학습을 보장하자고 교단에 선 교사이지, 교사에게 교과서 떼게 하고 월급을 보장하자고 앉아 있는 학생들은 아닌 것입니다.(153쪽)”

 한 표를 얻자고 길거리에 나선 국회의원 후보들은 책 한 권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 경선을 치렀을 때에는 책 넘길 틈이 있었을까요. 선거에 나서야겠다고 다짐하던 때에는 책 구경할 짬이 있었을까요. 선거를 마친 다음에는 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한 느긋한 마음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4341.4.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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