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 우리 급료 시스템이 바뀌어서 점수제가 됐단 말이야! 점수를 따면 월급이 자꾸자꾸 올라가는 시스템이라고. 지금 그 포인트를 열심히 버는 중이야.” “점수제?” “즉, 좋은 교사가 된단 말야!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나…… 아무튼 지금 열심히 버는 중이야! 전에는 등교거부하는 놈을 등교시켜 100포인트를 벌었고,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꼭…….”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당연 빠따지! 전에도 왕따 문제를 해결했다니까? 이대로 가면 다음 월급은 꼭 올라갈 거야!” “헤에,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면 월급이 올라간다? 그것 참 편리하구나.” “그치? 이건 진짜 천재 문제 해결사라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니까.” “너 정말 썩었구나.” “응?” “뭐가 포인트야, 점수에 놀아나면서? 너 언제부터 그런 월급쟁이 교사가 됐어? 그런 선생들은 우리가 옛날에 제일 싫어하던 것 아니었어?” “뭐?” “돌아가. 다신 오지 마. 너같이 썩은 녀석하고는 오늘로 절교다!” .. 《후지사와 토루/서현아 옮김-반항하지 마 (21)》(학산문화사,2002) 62∼64쪽
만화책 《반항하지 마》를 보다가 속이 싸합니다. 주인공 영길이가 오랜 동무 용이한테 한소리 듣고 쫓겨나면서 들은 말 “너 정말 썩었구나.”에서 가슴이 찌릿합니다. 거짓부렁 교사가 아닌 참된 교사가 되겠다던 동무녀석이 점수(숫자와 돈)에 눈이 멀어서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짓을 하는 교사’와 마찬가지가 되는 꼴을 못 봐주겠다며 내뱉은 말 한 마디, 이 말마디가 오래도록 머리에 남습니다.
나는 얼마나 책다운 책에 내 마음과 몸을 바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책 만드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합니다. 책 하나에 얽힌 사람으로 누가 있을까 되새깁니다.
책 하나를 만들 때에는 여러 사람 땀방울이 스며듭니다. 맨 먼저, 책에 담긴 속살인 줄거리를 이루어내는 사람 땀방울이 스며듭니다. 이들은 글을 쓰는 사람일 수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수 있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들 글꾼-그림꾼-사진꾼 이야기를 잘 추스르고 매만지고 다듬고 보듬어서 종이에 담아내도록 엮어내는 사람 땀방울이 스며듭니다. 이들을 가리켜 출판편집자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이 글-그림-사진(원고)을 찍어낼 종이를 알아보는 사람(출판제작자)이 있고, 출판제작자한테 종이를 파는 지업사가 있습니다. 지업사에서 넘긴 종이를 받아서 찍는 인쇄업자가 있고, 책겉이 좀더 단단하도록 꾸미는 코팅업자와 제본업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은 배본회사 일꾼 손을 거쳐 나누어지고, 운송업자가 짐차에 실어서 책방으로 하나하나 나릅니다. 그러면 책방 일꾼은 갈래에 따라 책꽂이에 꽂아 놓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여기에, 알게 모르게 땀을 쏟는 이들이 더 있습니다. 책 몸글이나 겉그림을 꾸미는 사람(디자이너)이 있습니다. 몸글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는가 돌아보는 사람(교정/교열)이 있습니다. 주문을 받아서 책방으로 보내는 몫을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출판사 살림을 꾸리는 사람(경리)이 있습니다. 책방에 진열이 잘되어 있는가 살피고, 책방에서 책을 판 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영업)이 있습니다. 새책 소식을 알리려고 바쁜 사람(홍보)이 있습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글꾼-그림꾼-사진꾼이 자기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사람, 볼펜을 만드는 사람, 붓과 물감을 만드는 사람, 사진기와 필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들 글꾼-그림꾼-사진꾼과 책마을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차를 몰아 주는 사람(버스기사, 전철기사, 택시기사, 기차기사)이 있습니다. 늘 밥을 해먹을 수 없으니, 밥때 되면 밥을 해 주는 사람(밥집 일꾼)이 있어요. 밥집 일꾼은 농사꾼과 고기잡이가 거두어들인 곡식과 물고기 들을 사들여서 밥을 할 테지요. 이들 모두가 입을 옷을 만드는 일꾼이 있습니다. 이들이 마음과 몸을 쉬도록 해 주는 사람(술집이나 찻집 일꾼)이 있습니다. 이들이 손수 집을 지을 수 있으나, 이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일꾼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춥지 않도록 불을 때야 하니 석탄이나 석유를 캐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 하나가 나오면, 맨앞이나 맨뒤 자리 한쪽에 ‘판권’이라는 이름으로, 책 엮어내느라 애쓴 사람들 이름 몇이 함께 찍힙니다. 앞쪽 겉그림에는 글꾼-그림꾼-사진꾼 이름이 적힙니다. 틀림없이 이들은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품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다만, 이들이 이렇게 땀을 흘리며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애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꾼-그림꾼-사진꾼으로 있는 분들이, 또 책마을사람으로 있는 분들이 이런 애씀이들 얼과 넋을 고이 헤아려 줄 때, 고이고이 읽을 책이 우리 앞에 나옵니다. 세월이 갈수록 빛을 더하는 책이 우리 앞에 놓입니다.
그렇지만 글꾼부터 해서 책마을사람들이 애씀이들 얼과 넋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거나 아예 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으로서는 불티나게 팔리거나 엄청나게 사랑받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해도 언젠가 뽀록이 납니다. 볼장을 보지요. 좋은 책 하나 아닌 돈으로, 이름값으로, 권력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이들 껍데기에는 생명이 없거든요. 사람을 살릴 수 없고, 사람한테 빛을 줄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하루에 열두 끼나 이백 끼를 먹을 수 없어요. 비싼 밥을 먹는다고 몸에 더 좋지만은 않으며 병원 진료를 많이 받는다고 더 오래 살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조금 덜 팔리면 얼마나 안 좋은 책일까요. 조금 더 팔리면 얼마나 좋은 책일까요. 조금 덜 알려지면 얼마나 안 좋은 책일까요. 조금 더 알려지면 얼마나 좋은 책일까요. 조금 덜 읽히면 얼마나 안 좋은 책일까요. 조금 더 읽히면 얼마나 좋은 책일까요.
책쓰기, 책엮기, 책팔기 모두 사람 사는 일입니다. 돈(숫자)을 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책 하나 쓰고 엮고 팔면서 얼마나 ‘책’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인지요. 책 하나 사서 읽으며 얼마나 ‘책’을 돌아보고 있는 우리들인지요.
1969년에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된 《카프카와의 대화》라는 책을 책꽂이에서 끄집어내 봅니다. 이때 뒤로 두 번 다시 나왔습니다. 요새는 제대로 읽히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1977년에 처음 소개된 뒤로는 다시 못 나오는 《폴 란돌미-슈베르트》라는 책을 책상맡에서 잠깐 집어들어 넘겨 봅니다. 앞으로도 다시 나올 일이란 없을는지. 2006년에 나온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병》(한울,2006)이라는 책을 책꽂이에서 잠깐 뽑아서 읽습니다. 이 책을 사 준 사람은 몇이나 될까나. 요새 사티쉬 쿠마르 님 책이 곧잘 읽히는데 《부처와 테러리스트》 같은 책도 읽히고 있나? 《아레오파지티카》라는 책을 아는 언론인은 얼마쯤 있으려나. 《항일유적답사기》 같은 책은 두루 사랑받기 힘들까. 맛집이나 멋집 따위를 이야기했다면 잘 팔릴 텐데 왜 구태여 ‘항일유적’ 같은 데를 돌아본다고. 무교회를 말하건 예배당을 말하건, 똑같이 하느님을 모시고 우리 스스로 올곧게 살자는 소리일 텐데, 어이하여 우리네 종교인들은 우찌무라 간조를 안 읽고 김교신을 못 읽을까. 글쎄.
그러나 남 말할 형편이 아니지. 나부터 내 삶을 다스리고 내 자신을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는 책을 얼마나 허물과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나. 스스로도 참 좋다고 한 책을 읽어낸 뒤 내 삶을 내 스스로 얼마나 가꾸거나 갈고닦거나 다스리고 있었나. 나는 남들을 보며 “너 참말 썩었구나.” 하고 읊는 입은 있되, 나를 돌아보며 “난 참말 썩었구나.” 하고 무릎꿇거나 뉘우치는 입까지 있었는지. (4341.2.12.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