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만호-한밭의 해돋이를 휘돌아》(대전광역시 동구,1995)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자취를 골목길을 구비구비 더듬고 헤집으면서 부대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구청에서 홍보자료로 묶어냈는데, 글쓴이는 홍보자료로 묶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대전사람들 삶과 문화를 말하고 싶어서 구청 부탁을 받아들여서 골목길 나들이를 했답니다. 벌써 열세 해 묵은 책인데, 대전 동구청에 연락을 하면 이 책을 받아볼 수 있을까요.

 요즈음은 신문마다 ‘골목길 탐사’라는 걸 곧잘 하면서 ‘맛집 찾기’ 꼭지를 줄줄줄 이어싣기도 합니다. 나중에 낱권책 하나로 묶어내기도 하기에, ‘골목집 맛집 탐사’와 ‘빛깔 있는 골목과 거리’ 이야기를 다룬 책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책들이 어느 곳 어떤 골목과 거리를 다루었는가 찬찬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서울 인사동과 서울 홍대 앞과 서울 강남이나 압구정동이나 서울 명동,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 …… 서울, 서울, 또 서울입니다. 어쩌면, 서울 아닌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골목길 이야기는, 그 서울 아닌 곳 사람들 스스로도 찾아서 읽지 않으니까 굳이 살펴볼 까닭이 없을지 모릅니다. 서울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서울 골목길 이야기만으로도 넉넉하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문화를 말하는 골목이나 거리’라 할 때에는,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와 돈쓸거리를 선사해 주는 가게만 알려주면 흐뭇하다고 받아들이는지 몰라요.

 제주섬 중간산에서 홀로 살면서 오름 사진을 찍은 김영갑 님은 당신 삶을 조곤조곤 밝혀 적은 책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에서 “우리는 그냥 소나무를 푸르다고 한다. 소나무의 푸르름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확연히 다른데도 푸르다고만 한다.(58쪽)”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제주섬 오름 하나만 찍어도 아침과 저녁에 따라, 새벽과 낮에 따라, 어제와 오늘에 따라, 궂은 날과 맑은 날에 따라, 봄과 가을에 따라, 여름과 겨울에 따라, 비오는 날과 비 걷힌 날과, 구름이 몰려드는 날과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는 날과, …… 다른 모습 다른 느낌 다른 이야기가 참으로 많아서,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오름 하나라도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인천은 온 골목길을 다 밀어붙이고 갖은 골목집을 싹 쓸어내면서 30층짜리 아파트, 50층짜리 아파트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시장부터 소매 걷어붙이며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 헐리는 소식은 모두들 한목소리로 안타까워하는데, 인천 숭의동 공설운동장을 헐어버리려는 소식에는 인천 연고 야구단과 선수들도 아무 소리 안 냅니다. 서민 삶터인 배다리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내겠다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그런 길을 내겠다고 하면 펄쩍 뛸 테지요. 인천을 비롯한 우리 나라 어느 곳이나 오로지 ‘서울로 가는 길’을 내려고 서민들 작은 집을 깔아뭉갭니다. 산과 들만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사람 삶터도 쓰러뜨립니다. (43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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