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만 권 (+ 이기주 사재기/고루띠앗)
한 사람은 한 해에 책을 몇 자락이나 읽을 수 있을까?
나는 푸른배움터를 다닐 즈음부터 보임틀(tv)을 멀리했다. 꽃님이라는 사람들 이름은 ‘최진실·이지연’이 마지막이고, 이들 뒤로 나온 사람들 이름을 먼발치에서 둘레에서 읊을 적에 스치기는 하지만 도무지 알지 못 한다. 아주 이름난 ‘유재석’ 같은 이름조차도 정작 이이가 보임틀에 나오는 모습은 거의 안 보았다. 이웃집에 마실을 간다거나 이웃하고 밥집에 있을 적에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보임틀이 있으면 힐끔했을 뿐이다.
‘우순실’이나 ‘김완선’이란 이름은 듣거나 보았어도 ‘룰라’ 같은 이름은 듣도 보도 한 적조차 없이 싸움터(군대)에 끌려간 1995해 늦가을인데, 논산에서 두 달 남짓 뒹굴면서 106mm무반동총이라는 쇳덩어리를 다루는 길까지 익히고서야 강원 양구 멧골짝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에 윗내기가 나한테 처음으로 시킨 짓은 “야, 룰라 좀 부르고 춤춰 봐!”였다. 콜라도 아닌 룰라는 뭔가 싶어 멀뚱히 서서 암말도 할 수 없는데, 갑자기 발차기가 날아와서 가슴을 냅다 차더라. 내무반이라는 곳에서 뒤로 날아가서 관물대라는 곳에 쿵 박았다. 온갖 막말을 실컷 들었다. “대학물을 먹은 xx가 사람을 x같이 보고서 꼼짝을 안 하느냐”는 둥 이런 막말과 저런 막말을 한참 쏟아붓더라.
한 사람은 한 해에 책 한 자락쯤 읽을 수 있을까?
지난 2016해에 ‘이기주’라는 이름으로 《언어의 온도》란 책을 쓴 젊은이가 있다.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며, 적어도 170만 자락이 넘게 팔렸다고도 하는데, 이이가 그동안 해온 사재기가 2026해에 드디어 들통이 나면서 누리책집에서 이녁 책이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사라졌다.
찔리는 일이 없다면 모든 책이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안 사라지리라. 다만, 말밥에 오른 이들은 몇몇(신경숙·고은·김제동·정지돈·박위)을 빼고는 모든 책이 싹 사라지기는 한다. 한예찬이건 료이건 황석희이건 이병한이건 다들 지나가는 바람이다. 이런저런 말썽꾼이 낸 책을 헌책집에서 문득 들춰보다가 헤아려 본다. 이들은 책을 사읽기나 했을까? 이들은 주머니를 털며 마을책집에서 책을 사기는 하나?
한 사람은 한삶을 지내는 동안 책을 몇 자락쯤 사읽을까?
나는 여러 책집에서 이미 1만 자락이 넘는 책을 사읽었다. 2026해에 이르니 누리책집 〈알라딘〉에서 사읽은 책도 1만 자락이 넘는다고 한다. 열 몇 째로 1만 자락을 넘게 책을 산 곳이 생긴 셈이다. ‘이기주 사재기’ 이야기를 들으며 곱씹는다. 이기주 씨가 ‘사재기’ 아닌 ‘사읽기’를 했다면, 말밥에 오르거나 말썽을 일으킬 까닭이 터럭만큼도 없다. ‘사읽기’를 하는 나날이라면 스스로 글결과 말결과 삶결과 숨결을 늘 새롭게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배우는 하루이리라. ‘사읽기’가 아니라 ‘사재기’를 하느라 내내 돈·힘·이름을 쳐다보았을 테지.
돈을 벌려면 아름답게 벌면 된다. 힘을 찾고 싶다면 사랑스럽게 힘을 내면 된다. 이름을 드날리고 싶다면 나비와 새처럼 푸르게 노래하면서 날아오르면 된다. 아주 쉽다. 마을책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거나 두바퀴를 천천히 달려서 느긋이 사읽으면 된다. ‘내가 쓴 책’은 이웃한테 드리려고 이따금 펴냄터에서 사면 된다. ‘이웃이 쓴 책’을 끝없이 가없이 아낌없이 기쁘게 사서 읽고 새기고 생각하는 하루를 지을 줄 알면 된다.
‘만(萬)’이라는 셈값을 우리말로는 ‘골’이라 한다. 물골이나 골짜기나 고을을 가리키기도 하고, 골고루라든지 곳·곰·곱과 얽히는 낱말이면서 ‘뇌(腦)’를 가리키는 우리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루띠앗(1만 권 북클럽)’을 함께해 보기를 빈다. 사재기로 저지르는 돈팔이·힘팔이·이름팔이 같은 헛짓은 멈추고서, “책집 한 곳에서 1만 자락 사읽기”라는 고루띠앗을 함께해 보자. 글을 쓰거나 읽는 이웃 누구나, 책을 쓰거나 읽는 분들 누구나, 함께 고루띠앗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빈다. 2026.9.11.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