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라이헤
나스카 유적을 건사하는 길에 온삶을 바친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Grosse-Neumann 1903∼1998)’ 님이 있다. 이녁이 막바지삶을 보내던 끝자락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분이 쓴 책이 1999해 늦봄에 《나스카 유적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더라. 한글판이 갓 나오던 그무렵에는 이 책을 못 알아보았다. 어느 때라도 놓치는 책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면 사놓고서 잊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해 그즈음은 서울 이문동에서 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그야말로 가난 밑바닥을 신나게 누볐다. 새책은 엄두를 못 냈고, 헌책집에서 나달거리는 책만 골라서 겨우 사읽는데, 허름책 한 자락을 사기 앞서 말끔한 헌책을 스물∼서른 자락을 읽었다. 주머니가 가볍기에 서서읽기로 머리와 마음에 담으려 했다. 말끔책은 눈으로 읽고, 허름책은 집으로 데려가서 살살 손질하고서 두고두고 되읽었다.
올해(2026) 첫달에 부산에서 《나스카 유적의 비밀》을 새로 만났다. 아무래도 낯익은 겉그림이다. 틀림없이 그동안 손에 쥐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제 처음 마주하는 책이라 여기면서 일곱 달째 야금야금 읽는다. 읽을수록 줄어드는 쪽이 아쉬워서 앞으로 슬그머니 돌아가기도 한다. 오늘은 읍내 나래터로 책을 부치러 나왔으니 길에서 ‘걷는읽기’를 한다. 걷는 내내 팔뚝에 땀방울이 솟는다. 이마에서 똑 떨어지는 땀방울이 책을 적신다.
마리아 라이헤 같은 분은 온누리에 많다. 온사랑으로 온삶을 짓고서 온마음으로 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지. 또한, 이와 같은 길하고는 영 딴판인, 그러니까 사랑은 터럭만큼도 없을 뿐 아니라, 쳇바퀴인 삶에, 불타는 늪인 마음에다가, 하루가 지겹다고 여기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모든 ‘사랑’은 이분처럼 걷는 발걸음과 살림새일 테지. 우리는 두다리를 사랑하며 늘 걸을 수 있을까. 우리는 두눈을 사랑하며 늘 오롯이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두귀를 사랑하며 늘 귀담아들을 수 있을까. ‘두-’로 잇는 말씨를 하나하나 붙여쓰고 싶다. ‘두다리·두눈·두귀·두손·두발·두날개·두닝·두씨·두사람’처럼, 우리는 둘러보고 두레하는 ‘두빛’을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듯하기에 ‘두-’라는 말씨를 심고 싶다.
노래책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를 새로 냈어도, 오늘 새삼스레 노래를 찬찬히 새롭게 쓴다. 읽고 살피고 쓰고 나눈다. 일하고 쉬고 빨래하고 씻고 눕는다. 잠자리랑 눈맞추고 별을 그리고 바람을 반긴다. 푸르게 돋아나는 잎이 곱게 깨어나는 꽃으로 잇더니, 알차게 여물며 새롭게 눈뜨는 씨앗과 열매로 나아간다.
봄에도 여름에도 걷는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걷는다. 해날에도 비날에도 구름날에도 걷는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걷는다. 등짐과 책짐을 이고 지고 안고 품으면서 걷는다. 읽으면서 걷고, 걷다가 쓰고, 읽고 쓰느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발짝 내딛으면서 읽는다.
작은아이한테 건넬 수박 한 덩이를 짊어진 등짐을 읍내 한켠에 내려놓고서 다리를 주무른다. 살짝 숨돌리며 땀을 훔친다. 등판에 흥건한 땀이 살짝 마를 즈음 집으로 간다. 느긋이 돌아가자. 한여름 무더위는 오늘도 즐겁다. 땀을 실컷 흘렸으니 샘물로 시원하게 씻고서 쉬자. 2026.7.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