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20 서울국제도서전

책벌레수다 : ‘모두잔치’ 아닌 ‘돈잔치·이름잔치’라면



  오늘 우리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터전을 누린 지 고작 온해(100년)도 안 된 줄 모르기 일쑤이다. 그런데 “누구나 배우는 터전”을 마련하라고 임금님한테 목소리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기 일쑤이다. 이른바 ‘누구나배움(국민교육)’을 외친 사람은 ‘페스탈로치’이다. 페스탈로치라는 아재는 ‘전쟁고아’를 몸소 거두어 ‘누구나배움터’를 열었고, 나라(독일 정부)에서 이 아이를 돌보고 가르쳐서 ‘생채기를 씻고 달래어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갈 어른으로 북돋울 몫(의무)’이 있다고 외쳤다.


  그렇지만 페스탈로치가 죽는 날까지 임금님뿐 아니라 벼슬아치는 페스탈로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페스탈로치는 그저 이녁 온힘을 쏟아서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고 품었다. 뒷날 페스탈로치가 외친 ‘누구나배움’이 천천히 퍼지고 자리를 잡아서 ‘초중고 기본교육 제도’가 모든 나라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이런 배움틀을 마련한 페스탈로치 같은 이름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교육대학교에서나 조금 짚을 뿐 교대 바깥에서는 까맣게 모른다. 이와 달리 ‘루소’ 같은 사람 이름은 오래도록 ‘사상가’라는 이름을 누린다.


  우리는 어디를 보는 사람일까? 우리는 무엇을 읽는 사람일까? 우리는 속읽기를 잊은 채 겉훑기에 사로잡힌 늪이로구나 싶다.


  황석희·료·정희원·고은·신경숙·정지돈·이병한·박위뿐 아니라 숱한 겉치레 이름꾼이 드날리면서 책과 말과 글로 돈벌이를 일삼았다. 그들은 일찌감치 겉발린 말글책을 선보이면서 홀렸다. 우리는 속빛이 아닌 겉치레로 꾸민 숱한 책을 의젓하게 쳐내거나 솎아내지 못 한 채 살아간다. 이들 민낯은 이제 드러났지만, 민낯이 아직 안 드러난 숱한 글쟁이와 말쟁이가 있다.


  앞으로도 민낯이 드러날 이는 수두룩한데, 민낯이 드러날 때마다 놀라기보다는, ‘속(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오래말처럼 이제는 ‘얼굴값’이 아니라 ‘속’을 읽고 살피고 찾는 길로 우리 스스로 바꿀 때이지 싶다. 모든 책을 다 읽으려는 마음이되, 허울좋게 꾸미는 글꾼은 되도록 삼갈 줄 알아야지 싶다. 아니, 스스로 보금자리부터 몸소 가꾸는 하루라면 ‘겉글꾼’이 아니라 ‘속빛이웃’이 여민 책을 시나브로 가까이하겠지.


  지난 2025해 봄에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를 둘러싼 고름을 건드린 여러 사람이 있다. 한 해가 흐르는 동안 지켜보는데, 이 고름덩이는 새해를 맞이해도 풀릴 낌새가 안 보인다. ‘모두잔치’여야 할 책마당을 ‘혼자 돈잔치’로 바꾸고 만 슬픈 민낯이지만, 이런 속내를 찬찬히 짚은 글바치(기자·작가·평론가)부터 한 줌조차 안 된다.


  다만 한 줌조차 안 되더라도, 한 줌 있는 작은씨앗은 ‘그들끼리 혼자 돈잔치’가 아닌 ‘누구나 즐겁게 책잔치’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목소리를 낸다. 생각해 볼까. ‘모두잔치’라면 ‘누구나잔치’요, 누구나 드나들 자리를 마련해서, 가난하건 가멸차건 스스럼없이 만나고 아우르는 놀이터와 노래터를 이룬다. 모두잔치가 아닌 ‘돈잔치’에 ‘이름잔치’에 ‘힘잔치’라면, 목돈을 낼 만한 사람과 펴냄터가 한복판에 서겠지.


  여태껏 흘러온 ‘서울국제도서전’은 이름을 드날린 펴냄터·글바치끼리 한복판에 서면서, 돈과 이름이 있는 이들끼리 한복판에서 돈맛·이름맛·힘맛을 펴면서, 온나라 모든 펴냄터·글꾼을 들러리로 세울 뿐 아니라 ‘머리(참가자 숫자)’만 늘리는 틀이었다. 잔치가 아닌 ‘자랑’일 뿐이지 싶다. 2026해에 맞이할 ‘모두책잔치’라면 ‘에이아이(AI)’로 장난질을 치는 이름꾼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어린이’ 곁에서 ‘어질게 어른으로 서는’ 작은글꾼과 작은펴냄터 누구나 한복판에서 놀고 노래하는 한마당을 일굴 노릇이다.


  1954해에 ‘서울도서전’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제대로 책잔치를 꾀한 무렵은 1982해에 ‘한국출판판매회사’가 3.20.부터 한 달에 걸쳐서 ‘서울북페어’란 이름으로 너른마당을 편 때로 보아야지 싶다. ‘서울책잔치’를 꾀하던 1982해에 자그마치 한 달에 걸쳐서 했다고, 이듬해에도 이렇게 길고 넓게 책마당을 폈다고 들었다. 그야말로 누구나 모두 함께할 만하도록 자리를 열었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책을 담고 품고 나누고 알리는 큰잔치를 이루었다고 들었다.


  곰곰이 보면 ‘국제도서전’ 같은 이름은 매우 일본스럽다. 우리는 굳이 일본스런 이름을 안 써도 된다. 이제는 ‘북페어’도 ‘도서전’도 아닌, 굴레 같은 허울은 떨쳐내고서 ‘책잔치’를 하면 된다. ‘모두책잔치’를 열 수 있으면 된다. ‘서울책잔치’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이는 길부터 살필 수 있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라서, 사랑에는 높낮이나 크기가 없다.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따로 없이 그저 사랑이다. 해마다 우리나라 온책과 온글과 온사람을 모으는 온잔치라면 ‘온잔치’라 할 수도 있고, ‘온서울잔치’나 ‘온책잔치’라 할 만하다. 오히려 가장 수수하게 ‘서울책잔치’라는 이름이 가장 환하고 아름답게 나아갈 길을 밝히는 ‘작은’ 이름일 수 있다고도 느낀다.


  으리으리하거나 우람하게 내세운다든지, 몇몇 이름꾼을 드높이려고 하는 틀을 버릴 수 있어야 잔치이다. 봄마다 들숲메에 온갖 들꽃이 너나없이 어울리면서 돋아나서 푸르게 일렁이듯 수수하고 작은 모든 펴냄터와 글꾼이 어울려야 한마당이다.


  ‘서울책잔치’는 크든 작든 모든 펴냄터와 글꾼한테 활짝 열어젖힌 잔치마당으로 가야 맞다. 잔치마당이라 하더라도 돈잔치나 이름잔치가 아닌, ‘얼굴(대표작가)’을 따로 내세우지 않고서 모든 곳이 다 다르게 빛날 만한 길과 틀을 세우면 된다.


  이를테면, 모든 펴냄터가 똑같은 크기인 칸(부스)을 받아서, 그저 제비뽑기로 자리를 마련하는 길을 갈 적에 서울책잔치답다고 본다. 칸을 돈으로 사고받는 틀에 굳이 얽매이면서 몇몇 얼굴을 내세우는 굴레에 그대로 갇히기에, 자꾸자꾸 돈자랑·이름자랑·힘자랑에 파묻힌다. 이제는 자랑질이 아닌 잔치판으로 갈 때이니, 책사랑이라는 하루를 살아가는 책이웃 누구나 서울책잔치가 아름답게 제자리를 찾는 길을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ㅍㄹㄴ


산마르코 대성당 종탑에 올라 우아한 베네치아를 내려다보고, 볕이 잘 드는 광장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리도 섬에서 해수욕을 하고, 소금기 가득한 피자로 배를 채웠다. 무라노 섬으로 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담은 유리알 펜던트를 샀다.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94쪽


“아뇨, 제 아이가 아니에요.” “아, 실례했습니다. 남자 분은 잘 들르지 않으셔서 아빠신 줄 알았어요.” “그랬으면 좋았을걸 말입니다.” “네?” “아, 아무것도 아녜요.” “어쨌든 축하할 일이죠. 아기가 태어났으니!” 《루나 하이츠 2》 198쪽


“그렇게 미도리 선배가 좋으면 어째서 똑바로 솔직하게 대하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애매하고, 적당적당 나오니까 나까지 괴로운 거라구요!” 《루나 하이츠 3》 206쪽


스스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있고 다른 문화에도 흥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너무나 다른 가치와 규범에 맞닥뜨리게 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삶을 위한 수업》 135쪽


“빈 요트를 바다에서 찾는 거야?” “그런 셈이지.” “모두 사람이 타고 있잖아. 빈 요트 같은 건 없다고. 이 거짓말쟁이.” “정말 시끄럽네.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인내심을 가지고.” 《도라에몽 플러스 6》 56쪽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안정희, 중앙북스, 2015.9.7.)

《루나 하이츠 2》(호시사토 모치루/이경주 옮김, 북박스, 2004.9.9.)

《루나 하이츠 3》(호시사토 모치루/이경주 옮김, 북박스, 2004.11.25.)

#星里もちる #ルナハイツ

《삶을 위한 수업》(마르쿠스 베른센 엮음/오연호 옮김, 오마이북, 2020.5.20.)

#MarkusBernsen #Secretstonurturingconfident

《도라에몽 플러스 6》(후지코 F. 후지오/김준균 옮김, 대원씨아이, 2005.4.3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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