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사는 동안



햇빛은 수꽃과 같아. 별빛은 암꽃과 같아. 사람들은 얼핏 “해가 높고 크다”고 잘못 여겨. 푸른별하고 아주 가까워서 커 보일 뿐인데 말이지. 정작 별누리 뭇별이 엄청나게 크고 밝단다. 그래서 별빛이 암꽃이고, 햇빛이 수꽃이란다. 예부터 해바람비를 늘 눈여겨보면서 풀꽃나무와 들숲바다를 품는 사람은 암수꽃이 어떤 빛인지 제대로 알았어. 이제는 서울도 시골도 해바람비·풀꽃나무·들숲바다를 다들 등지는 터라, 암수꽃도 모르거나 잊고, 빛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엉뚱하게 짚어. 사는 동안 무엇을 보거나 어디에 있는지 헤아릴 노릇이야. ‘땅’을 디디지 않으면서 ‘아스팔트 길바닥’만 구둣발로 디디는데 ‘땅’을 읽거나 알 수 있을까? 모든 땅은 흙을 비롯해서 돌모레가 어울리고, 풀꽃나무와 풀벌레와 새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야. 사람들이 땅을 돈으로 사고팔더라도 “땅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뭇숨결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낱낱이 만나고 천천히 알아가고 차분히 품으려 해야, 비로소 땅을 조금은 헤아린다고 할 만해. 사는 동안 ‘땅’을 얼마나 디디는지 살펴볼 노릇이야. 사는 내내 “땅에 뿌리내린 풀꽃나무”를 얼마나 마주하는지 돌아볼 노릇이지. 사는 사이에 “땅에 뿌리내린 풀꽃나무에 새와 나비가 얼마나 내려앉는”지 생각할 노릇이란다. 살피는 동안에 문득 알면서 눈을 떠. 돌아보는 동안에 넌지시 알면서 기지개를 켜. 생각하는 동안에 차분히 알면서 이야기를 하지. 흘러가는 그대로 놓을 적에는 ‘나’라고 하는 숨결을 못 보거나 안 봐. 넋을 놓은 채 쳐다보기에 ‘나’가 아닌 ‘나허물(ego)’을 뒤집어쓰면서 ‘껍데기’가 ‘나’인 줄 여기지. 겉몸·겉모습·겉얼굴을 쳐다본달까. ‘알’이 아닌 ‘알껍데기’를 ‘나’로 잘못 여기는 동안에는 ‘삶’이 아닌 ‘삶껍데기’를 부여잡는단다. 2026.7.31.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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