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누가 본다
누가 나를 본다. 뒤통수와 옆통수와 이마로 느낀다. 살갗과 발바닥으로 느낀다. 이렁저렁 느끼고서 그저 걷는다. 등짐에 어깨짐에 가슴짐은 모두 책이다. 이러면서 책 하나를 쥐고서 읽는다.
나는 누구를 안 본다. 내가 읽을 책이 있고, 내가 쓸 글이 있으니, 늘 스스로책과 스스로글을 바라본다. 슬슬 한여름이 저물면서 뙤약볕이 훅 누그러든다. 시골집에서건 서울에서건 맨발로 노상 걷기에 볕이 바뀌는 길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직 여름볕에 땀이 돋거나 흐르되 ‘가을로 건너가는 늦여름볕’은 무척 부드럽다.
지난 2023해 첫봄에 서울 길음으로 책집마실을 했다. 그때만 해도 한 해에 한두 걸음씩 길음책집을 들르리라 여겼다. 그러나 두걸음을 하기까지 세 해 남짓 걸렸다. 이다음은 언제쯤 서울 길음책집을 찾아올 수 있을까. 오늘 모처럼 〈문화서점〉과 〈햇살속으로〉에서 찬찬히 책빛을 누렸다. 어제 서울에 와서 이야기꽃(강의)을 펴면서 받은 일삯은 두 군데 책집에서 사들인 책값으로 고스란히 나간다.
채우기에 비우고, 비우기에 차오른다. 차분히 배우면서 익히고, 익힌 씨앗 하나를 이 땅에 심고 나면 새삼스레 홀가분한 몸짓으로 다시금 배움길로 나선다. 이리하여 책으로 가득한 짐을 이고 걸고 안은 채 ‘새해절’을 미리 한다. 아직 한여름 끝자락이어도 다시 책집지기님 얼굴을 뵐 날을 어림할 수 없으,니 더더욱 한 칸 두 칸 마음에 그려넣는다. 허리를 굽혀 “오늘도 책을 참 잘 보고 장만해서 시골로 짊어지고 돌아갑니다!” 하고 절을 하는데, 나도 책집지기님도 자꾸자꾸 절을 한다. 대여섯 벌째 절을 하다가 얼른 밖으로 나선다. 한여름 끝자락 뙤약볕이 반갑다. 앞뒤옆으로 가득 짊어진 책짐이되 팔등이나 콧등이나 어깨나 무릎이나 종아리나 허벅지에 땀이 얼마 솟지 않는다. 등판에는 땀이 흥건하지만.
나는 ‘책집이 있는 마을’을 바라본다. 나는 우리집 둘레 시골자락을 ‘책숲이 있는 보금터’로 가꾸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켜보고 헤아리고 노래한다. 책이란, ‘이야기숲’이자 ‘이야기씨’에 ‘이야기꽃’이지 싶다. 숲과 씨와 꽃인 종이책이 시골과 서울에서 나란히 빛나기를 그린다. 우리 시골살림집은 지난 열여섯 해에 걸쳐서 뒤꼍과 옆뜰과 마당을 나무숲으로 감쌌다. 나무 곁에 서면 여름이 시원하고 겨울이 포근하다. 나무 곁에 서면 모든 시끌소리가 바람가락에 휩쓸려서 휙 사그라든다.
이 여름에도 얼음바람(에어컨)뿐 아니라 바람개비(선풍기)가 없는 작은시골집을 누린다. 둘 다 없이 부채로 쉰 해 남짓 살았다. 앞으로도 나무 곁에서 살림짓기를 할 뜻이다. 즐거이 종이책을 쥐려고 한다. 어제오늘 서울마실을 하는 동안 거님길을 천천히 디딜 적에는 볕길을 골라서 해바라기를 한다. 서울에서는 버스와 전철과 가게 모두 얼음늪(에어컨지옥)이다. 우리는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한테서 온 종이책’을 누리면서 눈뜰 만하지 싶다.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림하고, 나무로 불을 때어 밥살림을 잇고, 나무한테서 받은 몸으로 여민 종이에 이야기를 담아서 우리가 오늘부터 나눈 씨앗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으면, 이동안 보금자리를 작은숲으로 돌볼 줄 안다면, 누구나 푸른눈과 푸른귀와 푸른입과 푸른머리와 푸른마음과 푸른생각으로 깨어날 테니, 푸른말과 푸른글을 펴는 ‘숲말·숲글·숲노래·숲사랑’으로 어깨동무할 만하겠지.
밤과 새벽은 이슬로 노래한다. 한낯은 땀으로 춤춘다. 아침저녁으로는 볕바람으로 속삭인다. 어제 일하며 받은 일삯을 몽땅 털어서 책을 샀다만, 앞으로 다시금 일삯을 벌면 되니까, 그때에도 또 책값으로 가만히 쓸 텐데, 언제나 기쁘게 집으로 돌아간다. 배우려고 종이책을 품에 안는 사이에 살림돈과 살림살이는 시나브로 피어나리라 본다. 종이꽃이여, 우리 함께 시골책숲으로 날아가자. 2026.7.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