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고갯길을 굽이굽이 (2024.3.16.)
― 부산 〈글밭〉
마음을 안 쓸수록 안 닿습니다. 마음을 쓰기에 닿습니다. 마음쓰지 않으면서 종이를 쥐면 으레 구겨지거나 찢어집니다. 마음쓰며 종이를 쥐면 반듯반듯 펴면서 정갈하게 글씨나 그림을 담습니다.
책을 읽다가 복판이 북! 소리를 내면서 튿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쓰며 책을 건사하면 쩍! 소리를 내며 벌어지지 않아요. 시큰둥하거나 대수롭잖게 책을 쥐는 탓에 그만 튿어지거나 벌어지거나 찢어집니다.
마음을 쓰기에 아무리 낯선 낱말이어도 알아보고 읽어냅니다. 마음을 안 쓰기에 아무리 낯익은 낱말이어도 못 알아보거나 잘못 읽어냅니다. 둘레에서 흔히 쓰는 낱말을 써야 ‘쉬운글’이지 않습니다. 둘레에서 쓰는 사람이 드물더라도 온마음을 실어서 쓴 글줄에 깃든 낱말이라면 차분히 헤아리면서 읽어냅니다. 낯익은 낱말이라서 잘 알아듣지 않아요. 마음을 쓰고 기울이고 담기에 또렷이 알아듣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일렁인다는 첫봄이지만 맨발고무신으로 거닙니다. 해마다 이즈음에 꽃샘바람이 넘실거립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아닌, 꽃을 북돋우도록 새빛으로 샘솟는 바람입니다. 겨우내 찬바람과 눈얼음은 씨앗을 안 죽여요. 겨울바람과 겨울눈은 씨앗더러 “더 깊이 자렴! 더 느긋이 꿈을 그리렴!” 하고 노래하는 가락입니다. 겨울이 떠나는 첫봄에는 볕살과 나란히 아직 차갑게 부는 바람인데, 한봄꽃이나 늦봄꽃은 아직 더 자라고 달래는 바람이에요. 꼭 첫봄꽃만 일어나고 첫봄잎눈만 깨어나라는 바람입니다.
부산 연산동 작은책집 〈글밭〉을 찾아갑니다. 한 해에 한두걸음씩 〈글밭〉 책마실을 합니다. 다달이 책마실을 할 수 있으면 한결 즐거울 테지만, 먼발치에서 찾아가는 터라, 부산 곳곳에 있는 여러 책집을 둘러보느라 고루고루 띄엄걸음(한 해에 한두걸음)으로 책빛을 누립니다.
곳곳에 고갯길이 있는 부산입니다. ‘가맛골’이라는 이름마냥 온곳이 크고작게 오르내리는 길이 잇닿습니다. 집짓고 살기에 안 좋다고 여길 수 있지만, 줄줄이 서는 멧기슭 골목집은 서로 햇볕을 고르게 나누면서 조촐하다고 느낍니다. 들꽃은 서로 나즈막이 돋아서 해바람비를 골고루 누려요. 가맛골은 ‘고갯길’로 ‘고루길’을 굽이굽이 노느는 터전이지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숨쉬듯 날마다 새롭게 하늘을 읽습니다. 나날이 새롭게 새소리를 귀여겨듣듯 나날이 새롭게 뭇책을 만지고 돌보고 읽으면서 이야기씨앗을 찾습니다. 배우기에 익히고, 익히면서 펴요. 펴면서 다시 배우고, 새록새록 익히며 웃습니다.
ㅍㄹㄴ
+ <글밭>은 2025년 가을에 조용히 닫았습니다.
《교양국사총서 13 한국 상업의 역사》(강만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5.11.15.)
《禪思想 35》(이재복 엮음, 선사상사, 1985.10.25.)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양희은 글/우석,1993.9.20.)
《나 있는 그대로》(윤복희, 문예당, 1997.7.5.)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 돌베개, 1990.6.10.첫/1990.8.20.개정증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조국, 책세상, 2001.8.30.)
- 술 안 마실 자유도 있어야 2001.9.28.
《왜 사느냐고 묻거든》(김동길, 동천사, 1987.2.15.)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 엮음, 오래된미래, 2005.3.15.첫/2012.7.16.276벌)
《꽃의 고도》(심옥남, 문학의전당, 2018.6.29.첫/2019.3.7.2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