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8.18.
숨은책 18
《수련 일지》
정혜 글
꽃샘일기
1979.
경남 진주 봉곡네거리에 작은 헌책집 〈즐겨찾기(형설서점)〉가 있습니다. 이곳으로 책마실을 가서 느긋하게 책시렁을 둘러보던 어느 해입니다. 얼추 다 골랐구나 싶어서 책값을 셈하려고 셈대에 올려놓으려 할 즈음, 셈대 한켠에 있는 새뜸종이를 봅니다. “1979년은 오리온 초코·파이 시대”라는 알림글이 눈에 띄기에 묵은 뭉치인가 싶어 집습니다. 그런데 새뜸종이로 겉을 감싼 하루적이입니다. 푸른배움터를 마치고서 몸앓이를 하지만 열린배움터에도 들어가고 싶은 뜻을 틈틈이 적어내린 얇은 꾸러미예요. 붙임띠를 댔지만 마흔 해를 지난 붙임띠는 톡 떨어집니다. 속을 보니 ‘꽃샘일기’란 글씨에 일본스런 그림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하루적이도 얇고 작았습니다. 종이 한 자락도 알뜰히 삼던 무렵입니다. 몸이 아파서 괴로운 분은 아픈 몸이 낫기까지 담금질하며 하루하루 적겠다며 《수련 일지》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하루하루 지낸 이야기, 책집에 다닌 이야기, 글(문학·동화·시)을 써 보고 싶은 이야기, 옛동무를 만나서 기쁜 이야기, 몸이 너무 아픈 이야기, 책값이 비싸며 어려운 말이 가득하다는 이야기, 경남말도 고장마다 결이 다르다는 이야기 들이 흐릅니다. 애틋하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떠올립니다. 저도 어릴적에 책을 으레 새뜸종이로 쌌어요. 책을 아끼려고, 꾸러미에 때가 묻지 말라는 뜻입니다. 푸줏간에서도 가게에서도 다들 새뜸종이로 덧대거나 쌌어요. 그나저나 이 하루적이를 쓰신 분은 몸이 좀 나았을까요. 아니면 …….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