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봉인



함부로 꺼내거나 열지 말라면서 쪽종이를 붙여. ‘봉인’이라고도 하는데, 뜯을 수 없을 만큼 동여매는 일이 아니야. 그저 얇고 가볍고 작은 종이를 대고는, 손빛으로 가만히 눌러서 “그날 그곳 그사람”만 꺼내거나 열라고 두는 일이지. 그날이 아니고 그곳이 아니며 그사람이 아닌데, 함부로 다가와서 북 뜯어버려서 여는 사람이 꼭 있더구나. 다룰 줄 모르고, 쓸 줄 모르고, 할 줄 모르고, 그릴 줄 모르는데, 시샘과 배짱으로 부러워한 나머지, 마구 손대는 짓이라고 할 수 있어. “그날 그곳 그사람”이 아니면서 봉인을 떼거나 뜯거나 열면, 이런 짓을 한 사람은 그만 불타버리고 말아. 스스로 꿈을 그리지 않기에 봉인을 건드려. 제몫이 아니어도 노리느라 봉인을 뜯어서 들여다보려고 해. 속에 깃든 숨빛으로 무엇을 펴거나 할는지 모르면서 무턱대고 연 탓에, 호되게 일을 치르지. 모름지기 모든 봉인이 쇠사슬이나 말뚝이 아닌 쪽종이 하나인 뜻을 읽어야 한단다. 네 몸이 다쳐서 피가 날 적에 딱지가 생기면서 다친 데가 아물어. 딱지는 두껍거나 무겁거나 단단하지 않아. 마치 쪽종이마냥 가볍고 작고 얇지. 딱지는 그저 그냥 두면 돼. 이제 다 낫고 새살이 돋으면, 딱지는 알아서 떨어져. 봉인도 이와 같아. 넘보거나 지켜볼 까닭이 없어. 제때에 이르면 제풀에 스러지는 쪽종이인 봉인이란다. 너는 네가 뜻을 펼쳐서 날아오를 때에 이르면, 스스로 눈을 반짝이면서 깨어나고 일어나서 빙그레 웃는단다. 일찍 깨워야 하지 않아. 늦게 깨어나지 않아. 걱정도 조바심도 아닌, 하루하루 걸어가듯 온노래로 살아가면 꺼풀은 이내 사라진단다. 2026.7.21.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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