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읽기·걷는쓰기’로 부르는 노래
― ‘늘푸르게’ 글빛을 노래하기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숲노래 밑틀
최종규 글
사름벼리 그림
세나북스
2026.7.20.
ㄱ
그릇에 (함축)
비가 내려서
이 땅을 고루 적시면
어느새 씨앗 깨우고서
숨결을 푸르게 이룬다
샘이 솟아서
들숲에 두루 흐르면
어느덧 나무 우거지고
보금자리 새로 일군다
가루와 물을 반죽하니
떡이며 살림을 빚고
흙이랑 물을 비비면서
그릇을 한 벌씩 빚어
글에 담을 말씨를 헤아리고
그릇에 놓을 살림을 살피고
그림에 옮길 이야기 돌아봐
오늘 함께 두손으로 짓는다
한여름에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를 내놓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를 내놓았습니다. 두 가지 책은 ‘따라쓰기(필사)’를 하는 자리를 한켠에 놓았되, 모두 새롭게 쓴 노래를 담습니다.
《푸른말로 글빛노래》하고 《풀꽃나무 들숲노래》는 사잇종이에 손글씨 넉 자락을 담습니다. 책을 찍으면 사잇종이를 대어 좀더 단단하게 여미는데, 이 빈자리에 슬쩍 손글씨를 보탠 셈입니다. 그런데 이 손글씨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쓰지 않았어요. 저는 으레 걸으면서 읽고 씁니다. 시골버스와 시외버스로 움직이는 길에 읽고 씁니다.
시골에서는 ‘마을에 있는 집’에서 볼일을 보러 ‘읍내’로 가는 길만 해도 꽤 멉니다. 저는 그나마 읍내와 가까운 곳에 집이 있고, 15km 길입니다. 이 길을 그다지 멈추는 일도 없이 20분쯤 달리면 읍내에 이릅니다. 시골이기에 모든 길은 구불구불하고 오르내립니다. 내내 흔들리고 춤추는 시골버스로 ‘40분을 오가는 틈’이란, 또 시골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제법 긴 틈이란, 읽고 쓰기에 넉넉한 짬입니다. 더욱이 읍내라든지 서울(도시)에서 움직일 적에는 길에서 ‘걷는읽기 + 걷는쓰기’를 합니다.
낱말책에 없는 낱말일 테지만 ‘걷는읽기·걷는쓰기’처럼 붙여쓰기를 합니다. 그냥 앉거나 서서 읽거나 쓰지 않으니까요. 읽고 쓰는 새길을 나누고픈 마음이기도 하기에 ‘걷는읽기’와 ‘걷는쓰기’를 해보자고 이웃님한테 얘기합니다. ‘걷는보기(걸으며 스마트폰 보기)’는 멈추고서, 손에 이야깃감을 쥐고서 푸른빛을 품자는 뜻입니다.
ㄴ
바보눈 (지도편달)
바보라서 잎을 갉는 애벌레
바보이니 또다시 허물벗기
바보니까 고치 틀어 잠들기
바보는 이제 눈뜨며 날개돋이
처음에는 그저 바라본다
아직은 그냥 받아들인다
바다를 모두 담고 싶어서
바람을 몽땅 닮고 싶어서
오늘은 곰곰이 보고 짚는다
새로 살피고 새삼 들여다봐
앞으로 알아갈 길을 둘러봐
여태껏 모르던 나를 돌아봐
너를 알아보고 싶다
나를 찾아보고 싶다
한 걸음 나아갈 오늘은
두 걸음 나란히 넘는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새벽 5시에 이르면 새가 깨어나서 노래합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모든 나무는 즐겁게 잎을 내놓으면서 온누리를 푸르게 돌봅니다. 서울에도 시골에도 해가 비추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흐르면서 누구나 삶을 잇고 하루를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이웃과 동무로 마주할 적에 얼굴이나 옷차림이 아닌, 마음과 숨결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웁니다.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이가 자라서 살림을 알차게 하는 어른으로 거듭나듯, 하루를 스스로 노래하는 마음이 자라서 오늘 이곳을 새롭게 이야기하며 가꾸는 손길을 이을 만합니다. ‘잘 쓰기’가 아닌, ‘글익힘(문해력)’이 아닌, ‘마음빛을 푸르게 돌보는 글길’을 함께 헤아릴 만합니다. 누구나 보금자리에서 손수 살림을 지으면서 하루를 두런두런 이야기하면 어느새 글감을 한 자락 얻습니다. 저마다 일하고 쉬는 틈에 하늘을 바라보면서 구름과 비와 별과 바람을 마주하면 어느덧 글감을 두 자락 얻어요.
남이 나를 달래주는 글이나 그림을 찾아보아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내가 나를 바라보고 지켜보고 돌아보는 글이며 그림을 스스로 일구면 그저 즐겁습니다. ‘안 나쁠 일’이 아닌 ‘즐거울 일’은 늘 누구나 스스로 짓는 길이라고 봅니다.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서 책숲(도서박물관)을 꾸리는 동안 풀꽃나무한테서 배운 살림길을 《풀꽃나무 들숲노래》하고 《푸른말로 글빛노래》에 담고 얹고 실어 봅니다. 요즈음은 반도체가 없으면 AI도 현대문명도 못 누린다고 여기는데, 붓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나 말을 글로 담아서 하루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보기좋게 꾸미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오늘 이곳을 사랑하면서 손수 가꾸고 돌보는 사랑을 어떻게 글로 담아낼 만한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말은 ‘말씨’로 마음숲에 깃듭니다. 글은 ‘글씨’로 살림숲에 퍼집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온삶을 노래하는 실마리를 집에서도 길에서도 들에서도 일터에서도 쉼터에서도 바다에서도 느긋이 나눌 수 있습니다.
ㄷ
어느새 (품절)
어느새 사라지는 책이 있다
알차고 아름답게 여몄지만
알뜰히 알아보는 이웃 적어
그만 조용히 자취를 감춘다
어느덧 잊혀가는 책이 있다
한때 드날리고 잘나갔는데
말썽과 말밥을 잔뜩 일으켜
그냥 서둘러 덮더니 감춘다
어느틈에 새봄이 무르익어
봄꽃 봄바람 봄볕 봄비
부드럽게 꽃망울 부풀면서
찬바람 저 멀리 꼬리 감춘다
아무리 두꺼워도 어느새 읽어
아무리 드날려도 어느덧 내려
아무리 추워도 어느틈에 녹아
살고 사랑하며 눈물 감춘다
글이웃님이 걱정하는 말씀을 곧잘 듣습니다. “다들 글을 잘 쓰는데, 나도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보시면 “걱정하기에 걱정을 이어요. 내 모습을 창피하다고 여기니까 걱정하고요. 창피하건 안 창피하건, 오늘 이곳에 있는 나를 고스란히 담으면, 얼핏 창피해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수수하게 담아낸 글은 두고두고 스스로 되읽으면서 기운을 차리는 밑빛으로 삼을 만합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쓰려는 글’을 씁니다. 언뜻 보면 잘 썼구나 싶을 테지만, 누구나 오늘까지 배운 바를 스스로 녹여서 풀어낼 뿐입니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안 쓸’ 뿐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적에만 쓰려고 하니 글이 흔들립니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써야 글이 반짝입니다. 웃는 일만 쓸 글이 아닙니다. 우는 일도 쓸 글이에요. 다치거나 아픈 하루를 그대로 쓰면 됩니다. 꾸미거나 보태지 않으면 됩니다. 신나거나 기쁜 하루를 고스란히 쓰면 돼요. 치레하거나 덧달지 않으면 됩니다.
글을 잘 쓰려고 하는 탓에 오히려 우리 숨빛을 놓치고 맙니다. 글을 못 쓸까 걱정하는 바람에 도리어 우리 눈빛을 잊고 맙니다. “글빛을 노래하자”는 하루를 갈무리하는 《푸른말로 글빛노래》입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푸르기에 ‘늘푸른나무’입니다. 꽃길에도 가싯길에도 푸르게 살림하기에 ‘늘푸르게’ 걷는 노래길입니다. 푸른숲을 글로 담아서 푸른글입니다. 푸른메를 말로 옮겨서 푸른말입니다. 우리 함께 푸른노래와 푸른사랑과 푸른마음과 푸른꽃으로 피어나는 푸른별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래 한 자락을 띄웁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